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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으로 6일 오후, 39세의 하원의원 데이비드 캐머런이 영국의 제1야당인 보수당 새 대표로 선출됐다. 영국 정가는 젊은 보수당 대표의 등장으로 술렁이고 있으며, 언론들은 기사를 쏟아내면서 캐머런 대표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주시할 부분은 대표로 선출된 보수당의 캐머런이 '당의 현대화와 급진적 개혁'이란 노선을 강조해 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90년대 당시 야당이었던 노동당 블레어 대표의 노선이었으며, 블레어는 이 노선으로 노동당을 18년 만에 여당으로 만들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보수당 캐머런의 등장을 94년 노동당 블레어의 등장과 비교하고 있다. 캐머런의 모습에서 당시 노동당 개혁을 부르짖었던 블레어의 11년 전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번 캐머런의 등장으로 차기 선거에서 보수당의 집권 가능성을 예상하는 성급한 사람들도 있다.

보수당 캐머런은 '제2의 블레어'?

▲ 블레어와 캐머런. 캐머런은 제2의 블레어로 일컬어지고 있다. 사진은 복지정책을 개혁하겠다고 장담하는 98년 당시의 블레어 수상(위)와 블레어에 맞설 새 보수당 대표 캐머런(하).
캐머런은 사립고등학교인 이튼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수재다. 부인 사만다와의 사이에 딸과 장애인 아들을 두고 있는 그는 한때 TV프로그램 제작사인 칼톤사에서 일했으며, 90년대에는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마이클 하워드 전 보수당 대표의 자문역을 지냈다.

그가 영국 정가에 정식으로 입문한 것은 불과 4년 전인 2001년. 휘트니에서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그는 이후 야당 예비내각의 교육부 장관직을 수행해 왔다. 지난 2005년 5월 선거에서는 하워드 대표가 이끄는 보수당의 캠페인 기획자로 일했다. 이어 지난 6일,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지 4년 만에 당 대표로 등극했다.

연거푸 집권에 실패한 과거를 가진 당에서 젊은 나이에 당 대표로 선출돼 당의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는 점 등 캐머런을 두고 90년대의 노동당 블레어(97년 첫 집권당시 44세)와 닮았다는 평판은 당연한 셈이다. 게다가 블레어에 뛰어난 경제담당 참모인 고든 브라운(재무장관, 첫 집권당시 46세)이 있었던 것처럼 캐머런에게는 예비내각의 재무장관인 34세의 조지 오스본이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캐머런과 블레어의 정치성향이다. 노동당 블레어는 전통적 좌파 이념을 버리고 노조와의 관계까지 조정하며 당의 성격을 중도화 하면서 영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내며 집권에 성공했다. 현재 캐머런도 보수당의 전통적 우파 이념의 상당부분을 버리고 좌파의 정책을 받아들이며 당을 중도화해 영국민들의 호응을 얻으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보수와 개혁층 끌어들여 보수당 경선서 압승

1, 2차 투표를 거쳐 2명의 후보로 압축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던 3차 투표는 캐머런의 압승이었다. 당내 경선, 1차 투표에서 캐머런은 우위를 점유하지 못했지만, 2차 투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결국 영국 내 전 당원이 참여하는 마지막 3차 투표에서는 13만4446표를 받았다. 경쟁자인 데이비드 데이비스(56)는 6만4398표에 그쳤다. 캐머런은 데이비스에 비해 2배가 넘는 몰표를 받은 셈.

▲ 보수당 홈페이지. 캐머런은 좌파적 냄새가 풍겨나는 '근대적이고 정다운 보수당의 구현'이란 모토로 국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공공서비스를 확대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캐머런은 라이트 블레어(Blair lite, 블레어의 가벼운 버전)라는 분석이 많다.
데이비스는 초기에는 우위를 고수했다. 그는 SAS(영국공수특전단) 출신으로 87년부터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어 보수당의 중역을 담당해 왔으며, 현재도 예비내각의 내무부 장관직을 맡고 있는 거물이다. 투표 전에는 보수적 성향의 보수당원들은 젊은 신인 캐머런보다 관록의 데이비스를 선호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경선 도중 캐머런은 대학시절 한때 마약을 했었다는 구설수에 올라 한동안 고전하기도 했다. 엑스터시의 마약 등급을 실제에 맞게 하향 조정하겠다는 그의 말도 구설수를 부채질했다. 이런 상황에 맞서 그는 "나는 아주 정상적인 대학생활 경험을 가지고 있다"라고 강하게 응수했으나, BBC와의 인터뷰에서 "누구나 방황기는 있는 법이며 사생활도 있다"라는 대답을 해서 방황 시절이 있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캐머런이 젊은 나이에 보수당의 대표가 되는 데에는 집안의 도움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란 추측들도 있다. 실제로 <선데이 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이자 보수당의 저널리스트인 페르디난드 마운트 경이 캐머런의 사촌이다. 캐머런은 마운트 가문을 통해 많은 귀족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으며, 윌리엄 4세의 후손들인 일부 왕족들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후문.

때문에 정치 신인인 캐머런이 경선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보수당 내의 보수층과 개혁층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입지를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한편, BBC 뉴스 6일자는 캐머런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당내 구조와 언론을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노동당 차기대권주자 브라운 "신경 쓰이네"

이런 보수당 캐머런의 돌풍에 대해 여당인 노동당은 직접적인 반응은 자제하고 있는 형편. 그러나 당장 차기 선거에서 노동당 대표의 위치에 서서 보수당의 새 대표인 캐머런과 1:1로 맞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은 캐머런이 받고 있는 스포트라이트에 대해 마음이 편치 않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고 한다.

올해 54세인 고든 브라운은 97년 노동당의 첫 집권 때 재무장관이 되어 현재까지 계속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블레어 수상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브라운은 영국 경제를 다시 일으키는데 큰 공을 세운 노동당 최고의 재무장관이라는 별칭도 듣고 있다. 한 때 그는 노동당 신진세력의 대표주자로 이름을 날렸으나 현재 캐머런에 비하면 상당히 노쇠한 셈.

6일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브라운은 캐머런의 나이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 "캐머런이 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가 늙어 보인다는 것은 두 살배기 아들을 가진 나에게는 좀 공정치 못하다. 나는 여전히 젊다고 느낀다"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또한 브라운은 "정책이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 3당인 자유민주당 의장이자 런던 대변인인 사이먼 휴는 캐머런 대표에게 축전을 보냈다. 하지만 휴는 캐머런을 97년 이후 내리 세 번 연속 정권 창출에 실패한 보수당의 다섯 번째 대표, 즉 보수당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급히 투입한 다섯 번째 인사라는 말도 덧붙였다. 캐머런 대표가 당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불투명한 상태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다음선거에서 보수당 집권 가능할까

▲ 보수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부인과 함께 승리의 V자를 그리고 있는 캐머런.
일단 보수당 지지자들은 물론, 상당수의 영국인들도 영국 정치에 새로운 분위기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영국의 네티즌들은 "보수당 출신의 새로운 토니 블레어를 뽑은 것", "영국 전체가 덜 보수적으로 가고 있는 상황", "이제 제대로 된 정책 대결이 가능하게 되었다" 등의 내용을 BBC 여론 게시판에 올리고 있다.

캐머런에게 참패한 데이비스도 "캐머런은 다음번 선거에서 보수당의 집권을 이루어 낼 사람, 수상직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며 "이제 보수당은 캐머런을 중심으로 뭉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축하의 말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당의 전직 수상들인 마거릿 대처와 존 메이저도 이번 경선 결과에 만족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그는 말꼬리를 잡으며 상대당을 폄하하는 정치풍토를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예비내각의 교육부장관으로서 블레어의 공교육 활성화 정책에 지지를 보내면서 "국민을 위한 정책을 선정하는 데에는 당파싸움을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7일 열린 의회정례문답(PMQ)시간에 캐머런은 유머를 섞은 날카로운 공격으로 블레어를 몰아붙였다. 케머런은 블레어에게 "당신의 공교육 활성화 정책을 우리 보수당이 밀어준다면 위험은 없다. 나는 미래를 말하고 싶다. ... 당신은 한때 영국의 미래였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개혁적 성향을 과시했다. 좌파 정책을 흡수하고 개혁적 보수를 주장하는 그의 정책이 어떻게 가시화될지에 대해 영국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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