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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연방의회총선을 20여일 앞둔 독일 정치권이 선거전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1년 앞당겨 치러지는 이번 선거의 최대관심은 기독민주당(CDU)과 기독교사회당(CSU)연합(이하 기민·기사연합)의 총리후보로 나선 동독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이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가 될지 여부.

줄곧 과반을 넘던 기민·기사연합의 지지율이 8월 들어 약간 주춤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집권당인 사민당(사회민주당)에 15% 가량 앞서고 있어 최초의 여성총리 탄생 가능성이 어느 때 보다 높은 상황이다.

지는 별 슈뢰더, 뜨는 별 메르켈

▲ 베를린 시내에 걸려있는 집권 사민당 선거홍보광고. 이번 선거를 역대 선거 가운데 가장 적은 유권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 강구섭
지난 8월 19일 독일여론조사 기관인 <포르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민·기사연합은 43%, 연정을 이룰 자민당은 7%의 지지율을 얻은 반면 사민당, 녹색당은 각각 29%, 7%를 얻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불황과 500만 대량 실업자 발생 등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건국 이래 최대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정권교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슈뢰더 현 총리는 정부의 개혁정책(아젠다 2010)에 반발하는 사민당의 지지층이 대거 이탈함에 따라 총리공관을 비워야 할지도 모를 처지에 놓였다.

이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야당연합의 총리인 메르켈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 기민당은 "슈뢰더 정부의 실정으로 집권 초 400만 가량이던 실업자가 반으로 줄기는커녕 하루에 수십 개의 기업이 도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권 교체를 부르짖고 있다.

동독출신 여성 총리 후보 메르켈은 누구?

1990년, 기민당에 처음 발을 들인 후 15년 만에 최초의 동독출신 여성총리 후보가 된 앙겔라 메르켈은 유권자들, 특히 구서독 지역의 유권자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1977년 결혼한 남편과 1982년 이혼한 후 1998년 화학교수인 현재의 남편과 재혼했다는 것도 비교적 근래에 알려졌을 정도.

1954년, 서독의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메르켈은 출생 8주 만에 목사였던 아버지와 함께 동독으로 이주한 서독출신 동독인이다. 동독 시절 동베를린 화학물리연구소에서 12년간 근무했던 물리학 박사 메르켈은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독야당인 Deutscher Aufbruch(DA)에 가입,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정치계에 입문했다.

메르켈이 통일독일의 정치무대에서 급성장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은 콜 전 총리였다. 독일 통일 직전 총선에서 승리한 뒤 동독 출신의 새 인물을 찾던 콜 전 총리는 동독 지역에서 당선된 메르켈을 연방여성청소년부(1991~1994), 연방환경부(1994~1998) 장관으로 전격 기용했다. 콜 전 총리의 지원 속에 정치적으로 성장한 탓에 메르켈에겐 '콜의 양녀'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 집권 사민당과 야당연합의 선거홍보판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메르켈의 얼굴에 누군가 낙서를 해놓은 듯.
ⓒ 강구섭
그러나 메르켈은 1999년 콜의 비자금 문제로 기민당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콜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기민당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정치생명의 위험을 감수한 소신을 신문에 기고, 한때 콜과 불화를 겪기도 했다(둘은 나중에 다시 화해했다).

일반적으로 당 대표가 총리 후보로 출마하는 경우가 다수를 차지하는 독일의 정치환경 속에서 메르켈이 잠재 총리후보에 해당하는 기민당 대표직에 오른 것은 지난 2000년. 당초 메르켈은 콜 총리의 불법 후원금 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된 기민당을 정비할 시한부 대표로 선출됐다. 차기 총리를 꿈꾸던 기민당내 잠재 총리후보 주자들에게 있어서 당내 지지기반이 없던 메르켈은 '임시대표'로 기용할 만한 더없이 적절한 카드였던 것. 그러나 "일천한 정치경험을 갖고 있는 메르켈은 당이 수습되면 바로 '팽' 당할 것"이라는 당시 예상을 깨고 메르켈은 당 대표로 뿌리내리는 데 성공했다. 권력에 대한 끝없는 집념을 갖고 있는 메르켈은 이미 이때부터 총리의 꿈을 키웠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쟁쟁한 서독출신의 당내 경쟁자를 제압하고 대표자리를 수성하던 메르켈은 2002년 총선에서 기민·기사연합의 총리후보였던 기사당 대표 슈토이버가 패한 후 이번에 치러지는 총선의 총리후보로 선출됐다.

메르켈, 고향 동독에선 인기 없다?

그러나 메르켈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보수적 성향을 띠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장경제체제 신봉자인 메르켈은 친경제계 정책을 주장하고 원전을 찬성하는 등 보수노선을 지향해 종종 '독일의 마거릿 대처'라고 일컬어진다. 메르켈에게 '사회주의적'인 것은 곧 비효율적인 것을 의미한다. 동독시절 물리학연구소에서 일하며 동독 체제의 한계를 경험했다는 게 이유다. 이러한 메르켈의 생각은 연방여성청소년 장관 재임 당시 "기존의 정책 가운데 사회주의적 요소가 아주 많다"고 지적했다는 일례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 메르켈의 총리공관 입성이 현실화 될 것인가. 사진은 연방총리공관.
ⓒ 강구섭
메르켈은 지난 2000년부터 기민당 대표로 당을 이끌면서 기민당의 정책을 한층 더 시장경제체제화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번 총선에서도 친경제계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또 독일 정치계의 최상층에 오른 몇 안 되는 동독 출신 정치인임에도 정작 동독 지역의 유권자들은 메르켈에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8월 12일 <포르샤>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 지역에서의 총리 후보 선호도에서 메르켈은 23%의 선호도를 보여 39%의 슈뢰더에 크게 뒤처졌다. 이는 정치인 메르켈의 그간의 행보에 기인한 것이다. 동독 출신 정치인으로 15년째 활동하고 있고 5년째 야당을 이끌고 있지만 메르켈은 지금까지 통일 후 동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구동독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정치인으로 동독인들에게 각인되었다.

메르켈 또한 '동독 출신 후보'라는 것보다 '전 독일을 대표하는 총리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중이다. 여기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은 동독 경제의 회생을 위한 이렇다 할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동독출신의 메르켈을 강조하는 것이 결코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도 함께 자리 잡고 있다.

메르켈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동독 출신의 기민당 정치인들은 메르켈에게 자신의 출신을 적극 부각시키고 구동독 지역에 더 자주 얼굴을 비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좌파 정당이 구동독 지역에서 기민당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지난 2002년 총선에 이어 이번에도 동독지역에서 패배할지 모른다는 현실적 우려 때문이다.

메르켈이 집권하면 대외관계도 보수화

▲ 작년 수개월동안 이어졌던 집권 사민당의 개혁정책(아젠다 2010) 반대 시위장면. 슈뢰더 현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개혁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으나 기민·기사연합에 줄곧 뒤처지고 있다.
ⓒ 강구섭
이번 총선에서는 경제성장, 실업, 세제 등 독일 국내 이슈가 핵심으로 등장했지만 메르켈이 슈뢰더의 뒤를 이을 총리가 되면, 독일의 국제정치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슈뢰더가 미국과의 관계악화를 무릅쓰고 이라크전에 반대했던 것과는 달리, 메르켈과 기민·기사연합은 미국과의 보다 긴밀한 관계형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 최근 들어 이라크 전 파병국에 대한 테러가 가시화되면서 메르켈이 당선돼 파병을 감행할 경우, 독일도 테러의 직접위협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자 메르켈은 집권하더라도 독일군을 파병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의구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다.

또한 올해 10월부터 협의가 시작될 터키의 EU가입 관련, 슈뢰더 정부는 터키의 가입을 통한 EU의 문화적, 지역적 외연 확장이 터키의 정치 경제적 발전뿐 아니라 EU의 영향력 확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해온 반면, 메르켈은 기존의 EU가 갖고 있는 기독교 정체성을 강조하며 터키의 EU 가입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메르켈은 터키의 유럽연합을 반대하는 대신 유럽연합이 터키에게 '특별 지위'를 부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막판 변수 작용할까

독일 총선을 20여일 앞둔 현재, 기민·기사연합은 여전히 지지율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최근 발생한 기민·기사연합내의 돌출 행동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막판 변수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8월 초 자매정당인 기사당 대표 슈토이버의 동독유권자 비하발언이 그 첫 번째. 슈토이버 기사당 대표는 자신의 본거지인 남독일에서 지난 8월 10일 열린 선거운동에서 "현명하지 않은 동독인이 선거결과를 결정짓게 해서는 안 된다"는 동독폄하 발언을 해 당내외의 거센 비난을 샀다. 이에 대해 동독 지역 유권자들은 "우리는 기민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멍청하기 때문이다"라며 흥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총선에 얼마나 직접적 영향을 끼칠지 여파가 주목된다.

▲ 동베를린 지역에 걸려있는 기민·기사연합의 연정 파트너 자민당의 선거홍보광고.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다.
ⓒ 강구섭
또 하나는 메르켈의 TV토론 기피증. 총리후보 양자간에 두 번의 TV토론이 필요하다는 여론에도 불구, 화술에 능하지 않은 메르켈이 선거운동 일정이 빡빡하다는 궁색한 이유로 1회의 TV토론만 주장해 관철시킨 것. 집권 사민당은 "TV토론에 응할 용기도 없는 자는 결코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며 겁쟁이 메르켈을 비웃었고 기민당 내에서도 메르켈의 이러한 행보에 대한 비판이 흘러나와 메르켈의 '스타일'이 적지 않게 구겨진 상태다.

오는 9월4일 독일 전역에 생중계 될 슈뢰더와의 일대일 TV토론에 대해 독일 언론은 이미지 정치가 강하게 작용하는 TV토론이 '화술의 달인' 슈뢰더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 19일 <포르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리 후보 선호도에서 슈뢰더 43%, 메르켈 29% 로 여전히 슈뢰더가 메르켈을 앞서고 있어 기민ㆍ기사연합이 40%를 넘는 지지도를 보이는 것과 달리 총리선호도 면에서 메르켈은 줄곧 슈뢰더 현 총리에 뒤지고 있다. 다수의 유권자가 슈뢰더의 정치에 등을 돌린 상황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메르켈이 유력한 차기 총리로 부상되었을 뿐, 총리로서 독일을 운영해 나갈 역량에 대한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독일 국민들의 정서가 깔려있는 것.

한편, 지난 8월 5일 <포르샤> 조사결과에서 독일 유권자의 50%(여성유권자의 58%)는 여성총리의 탄생이 역사의 진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메르켈은 1949년 이후 최대위기를 겪고 있는 독일을 위기에서 건져낼 최초의 동독출신 여성총리가 될 수 있을까? 총선을 20일여 앞둔 독일 유권자들의 눈과 귀는 9월 18일에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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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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