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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나는 까를로스 푸엔테스가 저술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까치)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다. 그 책은 참으로 지루한 책이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초반 이후 그렇게 지루한 문장으로 가득 찬 책을 읽은 경험은 내 기억을 두루 찾아보아도 별로 없는 듯하다. 요즘 나오는 책들은 다루는 내용들이 가볍기도 하지만, 문체 또한 쉽게 읽히도록 가볍게 쓰지 않는가. 게다가 친절하게 독자들이 지루해지지 않도록 각종 사진이나 그림들을 넣기까지 한다.

그러나 멕시코의 유명한 문인이자 정치가이기도 한 까를로스 푸엔테스가 저술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만을 골라내듯이 사용할 뿐더러, 느린 호흡으로 길게 엮어나가는 만연체의 문장으로만 일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인내를 가지고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된 것은, 그 책에서 저자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또한 희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의 원래의 주인이었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그는 이야기를 스페인의 투우에서부터 시작한다. 소의 역동성과 소를 다루는 투우사의 섬세하고 에로틱한 포즈와 동시에 깃들어 있는 남성다움, 고대 스페인 민족의 형성과정, 그리고 플라밍고를 추는 안달루시아의 무희에 대한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그 다음에 비로소 아메리카의 전래신화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가 라틴 아메라카의 역사를 서구적, 정복자적 관점에서 보기 때문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에 관해서 고뇌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고뇌는 이 책의 곳곳에서 끊임없이 짙게 베어 나오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스페인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어머니인 대지와 전통. 그리고 그것을 정복하고 짓밟고 강간한 강한 아버지의 남성상을 가진 스페인을 함께 이해하지 않으면 라틴아메리카라는 복잡하고 서로 모순된 요소들이 함께 섞여 있는 대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의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의 많은 부분이 스페인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어머니와 그리고 그들을 짓밟고 강간한 스페인인 아버지, 그리고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흑인들의 피와 땀과 절규가 한데 얽혀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인디오-아프로-이베로-아메리카’라는 것이다. 콜럼버스가 유럽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 거대하고 신선한 대륙에 도착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500년이 넘는 동안, 고통과 수탈이 계속되고 있는 이 거대한 대륙에서는 그동안 그야말로 서사적인 차원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유려하고 어려운 문체로 그 서사적인 일들을 마치 시적인 분위기로 웅장하게 책을 읽는 이들의 눈앞에 펼쳐 보인다. 각각의 페이지들은 쉽게 읽기에는 너무 어렵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아메리카 대륙과 그것을 둘러싼 유럽의 열강들의 각축과 부침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메리카 대륙과 그곳의 사람들이 겪은 눈물겨운 고통의 과정들이 분명하고 절절하게 떠오르게 된다.

그는 또 마침내 스페인이 그 자신의 붕괴로 이 대륙을 떠나고 말았을 때. 라틴 아메리카 인들이 가졌던 희망과, 그 희망을 배신당하고 그들이 겪었던 혼란들에 대해서. 그리고 스페인이 떠난 빈 자리를 노리는 영국과, 같은 대륙의 형제국이지만 그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던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발전과 독립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은 다른 아메리카의 국가들에게 끝없는 자극의 원천이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그런 내부적인 모습과는 달리, 외부적으로는 또 하나의 침략적 제국이었던 미국의 모습은 이미 1823년의 먼로 독트린으로부터 시작된다.

초기 미국의 광대한 서부 프론티어의 개척은 결국은 멕시코와의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으며, 미국은 ‘명백한 운명’이란 구호를 내걸며 멕시코의 광대한 영토를 조금씩 침탈해나가다가 결국은 미 멕시코 전쟁으로 멕시코 영토의 절반이상을 자국의 영토로 만들어 버렸다.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구아의 정권을 바꾸고, 콜롬비아에 간섭을 해 파나마를 독립시켜 관할구역으로 만든 일. 스페인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로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를 실질적으로 식민지로 만든 일,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실각시키고 현재 라틴 아메리카의 두 대국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목줄을 쥐고 흔들고 있는 미국의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는 글들은 그러한 의문들로 가득 차 있다. 도대체 우리 인디오-아프로-이베로 아메리카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길을 걸었으며 어디로 향해가야 할 것인가. 왜 라틴 아메리카는 번영의 길로 가지 못하고 운명처럼 고통을 지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문인이면서 정치가이기도 한 그의 책은 다양하고 깊은 문학적 수사들과,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을 찾는 절규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결국 그 해결책을 문화에서 찾는다. ‘라틴 아메리카에 속한 다양한 문화와 충분한 고통의 역사’가 응어리져 분출하는 문화의 힘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불안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책을 투우사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성난 발길로 달려오는 소를 노려보며 침착하게 다가가는 투우사의 결의에 찬 몸놀림을 보며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결의를 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야기한다.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을 바라보자고. 그리고 그의 조국 멕시코의 땅을 가져갔고, 현재 히스패닉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미국을 새로이 바라보자고. 그들 속에 스며있는 라틴아메리카를 찾아내자고.

라틴 아메리카는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또한 정복자들의 품안으로 깊이 스며들어 그들에게 라틴 아메리카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서 끊임없는 수탈을 당하고 고통을 겪으면서도 강인하게 살아서 버티고 있다. 그 모든 고통을 이겨낸 인내와 그 과정을 수용하고 버텨낸 문화. 그리고 끝없는 저항의 전통. 그것이 바로 라틴 아메리카의 저력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저력을 가지고 그 어느 시기보다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껏 모든 고난을 겪어온 사람들답게 새로운 용기로 힘든 21세기를 당당하게 맞이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 상

벤자민 킨, 키스 헤인즈 지음, 김원중, 이성훈 옮김, 그린비(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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