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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란덴부르그 문을 등진 방향에서 바라본 팔라스트 전경
ⓒ 강구섭
▲ 화려했던 시절의 대형회의장 행사 장면
구동독의 인민의회(국회) 장소로 사용됐던 '구동독 공화국 팔라스트(Palast der Republik, 이하 팔라스트)'가 올해 말 철거될 전망이다. 한때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가장 잘살았던 구동독 사회주의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장소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독일 통일 이후 10년 이상 계속 되어왔던 팔라스트 철거 논란은 3년 전 철거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지연돼 왔다. 지난 6월 베를린시 당국이 철거일자를 올해 12월로 최종 결정함에 따라 결국 그 운명을 다하게 됐다.

구동독의 정치 문화 중심, 팔라스트

▲ 길건너 대각선 방향에서 바라본 팔라스트. 거대한 건물이 카메라 화면에 꽉 찬다.
ⓒ 강구섭
1976년에 문을 연 팔라스트는 구동독의 주요 정치무대였다. 500석 규모의 회의장에서는 구동독의 인민회의가 열렸고,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회의장에서는 구동독 공산당의 전당대회가 개최됐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불과 한 달 전이었던 1989년 10월 6일에도 이곳에서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식이 열렸고, 이듬해인 1990년 8월 22일, 역시 이곳 팔라스트에서 동독 인민의회는 구서독으로의 흡수통일을 공식 결정했다.

팔라스트는 동베를린 거주 구동독인들이 즐겨 찾던 문화공간이기도 했다. 철골과 유리외장으로 설계된 180×86m, 높이 25m의 거대한 팔라스트 내부에는 10개가 넘는 레스토랑을 비롯해 카페, 음료바, 극장, 볼링장, 디스코텍, 갤러리 등 다양한 문화 및 여가시설이 갖춰져 있었으며, 각종 문화예술과 공연으로 하루 1만5천여 명의 구동독인들을 불러들였다.

"동독 국민을 위한 문화공간을 제공한다"고 표방한 팔라스트 내의 모든 시설은 무료 혹은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됐다. 이렇다 보니 수입은 매우 적은 반면 유지운영비는 연간 1억 구동독 마르크가 소요돼 구동독 정권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 전혀 타산이 맞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라스트는 현실화된 사회주의에 대한 구동독인, 구동독 공산당의 뿌듯함이 담겨있던 곳이었다. 적어도 통일과 함께 구동독이 구서독으로 흡수되기 전까지는.

독일 통일 이후 사라질 운명에 놓이다

▲ 팔라스트 벽에 걸려 있는, 사회주의의 상징이었던 망치와 컴파스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이는 원형 엠블런.
ⓒ 강구섭
독일 통일과 함께 팔라스트의 운명도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먼저 건설자재 문제가 불거졌다. 통일 전에도 문제가 됐던 팔라스트의 석면재에 대한 인체유해성 문제가 부각되면서 통일 직후부터 사용이 중단된 것.

이후 1998년, 석면재 유해성분 제거 공사가 시작되었고 곧이어 연방정부 차원에서 팔라스트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위원회가 꾸려졌다.

다행히 2001년 4월, 팔라스트를 계속 활용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기쁨의 순간은 짧았다. 이듬해인 2002년, 연방의회가 팔라스트의 자리에 옛 베를린 성을 재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실 팔라스트 터는 원래 베를린 성이 있던 자리였다. 사회주의 정권이었던 구동독이 "2차 대전 때 폭격에 의해 파손된 베를린 성은 프로이센 군국주의의 콘셉트를 담고 있어 복구할 수 없다"며 1950년에 베를린 성을 완전히 폭파시킨 뒤 1976년에 그 자리에 팔라스트를 세웠던 것.

팔라스트냐, 베를린 성이냐

▲ 이번 여름이 지나면 기회가 없습니다! 주말 팔라스트 내부견학 관광상품 안내판
ⓒ 강구섭
팔라스트냐 베를린 성이냐를 놓고 독일국민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벌어졌다.

철거를 반대하던 측에서는 "팔라스트가 흉물스럽게 시내 한복판에 버티고 있긴 하지만 독일의 역사, 동독인의 삶과 감정이 묻어 있었던 역사적 장소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철골과 여기 저기 깨어진 유리가 흉물스럽지만 그것도 독일의 역사이기 때문에 지난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남겨야 한다는 것.

팔라스트 철거 여부를 둘러싸고 독일일간지 <타게스슈피겔> 온라인 토론방에 벌어진 토론에서 베를린 성 건축을 반대하는 구동독 출신의 한 네티즌은 "현재의 심각한 경제 상황에서 성을 짓기 위해 수억 유로를 퍼부을 여력이 어디에 있냐"고 반문하며 "6억 7천만 유로를 들여 성을 짓는 것은 역사적 디즈니랜드를 짓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자신을 서독인이라 밝힌 한 네티즌은 "독일 역사의 일부인 동독의 역사를 담고 있는 제대로 된 박물관이 없다"며 "동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자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팔라스트를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는 역사박물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팔라스트의 옆면 모습
ⓒ 강구섭
동독을 상징하는 건물이라는 것 외에 문화행사의 장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다. 동독 시절 팔라스트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는 동독 출신 연극연출가 카스트로는 "팔라스트를 문화행사장으로 계속 유지해야 한다"며 팔라스트 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반면 팔라스트의 조속한 철거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베를린 한복판에 있는 흉물스런 건물을 하루 속히 없애고 바로크 양식의 옛 베를린 성을 건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프로이센 제국시대와 독일제국의 수도인 베를린의 역사적 정체성을 복원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니라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좋은 유인책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베를린에는 보존할 만한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는 장소들이 많이 있다"며 "고작 30년 동안 현대사에 등장한 팔라스트는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비록 2차 대전 이후 사라지긴 했지만 베를린성이 팔라스트보다 훨씬 큰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

한시적으로 다시 문 열었지만...철거는 진행된다

▲ 팔라스트 안에 알프스산맥이 들어선다! 8월에 열리는 모형 알프스산맥 이벤트 안내 포스터.
ⓒ 강구섭
팔라스트는 2003년 석면재 유해성분 제거 공사를 마친 뒤 그해 9월부터 한시적으로 문을 열고 음악공연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행사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작년 4월에는 중국의 장묘문화에 관한 전시회가 이곳에서 열렸으며, 6월에는 독일산업협회의 연차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반면, 지난해에 추진됐던 '팔라스트 역사' 전시회는 개최가 거부됐다. "너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라는 게 거부사유다.

한편 8월에는 예술행사로 팔라스트 내에 모형 알프스산맥이 지어진다. 팔라스트 내 대형회의실에서 출발해 넓은 복도를 따라 팔라스트 전체를 가득 채울 인공 알프스 산맥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비록 모형이지만 알프스 산맥에 직접 오를 수도 있고, 산맥 정상에서 팔리스트를 내려다볼 수도 있다.

예정대로 올 12월 팔라스트 철거가 진행된다면 이 행사는 팔라스트에서 열린 마지막 예술 행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조각조각,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나

▲ 팔라스트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러시아, 동독 등 동유럽 군인모자 등을 파는 간이가판대.
ⓒ 강구섭
대규모 건물이 철거될 때 '폭파쇼' 등 마지막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과 달리 팔라스트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 조용히 철거될 계획이다. 인근을 흐르고 있는 슈프레 강의 수면보다 11미터 깊은 곳에 터반을 설치한 팔라스트를 폭파 철거할 경우, 지반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와 주변 건물에 심각한 위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팔라스트 철거는 건물을 조금씩 뜯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동시에 팔라스트 지하에 물과 모래를 채워 팔라스트의 무게를 계속 유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복잡한 철거방식 때문에 철거 비용만도 2천만 유로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올해 12월부터 시작될 철거작업은 약 14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 2007년 초에 모든 작업이 마무리 될 예정이다.

연방의회와 베를린시 당국은 팔라스트 철거 후 베를린 성 건축이 시작되기 전까지 빈터를 잔디밭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베를린 성은 2015년 10월 3일에 문을 열 계획이지만 세부일정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일부에서는 "베를린 성 건축 일정이 확정될 때까지 철거를 늦추자" "2006년 독일월드컵 행사 이후로 늦추자"는 견해가 계속 제기되고 있으나 베를린 시당국은 예정대로 철거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 팔라스트 부근, 마르크스, 앵겔스 동상 뒤로 보이는 팔라스트.
ⓒ 강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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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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