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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많이 읽었던 단편소설 중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이 생각납니다. 매 학기마다 읽은 정도가 아니라 단편소설집을 펼칠 때마다 우선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보지 않는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수차례 반복해서 읽었던 걸 보면 그 소설이 갖고 있는 흡인력이 무엇이었는지 연구 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독하게 운수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스리랑카 출신의 외국인 이주노동자 자일랏입니다. 그는 일전에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친구에게 턱을 쥐어 박혀, 아래턱 양측에 금이 갔었습니다. 폭설이 내렸던 날 회사 앞 진입로 청소를 동료들과 하고 있을 때, 자일랏은 회사부장의 지시로 공장 내부청소를 하였습니다. 이를 본 친구들은 자일랏이 혼자 방에 들어왔다고 오해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자일랏의 턱을 후려쳐 사고가 났었습니다.

자일랏은 턱뼈가 부러지는 사고에도 아픔을 참고 있다가 턱밑으로 염증이 터져 나오자 센터를 찾아왔었습니다. 나는 평소 외국인이주노동자 무료진료를 해 주던 의사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병원에서는 금이 간 턱 사이에 사랑니가 있어서 턱을 밀어내어 턱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에도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치과, 성형외과, 졍형외과 등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것이 낳겠다는 소견도 덧붙였습니다.

치료를 위해 우선 턱 밑에 생긴 염증을 제거하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점점 수척해 갔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염증 치료가 끝나면서 금이 갔던 턱뼈가 붙은 것이었습니다.

자일랏이 턱을 다친 후 한 달 정도 방치했는데도 금이 간 턱뼈가 자연스럽게 붙었다는 것입니다. 담당 의사의 말로는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정상적으로 잘 붙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뼈가 붙더라도 제대로 붙지 않거나 어긋나게 붙는 경우가 많아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자일랏은 아주 야물게 제대로 붙어 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의사의 소견이었습니다.

결국 자일랏은 직장으로 돌아갔고, 건강해진 모습으로 센터를 찾고 있습니다. 그가 한 달 정도 있다가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센터에 나타났습니다. 같이 온 친구는 자일랏 턱을 쳤던 친구로 나와도 안면이 있는 친구입니다. 그가 찾아 온 이유는 일하던 회사에 출입국 직원들이 들이닥쳐, 미등록으로 일하던 친구들 8명을 잡아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자일랏과 그 친구는 공장 외부에 일을 나갔던 덕택에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일랏을 보면서 현진건이 봤다면 <운수좋은 날2>를 썼을 거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멀리 이국땅에 와서 친구에게 얻어 터져서 턱뼈를 다쳤지만 수술을 하지 않아도 뼈가 아물었고, 미등록으로 일하던 회사에 출입국 직원들이 들이닥쳤지만 잡히지 않았으니 억수로 운수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운수 좋다”는 말에 역설이 있지 않은가요? 과연 그러한 일들이 운수 좋은 일일까요? 고국을 등지고 해외 이주노동을 해야만 하는 경제적 현실, 이국땅에서 친구로 인해 당한 아픔, 친구들이 잡혀 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언제 저런 형편에 처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어야 하는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운수좋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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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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