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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예담
대학에 다니는 동안 가장 중요한 일과는 도서관에서 책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항상 낡은 나무 냄새와 먼지 냄새, 그리고 오래된 책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헤이즐넛 향기가 났다. 이유없이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주기에는 그 편안하고 오래된 냄새들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도서관 구석진 자리에서 낡은 양장본 화집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엔 후기 인상파들의 그림이 실려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은 한 편의 그림이 있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이다.

칙칙하고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금방 꺼질 것처럼 희미한 램프 불 아래 모여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이미 세상에 없는, 저 먼 이방의 화가에게 홀려버린 그 순간,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고흐와 만났다. 서로에게 아무 거리낌없이 온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탄광촌의 광부들. 얼굴과 손에는 고랑처럼 깊이 패인 주름이 가득하고 온몸에는 무거운 피곤이 찌들어 있는 그들 곁에 금방이라도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의 그림에 빠져있던 어느 날엔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어이~ 자네, 오늘도 날 만나러 왔나? 그래봐야 한낱 슬픔 중독자에 불과한 나라네!" 하며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그림에선 노랗게 불타오르던 그의 영혼이 느껴졌다.

고흐에 관한 책은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해설이나 상상력에 기댄 작품이 아니라, 빈센트 반 고흐가 직접 쓴 편지들을 담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은 내가 읽은 그 어느 책보다 가장 고흐답다. 편지의 주된 대상은 누가 뭐라 해도 그의 예술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독려해준 동생 테오.

▲ <감자 먹는 사람들> 고흐가 농부들의 삶을 그리기 위해 탄광촌에 들어가 살 때 광부들의 저녁 식사에 초대 받고 그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화가들 중에는 좋지 않을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 (본문 중에서)

나는 가끔 그의 동생이 되어 그의 편지를 읽고, 그에게 마음으로 답장을 띄우기도 했다.

"봄을 그린 그림을 찾아보려 애를 썼지만 헛수고였어요. 땡볕의 여름, 조락의 가을, 삭막한 겨울이 당신 그림의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왜 눈 내리는 추운 겨울에 거적 하나만 걸치고 나가 알몸으로 밤을 지새웠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봄이 와도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던 당신의 상처들, 그 말없이 황량한 풍경!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쩔 수 없었겠지요.

지금 당신의 하늘은 어떠한가요? 여전히 빨아들일 듯한 표정으로 붓을 긋고 있나요? 당신 속에 있는 열정은 이 땅의 어느 꽃, 어느 노을보다 더 치열했는데! 오늘따라 당신이, 당신의 미치도록 뜨거운 열정이 그립습니다."


그렇게 받을 사람 없는 편지를 쓰는 건, 내 곤고한 영혼에 대한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그의 열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 고갱과 심하게 다툰 후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다. 이때부터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고흐의 광기가 극에 달한 시점에도 자신을 그렸다는 것이 놀랍다.
사람들과 고흐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고흐는 왜 귀를 잘랐나?" 하는 질문을 꼭 하게 된다. 물론 그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고흐가 정작 귀를 자른 이유는 어쩌면 고흐 자신조차 모르지 않을까?

흔히 잘 알려진 이유는 친구였던 '고갱'과의 불화 때문이라는 것. 고흐와 고갱은 그림에 대한 시각이 서로 달랐다. 이건 분명히 '다르다'의 의미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마음이 여리고 신경이 쇠약했던 고흐는 고갱의 충고를 자신의 그림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급기야 그 분노를 참지 못해 귀를 잘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과연 고흐가 친구의 조언 때문에 귀를 자를 만큼 심한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 또 다른 이야기는 이렇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을 판 값으로는 물감 하나 사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오로지 동생 테오의 물질적 후원과 도움으로 생계와 작품활동을 이어나갈 형편이었다.

그런 동생에게 어느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얘길 전해 듣는다. 자신에게 쏟아왔던 테오의 희생이 이제는 모두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고흐는 조바심이 생겼다. 그 조바심이 고흐의 삶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고갱의 그림에 대한 충고는 그저 하나의 도화선이 되었을 뿐, 사실 더 중심에는 자신의 막막한 생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불안과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응축되어 있었다. 실제로 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이 일어난 후에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아래와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본문 중에서)

무엇이 고흐를 그토록 흥분하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정확한 건, 그가 이성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몇 차례의 발작이 있고 난 후 고흐는 동생 테오와 돈 문제로 심하게 다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양을 사랑했고 지독하게 가난했던 그,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초라한 다락방 침대 위에서 스스로 가슴에 총탄을 쏜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동생 테오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 고흐의 아틀리에 ('고흐의 방'으로 불림) 고흐가 귀를 자른 뒤 고갱이 떠나버리자 고흐는 '침해 받지 않는 휴식'을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삶으로는 다 풀지 못한 그의 열정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는 비록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의 그림은 여전히 '현존'하며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고갱에겐 없던 그 무엇이 고흐에겐 있었다. 그의 붓 앞에서는 캔버스도 숨을 죽였다.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화가를 두려워한다." (본문 중에서)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예담(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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