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해가 지자 아파트촌 사이에서 폭죽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 오기현
"따따땅 땅땅"
"우르르 콰쾅"

총성과 포성이 들리더니 이내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매캐한 화약냄새가 코를 찌른다. 해가 지면서 들리기 시작한 폭발음은 밤이 깊어질수록 점점 심해지더니 급기야 창문까지 흔들린다. 춘절(설날) 풍습의 하나인 폭죽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전통풍습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아마 시가전이 벌어진 걸로 착각할 것이다.

폭죽놀이는 깊은 산 속에 사는 악귀인 산조를 쫓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춘절 때마다 나타나 가축과 사람을 해치는 산조는 밝은 빛과 큰 소리를 무척 싫어했다. 그래서 대나무(竹)를 불에 태워 터뜨려(爆) 빛과 소리로 그의 접근을 막았다. 이것이 발전되어 당송시대에는 대나무에 화약을 넣어 터뜨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춘절이 아니더라도 경축일이나 주요행사 때에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 터뜨린다. 새로 이사를 들어오거나 새 건물을 지었을 때도 폭죽으로 입주식을 대신한다.

▲ 폭죽이 푸조우로를 덮자 차량이 멈춰서고 행인들도 길가로 몸을 피했다.
ⓒ 오기현
그런데 과거 전통사회와는 다르게 오늘날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에서는 폭죽으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다. 특히 중국정부는 춘절 때마다 일어나는 크고 작은 화재로 골머리를 앓는다. 폭음으로 청각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상하이시 폭죽안전관리사업회의에서는 폭죽을 터뜨릴 수 있는 시간과 지역을 제한했다. 시내 중심지에서는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새벽 0시 30분까지 '안전이 확보되고 치안과 교통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폭죽을 터뜨려도 좋다는 것이다.

음력 섣달 그믐날인 21일 밤에 황푸강변의 와이탄(外灘)에 나갔다. 외지출신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상하이 본토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연야반(年夜飯: 섣달 그믐의 저녁식사)을 먹느라고 나오지 않아 주변이 모처럼 한산했다. 그러나 산발적으로 들리던 폭발음은 자정이 가까워 오자 박격포탄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특히 와이탄 옆 푸조우루(福州路)는 그야말로 한바탕 난리가 일어난 듯하다. 폭음과 연기로 지나가던 차량들이 길을 멈추고 행인들도 날아오는 화염 때문에 몸을 피했다. 순찰차량이 가까이 있었지만 별다른 제지는 하지 않는다.

▲ 폭죽은 아이들의 놀이가 아니라 어른들의 놀이이다.
ⓒ 오기현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중국사람들은 대체로 감정표현이 없고 조용하다. 튀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언론은 정부정책에 반하는 논조를 싣지 않고, 학자는 자신에게 부담이 될 만한 연구나 의견발표를 자제한다. 도로에서 접촉사고가 나면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지만 어느 누구하나 거들지 않는다. 몇 시간이고 서서 구경만 하다가 일이 수습되면 조용히 흩어진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 중국에서는 진리이다. 그런 면에서 폭죽놀이는 중국의 일반적 정서와는 다른 문화이다.

▲ 날이 밝으면 청소부들은 아무 말 없이 폭죽 쓰레기를 치운다.
ⓒ 오기현
그렇더라도 폭죽은 중국민중들의 놀이이고 중국민중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전제군주 시대에는 강제노역과 전쟁에 시달렸던 백성들이 그들의 억눌린 감정을 폭죽을 통해 해소했을 것이다. 급격한 개혁개방 속에서 빈부격차와 사회적 차별이 심화된 현대에서는 떠돌이 막노동꾼과 농민들의 응어리가 한 해를 접고 새해를 여는 시점에 폭발되는 것이다. 결국 폭죽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되는, 규격화되고 합법화된 민중들의 불만해소 창구인 셈이다.

폭죽은 아이들의 놀이가 아니라 어른들의 놀이이고 표면적인 폐해가 적지 않지만 강력한 중국의 공권력이 묵인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한해 중국의 GDP는 9.1% 성장했고 상하이는 평균치를 뛰어넘어 11.8%의 성장을 기록했다. 사스와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 속에서도 경이적인 성장률이다.

성장과정에서 소외되고 차별 받는 이들을 어루만져 주는 특별한 장치가 없는 한 폭죽은 계속될 것이다. 해가 지면서 시작되어 다음날 해가 뜰 때 까지 계속되는 춘절의 폭죽풍습. 2004년 초 우리가족은 상하이에서 몇 일 더 불면의 밤을 보내야한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