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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동차 메이커 르노가 만드는 메간 세닉이라는 차가 있다. 모노볼륨카 혹은 미니미니밴으로 불리며 96년 전후 프랑스는 물론 유럽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차다. 우리말로 풀자면 소형 미니밴 쯤이 된다. 매간 세닉은 악화된 르노의 경영을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을 정도로 잘 팔렸다. 메간 세닉 이후 모노볼륨카는 전세계 자동차 업계에 하나의 유행이 돼 왔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카렌스 혹은 X트렉이 바로 모노볼륨카에 해당한다. 해외에서는 그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차종이 국내에서는 졸지에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오마이뉴스> 공희정 기자와는 또 다른 입장에서 문제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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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트렉 ' 은 지난해 말 단종된 카렌스Ⅱ에 불과"


새차가 아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가

X트렉은 카렌스Ⅱ에 몇가지 추가 장치를 달아서 이름을 바꿔 출시한 모델이 맞다. 왜 그랬을까. 차종 분류와 관련된 법규의 문제다. 자동차 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후레임형이거나 4륜 구동장치 또는 자동제한장치를 갖추는 등 험로운행이 용이한 구조로 설계된 자동차로서 일반형·승용겸 화물형이 아닌 것"을 다목적자동차로 규정하고 있다.

즉 사륜구동장치 혹은 LSD(차동제한장치)중 하나만 장착하면 다목적차로 분류된다. X트렉이 승용차에서 다목적차로 구분이 바뀌게 된 것은 바로 차동제한장치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차를 두고 이름을 바꿔 판다며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X트렉은 카렌스와 동일한 차가 아니라 카렌스를 기본으로 만든 변형차종으로 표현하는 게 맞다.

기업체는 이익 창출이 최우선 과제다. 간단한 장치 하나를 추가하면 단순한 단종될 모델을 살릴 수 있는데 이를 행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기업체로서 태만한 자세라 지적받아 마땅하다. 엄청난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차가 단종됐는데 간단한 장치 하나 추가해서 살릴 수 있다면 기업체로서는 이를 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변화하는 환경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것 또한 기업체의 능력이고 경쟁력이다. 자동차 시장에서 이같은 예는 많다.

현대 갤로퍼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5인승으로 처음 만들어진 이 모델은 이후 7인승, 9인승을 만들어내고 지프형자동차(과거에는 이렇게 분류하던 때도 있었다)로는 희한하게도 LPG엔진까지 얹어 팔았다. 시장의 요구, 정확하게는 자동차 세금을 적게내고 싼 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요구를 맞춰왔다.

미안한 얘기지만 당시 갤로퍼의 경쟁모델은 이렇게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 팔지 못했다. 만들면 팔릴 것을 알았지만 모든 여건이 이를 허락지 않아 뻔히 알면서도 대응을 하지 못했다.

갤로퍼는 알려진대로 미쓰비시 파제로 구형 모델을 들여온 것이다. 하지만 현대는 변화하는 시장에 발빠르게 대응하며 한 가지 모델에 다양한 변형 모델을 만들어내며 10년 넘게 인기를 얻었다. 얄밉지만 이런 게 기업체의 능력이다.

카렌스의 품질에 문제가 있어서 판매가 중단된 것은 아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디젤엔진의 성능이다. 카렌스가 변화된 자동차 분류 기준에 따라 승용차가 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그래서 어떤 메이커도 도저히 맞추지 못하는 승용 디젤 엔진 배기가스 기준을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판매가 중단됐다.

결코 현재 판매되고 있는 테라칸, 싼타페, 쏘렌토, 코란도, 렉스턴, 카니발 등의 자동차들보다 배기가스 상태가 나쁜 게 아니다. 유독 카렌스만 승용차로 분류되면서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왜 카렌스에만 까다롭고 엄격한 기준을 요구해야 하는가. 법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역으로 풀어보자. 사륜구동장치나 LSD가 없어서 더 까다로운 기준을 요구받은 것은 아닌가. 그래서 그 장치를 달았다면, 그게 기업의 도덕성까지 언급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가.

성급하게 제작해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있는 차에 차동제한 장치 하나를 추가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원래 기본 차종 하나에서 매우 다양한 가지치기 모델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기본 모델에 LSD를 추가하는 데 석달씩 걸릴 일은 아니다.

공 기자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LSD같은 장치는 샘플 개발에만 적어도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신차개발과 함께 신제품을 만들어 낼 때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기아자동차가 카렌스 개발 과정에서 LSD를 함께 개발했다면, 혹은 이미 개발되어 있는 제품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 적용한다면 석달씩 걸릴 일이 아니다.

성급하게 제작해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일방적인 주장 혹은 단순한 짐작일 뿐이다. 새 차라면 개발기간이 석달이라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새차가 아니라고 문제삼는 기사에서, 제작기간이 짧다고 지적하는 것은 모순이다.

"충분한 검토없이 무리하게 적용됐"다면 메이커는 엄청난 사후 부담을 져야 한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결함을 미리 짐작해 확정된 사실처럼 말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리콜은 너그럽게 볼 필요도 있다

공 기자의 지적대로 카렌스는 7차례나 리콜을 받았다. 품질 수준이 월등히 좋다고 보기 힘든 수준이다. 하지만 리콜과 관련한 소비자 인식이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그나마 리콜을 하는 게 안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를 숨기지 않고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는 노력으로 리콜을 긍정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 왜냐하면 리콜에 대해 자꾸 부정적 인식이 강해지면 메이커로서는 가급적 리콜을 피하고픈 충동을 느끼게 된다. 잘못을 제때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리콜은 자동차 메이커의 일상적인 활동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자세가 아쉽다.

기업이 이윤을 내지 못해 적자에 허덕이다 수천명을 거리로 내모는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게 오히려 비도덕이지 않은가. 기업은 정직하게 합법적으로 이익을 내는 게 가장 도덕적이다. X 트렉이 무죄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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