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부 시절,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생명 아카데미라는 강좌가 한 달에 한 번 열리곤 했다. 수업이 끝나면 부러 빈 강의실에서 기다렸다가 생명 아카데미에 참여하곤 했는데, 그곳에서 나는 매번 소름이 돋을 만큼의 깨달음을 얻어 오곤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안, 검은 유리창으로 비치는 세상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인한 여운이었으리라. 그 곳에서 이필렬 교수나 박병상 선생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격월간 잡지 <녹색평론>의 발행자인 김종철 교수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조금은 상기된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세상의 사람을 둘로 나누면 지리산을 종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녹색평론>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생명아카데미가 아니었다면 나는 <녹색평론>을 아예 만나지 못했을 수도, 더 늦게 만났을 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환경을 위해 이렇게 애쓰는 사람이 있음에 마음 든든하기도 했고, 나와 주위 사람들의 의식 세계에 변화를 가져온 녹색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유감스럽게도 <녹색평론선집1>은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위치한 규모가 큰 서점에는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했는데,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조그만 동네 서점도 아닌 그곳에 없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유감이었다.

<녹색평론선집1>은 3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재생지를 사용해서 너무나 가벼웠고, 표지에는 밑동이 잘린 고목에서 새싹이 돋는 그림이 실려 있었다. 표지 하나도 그냥 선택하지 않은 편집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창간호부터 통권 제6호까지 1년 동안 격월간 <녹색평론>에 수록된 글 가운데 일부를 선정해 선집으로 엮은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바쓸라프 하벨, 제레미 리프킨의 글이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역시 독자들에게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심어주고 있었다.

"라다크로 가기 전에 나는 진보의 방향은 어떻든 불가피하고,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였다. 그 결과, 나는 공원 한가운데로 새로운 도로가 뚫리고 2백 년이나 넘게 교회가 서 있던 자리에 강철과 유리로 된 은행건물이 세워지고, 구멍가게 대신 슈퍼마켓이 들어서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러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다크에서 얻은 나의 경험은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확신시켜 주었고, 나에게 엄청난 힘과 희망을 주었다." - <녹색평론선집1> 가운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글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다크로 가기 전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진보의 방향을 어떻든 불가피하다'는 생각 말이다. 생활의 편리를 위해 우리가 소비하는 것 중 대부분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개인용 자동차 같은 것이다. 취직을 하면 으레 이동의 수단으로 자동차를 구입한다. 그동안 대중교통을 잘 이용했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마당에 우리는 더 편리한 삶을 위해 투자하게 되는 것이다.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등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하다.

"제3세계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곡물부족으로 굶주리고 있는 동안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수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심장마비와 뇌졸중과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질병들의 원인은 부분적으로 쇠고기의 과잉소비에 있는 것이다. 해마다 동물성 지방의 소비에 관련된 질병으로 죽는 사람들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

최소한의 시간 안에 최적의 몸무게를 얻기 위해서 사육 관리자들은 성장촉진 호르몬과 사료첨가물을 포함한 여러 가지 약제들을 소들에게 투여한다. 단백동화 스테로이드제가 조그만 시한탄환의 형태로 동물들의 귀에 박힌다. 그러면 그 호르몬은 서서히 혈류 속으로 스며들어가서 두 시간에서 다섯 시간 간격으로 호르몬 수준을 증가시킨다. … 사육장에서 기르는 미국의 소 전체의 95퍼센트가 현재 성장촉진 호르몬을 투여 받고 있다." - <녹색평론선집1> 가운데 제레미 리프킨의 글 중에서


언론매체를 통해 우리는 이미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생활에서 환경을 위한 노력은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개개인의 잣대는 모두 다르겠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실천하고 하지 못하고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우리집은 비닐 랩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부터 몇 년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 어머니가 환경 의식이 남달리 투철한 분이어서가 아니라 덮개 있는 그릇을 사용하면 될 일이므로 불필요한 소비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성인이 되어 가사 노동에 참여하면서 랩이 있으면 편리할 텐데 하는 생각을 종종 했지만, 랩을 사기에는 아직도 망설임이 있다. 1회 용품 사용 줄이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이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는 1회 용품 천국에 사는 것 같다. 에너지 절약, 생활용품 재활용 등 돌아보면 환경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지천에 널려 있는 듯하다.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잊지 않고, 연장하고, 또 기억하고 싶다면 환경 잡지를 정기 구독하는 일도 좋을 것이며, 우리 세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환경 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유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평론선집1>과 같은 책은 소중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녹색평론선집 1 - 개정판

김종철 엮음, 녹색평론사(2008)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과 영화, 음악을 좋아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