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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개발원(KEDI)은 28일 서울 정신여고에서 열린 '사교육비 경감 방안 5차 공청회'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연 2회 이상 치르거나 자격고사화하는 등 수능의 성격과 기능을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 중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수학능력시험의 자격고시화'라는 부분이다. '수학능력시험의 자격고시화' 방안은 이때까지 입시제도개혁 방안의 단골 메뉴였으나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실현 불가능한 방안으로 보인다.

'수학능력시험의 자격고시화'가 불러올 문제점

수학능력시험을 자격고시화 했을 경우 대학으로서는 다른 학생 선발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많은 대학들은 다양한 전형방식과 학생 선발 방식을 택하기 보다는 손쉬운 본고사 부활로 기울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현 입시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이 아닌 개악하는 방식일 뿐 아니라 한국의 사교육 시장을 몇 갑절 팽창시킬 가능성만 높이는 꼴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선 고등학교의 우열반 편성을 심화시켜 학생들간의 위화감을 형성시킬 것이 뻔하다.(지금도 몇몇 학교에서 상위 50위권 정도의 학생을 모아 방과 후 심화교육을 시키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렇다면 내신의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어떨까? 이 방안도 학력의 지역간 편차가 심한 한국의 상황에서는 별다른 대안이 되지 못한다. 일선 학교의 시험들은 객관성 자체가 의심될 뿐 아니라 현재 고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들의 내신 성적 향상을 위해 시험 문제를 지나치게 쉽게 내는 것과 같은 문제점들을 심화시킬 뿐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성적이 높은 학교들에서는 외국어고와 과학고에서 나타난 내신을 위한 자퇴가 벌어져 일선 학교는 파행 운영될 것이 뻔하다. 또한 대학들은 일전에 그러했듯이 학교 등급제를 추진하겠다며 여러 무리수를 둘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것은 실질적인 고교 비평준화의 부활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일부에서 제안하고 있는 대학평준화-수능시험을 자격시험화해서 커트라인에 따라 대학입학 자격을 주는 (고교 평준화 때와 유사하다)-를 도입한다고 해서 문제가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이 심각한 격차를 보이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서울로의 위장 전입, 서울 학교로의 전학이 물밀듯이 이루어져 수도권 집중화만 심화시키는 역효과만 가져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시설과 교수 수준이 떨어지는 대학에 배정되었을 때의 불만, 비인기학과의 공동화 문제와 인기학과 진학을 위한 사교육 문제 등등 대학 평준화가 가져올 문제는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의 대입은 한국사회모순의 전시장

대한민국의 입시제도는 말그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있다. 어떠한 제도를 도입하든 개선보다는 개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S.A.T를 도입해서 입시부담을 줄이고 대학의 선발 방식을 다변화 하자던 시도가 점수로 학생들을 줄세우는 제도로 변했다. 수시모집은 수시과외를 만들어내고 과외비를 높였으며 지방학생이 상대적으로 적게 선발되는 역기능을 가져 왔다. 또 특례입학은 연예인 입학의 수단으로 왜곡되었고 최근에는 귀여니(본명 이윤세)와 같이 수학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입학시켜 그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그리고 수능제도가 많은 문제점이 있어 왔고 지금 그 문제들이 표면화 됐음에도 그나마 이전 학력고사, 본고사 시절에 비하면 나은 제도이고 객관적인 제도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충분한 준비나 대안이 없는 변화는 더 큰 문제점을 야기할 뿐이다. 특히 수학능력시험의 자격시험화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나마 이전 학력고사, 본고사 시절에 비하면 나은 제도이고 객관적이며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한 제도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현재의 수능제도를 도입초기의 취지를 살려 안착시키고 밝혀진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왜 한국의 대학입시제도가 이렇게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대한 괴물이 되었을까? 이는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이 입시제도 안에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일본 식민기간에 무비판적으로 이식된 일본식 교육제도의 문제점 –본고사, 중고교 비평준화- 은 망령과 같이 계속되고 있으며 보수언론들은 그 제도로의 회귀를 꿈꾸며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학벌주의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빠른 산업발전 과정에서 등한시 되었던 순수학문이 고사해 학문적 다양성이 상실되었으며, 수도권과 지방간의 심각한 격차, 특정 직업에 부가 집중되는 문제 등등 한국 사회의 모순이 낳은 비극이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입시제도개선을 통한 교육의 변화는 동족방뇨(언발에 오줌누기) 수준이란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야 제대로 된 입시제도개선이 가능해

그리고 입시제도의 개선 이전에 획기적인 교육 개혁과 투자가 선행 되어야 한다. 지금의 문제를 교육적인 문제로 한정해서 본다면 초중고의 교육 부실에 있으며 사교육은 이 교육의 부실이 가진 공백을 파고들었을 뿐이다. 이는 입시제도개선을 통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과감한 일선 초중고의 교육을 개혁 해야하며 그간 말로만 그친 교육에 대한 투자를 과감히 실시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투자 없는 변화는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왜 투자는 하지 않고 변화되기를 꿈꾸는 것인가? 그리고 사교육을 제도적으로 압박하기 이전에 사교육의 어떤 점이 공교육의 부실을 보완했는가를 주도면밀히 분석해 공교육이 그 부실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학교 내 사교육실시와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바꿔가야 할 것이다. 또한 각각의 교육의 단계가 상급학교진학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종속되는 현재의 교육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교육은 불가능하다.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이 각각의 위치에서 독립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들에게 학생선발방식의 다변화만 강압적으로 요구할 것이 아니라 대학이 학생선발을 다변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콩나물 시루와 같은 교실에서 모두 같은 수업을 받고 입시교육 말고는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학생선발방식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학들도 본고사나 수능점수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시각을 좀 변화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의 모순을 제대로 파악해서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것을 출발점을 삼아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아직 얼굴에 솜털도 가시지 않은 학생들을 한국사회의 모순점 한가운데로 몰아 넣을 것인가?

이러한 근본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학능력시험의 자격 고시화'는 또 다른 문제점만을 양산할 뿐 아니라 더 무서운 괴물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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