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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남짓 이어온 화물연대의 2차 파업은 5일 오후 지도부가 '선 복귀 후 협상'을 결정하면서 끝이 났다.

화물연대 지도부는 정부 당국이 조합원 피해 최소화와 교섭보장, 제도개선 협의 계속 등을 약속함에 따라 '선 복귀 후 협상' 결정을 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상 백기투항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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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 파업철회 ' 선언


▲ 지난 제113주년 세계노동절 기념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 화물연대 소속 노동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화물연대 지도부의 백기투항과 상관없이 이미 상당수 조합원들은 업무에 복귀한 상태이며, 물류는 정상화된 상태다. 따라서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조합원들의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빨리 봉합해야 하는 것이 현 지도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다는 것이 노조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화물연대가 지난 1차 파업 때와 달리 2차 파업에서 정부와 사측에 완패를 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지난 5월 완승에 젖은 지도부의 안이한 상황 판단에 이은 전략 실패, 둘째는 정부의 엄정한 법 집행 의지와 신속한 대응이다.

지도부의 안이한 상황판단에 따른 전략 실패

부산항 등 물류 거점을 봉쇄해 물류를 마비시켰던 지난 1차 파업 때와 달리 화물연대 지도부는 여론을 의식해 조합원들의 산개, 자택 투쟁을 통해 아예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 방법을 썼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대형 컨테이너 차량이 움직이지 않으면 물류 거점은 수출입 물품으로 포화상태가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물류 거점도 제 기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전략이었다.

물론 지난 1차 파업 때와 달리 단기적인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봤고, 시간을 두고 정부와 협상하기에는 이 방법이 적합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도부의 예측과 달리 물류는 비조합원들이 차량뿐 아니라 기차와 선박 등으로 근근히 이동이 되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여론 또한 화물연대 측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과 엄정한 법 집행 의지

정부도 지난 1차 파업 때처럼 무방비로 당하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부는 화물연대가 파업을 선언하자 '선 복귀 후 협상' 방침을 굳힌 후 운송업체들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면서 화물연대와의 협상을 거부했다.

동시에 업무복귀 거부 차량에 대해서는 경유세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운송참여 차량에는 한시적으로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주는 등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활용했다. 또한 차량시위나 운송방해를 하는 조합원은 즉각 처벌했고, 파업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와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는 등 초 강경책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운송업체들도 파업 적극 가담자들에게 위수탁계약을 해지하는 등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최대 취약점인 경제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

이러한 정부와 사측의 공세에 화물연대 지도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고, 파업이 장기화되자 가장 밑바닥에 있는 조합원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번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컨테이너 부문의 경우 운송업체와 운송료 13% 인상에 의견을 접근하고도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부문 협상을 지원하기 위해 파업에 동참했기 때문에 결속력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었다.

'최후의 일격'은 바로 화물연대 내부에서 나왔다.

▲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지난 9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총파업투쟁 승리 결의대회에서 차량 번호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여러모로 힘들게 파업 대오를 유지해 오던 화물연대에게 최후의 직격탄을 날린 것은 바로 가장 밑바닥에 있던 일반 조합원들이었다. 화물연대 한 고위 간부는 지난 2일 당시 상황을 한 문장으로 간단히 정리를 했다.

"밑바닥에 있는 조합원들이 녹고 있습니다. 이미 끝났습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정부가 협상을 거부하고 민형사상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고, 운송업체들도 위수탁 계약 해지 등 물질적인 부분을 압박해 들어오자 그렇지 않아도 하루 벌어 하루를 살던 조합원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비조합원들이 평소보다 2~3배 뛴 운임료를 챙기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따라서 지난 1일 밤과 2일 새벽에 이루어진 화물연대 일부 조합원들의 차량을 이용한 물류거점 봉쇄 시도는 이러한 상황에 위기감을 감지한 일부 강경파들이 국면전환을 하고자 시도한 작품이었던 셈이다.

"초가 꺼지기 전이 가장 밝다고 하죠. 그때가 바로 그랬습니다. 이미 상황은 최악이었던 거죠."

이후 화물연대 지도부는 '통제불능' 상황이라며 정부측에 압박을 가해봤지만, 이미 상황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태였다. 결국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지도부가 희생되더라도 조합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리하게 된 것이다.

물류대란 불씨 여전히 남아

정부는 결국 화물연대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지만 여전히 물류대란의 불씨는 남아있는 상태다. 복귀자의 사법처리 문제는 물론 업무복귀명령제 도입과 개별차주 등록제를 놓고 대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측은 파업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정부가 조합원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발표했지만, 정부는 지난달 26일까지 미복귀자에 대한 경유세 보조금지급중단, 민형사상 손배소송 및 고소·고발 등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운송사 또한 파업 가담자들에 대한 위수탁 계약을 이미 해지한 만큼 각 회사별로 선별적으로 재계약 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화물연대 김종인 의장은 지난 5일 파업철회 기자회견장에서 "만약 정부가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추석이후에라도 파업을 재개할 수 있다"고 경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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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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