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얼추 비슷하게라도 옹알거려주면 뒤집어지게 기뻐할 사람들의 이름 말고는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 배운 말이 '친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 따위야 원하든 원치 않든, 포대기에 묶여 엄마 가는대로 다니며 같은 해 태어난 동네 이 집 저 집 아이들과 대면할 때마다 듣는 소리가 아마 "자, 친구야 친구"였을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평생 입에 달고 다니는, 그리고 가슴에 품다 못해 술에만 취하면 씹어뱉는 '사랑'도 그 뜻을 다 알고 죽지 못하기 십상이라지 않던가? 아마 친구라는 말도 그 소리에 익숙해지고, 누군가에게 붙여쓴다고 해서 다 알게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컵'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 친구라는 말이 내 가슴속에 뜨끈하게 들어왔던 날이 떠올랐다.

온통 열광과 들뜬 흥분으로만 기억되는 지난 2002년 월드컵. 그 열기가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직전에 슬쩍 들어왔다가 사라진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나 역시도 극장에서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티벳 승려들도 월드컵을 즐긴다는 내용의 영화가 있다더라는 소문은 어떻게 한 자락들은 것도 같았다. 그 영화가 바로 '컵'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이 한창일 때, 중국의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한 티벳 승려들이 수도를 하고있는 히말라야 한 자락의 사원에서도 어린 수도승들의 관심은 온통 월드컵이다. 험악한 얼굴의 어른승려 '게코'가 지키기도 하고, 눈을 부라리며 야단을 치기도 하지만 '오기엔' 같은 어린 승려들은 밤마다 몰래 민가로 숨어내려가 축구경기를 보느라 기도시간에는 꾸벅꾸벅 졸 수밖에 없다. 급기야 꼬리가 밟힌 오기엔에게 게코는, 다시 한번만 밤중에 민가에 돌아다니면 쫓아내버리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승전의 그날은 다가오고, 쫓겨나도 좋을만큼 결승전이 보고싶었던 오기엔은 몰래 민가로 나가는 대신 마을에서 텔레비전을 빌려다가 사원에서 보도록 허락해줄 것을 게코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한 번만 허락을 해준다면 다시는 말썽도 부리지 않고 수도에 정진하겠다는 애원을 못이긴 게코는 주지스님께 말씀을 드려 허락을 해준다.

그러나 주지스님의 허락만 받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텔레비전과 위성안테나를 빌리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오기엔은 사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수도승들에게서 돈을 걷어내고 구석구석 숨겨두었던 비상금까지 모두 꺼내지만 필요한 금액의 절반 밖에는 안 된다. 간신히 거지 점쟁이 집 문을 밖에서 잠근 채 강제로 빼앗다시피 울궈내기까지 한 끝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지만, 월드컵 기간이라 대여료가 올랐다는 주인의 말에 다시 한번 절망한다.

가게문을 닫기 전까지 두어시간 내에 돈을 마저 마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 그러나 어떻게든 결승전을 보고싶은 오기엔은 얼마전 티벳을 탈출해 나오느라 가난해서 한 푼도 보태지 못한 팔덴과 리마의 자격지심을 긁어서, 며칠 전 티벳에서 도망 나온 올 때 팔덴에게 어머니가 정표로 주었다는 시계를 대여점 주인에게 맡긴다. 주인은 하루 안에 나머지 돈을 가져오지 못하면 시계를 팔아버리겠다고 하지만, 그리고 딱히 하루 안에 그 돈을 마련할 방법도 없음에 분명하지만 이미 그런 것이 머리에 들어올 오기엔이 아니었다.

승려들은 사원 지붕에 안테나를 설치하고 이리저리 돌려댄 끝에, 결승전 시작 직전에 전파를 맞추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TV 앞에는 그것을 빌려오는데 기여한 기여도에 따라 자리가 잡히고, '컵을 차지하기 위해 두 나라가 싸운다는, 그렇지만 그렇게 폭력적이지는 않은 이상한 전쟁' 월드컵을 보기 위해 주지스님도 게코스님과 함께 자리를 잡는다.

브라질과 프랑스의 결승전. 호나우도와 지단이 격돌하고, 스님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꿈같은 상황, 매일 밤 잠도 설쳐가며 산 아래 민가까지 숨어다니면서 어깨 넘어로 기웃거리던 월드컵 경기를, 그것도 결승전을 사원 안에서 주지스님까지 앉혀놓고 구경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오기엔은 왠일인지 침울해진다. 아까부터 잡아준 맨 앞자리도 마다하고 저 뒤쪽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팔덴이 자꾸 눈에 밟힌 것이다. 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티벳과 인도 사이의 국경. 어쩌면 그 너머 중국 군인들 치하에 있는 엄마를 팔덴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싶었던 시계를 혹시 TV 때문에 영영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오기엔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가 자기 숙소로 들어간다. 그리고 혹시 바닥에 떨어져있을지 모를 동전을 찾느라 침상 밑을 긁어내기도 하고, 고리짝 속에 숨겨두었던 비장의 보물인 축구화를 꺼내놓기도 한다.

오기엔이 경기중에 나가는 것을 본 주지스님이 게코에게 귀띔을 하고, 게코는 오기엔을 따라간다. 그리고 이것저것 잡동사니들을 꺼내놓는 오기엔의 모습을 보게 된다.

"뭘 하는게냐?"
"내일까지 TV주인에게 돈을 갚지 못하면 팔덴이 엄마에게 받은 시계를 잃게 되요."
"그래서…, 그 축구화를 팔거냐?"
"팔덴은, 그 시계가 없으면 안된대요."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오기엔의 얼굴. 그리고 내내 그렇게 험상궂다가, 웃지도 않는 얼굴로 어느새 보살처럼 보이는 게코의 한마디가 이어진다.

"그 돈은 주지스님과 내가 주마. 계산을 잘 못하는 걸 보니, 좋은 중이 되겠구나."

초등학교 이학년 쯤 되었을 것이다. 겨울이 다 되던 가을, 근처에만 가도 냄새가 나는 여자아이가 전학을 왔었다. 부모님 어렸을 적 그랬다는 이야기처럼 가방 대신 땟국물 졸졸 흐르는 보자기에 공책이랑 연필 따위를 둘둘 말아서 메고 오던 아이였다. 아이들은 모두 그 아이를 거지라고 불렀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아이의 부모, 아니 홀엄마는 정말 거지였다.

학교에서 우리 집 가던 어느 언덕배기 호박밭자리에 천막을 이리저리 쳐서 만든 집이 있었다. 군인들 훈련장에 대충 가림해놓은 화장실처럼 엉성하게, 그렇게 남의 땅에 대충 얼기설기 엮어놓은 것이 그 아이의 집이었다.

그런데 겨울이 끝나가던, 그래서 겨울방학은 끝나고 봄방학은 하기 전이었던 어느날부턴가 그 아이는 학교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왜 그 아이가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는지 묻는 사람도,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쩌면 사라져준 것만 해도 고맙다고들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다르지는 않았다. 사람은 스스로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일에 한해서는 별 호기심을 느끼지 못하는 법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아마 다른 정신을 팔 정도로 재미있는 일이 전혀 없는 무료한 하교길이었겠지만, 그 아이의 토막이 있던 자리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대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새까만 잿더미. 타다 남은 담요자락 두어 개, 맷돌 한 짝,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모양 그대로 숯덩이가 된 병아리 서너 마리.

봄이 다가오고 그 밭에 무언가 심어야 하는 계절이 오자, 밭 주인은 몇 번이라도 나가라고 닥달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갈 곳이라고는 없는 그 아이네 가족은 별 수 없이 버텼을 것이고, 이제 다음 농사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늦겨울날 아마도 그 가족이 어디 나가고 없는 사이에 밭 주인이 불을 질렀을 거라는 이야기는 엄마의 설명이었다.

병아리도 꼼짝없이 숯덩이가 돼버렸던 그 밤, 그나마 그 아이, 이름조차 물어본 적이 없어서 누구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 아이는 무사했는지. 또 그 거적때기 두어 개마저 태워먹은 이 하늘아래 어디 갈 곳은 있었는지. 동화 속 세상 그 어떤 끔찍한 마녀의 소굴보다도 빡빡한 세상 한자락의 느낌에 가슴은 뭉클할 겨를도 없이 칼칼했다.

그리고 두어 달 지났을까, 골목에서 전봇대를 1루 베이스, 굴려온 호박돌을 2루 베이스 삼아 주먹야구를 하느라 정신 쑥 빼놓고 있던 어느 날 흘깃 눈가로 새까만 거지 모녀가 걸어갔다. 그리고 그 때까지 기억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우연히 눈이 마주친 것은 그 천막집 아이였다. 한아름 가득, 그래봤자 별 것 들어있지도 않을 새까만 보따리를 안고 가던 그 아이였다. 금세 고개를 돌려 마을 저편으로 걸어갔던 그 아이 뒷통수에까지 눈길을 주느라, 나는 날아오는 공을 다리사이로 저만큼이나 흘려버렸고 한참이나 같은 편 아이들의 구박을 받아야 했다.

분명 그 교실로 다시 돌아간대도 그 속속들이 절은 때냄새를 못이길 것이 분명하건만, 아마 그 때 넋을 놓고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친구 해줄걸.'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