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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에 의한 미국 시민이 아닌 자, 또는 본 헌법 제정시에 미국 시민이 아닌 자는 대통령으로 뽑힐 자격이 없다. 연령이 35세에 미달한 자, 또는 14년 간 미국 내의 주민이 아닌 자도 대통령으로 뽑힐 자격이 없다.’

위의 인용문구는 미국 헌법 제2조 5항이다. 지난 11월 2일 미국의 대선이 끝난 이후 미국에서는 '미 대통령 피선 자격'에 관한 헌법에 또하나의 수정조항을 첨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1791년 미국의 헌법이 제정된 이래, 지난 200년 동안 미국 헌법에는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인정, 소득세 징수, 대통령의 임기 등을 포함해 총 27개의 수정 조항이 추가되었다.

▲ 모겐틀러-존스가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위한 헌법수정을 통과시키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웹사이트인 www.amendforarnold.org.
그런데, 현재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28번째의 수정조항은 어느 한 사람의 유명세와 정치적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 '어느 한 사람' 이란 영화 '터미네이터' 등으로 유명한 배우 출신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널드 슈워제네거다.

외국태생 시민권자 대통령출마 금지조항은 '악법'

슈워제네거와 그의 지지자들은 '미국내 출생에 의해 시민권을 받지 않은 자'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금지하고 있는 미국 헌법 제2조 5항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언론들과 정가에서는 만약 외국 태생자의 대선 출마를 제한하는 이 조항이 수정될 경우 빠르면 2008년 대선에 슈워제네거가 대통령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서는 1870년 이후 외국태생 시민권자의 대통령 선거 출마 금지조항을 수정하자는 제의가 이미 20여 차례 이상 국회에 상정되었으나 비준이 번번이 거부된 바 있다.

현재 슈워제네거는 '대통령 선거에 나갈 자격이 없는 자는 부통령이 될 수 없다' 는 수정헌법 제12조(1803년 12월 12일 발의, 1804년 9월 27일 비준) 때문에 부통령조차 될 수 없게 되어 있다.

현재 미국에는 1280만명에 이르는 외국 태생 시민권자들이 있으며, 매년 45만명의 새로운 이민자들과 2만5천명의 입양아들이 미국 시민이 되고 있다. 6만여명의 외국태생 시민권자들이 군 복무중에 있으며, 남북전쟁이후 700여명의 외국태생 시민권자들이 미 정부가 수여하는 전공 훈장을 받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최고의 민주적 가치를 내세우는 미국이 태생지를 근거로 특정인들을 최고 통치권자가 될 수 없게 하는 이같은 악법 조항을 21세기에도 그대로 존치시키고 있는 것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는 게 수정론자들의 주장이다.

외국인 출신 시민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은 미국 헌법 제정자들이 1787년 헌법 제정시 자신들이 만든 공화제가 외국인에 의해 다시 왕정체제로 돌아갈 것을 두려워해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외국태생 시민권자의 대선출마에 관한 공청회' 때 예일대 헌법학 교수인 아킬 아마교수는 "외국인 출신 시민권자의 대선 출마를 제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비미국적인 결정"이라며 "오늘날 외국의 귀족들 때문에 걱정을 한다면 이는 피해망상이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 같은 수정론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할 때부터 야심을 드러내 온 슈워제네거는 이미 캘리포니아 부호들과 몇몇 상원의원들과 함께 수정헌법 제28조의 재상정과 의회 비준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데이비스 대학의 존 스모렌스키 교수는 지난 3일자 <유에스에이 투데이>에서 “슈워제네거의 유명세가 이제껏 이 수정헌법 상정안에 대한 운동을 이끌었다”고 말하며 “이번 상정안은 순전히 아널드의 역량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20일자 <타임> 보도에 따르면, 전임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데이비스의 '실각' 에 이어 공화당 후보로 주지사에 당선된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65%에 이르고 있다. 데비비스 시절에 '캘리포니아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고 응답한 사람이 76%였던데 비해, 현재는 이의 절반인 38%만이 ‘그렇다’고 우려했다.

슈워제네거의 주지사 취임이후 캘리포니아의 경제는 크게 활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으며, 민주당 출신의 샌프란시스코 시장인 개빈 뉴섬 조차도 '터미네이터' 주지사로부터 새로운 에너지가 흐르고 있으며 낙관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인정하고 있을 정도다.

"시민권 취득 20년 이상 된 사람에게 대통령 피선 자격 주자"

▲ 외국 태생 시민권자의 대선출마 자격을 인정하는 수정헌법 상정안에 찬성하는 내용을 담은 텔레비전 광고.
슈워제네거의 '야심'에 가장 먼저 불을 당긴 외부인물은 오린 해치 상원의원(공화당, 유타 주)이다. 그는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 보궐선거에 나가기 불과 며칠 전에 "시민권을 받은 지 20년이 된 사람에게 미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자격을 부여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현재 57세인 슈왈츠네거가 지난 1983년에 미 시민권을 받았기 때문에 이는 정확히 슈워제네거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상원 법사위원회의 의장이기도 한 해치 의원은 지난 10월 5일 열린 공청회에서 학자들과 상당수의 의원들로부터 이 문제에 대해 일단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다음 회기에서 법사위원회 의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진 알렌 스펙터 상원의원(공화당, 펜실베이니아주)도 “아직 이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으나 의사일정에는 포함시킬 것”이라고 지난 12월 3일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밝혔다.

해치 의원의 제안이 의회에서 수정헌법안으로 통과되기 위해서는 정식 상정안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처음부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해치 의원의 제안이 상정되기 위해서는 상하원에서 각각 2/3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며 이들 의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주는 38개 주 이상이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제까지 미 의회에서 미국인의 '평등한 권리'에 관련된 수정헌법안들의 의회상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 일단 아널드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주고 있다.

예컨대, 성차별 철폐의 내용을 담은 수정헌법안은 82년도에 의회에 상정돼 확정 통과됐으며 상원에서 거부되기는 했으나 동성애자 결혼과 성조기를 태우는 것을 금하는 내용의 수정안도 의회에 상정되었다.

"아널드 유명세 덕분에 6년 안에 통과될 것" 낙관론도

실리콘 밸리의 사업가이며 슈워제네거의 선거운동 기부자인 리사 모겐틀러-존스(47)는 아널드의 명성과 부, 그리고 65%에 이르는 주지사 선거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길게 벌어질 운동'이라고 전망했다. 단, "아널드의 유명세 덕분에 이 운동이 주목을 받고 있어 적어도 6년 안에 통과될 것"이라며 비교적 낙관적 입장을 보였다.

자신의 남편과 친구들과 함께 www.amendforarnold.org를 운영하며 2만불 이상을 수정헌법 추가운동 TV 광고기금으로 기부한 모겐틀러-존스는 "우리는 태어날 곳을 선택하지는 못하지만 사랑할 곳을 선택할 수는 있다"며 <유에스에이 투데이>와의 12월3일자 인터뷰에서 자신의 동기를 밝혔다.

아널드와 그의 부인인 마리아 슈라이버는 12월 초, 언론을 통해 수정헌법 조항 추가에 대해 지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밴디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그냥 잊어버리고 있어요. 수정헌법을 추가하는 것은 몇 년이 걸릴 겁니다"라고 밝혀 이 운동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수정헌법 상정안의 지지자들은 “현행 헌법은 헨리 키신저(독일)와 매들린 올브라이트(체코슬로바키아), 크리스천 헤더 국무장관(프랑스), 존 샬리카스빌 합참의장(폴란드) 등 이민자 출신의 고위 관리들의 충성심과 그들이 대중들로 받고 있는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널드 수정헌법'이 미국 정가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외국 출생의 다른 정치가들도 충분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캐나다 출신 미시간 주지사인 제니퍼 그랜홈을 비롯, 쿠바계 플로리다 상원의원 멜 마티네즈, 타이완 출신 노동장관인 엘리안 차오, 네델란드 태생 하원 정보위원회 의장인 피트 호크스트 등에게도 군침을 삼키게 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널드는 힘에 미친 과대망상증 환자"

한편 '아널드 수정헌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널드의 이같은 '꿈'을 웃어넘기고 있다.

다이안 페인스테인 상원의원(민주당, 캘리포니아)은 지난 11월20일자 <엘에이타임스>를 통해 “외국태생의 대선 출마 제한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출신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고 주장한다.

텍사스 오스틴에서 한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는 알렉스 존스는 "아널드는 힘에 미친 과대망상 환자일 뿐이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며 자신이 운영하는 www.arnoldexposed.com을 통해 슈워제네거의 할리우드 시절에 있었던 성추행이나 그의 아버지가 나치 출신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보수적인 단체의 후원을 받고 있는 미국학연구소의 소장인 매튜 스팔딩은 "우리는 누군가의 정치적 영향력을 위해 수정헌법을 추가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만약 아널드를 대통령 집무실로 보내기 위한 것이라면 아놀드 수정헌법의 지지도는 급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스팔딩은 아널드의 오스트리아 국적 유지에 대해 "우리는 이중국적자를 대통령으로 뽑을 수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하원에서 내놓은 또 하나의 '딴지걸기식' 수정안도 슈워제네거의 앞길을 막고 있다.

하원에서는 해치 상원의원의 20년안과는 달리, 시민권을 받은 지 35년이 된 사람에게 대통령 출마 자격을 부여하는 '35년안'을 내놓을 움직임이 초당적으로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5년 수정헌법안'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민주당의 빅 스나이더 상원의원(아칸소)은 "이 안이 수정헌법에 추가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면서 "이것은 우리 아이들의 꿈에 대한 것"이라고 말해 35년안이 아널드를 위한 것이 아닌 외국인 출신 시민권자들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안대로라면 아널드는 73살이 되는 2020년이 되어야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된다. 일부에서는 이 수정안이 발효되기 까지 10년의 유예기간을 두자는 선택사항을 다시 첨가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만약 이 안이 채택될 경우, 슈워제네거는 83세가 되어야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으며, 현재 활동하는 대부분의 정치가들도 이 새로운 수정헌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여론조사 역시 외국인 출신의 인물을 대통령 집무실로 보내는 것에 대해 아직은 탐탁치 않아하는 분위기다.

지난 11월 19일부터 21일 사이에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시엔엔, 갤럽이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31%의 응답자만이 이 수정헌법 상정안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67%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비율은 아널드의 이름이 언급되었을 때는 58%로 내려갔다. 상황의 전개에 따라 가변성이 많은 정치판에서 슈워제네거가 하기에 따라 부정적 반응이 반감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수적 의회 분위기-이방인에 대한 경계심 극복이 최대 관건

결국 슈워제네거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은 '이민자 대통령'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보수적인 미 의회 분위기와 911 테러 이후 더욱 강력하고 폭넓게 형성되어 있는 '이방인'에 대해 경계심 등이 큰 걸림돌인 셈이다. 이는 어쩌면 '제2의 민권운동'을 벌어야 할 필연성을 낳게 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앨라배마 주립대학의 포레스트 맥도날드 교수는 "대부분의 미국인은 외국인을 믿지 않는다"며 "이러한 불신은 이라크전에서 전 세계의 대부분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더라도 변함없었다"고 말해 외국인에 대한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불신의 벽을 실감케 하고 있다.

아널드는 11월 3일 사크라멘토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외국인 출신 시민권자의 대선 출마와 관련해 미 전역에서 논쟁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이 이슈에 내가 언급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일단 대선출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1월 20일자에서 "아널드는 이미 대선에 출마할 것처럼 행동한다, 무역협정 때문에 일본을 방문한 아널드는 고이즈미 총리로부터 '부시보다 더 유명한 사람' 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슈워제네거의 심상치 않은 정치행보를 보도했다.

슈워제네거는 최근 압둘라 2세 요르단왕을 비롯해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도 만났으며, 내년에는 중국과 유럽을 방문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또한 그의 얼굴은 캘리포니아의 사업을 홍보하는 포스터에 실려 미 전역에 뿌려지고 있다. 이미 그의 대선행보가 시작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과연 스크린이 아닌 현실 정치무대에 뛰어든 '터미네이터'가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적 가치의 차별적 적용을 훌쩍 뛰어 넘는 '괴력'을 발휘해 레이건에 이어 제2의 '연예인 대통령'에 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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