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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적하고 맑은 섬 생일도 포구
ⓒ 박상건
완도항 맞은 편 섬이 신지도이고 신지도 코앞에 있는 섬이 바로 생일도이다. 강진 마량포구와 고흥반도에서 건너갈 경우 금당도와 약산도 평일도 사이에서 망망대해로 빠져 나가는 첫 출구 역할을 하는 섬이다. 아담하고 푸르게 출렁이는 섬이다. 드넓은 청정해역에 거북이가 기어가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생일도 앞바다에 청산도가 떠 있고 그리고는 남쪽 끝 망망대해이다.

생일도는 1896년에 생겼다고 한다. 처음에는 '산일도', '산윤도'로 부르다가 주민들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착해서 "갓 태어난 아이와 같다"고 하여 '생'과 '일'을 합하여 생일도라 불렀다는 설과 예로부터 난바다에서 조난사고와 해적들 횡포가 심해 "이름을 새로 짓고 새로 태어나라"는 뜻에서 날 생(生) 날 일(日)자를 붙여 '생일도'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새로 태어난다"는 뜻의 생일도

▲ 전망 포인트인 금곡 고갯길에 쌓아둔 돌탑. 맞은 편 섬이 신지도.
ⓒ 박상건
어쨌든 "새로 태어났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섬이 생일도이다. 이 섬 최고봉인 백운산에는 그런 전설의 소재로 등장한 암자가 있다. 재앙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는 상징적인 암자인 '학서암'이다. 산의 모양이 학의 형태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해적을 막아내기 위하여 1700년대 백운산에 성을 쌓았다는 데 지금은 약 3㎞ 가량의 성터만 남아 있다. 이 산 아래 마을을 "성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서성리'라고 부른다.

이후 1980년 금일읍 생일출장소가 생겼고, 1989년 면 단위로 승격되었다. 현재 1천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2개의 유인도와 7개의 무인도, 3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특이한 점은 마을마다 동구 밖에 거목 한 그루가 서 있다는 점이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이면 이 나무 아래서 풍어제를 지낸다.

섬에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 난대림이 울창하고 섬 전체에 각종 자생란과 꿩, 노루, 멧돼지 등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1994년에 섬 도로를 포장해 지금은 이 해안도로를 타고 드라이브하며 절벽 아래로 펼쳐진 바다를 조망하는 맛이 일품이다.

▲ 금모래와 동백숲 해변으로 이루어진 한적한 금곡해변
ⓒ 박상건
그렇게 승용차를 타고 금곡리 방향으로 향했다. 섬모롱이를 돌아서자 신지도, 청산도 그리고 그만그만한 무인도들이 펼쳐졌다. 꼬불꼬불 금곡포구 언덕길을 넘어가자 호수 같은 금곡해수욕장이 나왔다. 해변가에는 동백나무와 솔숲이 병풍을 치고 있었다. 여름이면 그 숲 그늘 아래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묵은 일상을 털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동백 숲에 들어서자 그 아래 지천으로 뻗어가는 나무가 있었으니 이 마을 사람이 '볼게나무'라고 부르는 호리깨나무(허리깨나무). 속리산, 울릉도 등에서 주로 자생하는 낙엽활엽교목인 이 나무 열매는 봄이면 붉게 익고 꽃이 핀다. 열매 맛이 달고 약간 떫고 신맛이 나는데 요즈음 남성들 사이에 숙취해소에 좋아 각광받는 그 열매이다.

금모래와 갯돌 해변에 밀려왔다 밀려가는 해조음

▲ 생일도 동백숲 아래 자생하는 볼게나무 열매와 잎새
ⓒ 박상건
금곡해수욕장은 길이가 500m에 이르는 아담하고 조용하다. 수심이 얕지만 썰물 때 '뻘'이 드러나지 않고 맑은 바다와 그대로 수평을 이루는 곳이다. 해변의 모래 질이 너무 좋아 금모래라고 부른다. 이 섬 최고봉인 백운산 서쪽 아래 자리 잡아 울창한 상록수림의 산세를 감상할 수도 있다. 주민들은 이 산에 야생염소를 풀어 기르기도 한다.

다시 연초록 바다를 왼쪽에 낀 채로 산길을 넘어 용출해변으로 향했다. 바로 섬 기슭 아래 하얀 등표(등대의 일종)가 보였다. 냉개섬 등표이다. 조난사고가 빈번하면서 이곳 섬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세워진 생명의 등불이다.

이윽고 용출해변에 이르자 검은 돌과 수석 그리고 갯돌(조약돌)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작은 돌과 큰 돌들이 단계별로 무리를 지어 이루어져 있었다. 바로 앞 바다는 툭 트인 수평선. 뒤로는 역시 해송이 떠받치고 있다.

이곳 해변에 잠시 드러누웠다. 파도가 갯돌 사이로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그 경쾌하고 잔잔한 해조음에 영혼을 맡긴 채로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푸른 하늘에는 제트기가 하얀 길을 내 날고 있다. 그 아래로 물새들이 비행 중이다.

▲ 갯돌로 바닷가를 이룬 용출 해변의 풍경
ⓒ 박상건
그러고 있노라니 이 섬을 떨치고 일어서기를 주저할 정도이다. 그 색다른 섬의 하모니를 만끽했다. 거제도 몽돌밭에서도, 완도 구계등 갯돌밭에서도, 보길도 예송리 갯돌밭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멜로디에 취해보지는 못했다.

한적하기 그지없는 해변에 맑은 갯바람이 밀고 당기는 파도 소리도 아름답지만, 짝지에 어민들이 다듬다 만 그물과 전복통은 섬사람의 채취와 섬 문화를 엿보게 하는 산 교육장이기도 했다.

▲ 해변의 전복통. 바다에서 통에 전복을 넣고 다시마 먹이를 주며 양식장을 한다.
ⓒ 박상건
파도 소리에 한동안 영혼을 씻고 나서 눈을 들어 수평선을 향했다. 낭도라는 섬이 이방인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음을 알았다. 용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이곳 마을 이름을 '용맹리'라고 불렀는데 최근에야 다시 '용출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낭도 정상에는 실제 70m의 굴이 해변으로 뚫려 있다. 그 바위가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슬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격언이 있지만 실제 이렇게 바위를 뚫어 해저로 굴을 낼 줄 예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곳에는 수백의 상록수림도 우거져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곳에서 매년 초 풍어제를 지내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맑은 바다 황금어장

▲ 용굴이 있는 섬 낭도. 정성에서 해저까지 굴이 뚫려 있고 상록수림이 우거져 있다.
ⓒ 박상건
그 건너에 덕우도가 있다. 섬 모양이 멀리 청산도에서 바라다보면 살찐 소가 앉아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그리 부른다. 이 바위섬에 3년마다 배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곤 했는데 이를 막기 위해 매년 초 이 섬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단다. 이 바위섬 부근에 소머리를 바쳐 사고를 예방하고 있단다.

이 섬 일대는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2종 항구이자 수산자원이 풍부한 황금어장이다. 또한 해양수산부가 어촌계를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청정어장, 공동생산 방식의 어업을 지원하는 시범 섬이 생일도기도 하다.

해안에서 방금 아내와 함께 다시마 양식장에서 돌아온 김인태(66)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이 곳 섬에서 대대로 살아온 그이는 "생일도는 마을 공동체 문화가 아주 잘 활성화 되어 있다"면서 "작은 일도 서로 돕고 문어나 홍어를 잡으면 이웃집에 들려 약주와 함께 내 놓으며 객지에 나간 자식들 안부를 묻고, 어른들 바다 일을 젊은이들이 대신해 주기도 하는 효심과 인정이 많은 삶들에 서로가 의지하며 섬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해무 낀 아침 바다에서 다시마를 캐는 어민들의 모습
ⓒ 박상건
그이는 "어종과 해산물이 풍부해서 70년대에도 외딴 섬이지만 먹고 사는 일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면서 "집집마다 교육열이 높아 바다에서 벌어들인 돈을 자식 농사에 투자해왔다"는 것이다. 그이 역시 그렇게 자식들을 모두 성장시켰고 대학원까지 졸업한 아들은 서울에서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생일도 마을마다 당제를 많이 지내는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해적을 만나고 조난사고가 많으면서 서로가 의지하고 자연 앞에 겸허히 굽어 사는 마음이 체질화 된 것이다. 개인주의보다는 모든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한마음으로 빌어주는 그런 삶에 의지하여 이 곳 섬을 지키고 일구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곳 섬사람들의 주요 생계수단은 어업이다. 주로 잡는 수산물은 멸치, 삼치, 장어, 숭어. 미역과 김 양식 등을 공동 생산하기도 하는데, 특히 청정해역에서 생산하는 다시마는 녹색 빛깔이 진하게 우러나오고 그 맛이 너무 좋아 전량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투두둑 입질에 뱃전에 파닥이는 강태공들의 천국

▲ 먼바다를 오고가는 생일도 사람들의 생명의 등불인 냉개섬 등대
ⓒ 박상건
이처럼 인심 좋고 한적한 섬에서 낚싯줄을 풀어놓고 바다와 선문답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렇게 마음 다스리고 천혜의 섬 기운을 얻어가는 일이야말로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하는 지름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여행의 참맛이기도 하고 말이다.

생일면사무소 조연호(50) 총무계장은 "낚싯배를 타고 조금만 더 나가면 외줄채비를 내리는 즉시 줄줄이 걸려드는 손맛을 느낄 수 있다"면서 "바다에 나가면 봄이 왔다고 투두둑거리며 고기가 물고 여름이 왔다고 뱃전에 팔딱이며 물죠. 손맛을 아는 낚시인들에게 완도는 바다낚시의 천국이죠. 특히 이곳 생일도는 천상의 낚시터입니다. 낚싯대만 드리우면 묵직한 우럭, 볼락 등이 줄줄이 엮어 올라올라옵니다. 봄에는 대형벵에돔, 여름에는 감성돔, 볼락, 참돔, 돌돔, 늦가을에는 대형돌돔, 감성돔, 농어 등이 많이 잡힙니다."

생일도 자랑에 여념이 없던 그이의 말에 귀가 쏠린 탓인지 배 시간 때문에 낚싯줄 한번 내려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영영 아쉬움으로 남았다. 서울로 올라와서도 자꾸만 생일도 물고기들이 아른거렸다.

[미니상식] 바다 양식

생일도 일대 다도해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은 바다가 거의 양식장이라는 점이다. 다시마 전복 등을 매단 부표 등이 가을 운동회 만국기처럼 색색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일부 뱃길(항로)만 내어준 채로 나머지는 거의 양식장이다. 섬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셈.

양식은 육상의 농업과 마찬가지로 수산생물을 인위적인 수단으로 길러서 수확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수중농업’이라고도 할 수 있고, 섬사람들은 ‘바다농사’라고도 일컫는다.

양식의 기원은 기원전 1800년경 이집트의 마에리스왕이 못을 만들어 식용어를 길렀다는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인조(仁祖,1623∼1649) 때 태인도 어민이 해변에 표류해 온 참나무 가지에 김이 붙어 있는 것에서 착안을 하여 대나무와 참나무 가지를 간석지에 세워 섶 양식을 했다고 한다. 그 후 김 양식 기술은 한말(韓末)에는 활기를 띤 이후 굴, 고막 양식이 이어졌다.

1921년 수산시험장이 1921년에 설립되면서 양식이 본격화되었다. 굴, 대합, 김, 대합 양식 시험이 활발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동해, 서해, 남해안 바다특성이 달라 해역마다 양식 품종도 다르다.

동해안은 수온이 낮고 해안선이 가파르고 깊어 한해성 품종인 큰가리비와 넙치, 서해안은 바다가 얕고 간석지가 발달한 탓에 굴, 바지락 동죽, 가무락 등의 패류, 남해안은 수온이 높아 어종이 많이 양식되는데 어류로는 넙치, 볼락 양식이, 패류로는 굴, 피조개, 해조류로는 김, 미역이 등이 양식되고 있다. (자료: 해양수산부)
낚시뿐만 아니라 섬 여행길에 꼭 알아두어야 할 주의사항을 들려주기도 했는데 승용차를 가지고 섬으로 갈 때는 연료 때문에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뭍에서 넉넉하게 주유하라는 것이다. 생일도로 여행할 경우는 마량포구 또는 금일읍 사동리에 위치한 금일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워야 한다. 한 마디로 생일도에는 주유소가 없다는 뜻이다. LPG 차량은 완도읍, 군외면 완도대교 건너 원동리에서, 강진에서 출발할 경우는 강진읍에서 충전해야 한다.

"물론 말만 잘하면 면사무소와 집집마다 비상 연료가 있으니 긴급 구호가 가능하기는 합니다"라고 귀띔을 해주었으니 섬에 갇히는 일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생일도 해변에는 백사장과 갯돌(조약돌) 해변이 많아 여행객들이 바다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승용차를 해변까지 운전하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모래와 자갈밭에서는 바퀴가 헛돈다는 것이다. 차는 역시 도로를 달리는 것이고 주차는 길 위에 하는 것이리라. 아, 아름다운 사람과 섬이 함께 출렁이던 곳. 그 섬, 생일도로 다시 가고 싶다.

생일도로 가는 길

1. 승용차

·서울→경부고속도로→천안(공주․논산 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광주톨게이트(비아방면)→나주→강진→목리교(4차선)→23번국도→마량항→생일도 여객선

·순천→2번국도→벌교, 보성, 장흥, 강진→목리교(4차선)→23번 국도→마량항→금일읍

2. 고속버스

·서울→광주(고속버스)→강진(고속버스)→마량항(시내버스)

·서울→강진(고속버스)→마량항(시내버스)

3. 기차․항공

·용산역(김포공항)→광주역(광주공항)→강진(고속버스)→마량항(시내버스)

4. 배편

·완도항~평일도
·마량항~평일도
·금일읍 일정항~평일도

5. 자세한 문의

·완도군 문화관광과 (061)550-5224/생일면사무소 (061)550-5612/금일농협(061-553-3388)

·완도항 여객터미널(061)552-0116)/마량항여객터미널(061)433-6485

·금곡리조트 (061)554-0168/춘화민박(061)553-9755
55061-550-56 612 5

덧붙이는 글 | 박상건 기자는 섬에서 태어나 91년 <민족과 지역>으로 등단한 시인이고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 나무> 편집부장을 지냈고 현재는 <계간 섬> 발행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서울여대 겸임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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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언론학박사,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특별추진위원장, <샘이깊은물> 편집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잡지학회장, 국립등대박물관 운영위원을 지냈다. (사)섬문화연구소장, 동국대 겸임교수. 저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바다, 섬을 품다> <포구의 아침>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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