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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표지
ⓒ 창작과비평사
대학도서관에서 근무 하다보면 학생들의 보편적인 독서경향이 어떤지, 어떤 책이 가장 많이 대출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최근에 가장 인기리에 대출되는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린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인터넷 세대들의 감수성에 맞게 그린 <엽기적인 그녀>류의 인터넷 소설과 각종 마법 및 무술로 무장한 액션이 스펙타클하게 펼쳐지는 <퇴마록>류의 환타지 무협소설들이 압도적인 이용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좀더 깊이 있는 내용의 교양도서들도 대출되지만 앞서 언급한 책들에 비하면 그 이용률이 미약한 수준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요즘 학생들이 책을 통해 지식을 쌓고, 사유의 폭을 넓히고자 하기보다는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펼치는 흥미위주의 독서습관이 팽배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치, 사회, 이념 등 사회과학 관련 책들 중에는 학생들의 손길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건전한 비판의식을 형성하고 사회를 좀더 똑바로 보기 위해서는 사회성을 띤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사서인 저로서는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사회과학 관련 책들이 학생들에게 홀대받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꾸준한 이용을 보이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다름 아닌 현재 똘레랑스(관용) 전도사로 맹활약 중인 홍세화씨의 첫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입니다.

(대부분 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문학의 수필로 분류하지만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진보이기에 개인적으로 사회과학의 사회비평쪽에 분류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출판된 지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회 쟁점과 유행이 급속하게 바뀌는 요즘 세태를 감안하면 한 권 책이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것은 참으로 보기 드문 일입니다.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대출 기록
ⓒ 문동섭
이 책이 다루는 주제 또한 결코 만만한 것들이 아닙니다. 프랑스 사회에 깊고 넓게 깔려 있는 똘레랑스(관용), 연대의식, 탈민족주의, 탈권위주의, 개인주의 등 사회의식을 말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사회의 문제를 짚어보고 변화상을 제시합니다.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학생들이 읽기 꺼려하는 주제와 소재로 가득 찬 10년이나 된 이 책이 사회적 관심사가 급변하는 요즘에까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장수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우선 이 책은 독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줍니다. 이 책이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펴낸 프랑스 관광가이드북인줄 알고 책을 펼친 이들도 있을 것이고, 빠리라는 지명이 상징하는 예술적, 지적 향취를 맛보기 위해 책을 펼친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홍세화씨의 이력(남민전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에 정치적 망명을 하고 정착한 이력)을 미리 알고 있는 독자라면 두 사회를 바라보는 지은이의 견해를 알고자 책을 펼쳤을 것입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는 프랑스사회와 한국사회의 만남을 꾀하고 있습니다. 좋은 만남이 될 수 있도록 지은이는 프랑스의 문화, 관광, 교육에 대한 것들도 함께 이야기를 해 줍니다. 이처럼 사회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연결고리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원래 목적했던 바는 물론이거니와 연결된 다른 지식까지 함께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서술방식은 독자들에게 아주 친숙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문학에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이 책은 문학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독자들이 가장 친숙해 하는 장르가 소설과 수필입니다. 즉 이 책은 쉽지 않은 주제와 소재를 독자들이 친숙해 하는 방식으로 쉽게 풀어낸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내용의 다양성과 서술방식의 친숙함 외에도 가장 중요한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독자들을 대하는 홍세화씨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약자이면서 다른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 지식인임을 자처해도 될 만한 그가 그저 다른 생각을 가진 일반사람으로 자신을 낮추는 자세, 돌아갈 수 없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 한국사회의 진보를 바라는 그의 열망. 이러한 지은이의 마음이 이 책에 절절하게 묻어 있으며 이를 대하는 독자들은 지은이의 진정성에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결들로 인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10년이란 세월을 독자와 함께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낯선 곳을 방문했는데 택시 잡기가 무척이나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자신의 앞에 서주는 택시 운전사가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 운전사가 자신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짐까지 손수 실어 준다면 그 고마움은 더욱 커집니다.

또 그 운전사가 손님이 심심해 할까봐 말동무가 되어 주고, 진입하기 힘든 골목길을 마다하지 않고 목적지 바로 앞까지 자신을 데려다 주고, 나아가 웃음 머금은 얼굴로 "좋은 하루 보내세요"하고 인사를 해줄 때엔 그것은 고마움을 넘어선 감동이 됩니다.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는 한국사회의 진보를 향해 운전하는 따뜻하고 친절한 운전사가 있습니다.

이 가을 그 감동을 주는 운전사를 만나보길 권해봅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판

홍세화 지음, 창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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