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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구석에서 가지고 올라온 짐을 푸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모부는 얼른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화분 하나를 내려놓았습니다.

화분 속에 담겨있는 잘 자란 소나무 분재였습니다.

“아니, 이게 뭔가요?”

황송한 듯 묻는 아버지의 질문에 이모가 어머니를 도우려고 치마 위에 앞치마를 두르면서 대답했습니다.

“선물이에요, 화원에서 제일 예쁜 것으로 골라왔어요.”

아버지는 화분을 두 손으로 안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구, 정말 고마워요. 요즘 겨울이라, 화원은 잘 되는가 모르겠네.”

이모부가 다른 짐을 끄르면서 말했습니다.

“화원은 이제 그만 두고 묘향산 근처 수목원에 가서 일하려구요.”

“묘향산?”

엄마가 잡채를 뜨시다 말고 이모를 향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어보셨습니다. 이모가
말했습니다.

“그래, 묘향산. 저 이가 수목원에서 일하는 것을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데. 그토록
벼르고 벼르던 묘향산 수목원에 자리가 생겨서 우리 봄부터 거기 가서 일하게 된다우.”

“어머, 축하해, 좋아하는 나무들을 매일 보겠구나.”

바리는 아버지 곁에 달려가 풀고 계시는 상자 안에 코를 집어넣고 열심히 펴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고모님께서 직접 짠 듯한 목도리와 직접 말린 무말랭이 은 것이 들어있었습니다.

“아빠, 이게 뭐에요.”

“어, 아빠가 설날 연휴가 끝나면 함흥으로 출장을 가거든.”

“함흥이요?”

고모가 혜리의 뺨을 두 손으로 꽉 누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함흥 사는 우리 친구들한테 보낼 선물이야.”

아버지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열심히 여행가방에 옮겨 담고 계셨습니다.

바리는 갑자기 무언가 심술이 낫는지 뾰루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에이 아빠, 우리 설날 연휴 끝나고 백두산에 가기로 했잖아요, 겨울방학이라 두산에 가서 방학숙제도 해야 되는데.”

“그래, 알아, 아빠가 함흥에 출장 갔다 돌아오면 바로 백두산에 가자꾸나.”

어머니가 떡국을 담으며 말씀하셨습니다.

“함경도에서 출장 오신 분들은 오늘 점심 식사하시러 언제 오시나요?”

아버지께서 손목시계를 한번 쓱 보시고는 대답하셨습니다.

“어. 글쎄, 한 시 정도에 오시라고 했으니까, 그때까지 준비하면 돼요.”

마침 상 차리는 것을 거들고 있던 이모부가 말했습니다.

“에유, 아무리 일이 바빠도 그렇지, 설날에도 이렇게 출장을 나오면 쓰나.”

아버지가 여행가방을 닫고는 손으로 꼭꼭 눌러보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저희 집에서 떡국을 대접하는 거에요. 같은 이웃인데.”

혜리가 고모가 방바닥에 놓아두신 흰 가방을 보고 말했습니다.

“고모. 저게 뭐에요?”

“어? 그거?”

고모는 웃으시면서 혜리에게 가지고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어, 호랑이다. 하얀 호랑이.”

혜리는 고모에게 가져가기도 전에 가방 속에 든 것을 꺼내어 보고 있었습니다.

“아이구, 얼른 가져와. 고모한테…. 그 호랑이 예쁘냐?”

엄마도 아빠도 바리도 주방에 있던 사람들도 전부 한 몸이 된듯 그 호랑이를 쳐다보았습니다. 고모는 아무 말 없이 그 호랑이를 앞에 내려놓으셨습니다. 눈처럼 하얀 호랑이였습니다. 눈은 동해바다를 닮은 것처럼 파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하얀 가죽위로는 붓으로 정성껏 그려놓은 듯한 검은 줄이 동해바다와 어깨를 맞닿고 흐르는 태백산맥의 산줄기들처럼 힘차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마냥 정겹게만 생긴 얼굴은 귀여운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습니다.

목에는 작고 귀여운 하얀 봉투가 매달려 흔들렸습니다.

“웬 호랑이에요? 그것도 노란 호랑이가 아니고, 백호네?”

아버지가 호랑이 인형을 둘러보시면서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집 문 앞에 누군가 놓고 갔더라, 대체 누가 두고 갔는지, 언제 왔다갔는지 알 수가 없더라니까, 바리야, 저 목에 걸린 봉투 한번 열어보렴.”

바리는 호랑이 목에 걸려있는 하얀 봉투를 당겨서 열어보았습니다. 안에는 우윳빛으로
반짝이는 메모지에 손으로 예쁘게 쓴 편지가 있었습니다.

바리에게

백두산에 사는 친구가

바리는 잠시 그 편지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다보기만 했습니다.

“이게 뭐에요. 전 백두산에 사는 친구가 아무도 없는데…”

고모는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바리를 쳐다보고만 계셨습니다. 바리는 무언가 알아차린
듯 고모에게 다가가 뺨에 뽀뽀를 해드리며 말했습니다.

“에이, 고모가 저 주시려고 사 오신 선물이죠?”

고모가 손을 저으며 말씀 하셨습니다.

“아니야, 정말이야, 누가 오늘 아침 문 앞에 두고 간 거라니까.”

“아녜요, 고모, 거짓말, 저 주려고 사 오신 거 다 알아요.”

혜리는 언니만 선물을 받았는데도 질투가 나지 않는지 귀여운 표정으로 호랑이를 만져보고 있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아주 귀엽네요, 바리 방 안에 두면 정말 예쁘겠다. 바리야, 혜리야,
얼른 한복으로 갈아입고 오렴, 아침 먹고 세배들 안 할 거야?”

어머니가 마지막 떡국을 뜨며 말씀 하셨습니다.

바리는 그 호랑이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물었습니다.

“아빠, 이런 하얀 호랑이는 어디서 살아요?”

“음. 백두산에 산다고 하던데?”

“그럼, 이번에 백두산에 가면 볼 수 있어요?”

“어. 그 사나운 호랑이를? 안 돼. 어흥 하고 바리를 잡아먹으면 어쩌려고.”

“아녜요, 이 호랑이는 착한 호랑이 같은 데요 뭘.”

“그래? 그럼 내가 호랑이 이야기 하나 해줄까?”

“됐어요, 아빠, 또 그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 하려고 그러시죠?”

“왜 그 얘기 얼마나 재미있는 건데… 난 세상에서 그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더라.”

그러자 혜리가 쪼르르 달려와서 아빠를 졸랐습니다.

“아빠, 난 그 얘기 몰라요, 얼른 해주세요.”

그러자 엄마는 못된 엄마가 된 듯 약간 성난 듯한 목소리를 일부러 만들며 말씀하셨습니다.

“혜리야, 엄마, 떡국 일곱 그릇 다 펐다, 이거 안 먹으면 한살을 못 먹어요. 그리고
너희들 세수도 안하고 설날을 맞을 테냐?”

그래도 혜리는 아빠 목을 끌어안고는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아빠, 얼른 해줘요, 그 얘기 듣기 전에는 절대 손 안 놓을 거야.”

아버지는 그 혜리의 팔이 무쇠팔이라도 되는 무거운 것인 냥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밥 먹으면서 해줄게. 어서 옷 갈아입고 와라.”

하지만, 아버지는 떡국을 드실 생각이 없는지 혜리를 땅바닥에 앉히시고는 목청을 가다듬고 이야기보따리를 여셨습니다.


옛날 옛적 아주 먼 옛날에 아주 깊은 산골 마을에 품팔이하는 어머니와 두 오누이가
살고 있었어요.

호랑이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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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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