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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추협 회원들이 배를 타고 현장 근처를 정찰하고 있다. 카메라를 꺼낼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들의 폭행 장면은 '당연히' 찍을 수 없었다.
ⓒ 권박효원
그다지 많이 다친 것은 아닙니다. 온 몸이 뻐근하고 손가락 하나가 욱신거리고 허벅지에 시퍼런 멍이 지워지지 않습니다만, 특별히 크게 아픈 곳은 없습니다.

안경과 아끼던 모자를 빼앗기긴 했지만, 핸드폰도 카메라도 멀쩡합니다. 동영상 카메라가 부서진 다른 기자에 비하면 댈 게 아니지요.

환경운동가와 함께 새만금 4공구 방조제를 찾은 지난 12일. 환경운동가 80여명이 새만금의 '숨통'이었던 4공구 물막이 현장에 도착해 물길을 트기 위해 삽과 곡괭이를 잡았던 날입니다.

그날 새만금 사업을 찬성하는 '새만금추진협의회' 회원들은 정말로 저를 바다에 빠뜨릴 기세였습니다. 겨우 두 겹으로 막아선 경찰 스크럼 안에서 아무런 저항없이 바닷물 물대포를 맞는, 때때로 끌려가 주먹으로 얻어맞기도 하는 환경운동가들에게도 그랬겠지만 바깥은 바깥대로 전쟁이었습니다.

편영수 새만금추진협의회 사무국장은 당시 상황이 알려지면 안 된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방조제에 들어서자마자 단호한 어투로 지시를 내렸습니다.

"핸드폰, 카메라 가진 거 다 빼앗어!"

냉큼 핸드폰과 카메라를 깊숙히 숨기고 경찰들 사이로 피했지만 한 아저씨가 "너 뭐 적었어?"라며 제 수첩을 움켜잡았습니다. 땅에 넘어지면서도 수첩을 놓지 않고 버텼습니다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그날은 저는 취재수첩을 빼앗겨 왼손 손바닥, 그도 모자라서 손등에 메모를 해야 했습니다.

한 방송국 PD가 카메라를 빼앗기는 장면을 보고 달려갔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맞는 것 같았는데, 저는 그곳에 닿기 전 다른 주민들에게 둘러싸였습니다.

"너 어디서 나왔냐"고 묻는데 답변을 하지 않았더니 "바다에 떨어뜨려버린다"며 팔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가더군요. 다행히 다른 주민들이 말리면서 큰 불상사 없이 풀려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별로 겁은 나지 않았습니다. 헤엄은커녕 물에 뜨지도 못하는데 말이지요.

가난을 호소하며 돌을 던지는 주민들
어민들보다 포크레인이 무서웠습니다


▲ 바리케이트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운동가들. 그러나 새추협 회원들과의 대치과정에서 이 바리케이트는 별 쓸모가 없었다.
ⓒ 권박효원
무섭기보다는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에게 화가 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시위에서 많은 지역주민들이 자신의 가난을 호소했습니다. 새만금 사업과는 상관이 없는 분배와 소외의 문제였습니다만, 하루종일 배를 타고 도로를 달려 물고기를 팔아봤자 만원 겨우 번다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 아주머니는 경찰 스크럼을 뚫으려고 싸우다가 갑자기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를 화나게 한 것은 "새만금 사업을 하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환경단체가 전북을 시기하고 있다"며 어민들을 선동해온, 현장에서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하라고 외치는 몇몇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작 100명의 병력을 데리고 나온 경찰이었습니다.

"더 안 오냐"고 경찰 관계자에게 물어봤습니다. "다 왔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15일 환경운동가들의 집회에는 방조제 위 퍼포먼스를 막기 위해 600여명의 경찰이 동원됐습니다.

가장 화가 났던 것은 방조제가 다시 덮인 순간이었습니다. 삽과 곡괭이만으로 5시간 넘게 파낸 방조제였습니다. 밤을 새고 초코바로 끼니를 때우며 파던 땅이었습니다. 제가 파낸 것은 아닙니다만, 지켜보는 사람으로도 안쓰러웠습니다.

환경운동가들은 지쳐서 여기저기 쓰러져 눈을 붙이고, 그러다가 다시 일어나 삽을 쥐었습니다. 물이 밀려오면서 수면과 방조제 사이의 거리도 짧아졌습니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물살을 트겠구나. 1m 정도 남았구나….

▲ 힘을 합쳐 큰 바위를 들어내고 있는 운동가들
ⓒ 권박효원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새추협 회원들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작업은 중단됐습니다. 새추협 회원들이 "경찰은 3시30분까지 저 사람들 끌어내라"며 잠시 폭력을 멈춘 사이 포크레인이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픕니다. 5시간 넘게 파낸 땅을 포크레인으로 덮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15분.

"저 포크레인 치워! 그게 어떻게 파낸 땅인데 덮어? 사다리 가져와. 내가 포크레인 올라갈 거야. 저 거 치워!"

절규하는 김제남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보였습니다. 옆에서 다른 운동가가 김 사무처장을 잡아주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말을 잃었습니다.

누군가 침묵을 깼습니다.

"우리, 여기서 안 나갑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그냥 맞을테니까 경찰 치우고 저 포크레인도 치워주십시오."

환경운동가들은 포크레인 앞을 막아선 경찰들과 몸싸움까지 벌였습니다. 자신들을 보호한다고 서 있는 경찰입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편영수 사무처장이 확성기를 통해 경고방송을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이제 10분 남았습니다. 경찰이 저 사람들 안 내보내면 어민들 다시 싸웁니다."

경찰 무보호 속 현장에서 쫓겨난 기자들
"어민 여러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10분이 지나도 경찰은 환경운동가들을 내보내지 못했습니다. 새추협 회원과 지역어민들의 공격이 재개됐고, 슬그머니 경찰쪽에 섞여 현장을 지켜보던 저도 다시 어민들에게 둘러싸였습니다.

어민들은 해양경찰 보트에 타고 현장을 떠나라며 저를 바다 쪽으로 밀어냈고 안경과 모자도 빼앗아갔습니다. 경찰이 해준 '보호'는 멀찍이 현장 뒤까지 안내해준 것뿐이었습니다.

▲ 방조제 양끝으로는 1m 가까이 물이 들어왔다.
ⓒ 권박효원
제가 뒤에서 대기하는 사이 이날의 시위는 정리단계로 들어갔습니다. 언론에 지역주민과의 싸움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대표자간의 즉석협의를 통해 "환경운동가들은 지역어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온 것"이라고 뜻을 전달하고 지역주민과의 간담회를 기약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환경운동가들의 연대 노력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입니다. 환경운동가들 역시 "10년 동안 농업기반공사가 만들어놓은 새만금 찬성 여론을 쉽게 바꿀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막막한 상황입니다만, 지역과 갯벌의 상생은 운동가뿐만 아니라 기자인 제가 고민해야할 몫이기도 합니다. 미리 지역어민들의 다양한 경험과 입장을 취재하지 못한, 새만금에 대한 잘못된 언론보도와 정책들을 더 자세히 기사화하지 못한 숙제겠지요.

<오마이뉴스>는 새만금에 대해 기획기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분간 '새만금 담당기자'로 일할 예정입니다. 그날 지역어민들은 "부모 잘 만나서 서울에 살고 대학까지 나온 니들이 갯벌을 아냐"고 하셨지요. 다시 한번 기회가 닿는다면 '지역주민들과의 뜻깊은 만남'을 주제로 다시 '취중진담'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는 저를 그냥 내치지는 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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