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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의학을 전공하는 요하네스(25)는 지난 겨울, 비행기를 이용해 서독일 쾰른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갔다. 요하네스가 구입한 베를린-쾰른 간 왕복 항공권 가격은 39유로(5만원). 같은 구간을 기차로 이동할 경우, 독일철도에서 제공하는 50% 할인 티켓을 구입하더라도 왕복 90유로이니 요하네스는 기차요금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비행기를 이용한 셈이다.

런던 행 출장을 위해 독일인 B씨가 지불한 베를린-런던 행 왕복항공권도 대형항공사의 가격인 400유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50유로였다. 2~3년 전부터 유럽 전역에서 붐을 이루고 있는 저가비행기 덕이다. 바야흐로 유럽전역은 저가비행기 전성시대다.

택시비로 날아갑시다!

▲ "택시비로 날아갑니다" 독일의 한 저가비행기사의 광고.
ⓒ 강구섭
"19유로부터". 저가항공사의 웹 사이트 첫 화면이나 길거리 저가비행기 광고판에 예외 없이 등장하는 문구다. 실제 독일의 한 저가항공사는 여행 시즌이 시작되던 지난 7월, 유럽의 다른 도시를 왕복하는 50유로짜리 항공권을 슈퍼마켓 체인을 통해 판매, 단 몇 분만에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또 아일랜드 국적의 유럽최대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Ryanair)'는 베를린-런던 구간을 왕복할 수 있는 5유로 대의 초저가항공권을 판매하기도 했다.

물론, 저가항공기라고 해서 무조건 요금이 저렴한 것은 아니다. 일부 항공사의 경우 고정된 저가항공요금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항공사가 예약 시기나 여행시기에 따라 차별요금체계를 두고 있다. 저가비행기에서는 나란히 앉아 여행하는 두 사람의 항공권 가격이 70~80 유로 이상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차별 판매방식을 통해 항공사는 좌석당 평균 100유로 이상의 항공권 가격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쨌든 대형항공사 요금의 절반 이하 수준인데다 조금만 미리 여행계획을 세우면 왕복 60유로 안팎의 항공권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어 저가항공권은 폭발적 호응을 얻고 있다.

'19유로부터'라는 광고 문구처럼 택시비로 날아가는 것이 일부 여행객에게만 유효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저가비행기의 출현은 여행상품의 가격인하를 가져와 항공기를 이용한 여행을 대중화시키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럽전역은 저가비행기 전성시대

▲ 공항에 대기중인 독일의 2대 항공사 에어베를린의 저가비행기.
ⓒ 강구섭
현재 유럽에서 운영중인 저가항공사는 60여개에 달한다. 이들 저가항공사가 실어 나른 승객 수는 2003년 4700만 명에서 2004년 9천만 명으로 두 배나 증가했다. 이는 연간 9억1천만에 달하는 유럽 전체 항공시장의 10%에 해당한다.

독일에서는 작년 한해에만 2천만 명 가량이 저가비행기를 이용해 독일전체 항공시장의 15%를 점유했다. 특히 베를린, 파리, 런던 등 대도시간 이동에서는 이미 기존의 대형항공사보다 더 많은 승객을 나르고 있는 상황이다.

저가항공사들은 익히 알려졌다시피 '비행'외의 서비스를 없애고 짧은 거리를 여러 번 운항함으로써 수익을 맞춘다. 일부 저가비행기는 기존의 항공사처럼 음료와 식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저가비행기는 기내서비스를 일절 제공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저가비행기내에서는 승무원이 커피 잔을 건네준 후 돈을 받는 다소 낯익지 않은 풍경이 보이기도 한다. 음악 또는 비디오 등 승객들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줄 서비스도 제공되지 않는다.

저가항공사들이 잘 나가자 에어 프랑스, 루푸트한자 등 각국의 대표적 대형항공사들도 간혹 특별할인 가격으로 제공하던 저가항공권을 상시 판매하는 체제로 바꾸는 등 저가항공 요금 제도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봄날은 가고

그러나 저가항공기 사업은 호황 2~3년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너도나도 저가항공기 사업에 뛰어들다보니 운송 수요보다 몇 배 큰 공급 시장이 형성돼 버린 것. 이는 곧 무리한 가격경쟁을 불러왔고, 경쟁에서 밀린 영세항공사들은 도태 직전에 놓이게 됐다.

업계에서는 여름 여행시즌이 끝나고 나고 겨울철 비수기가 되면 다수의 업체가 문을 닫거나 항공사 간의 합병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고 저가정책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항공 요금을 올릴 경우, 이미 저가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이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승객이 없어 적자에 허덕이다 저가비행기 취항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베를린 쉐네펠트 공항.
ⓒ 강구섭
업계에서는 저가항공권 가격의 최저한계선을 편도 50유로 이내로 보고 공동 항공권 예약시스템, 서비스센터 운영, 홍보전략 등으로 경비를 최소화하면서 생존을 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중 일부 저가항공사들은 타 항공사와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의 저가항공회사 '게르마니아 익스프레스(Germania Express)'사와 '디비에이 항공사(DBA)'가 지난 3월말 합병을 추진했으며 이보다 앞선 2004년 초, 규모면에서 독일의 2대 항공사인 '에어 베를린(Air Berlin)'은 오스트리아의 '키니(Kini)'사와 제휴를 맺기도 했다.

비상등 켜진 승객의 안전

저가비행기의 저렴한 가격을 한껏 즐기고 있는 승객들에게도 이제 적신호가 켜졌다. 항공사간의 가격경쟁으로 저가항공권의 수지를 맞추기 위한 무리한 경비절감이 뒤따르게 되면서 승객의 안전과 직결되는 항공기의 안전관리가 표면화된 것.

이러한 문제는 지난 8월 씨프러스의 한 저가항공사 비행기가 아테네에서 추락, 121명의 승객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여실시 드러났다. 작년 말에는 독일 함부르크로 향하던 터키의 한 저가비행기의 기내 기압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산소마스크가 튀어 내려와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그보다 몇 주 앞선 2004년 11월에 역시 같은 항공사의 비행기에서 운항 중 화재가 발생해 비상착륙을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 겨울철 이륙 전에 폭설대비 작업중인 저가비행기.
ⓒ 강구섭
그러나 지금까지도 저가항공기의 안전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저가비행기의 안전관련 정보 또한 소비자에게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마련한 항공기의 안전과 관련된 엄격한 법규가 존재하지만, 다수의 유럽연합 국가들은 급격히 늘어난 저가항공사의 안전관리를 하기엔 인력이 태부족이라며 난감함을 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일단 오는 10월까지 안전문제로 운항이 불허된 유럽연합 내 저가항공사 리스트와 저가비행기 안전정보를 웹 사이트에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래도 잠재력은 여전하다

▲ '단거리 비행 최저 29유로, 장거리 비행 최저 99유로' 독일의 한 저가비행기 광고, 독일의 각 도시뿐 아니라 멀리 네팔까지도 운행한다
ⓒ 강구섭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가비행기 시장은 여전히 무궁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시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십 개 국가가 붙어 있는 지리적 특성상, 유럽은 짧은 거리를 자주 운항해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저가항공사 정책이 자리 잡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동유럽 국가들의 유럽연합 가입 또한 저가항공사들에게는 새로운 시장의 확대를 의미한다. 서유럽 저가항공사들은 동유럽의 신생 저가항공사들이 시장에 뛰어든다고 해도 당분간은 기존 서유럽 저가항공사의 독주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2010년까지 유럽항공시장의 40%를 저가비행기가 장악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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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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