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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30~40권씩 내 책상으로 배달되는 책들

▲ 편집국 내 책상 앞으로는 매주 30여권의 책이 무료로 배달된다.
ⓒ 홍성식
신문사 문학·출판담당 기자라는 일을 한 지도 이래저래 3년이 넘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으니 원 없이 책을 읽고, 그 책의 저자들과 만나는 일이 기꺼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어디 기자만일까.

올 봄 타계해 많은 독자들의 안타까움을 불렀던 <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는 생전에 누군가가 '생활은 내가 해결해줄 테니 당신은 OO만 하시오'라는 제의를 한다면 "OO 속에 채워 넣을 단어로 독서 외에는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경희대 도정일 교수는 최근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책을 빼고 난 인간의 삶은 결코 사랑할 만한 것도 천거할 만한 것도 아니다"라며 책 읽는 삶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이런저런 이유-비싼 책값, 도서관 부족 등-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욕 들어먹을 소리가 되겠지만 요새 기자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하루에 많게는 10여권씩 편집국 내 책상으로 배달되는 각종 책들을 펼쳐볼 시간이 없는 것이다. 문학과 인문과학, 경제실용서와 미술·음악전문서적 여기에 기행문과 역사서까지 그 종류도 다양한 수많은 책들. 배달되는 책은 한 달이면 대략 100여권. 값으로 따지자면 100만원에 육박한다. 한 달에 100만원어치 공짜책이 생기는 것이다.

출판사가 언론사로 책을 보내주는 것은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기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주십시오"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탄탄한 자금력을 갖춘 대형출판사들처럼 수백, 수천 만원의 광고비를 정기적으로 집행할 여력이 없는 작은 출판사들에게는 신문에 실리는 책 소개가 자신들이 내놓은 신간을 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책을 쌓아두고도 다 읽지 못하는 안타까움

문제는 이런 소규모의 영세 출판사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무너진 댐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밀려드는' 책들을 기자 혼자서는 도저히 소화할 수가 없다. 이건 성실성이나, 관심의 문제가 아닌 불가항력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봉인된 서류봉투를 뜯고 표지만을 훑어본 후 바로 회사 자료실에 마련된 5단 책장에 꽂아두는 책들도 부지기수다.

그 한 권, 한 권마다에 배어있을 저자와 편집자의 피땀을 생각한다면 송구하기가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적게는 일주일에 20~30권 많을 때는 40권 이상의 책들을 받아보고 있지만, 그중 읽어보고 기사화 하는 건 많아야 5~6권이다. 80% 이상이 읽힘으로써 그 존재를 증명 받는 책의 역할을 해보지 못하고 그저 진열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책을 쌓아두고도 다 읽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라니….

그 책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책감과 쓸쓸함이 밀려오고, 때론 책 제작에 쏟아 부은 출판관계자들의 정성이 떠올라 미안함까지 느껴진다. 이 글을 빌어 그들에게 '게으른 성정 탓에 더 많은 책들에 관심을 가져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을 전하고싶다.

궁색한 용돈을 털어 시집을 사던 시절의 즐거움

주위에 책이 널려있는데도 가깝게 다가설 수 없는 불행한 시절을 살다보니 가끔은 옛날 일이 떠오른다.

과자값 50원 100원을 모아 <소년중앙> 혹은, <보물섬>이란 아동용 잡지를 사고는 빨리 읽기가 아까워 초콜릿 핥아먹듯 야금야금 아껴 읽던 초등학교 시절 그리고, 한달 용돈 3만원 중 거의 절반을 시집(詩集)을 사는 데 썼던 고교 시절의 추억들.

지금 생각하노니 그 시절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헌책방에서 시몬느 보봐르의 <제2의 성>을 500원에 사고는 뛸 듯이 기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수학시간 교과서 밑에 숨겨서 읽던 백석과 이용악, 황지우와 이동순의 시들을 기자는 아직도 암송하고 있다.

최근에 읽은 책들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무엇을 읽었는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지만, 10년 전에 읽었던 책들은 그 내용은 물론, 일정 구절까지 머릿속에 또렷이 새겨져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뭘까? 그것은 아마도 자발적 독서의 행복감이 기억력에 상승효과를 가져다준 탓일 게다.

제 아무리 간절한 바람으로 기원해도 이젠 그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한없이 서글프다.

그러나, "인간이 책 외에 무엇에게서 세상을 배우랴"는 고래로부터 금언(金言)은 잊지 않으리라. 이제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우리의 정신을 키울 위대하고 유일한 자양분은 책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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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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