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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부정하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할 위험을 안고 있다."

우리가 4·3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역사로서 4·3에 대한 과거를 이야기하고, 운동으로서 특별법 쟁취과정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이든 운동이든 4·3에 대한 지나친 추억은 미래로 향한 전진을 방해할 것이다.

역사는 창조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역사는 기억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 때문에 아무리 교과서에 역사적 사실이 실리고 제주 4·3에 대한 사건사가 게재된다고 해도, 그것은 필요한 것이기는 하되 충분한 것은 못된다. 아픈 과거를 통해서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의 소명이기도 하고, 본질적인 과제기도 하다.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고 있는 독일이 반 나치라는 명백한 사회적 합일 아래 다양한 교육 장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독일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기록한 <쉰들러 리스트> 관람을 독일 국민에게 권유하고 나선 것이나, 학생들에게 베를린에 있는 다종다양한 유대인 박물관을 관람하도록 과제를 내는 일들은 교실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직접 역사를 확인하는 과거사 현장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런 교육 장치를 통해서 젊은 세대들에게 역사에 대한 기억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천을 지도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지도자들의 이런 단호한 태도가 과거를 기억시키고, 결국에는 그런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단절시키는 새로운 젊은 세대를 키우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나의 새싹이 움트기 위해서 한겨울 얼어붙은 땅 밑에서는 얼마나 활발한 생명의 운동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독일은 그렇게 하나 하나의 새싹들을 키워내고 있으리라.

평화는 수입되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대장정으로서의 4·3진상규명 운동과 4·3특별법 제정, 정부의 공식사과, 이를 통한 희생자 명예회복 실현은 논의의 여지를 안고 있으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과거를 기억시키고 진상을 밝히기 위한 4·3평화공원 조성과 유적유해 보존·발굴 사업, 증언채록 등 소중한 4·3사업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들이 하드이고 컨텐츠라면, 새싹을 키워내기 위한 소프트로서 '행동 계획'은 비어있다. 새로운 진리가 승리하는 것은 새로운 가치를 믿는 새로운 세대가 성장할 때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4·3은 이처럼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궁극적인 과제가 될 터이다.

4·3주간 선포를 요구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나마 4월에 집중적으로 개최되는 다양한 행사를 젊은 세대에게 평화와 인권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삼지 못한다면 새로운 세대는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학생이 베를린의 학생처럼 4월 행사의 어느 곳엔가 참석하고, 이에 대한 예전에 없던 체험을 하게 된다면 이것만으로도 평화와 인권을 생각해보는 새로운 계기가 될 터이다.

한편 폭력에 저항하고 불의에 맞서는 평화와 인권과 정의를 되새기는 문화교육 프로그램도 구체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이다. 게임과 놀이를 통한 문화교육 프로그램은 어린 새싹들에게 평화가 머리가 아니라 몸을 통해서 훈련됨으로써 체득의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수입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마찬가지로 평화도 수입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평화를 위한 일상적이고 실천적인 행동 계획 마련에 4·3은 주체적으로 천착할 시점에 와있는 것이다.

4·3의 꿈

추억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대통령이 있었기에 4·3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의 공식사과로 이어졌으며, 58주년이 되어서는 대통령이 위령제에 참석한 것이리라. 이는 대통령이 4·3을 단순히 기억해야만 하는 과거로 보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제주를 세계적으로도 자랑할 수 있는 실천적인 평화와 인권의 성지(聖地)로 만들어 나가는 길, 그리고 과거 제주가 방화와 불의에 저항하고 단선과 단정을 반대하며 정의로운 4·3의 봉화를 들었다면, 이제 제주는 평화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성지 창조의 꿈을 그릴 때다.

덧붙이는 글 | <한라일보>(4월 3일)에 실린 글입니다. 제주 4·3연구소 소장으로서 행사를 치르느라 송고가 지체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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