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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일 일요일이 장날이지. 그렇지?"
"예."
"주말에 말이야, 미꾸라지도 잡고 뭐 이렇게 노는 건 좋은데, 잡은 건 집에서 부모님하고 같이 끓여 먹어라. 그리고 잡은 게 많아서 꼭 팔아야겠으면, 부모님한테 대신 팔아달라고 그래. 알았냐?"
"예."
"어린 학생들이 장터에 앉아서 미꾸라지 같은 것 팔고 그러면 안되는 거야. 알았지?"
"예."

내가 세 번째로 초등학교를 다닌 곳은 경기도 일산이었다. 지금은 그런대로 잘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지만, 신도시 아파트촌이 들어서기 전이었던 80년대까지만 해도 그곳은 서울 사람들이 이따금 들어와서 공기가 좋다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했던 전방지대의 한 농촌마을에 불과했다.

원당쯤을 지나면 아스팔트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고, 지나는 차들도 이따금 서울로 통하는 노선버스 몇 대와 왕방울만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황소 따위를 실어나르는 농장트럭, 혹은 전방부대 군용트럭들 뿐이었다.

내가 전학했던 그 해, 학교의 환갑 개교기념일을 치렀을 만큼 오래된 나의 새 학교는 근방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을 비롯해서 앞 문구점 아저씨, 떡볶이집 아줌마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동네사람 모두가 초등학교 선배인 곳이었다.

아직 5일장이 열리던 일산에서, 종종 초등학생 꼬마들은 어느 도랑이나 냇가에서 잡은 붕어, 미꾸라지 따위를 장터에 들고 나와 팔아서 용돈을 만들기도 했었다. 어느 토요일 종례시간에 절대 장터에서 미꾸라지를 팔지 말라고, 마음먹고 훈시를 한 마디 하시던 담임선생님의 비장한 얼굴이 생생하다. 물론 그 주말 장날에도 막 젖뗀 발바리 세 마리를 장바닥에 늘어놓고 있던 녀석이 있었다.

지금은 아파트가 빼곡한 주엽리(동) 일대는 배밭으로 유명한 곳이었고, 그 사이 어디쯤엔가 잔고기가 많이 잡히는 도랑이 있었다. 어느 여름 토요일 오후, 나는 친구따라 장터에 내다 팔만큼 많이 잡히는 물고기를 잡으러 그곳으로 원정을 나섰다.

전학오기 전 인천 변두리 학교에 다닐 때도 어디 논두렁에서 올챙이 몇 마리 잡아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본격적으로 무얼 끓여 먹거나 내다 팔 만큼 잡아본 적은 없었기에 대충 어떤 물에서 어떻게 생긴 것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처음 물가에 도착했을 때는 실망 천만이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 흔히 나오듯, 위에서 들여다보면 팔뚝만한 붕어가 도망치는 길 따라 '저 놈 잡아라' 하면서 허둥대다가, 넘어지면 그대로 수영을 즐겨도 그만인 곳. 대충 그런 곳이리라고 기대했었건만, 막상 펼쳐진 것은 그 물 속에서 눈이라도 떴다가는 영영 멀어버리지 않을까 싶을만큼 한치 아래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흙탕물이었다.

물론 근처에 공장은 없었으니 그리 치명적인 폐수야 없었겠지만, 그만큼 꽤 큼직한 웅덩이로 모여드는 동안 동네 논바닥을 헤집은 것은 물론이고, 근처 동네 집의 허드렛물까지 적지 않게 흘러 들어왔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내내 종아리에는 온통 라면봉지나 플라스틱 막걸리통 따위가 감겨들었다.

그래도 이왕 버린 몸이라고, 물이야 지저분하건 깨끗하건 입에 들어가는 것만 아니면 이왕 젖어버린 판에 별 거리낄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갈수록 꺼림직한 것은 그 놈의 뱀장어와 거머리였다.

난생 처음 보는 뱀장어란 놈의 생김새가 참 신기했다. 도랑가 쪽으로 한 번 훑은 무릎그물을 바가지에 털고 보니, 손가락 두 개 길이정도 길쭉한 것이 물 속을 휘젓고 있었다. 영락없는 뱀이었다. 나는 잔뜩 얼굴은 찌푸린 채 기겁을 해서 다시 친구에게 들러붙었다.

"야, 야. 이거 뱀이잖아. 뱀. 새끼 뱀인가봐."
"아냐, 뱀장어야."
"뭐? 뱀장어?"
"에이, 뱀하고 뱀장어도 구분을 못하냐?"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아무래도 뱀이었다. 구불거릴 정도로 긴 몸매, 통통하면서 뾰족하게 빠진 대가리. 아마도 새끼라서 지느러미가 잘 보이지 않는 크기였을 것이다. 어쨌든 뱀장어를 처음 보는 내 눈에 그것은 뱀과의 차별성이 전혀 없었다. 주둥이를 열어서 길다랗게 낼름거리는 혓바닥이 있는지를 따져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꽤 가끔 한 마리씩 잡히는 뱀장어란 놈을, 도저히 못 만지겠다고 뺄 수도 없고, 또 이 꽉 다물고 한 번씩 만져보면 아무래도 뱀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에 소름이 오르르 솟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불쾌한 것은 거머리였다. 뱀장어야 그냥 느낌이라지만, 거머리는 또렷하게 내 피를 빨아먹지 않는가.

"야, 다리에 뭐가 달라붙는 것 같은데?"
"뭐, 거머리 아냐?"
"거머리가 뭔데?"
"다리 들어봐."

들어올린 다리에는 거무튀튀하고 매끈한 것이 하나 붙어있었고, 친구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거머리 맞네' 하고는 떼어서 길 위로 던져올렸다. 차가운 물 속이라 잘 못 느꼈는지, 새삼 따끔해서 들여다보면 주르르 피가 흘렀다.

"으, 으아아. 피 나잖아."
"거머리에 물렸으니까 피가 나지."
"야,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괜찮아."

도대체 눈코입은 어디고 머리 꼬리는 어딘지도 모르게 생긴 기괴한 놈이 내 피를 빨았는데도 친구는 까닥 않고 물 속으로 들어갔고, 나도 좀 엄살을 부려볼까 하다가 머쓱해져서 또 따라 들어갔었다.

그렇게 미적미적 들어가서 비비던 것이 몇 시간 흐르는 동안 햇빛은 어느새 물러지고 있었고, 물에 젖어들 듯 물장난 재미에 빠져든 꼬마녀석들은 그만 물 밖으로 나설 시간을 가늠하고 있었다. 그래도 난생처음 천렵을 해본다는 나보다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곳으로 나와 놀던 친구의 마음이 먼저 떨어졌다.

"우리 딱 세 번만 더 잡고 나가자."

그 날의 일들이 대충이라도 기억되는 것은 바로 그 마지막 두세 번 째 그물질 때문이다. 진작에 뱀장어가 아무래도 뱀처럼 생겨서 만질 수가 없다고 칭얼댈 때, 물 속에는 뱀이 별로 없다는 친구의 말을 너무 내 멋대로 들었던 것이다. 별로 없다는 것은, 어쨌든 있기는 있다는 말이었는데. 왜 뱀장어가 뱀처럼 생겼다면서도 나는 물 속에서 사는 뱀의 존재를 현실감 있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떠올린 그물 속에, 꽤 길다란 놈이 들어앉아 있었다. 뱀장어. 이번엔 새끼가 아닌 어미 뱀장어가 분명했다. 친구놈이, 정말인지 허풍인지는 몰라도 언젠가 잡은 적 있다고 금방 자랑했던 팔뚝 길이만 한 뱀장어. 바로 그것이 마지막 그물질에 들어왔다.

"야, 뱀장어다."

나는 불쑥 손을 내밀어 뱀장어를 나꿔채려고 했다. 하루 종일 실뱀장어도 제대로 만지지 못한 주제에, 또 간만의 월척이 등장하자 손수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친구가 별 호들갑도 떨지 않고 내 손을 막았다. 그리고 제 손으로 꿈틀거리는 그, 내가 분명히 뱀장어라고 믿은 놈의 머리 쪽을 쥐더니 아까 거머리에게 했던 것처럼 멀찍이 길 위로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야, 왜 버려?"
"뭐, 저거?"
"응, 뱀장어."
"저거 뱀이야."
"뭐? 뱀?"

갑자기 세상이 적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 때가 그랬다. 뱀. 뱀장어가 아니라 진짜 뱀이었다고? 이 물 속에서 내내 뱀이 헤엄치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한 치도 들여다보이지 않는 이 시커먼 흙탕물 속에, 뭘 믿고 하루종일 몸을 담그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저 친구라는 녀석은 또 무엇을 믿고 잠수를 하고 수영을 한다고 난리를 쳤단 말인가. 갑자기 물 속은 온통 거머리, 뱀, 혹은 그보다 더 끔직하고 지저분한 괴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느껴졌다.

튀어 오르듯이, 나는 물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물 밖은 다시 풀밭이었다. 풀밭은 또 뱀들의 땅일 것이다. 아까 밖으로 내던진 물뱀도 어디서 어디로 기고 있는 지 모른다. 그런데, 꼭 밥 먹다가 뉘 하나 골라낸 것처럼 태연한 내 친구는 오히려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면서 휘적휘적 여유있게 그물과 바가지를 챙겨들고 나왔다.

혹 내가 믿는 것이 있다면 이 웅덩이에 대해서는 알만큼 아는 친구녀석이 같이 몸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뿐이었을 텐데, 이 녀석은 뱀 대가리 잡아 던지기를 검불 하나 집어내기와 전혀 다르지 않게 생각하는 놈이었던 것이다.

내가 겁을 먹고있다는 낌새를 채자 이 녀석은 한 술 더 떠서 허풍을 떨기 시작했다.

"물뱀은 독도 없어. 괜찮아. 나는 물뱀이랑 같이 노는데 뭐. 전에는 수로에서 잠수로 헤엄을 치고 있는데, 옆에 물뱀이 같이 헤엄을 치고 있는거야. 그래서 …"

친구가 의기양양 맨발로 앞서는 길 따라, 그나마 한 꺼풀 덮어야 안심이 될 듯 싶어 질척하게 끼어 신은 양말발로 나는 종종걸음을 치며 따라붙었다. 그러다가 풀길 사이로 늘어진 새끼줄 한 가닥, 비닐 끈 한 토막이 밟힐 때마다 닭소리를 내며 친구에게 달라붙었고, 그 때마다 비료부대에 옮겨 담아 둘러메고 있던 미꾸라지들은 내 발길의 요동 따라 놀라 꿈틀거렸다. 그렇게 그 친구네 집에 이르는 사이 해는 떨어지고 있었다.

하루종일 물장난에 미꾸라지 한 사발을 나눠들고 돌아왔고, 내내 과묵하던 그 친구는 주말 지나 등교하자마자 뱀장어인줄 알고 뱀을 움켜쥐려던 서울, 아니 인천 촌놈 이야기를 떠드느라 바빴다. 그리고 온통 깔깔대며 뱀 잡아먹고 다람쥐 잡아먹은 경험담을 풀어놓는 친구들을 둘러보니, 새삼 소 울음소리 평안하던 일산 들판은, 그림책 속 고향마을이 아니라 아마존 밀림이었다.

어설프게 떠돌며 살다보니 나는 매끈한 아스팔트길도, 또 거름 내 나는 논두렁에서도 '고향'을 떠올리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고향을 떠올리고 문득 훈기를 느끼는 곳이라면 자동차소리도 가깝지 않은 한적한 뒷골목, 개똥 구르는 먼지길이나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그 날 물뱀을 생각하며 고향이란 느껴지는 꼭 같은 포근함과 달리 저마다 다른 모양의 것임을 떠올린다.

이따금 돌아보면, 무시무시한 주먹을 휘두르던 친구, 혹은 기가 질릴 만큼 똑똑하던 친구들보다도 나를 위축시켰던 친구는 바로 그 날, 농수로 따라 물뱀과 함께 헤엄치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덧붙이는 글 | 김은식 기자는

"솔직해지기 위해서, 모른 체 눈감고 살기를 좋아하는 제 머리와 싸운 흔적을 글로 남기고 있으며, 그렇게 쓴 글은 개인홈페이지 '솔직해지기 위한 투쟁'(www.kes.pe.kr)에 모으고 있습니다. 2002년 5월부터 11월까지 '맛있는 추억'을 연재해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에 선정되었으며, 그 글은 동명의 산문집으로 엮여지기도 했습니다. (<맛있는 추억>, 자인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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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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