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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 정책이 자연경관 보호 정책과 충돌한다면? 환경을 생각해서 만들게 될 환경시설이 오히려 환경문제를 야기한다면? 이 기막힌 논란이 영국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영국 정부가 잉글랜드 북부에 세워질 대규모 윈드팜(풍력발전단지) 건설 계획을 전면 거부한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 대체에너지설비로 각광받던 윈드팜이 어쩌다가 '환경저해시설' 논란에 휩싸이게 됐을까.

▲ Uktv-HISTORY 채널에서 방송한 BBC 다큐멘터리 <해안>의 한 장면. 영국 근해에 설치된 윈드팜의 모습이다.
각광받는 대체에너지 '풍력'

'윈드팜(Wind Farm)'이란 십여 대의 풍차와 풍력발전설비를 통해 전력을 생산하는 풍력발전단지를 말한다. 풍력은 최근 가장 각광받는 대체에너지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스페인, 인도,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설치돼 있다.

풍력이 각광받게 된 이유는 단연 대체에너지로서의 경제효율성 때문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적절한 지역에 윈드팜이 설치될 경우 같은 가격대 설비의 태양열 발전에 비해 50~100배 정도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때문에 윈드팜은 바람이 많이 부는 해변이나 바다 등지에 집중돼 있다. 설치가 용이하고 환경친화적이라는 점도 윈드팜이 각광받는 요소다. 윈드팜은 오염이나 방사능 문제와 무관하며, 바람이 많은 장소라면 어느 곳이나 설치할 수 있다. 또 윈드팜은 목축업이나 농업 목적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의 자연환경을 거의 파괴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

이런 매력들로 인해 풍력발전은 점차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아직 미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남도와 제주도를 중심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바람 많은 영국의 '윈드팜'

▲ 북아일랜드와 잉글랜드에 설치된 윈드팜 규모가 대략 드러나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곳은 잉글랜드의 좌측 상단지역쯤의 내륙인 컴브리아다.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므로 윈드팜이 밀집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UktvHistory
영국의 윈드팜 역사는 1991년 시작됐다. 현재 영국 전역에 설치된 풍력발전용 풍차만 1000여 개 이상, 윈드팜은 80개에 이른다. 그러나 아직 영국 전체의 전력생산량에서 풍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0.3~0.4%에 불과하다. 또 세계 최대 풍력발전 국가인 독일에 비하면 영국은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 오마이뉴스
바람이 매섭기로 소문난 영국의 명성을 감안한다면, 영국인들의 자존심이 충분히 상할 정도. 하지만 2004년 영국의 풍력발전능력이 888MW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더욱이 설치비가 계속 내려가고 있어서 영국의 윈드팜 전망은 매우 밝은 편.

일각에서 '흉물스럽다' '인공적인 풍차들의 모습이 자연경관을 망친다' '새들이 풍차에 충돌할 위험 등 조류 생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단점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영국에선 윈드팜에 대한 낙관론이 훨씬 우세했다. 2003년, 영국정부와 영국풍력에너지협회(BWEA)는 영국 내 풍력발전 비율을 2010년까지 10%로, 2015년까지 15%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발표했을 정도.

충돌, 휘나쉬 윈드팜 논란

그러나 3월2일, 잉글랜드 북부 레이크디스트릭트 국립공원 근처 컴브리아 지역에 세워질 대단위 윈드팜(일명 '휘나쉬 윈드팜') 건설계획을 영국정부가 전면 거부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 휘나시 윈드팜 계획 반대 웹사이트인 www.nowhinashwindfarm.co.uk에 올려져 있는 비교 사진. 위가 현재 모습이고, 아래가 설치 이후의 예상 모습이다.
휘나시 윈드팜 계획은 22에이커에 풍력발전용 풍차 27개를 설치함으로써 해당 지역 4만7천여 가정에 무공해 전기를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이 "풍차들이 레이크디스트릭트 지역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망가뜨릴 것"이라며 반발하자 영국정부가 주민들의 손을 들어준 것.

레이크디스트릭트 국립공원과 그 주변 지역은 영국에서도 가장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영국의 자연을 즐기기 위해 이 지역을 찾을 정도. 때문에 이 지역은 현재까지 인공적 시설은 최대로 억제된 상태로 계속 유지되어 왔다.

노동당 정부의 에너지부 장관인 맬컴 윅스도 이 윈드팜 건설계획에는 반대했다. 윅스 장관은 3월 2일자 BBC뉴스를 통해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웃의 환경과 생물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바로 이것이 바람에너지 문제 논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지역의원인 보수당의 데이빗 맥린 또한 "우리 지역의 소중한 자산인 자연경관을 있는 그대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동의했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휘나시 윈드팜 계획 철회를 주장해 온 일부 자연환경보호론자들과 지역 주민들은 즉각 환영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그린피스'를 비롯한 환경보호단체들의 생각은 달랐다.

환경보호론자들의 격노 "인간들의 이기주의"

▲ 풍력발전용 풍차들의 모습.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훼손한다는 면이 분명히 있긴 하지만, 멋진 인공미로 생각될 수 있을 듯도 하다.
ⓒ UktvHistory
환경오염과 그에 따른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대다수 자연환경 보호론자들은 격노했다. 특히 이들은 환경보호를 위한 대체에너지 계획이 '자연경관 보호'라는 이유로 거부된 데 대해 황당해 하는 눈치다.

2일자 BBC 뉴스에서 '그린피스'의 스티븐 틴데일 위원은 "공항건설계획은 받아들이고 윈드팜 건설계획을 거부하는 정부라니… 기후 변화가 결국 아름다운 레이크디스트릭트 공원을 파괴하게 될 것"이라 잘라 말했다.

인간중심적 환경보호논리(인간의 미래를 위해 환경을 보호하자는 생각)를 거부하는 생태중심적 환경보호논리(생태계 전체를 감안해서 환경문제를 봐야 한다는 생각) 옹호론자들은 금번 정부의 거부 논리가 인간중심주의적 발상이라며 한탄하고 있다. 정부의 결정은 '인간이 자연을 가꾸고 즐기기 위해 자연보호를 한다는 생각이므로, 자연 생태 자체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

영국풍력에너지협회장 마커스 랜드는 2일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거부는 상당히 유감스럽지만, 이곳은 많은 다른 후보지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밝히면서, 대체에너지 사용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윈드팜 건설이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휘나시 윈드팜 문제와는 별도로 다른 지역에서의 윈드팜 계획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6일자 BBC 뉴스는 컴브리아 지역의 앞바다에 이미 세워진 풍차들이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지금도 절대다수의 영국인들은 윈드팜 건설에 긍정적이다. 휘나시 윈드팜 논란과 관련해 BBC가 벌인 자체 Poll 조사에서 70% 이상의 영국인들이 윈드팜 근처에 살 수도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영국인들이 자연경관에 상당한 애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같은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과연 자연보호가 우선일까, 자연경관보호가 우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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