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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단동과 신의주는 서로 마주하고 있다. 건너편이 북한의 신의주.
ⓒ 오기현
지난 4일 남북공동학술토론회 준비 차 북한 가는 길에 단동(丹東)에 들렀다. 단동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는 국경도시로 신의주로 들어가는 출국 허가를 받는 곳이다. 북한의 대외경제 기구인 민경련이 사무실을 두고 있고, 최근에는 한국기업들도 많이 진출해 있다.

일단 압록강변 프리마 호텔에 여장을 풀었는데, 마침 1층에 깔끔한 한식당이 있어 일행이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주문을 받으러 들어오는데 옷 매무새나 날렵한 몸놀림이 조선족 교포는 아닌 것 같다. 자세히 보니 가슴에 배지를 달고 있다.

"혹시 북에서 운영하는 식당입니까?"
"남조선에서 오셨습니까? 반갑습니다."

붉은색 저고리에 진한 남색 치마를 받쳐 입은 여 종업원이 북한 특유의 메조소프라노 톤으로 능숙하게 인사를 한다. 둥글고 통통한 얼굴에 선하게 생긴 눈매가 전통 미인형이다. 그런데 남쪽에서 온 손님들이 얼굴을 쳐다보자 볼이 금방 발갛게 달아오른다.

"무슨 음식이 맛있습니까? 추천해봐요."
"다 맛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개업식을 하지 않아 주문표에 나와 있는 료리들이 모두 되는 건 아니라서…."

여 종업원의 볼이 또 붉어진다. 우리는 명태찌개와 낙지볶음(남한의 오징어 볶음)을 주문했다.

"술은 뭘로 드시겠습니까?"
"어떤 술이 있죠?"

"중국술과 조국술이 있습니다."
"조국술이라뇨?"

"백두산 들쭉술, 인삼술 그리고 참이슬과 진로가 있습니다."
"참이슬과 진로도 있다고요?"

▲ 참이슬, 진로소주가 평양소주, 백두산 들쭉술과 함께 팔리고 있다.
ⓒ 오기현
참이슬과 진로를 '조국술'이라고 말한 게 실수는 아닌 것 같다. 북한 사람들이 '우리나라'라는 호칭을 흔히 '조국'이라고 하는데, 남북한이 한 민족이니까 남한 술도 조국술이라고 불렀으리라. 어떻든 남한 술이 북한 식당에서 팔리고 있는 것은 뜻밖이었다.

"북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왔으니까 평양소주 한 병 주시죠."

사실,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들의 주요 고객이 남한 사람들이 된 것은 벌써 오래 된 일이다. 혹은 호기심 때문에 혹은 우리 민족을 도와주자는 심산(心算)으로 현지 상사원이나 유학생들이 자주 찾았는데, 6·15 이후에는 아예 해외관광코스에 포함되기도 했다.

베이징의 해당화 식당과 류경식당이 대표적이다. 조미료를 치지 않는 담백한 맛도 남한사람들을 단골고객으로 만든 요인이다. 단동과 평양 이외에도 상하이의 평양 옥류식당 등 중국의 주요 도시에는 북한식당이 성업 중이다.

물론 주요고객은 남한 사람들인데 영업하는 측에서도 남한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이 싫지 않은 눈치이다. 오히려 상당히 실속 있는 외화벌이 수단이 된 것 같다. 그래서 남한의 단골 손님을 위해서는 노래도 불러주고 어지간히 진한 농담을 해도 재치 있게 받아넘긴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 한국 청년은 예쁘고 싹싹한 북한식당의 여 종업원한테 반해 상사병이 나기도 했단다.

▲ 싹싹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북한 의례원들
ⓒ 오기현
프리마 호텔 1층의 북한 식당은 한식뿐 아니라 일식을 동시에 한다. 그래서 이름이 일본식인 '미라도'이다. 한달 전부터 영업을 시작했는데, 중국측 파트너와 북한의 '고려봉사총국'이 합자한 회사이다. 종업원 다섯 명과 주방장은 북에서 왔고 장소는 중국에서 대여했다.

이전부터 단동에는 삼천리 식당 등 북한 식당이 두 개 있지만 미라도 식당의 인테리어가 가장 세련되어 있고 종업원들의 태도도 훨씬 적극적이다. '영업'에 대한 북한의 달라진 시각을 반영하는 셈이다.

"음식 맛이 참 좋습니다. 특히 동태찌개 맛이 일품인데요."
"그렇습니까?"

손님들 반응을 지켜보며 조마조마해 하던 김혜영 의례원의 얼굴이 금방 환해진다. 그리고 3명의 저녁 값 360위안(약 5만4000원) 외에 팁을 30위안(4500원) 주자 한사코 안 받겠다고 거절한다.

"대신, 남조선 손님들한테 선전 좀 많이 해 주십시오."

영하 20도의 강바람이 차갑긴 했지만 정성이 깃 든 음식 맛에 단동의 저녁은 훈훈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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