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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재작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쯤 일입니다. 모란역 앞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인디언 수공예품을 팔고 있는 한 부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페루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페루 사람이라곤 광주에서 외국인이주노동자 사역을 할 때, 저희 집에 놀러왔던 두 명의 친구들 이후, 만날 일이 없었기에 이것 저것 물어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온 지 일년이 채 안 되었는데 장사를 할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팔고 있는 물품이 특이해서 물건을 이리 저리 집어보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황당하리만치 자신만만하게 허풍(?)을 떠는 것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부부가 팔러 나온 물건 중에 목걸이들이 많았는데 미완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사진이 들어 있는 목걸이를 들며 제가 사진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물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있게 '체 게바라'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아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자신만만하게 '페루'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자신만만하게 답하는 그들에게 체 게바라가 아르헨티나 사람이고 쿠바에서 혁명을 했으며 볼리비아에서 죽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저의 뇌리에 너무 선명하게 새겨졌습니다. 왜 체 게바라를 자신의 조국 사람이라고 말했을까? 하는 의문이 자주 들었습니다.

그 후 2년이 흘러 올 초 서점에 들렀다가 체 게바라 시집 '먼 저편'을 살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몇 번인가 체 게바라 평전을 사고 싶었으면서도 주머니 속만 괴롭히다 내려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주저없이 샀습니다. 엮은이가 '이산하'시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산하 시인은 본명이 이상백으로 '87년 장편서사시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된 적이 있는 인권 월간지 '사람이 사람에게' 편집인입니다.

한라산이 제 고향에서 있었던 제주 4·3을 다루고 있고 이산하 시인이 한국 기업들이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탄압, 현지법인 연수생 문제 등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된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주저 없이 반갑게 책을 샀는데 전율 그 자체였습니다.

시집 첫 시에서 체 게바라는 15살에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고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나는 찾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단숨에 읽어 내리던 저는 2년 동안 지닌 의문이 풀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먼 저편'에 들어있는 시 중에 '그곳에서는 그들처럼'을 읽으면서였습니다.

과테말라에서는
과테말라인처럼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인처럼
페루에서는
페루인처럼 느꼈다.

체 게바라는 단순히 쿠바의 혁망가가 아니라,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들이 있는 땅의 혁명가였고, 그들의 '체 게바라'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그리고 저 역시 그들의 사람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주노동자 그들의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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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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