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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암 촘스키와 함께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하워드 진.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조선소 노동자,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기의 폭격수를 하면서 전쟁의 참상과 인간성 말살을 목격한다. 그의 저서 <불복종과 민주주의>와 <미국 민중저항사>, <오만한 제국> 등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 권기봉
사회 진보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의 책들을 섭렵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노암 촘스키’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는 작년 9월 11일 뉴욕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사건과 관련, 대부분의 미디어가 테러 응징을 목표로‘아프가니스탄 침공’만이 최선이라며 목청을 높일 때조차 마이너 언론과 각종 강연에서 그‘대책’의 부당성과 비인간화의 위험을 경고했다.

그러나 이런 촘스키 이외의 다른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을 한번 꼽아보라면 이내 말문이 막히기 일쑤다. 그만큼 미국 진보 진영에서 촘스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말일 수도 있겠으나, 아직까지 국내에 다른 인물들이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지난 9월 ‘도서출판 이후’에서 나온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에세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원제: 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는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아직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하워드 진. 그는 1922년 뉴욕의 한 빈민가에서 태어나 조선소 노동자 생활도 한 바 있고,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에는 이른바 ‘하늘의 요새’라 불리던 B-17 폭격기의 폭격수로 참전해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었으며,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영원히 집을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며 마냥 행복해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이 전쟁을 통해 국가의 폭력성과 인권, 파시즘 등에 눈을 뜨게 된다.

특히 독일 나치스에 대항해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미국의 주장도 알고 보면 자신들의 국가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후 미국에 의해 시작된 베트남전(戰)도 결국은 같은 선상에서 벌어진 전쟁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는 종전(終戰) 후 제대군인 원호법에 의해 콜롬비아 대학을 다녀 역사학 박사학위를 딸 수 있었고, 당시까지만 해도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던 미국 남부인 조지아주(州) 애틀랜타의 스펠먼 대학에서 1956년부터 7년간 교편을 잡게 된다.

본인 말대로 일부러 흑인대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흑인 학생들이 많은 대학을 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 경험을 통해 남부에서 벌어지는 민권, 특히 인종차별 운동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어 보다 큰 행동들을 위해 하나의 작은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사실을 머릿속에만 담아둔 채 가만히 교실에 앉아 학생들이나 가르치는 ‘평범한’ 교수는 아니었다. 어쩌면 이 점이 독자로 하여금 그의 책에 빠져들게 하는 점이겠지만, 그는 상아탑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려 했으며, 실제로 그 중심에 서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던 것은 물론이다.

▲ 하워드 진(유강은 옮김)/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이후/2002 (원제 : 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
ⓒ 모닝365
그러나 책은 예상과는 달리(?) 다소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은 주제에 비해 읽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에세이의 형식을 띠기 때문인 지 그저 한 ‘불순한’ 교수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듯한 느낌인데, 글 사이사이에 나타난 그의 인간성과 당시 미국 사회의 보수성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매력은 그의 ‘참여’에 대한 기록이 풍부하다는 점과 그것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보통 상아탑이라는 안락한 울타리 안에 머무르기 쉬울 것 같은 지식인이 직접 사회에 뛰어 들어 약자들의 시민권 확보를 위해 투쟁하고, 베트남전을 반대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지지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또한 그는 그저 자신의 참여만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미 사태가 어떤 치명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여기서 중립을 취한다는 말은 곧 그 방향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며 독자들로 하여금 참여할 것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책의 제목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는 말이 의미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자기 입맛에 맞는 정부를 옹립한 바 있는 ‘세계의 경찰’ 미국. 지난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채 이번에는 이라크를 향해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 한스 블릭스 단장을 중심으로 하는 UN 무기사찰단이 바그다드에 들어가 사찰을 시작했지만 미국은 사찰 흠집내기와 개전시 지원국을 모으는 데 급급할 뿐이다.

바야흐로 전쟁 전야다. 그들의 일방적 외교와 저항세력이 아직 미미해 보는 미국 국내 사정을 보면 인간성 파괴가 2003년이라고 예외가 아닐 듯 하다. 불안하기만 한 겨울날, 어쩌면 그래서 더욱 하워드 진의 책에 미련이 남는 지도 모를 일이다.

밑줄 친 구절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中



나는 내가 사랑하는 건 조국, 국민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라고 설명하려 애썼다.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것은 독립선언서의 원칙들-정부는 인위적인 창조물로서 모든 사람이 삶과 자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 전 세계의 남성과 여성, 어린이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들 자신의 정부나 우리의 정부에 의해 빼앗길 수 없는 삶의 권리를 가진 사람들 말이다.-을 신봉하는 것이다.
어떤 정부가 이런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 정부는 비애국적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정부에 반대할 것을 요구한다. ‘질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게 되는 것이다. (p. 9, '머리말 - 청중과의 대화‘ 中)

인간은 폭넓은 스펙트럼의 특질을 보여주지만, 보통 이 중 최악의 것만 강조되며 그 결과 너무나도 자주 우리는 낙담하고 용기를 잃게 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건대, 용기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역사는 거대한 적과 맞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함께 싸워 승리한 사람들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 - 물론 충분히 많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훨씬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정의를 위한 이러한 싸움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바로 인간이다. 잠시라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순간에도 남들과는 달리 아무리 작은 일이지만 무언가를 행하는 인간이다. 또 영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아주 작은 행위라도 불쏘시개 더미에 더해지면 어떤 놀라운 상황에 의해 점화되어 폭풍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p. 11, '머리말 - 청중과의 대화‘ 中)

그들은 교육이라 함은 단지 새로운 세대로 하여금 낡은 질서에서 적당한 자리를 찾도록 준비시키는 것일 뿐, 그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p. 15, '머리말 - 청중과의 대화‘ 中)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말하곤 했다. (중략) 다른 학생들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알아챘다. 이미 사태가 치명적인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여기서 중립적이라 함은 그 방향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p. 16, '머리말 - 청중과의 대화‘ 中)

결국 내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 (p. 22, '머리말 - 청중과의 대화‘ 中)

항공대에서는 히틀러의 파시즘에 대항한다고 하는 전쟁에서 흑인 병사들에 대한 차별이 어떠한지를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p. 26, '남부와 운동‘ 中)

우리에게는 그저 불편한 일이었던 것들이 흑인들에게는 결코 끝이 없는 일상적인 굴욕이었고, 그 이면에는 살인에까지 이르는 폭력의 위협이 있었다. (pp. 27~28, '남부와 운동‘ 中)

이 행동들은 어떤 경우 쓰디쓴 경험에 지나지 않았지만, 분노를 키워주었으며 그 분노는 언젠가 거대한 힘이 되어 남부를 영원히 바꿔버리게 될 것이었다. (p. 39, '남부와 운동‘ 中)

정치학과의 한 흑인 교수는 『애틀랜타 컨스티튜션』에 편지를 보내 학생들의 행동을 개탄하면서, 그녀들이 수업을 빼먹고 교육을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학생들은 정치학 열 과목을 들어도 미치지 못할 방식으로 교육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p. 45, '남부와 운동‘ 中)

모든 사람은 환경이 바뀌면 그 자신도 따라 변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오직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른 반응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발단이 되어 사고와 행동의 심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p. 48, '남부와 운동‘ 中)

그 10년 동안 우리는 ‘혁명’이라는 단어가 흩뿌려지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무장반란을 의미했다. 내 눈에 그것은, 남부에서 내가 직접 본 것처럼, 단지 대담한 분출과 끈질긴 압박-압박-압박의 결합, 누군가 말했듯이, “제도들을 관통하는 기나긴 장정”-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과정-을 뜻했다.
이를 깨닫기 시작하자, 소규모 파업 보호선도, 몇 명만 참석한 모임도, 한 무리의 청중이나 심지어 한 사람에게만 별 것 아닌 생각을 가볍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치 않은 것이라고 무시할 수 없었다. (p. 51, '남부와 운동‘ 中)

학생들이 기성 당국에 도전하기 시작하면, 포위공격을 당하는 행정관료들은 종종 “누군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보곤 하는데, 이는 젊은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거나 행동할 능력이 없다는 속뜻을 담고 있다. (p. 59, '남부와 운동‘ 中)

얘기를 하다 그는 말했다. “나는 운동가였던 적도 없고 지금도 아닙니다.” 자리를 파할 때쯤 나는 그가 자신은 운동가가 아니라고 하면서 핵심을 지적했다고 말했다. 아마 전 운동가에 가까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이든 간에, 운동가의 자질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성장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p. 60, '남부와 운동‘ 中 맨리 총장과의 대화를 적은 1963년 전반기 하워드 진의 일기에서)

사회 운동은 많은 ‘패배’-단기적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를 당할지도 모르지만, 투쟁의 과정에서 낡은 질서의 힘은 부식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생각은 변화하게 된다. 저항자들은 일시적으로 패배하지만 분쇄되지는 않으며, 반격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다시 일어서고 기운을 얻어 왔다. 소년은 프리체트 서장에 의해 집으로 돌려보내졌지만, 그는 이제 한 달 전의 그 아이가 아니었다. 1961년과 62년의 소란스러운 사건들로 인해 올버니는 영원히 변했고, 아무리 상황이 진전된 것처럼 보였을 때조차도 이제는 전과 같지 않았다. (p. 78, '남부와 운동‘ 中)

고통받고 있는 어떤 집단이 스스로에게 의지해야만 함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러한 교훈이 단기적인 의미에서는 쓰라린 패배를 동반한다손 치더라도, 미래의 투쟁을 위해서는 자신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그 혼란의 시기에 올버니에 나타났던 도전 정신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그토록 근시안적으로 애도했던 일시적인 ‘패배’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p. 79, '남부와 운동‘ 中)

인종차별주의는 남부의 정책이 아니라 전국적인 정책이었다. 셀마는 미국 도시였다. (p. 81, '남부와 운동‘ 中)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받는 보상은 미래의 승리에 대한 전망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 있다는, 함께 위험을 무릅쓰며 작은 승리를 기뻐하고 가슴아픈 패배를 참아내는 과정에서 얻는 고양된 느낌이다-함께 말이다. (p. 118, '남부와 운동‘ 中)

우리가 폭격한 고도-2만5천 내지 3만 피트-에서는 사람의 모습도 볼 수 없었고 비명도 들을 수 없었으며, 피도 보지 못했고 사지가 찢겨나간 광경도 보이지 않았다. 기억나는 거라곤 지상에 떨어지는 소이탄이 하나하나씩 마치 성냥처럼 불타오르던 장면뿐이다. 나는 그저 높은 하늘 위에서 ‘내 일을 하고 있었다’-잔학행위를 저지르는 용사들의 역사를 시종일관 장식하는 설명이다. (p. 130, '전쟁과 평화‘ 中)

언젠가는 그가 이런 말을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너도 알겠지만, 이건 파시즘에 대항하는 전쟁이 아냐. 제국을 위한 전쟁이지. 영국, 미국, 소련-다 썩어빠진 나라들이고 히틀러주의를 도덕적으로 우려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들 맘대로 세계를 운영하기만을 바라잖아. 이건 제국주의 전쟁이야.” (p. 131, '전쟁과 평화‘ 中 하워드 진이 폭격수로 참전한 2차 대전에서 만난 동료 폭격수로부터 영감을 얻다)

그렇다면 도대체 원폭 투하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미국 학자 가어 앨퍼로위츠의 연구는 정치적 동기를 지적했다. 러시아가 태평양전쟁 참전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일본을 패배시키는 데 있어 그들의 기선을 제압하고 우리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르와양에서의 내 경험은 또 다른 이유들을 암시해 주었다. 꾸준히 증강되어 에너지로 충만한 군사기구의 강력한 추진력, 엄청난 양의 시간과 돈과 인재가 소비된 프로젝트를 ‘허비’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새로운 무기를 보여주려는 욕망, 전쟁 과정에서 확대된 인명 경시, 고결한 대의에 대한 총체적인 신념을 갖고 전쟁에 착수한 이상 아무리 끔찍한 수단이라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던 태도 등등.
(중략)
우리는 그 무의미한 살육의 또 다른 동기를 찾아냈다-전쟁이 끝나기 전에 프랑스와 미국 군대 모두 또 한 번의 승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pp. 134~135, '전쟁과 평화‘ 中)

현대의 어떤 전쟁도 이처럼 만장일치로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파시스트라는 적은 완전한 악이어서 어떠한 의문도 가로막았다. 그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나쁜 편(bad guys)'이었고 우리는 ’좋은 편‘이었으며, 일단 그런 결정이 내려지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전쟁 경험을 다시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를 읽어가면서, 나는 어떻게 전쟁이라는 환경이 한 쪽을 다른 쪽과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지에 관해 알게 되었다. (p. 136, '전쟁과 평화‘ 中)

증거는 넘쳐 났다. 연합국-미국, 영국, 소련-은 파시즘의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심에서 전쟁에 뛰어든 게 아니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일본이 난징에서 중국인들을 도살할 때 일본에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고, 프랑코가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파괴할 때 그에게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으며, 히틀러가 유태인과 정치적 반대파들을 수용소로 보낼 때 그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않았고, 전쟁 동안에도 눈앞에 닥친 죽음으로부터 유태인들을 구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권력이 위협받았을 때에야 비로소 전쟁에 뛰어들었다. (p. 138, '전쟁과 평화‘ 中)

2차 대전은 끝났다. 이제 재연할 수는 없다. 역사의 모든 일은, 일단 벌어지고 나면, 마치 정확히 그런 식으로 일어나야만 했던 것처럼 보인다. 다른 모습을 상상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역사의 불확실성을, 뜻밖의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바꾸는 데 있어 인간 행동의 중요성을 확신한다.
전쟁은 그것이 아무리 영속적이라도, 인류의 삶에서 그것이 얼마나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더라도,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전쟁은 어떤 본능적인 인간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어떤 본능적인 인간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 지도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그러기 위해 그들은 보통은 전쟁을 꺼리는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몰려고 엄청난 노력-속임수, 선전, 강압-을 해야만 한다. 1917년에 미국 정부는 참전이 옳은 일이라고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7만5천 명의 연사를 전국 곳곳에 보내 수백만을 대상으로 75만 회의 연설을 해야 했다. 설득 당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징병기피자로 감옥 행이 기다리고 있었고, 감히 전쟁에 반대하는 발언을 한 이들 역시 감옥으로 걸어가야 했다. (pp. 141~142, '전쟁과 평화‘ 中)

어린 시절 학교에서 나는 우리 나라가 대륙을 가로질러 행진한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배웠다.-그것은 언제나 ‘서부 확장’이라 불렸다. 확장-그것은 거의 생물학적인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저 자라나는 것일 뿐이었다. 이를 보여주는 지도는 밝고 다채로운 색이었다. 플로리다 취득은 초록색, 루이지애나 취득은 파란색, 멕시코 양도는 빨간색, 모두 취득과 양도였다! 친절하기도 하여라.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도움이 된다. 미국혁명 전후로 이 나라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이곳에 살아온 원주민들을 쫓아내거나 절멸시켜야 했다. 우리는 기만과 무력을 사용해서 확장했고, 플로리다를 군사적으로 침략함으로써 그 땅을 우리에게 ‘팔도록’ 스페인을 설득했으며(돈은 하나도 오가지 않았다), 멕시코를 침략해서 그 절반에 가까운 땅을 접수했다.
나중에 미국은 해외 제국을 건설하는 데 착수하면서 유럽의 제국주의 강국들보다 뒤늦게 세계 무대에 등장했으나 늦은 시간을 신속하게 만회했다. 우리는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 중앙아메리카, 하와이와 필리핀에서 미국의 권력을 수립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했다. (pp. 144~145, '전쟁과 평화‘ 中)

"때로 침묵은 거짓말이다.“ (p. 157, '전쟁과 평화‘ 中 스페인 철학자 미겔 우나무노가 스페인 내전 중에 한 말을 인용하며)

나는 투옥이 범죄 문제의 해결을 가장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범죄의 희생자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보복하겠다는 생각을 영속화시킴으로써 우리 문화에서 끝없는 폭력의 악순환을 유지시킨다. 투옥은 잔인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처벌을 받는 대부분의 범죄의 근원에 있는 조건들-가난, 실업, 무주택, 절망, 인종차별, 탐욕-을 근절시키지 않은 채 그것을 대체하는 부질없는 짓이다. 부자와 권력자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대부분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다. (pp. 206~207, '풍경과 변화‘ 中)

나는 ‘자유’ ‘민주주의’ ‘자결권’을 보호하기 위해 베트남에 미군 병력을 파견하기로 했다는 정부 관료들의 공식 성명들과, 동남아시아의 중요성을 논하면서 주석, 고무, 원유라는 세 단어로 거듭해서 되돌아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의 비밀 메모들을 대비시켰다. (p. 213, '풍경과 변화‘ 中)

의심의 여지가 없이, 어떤 나라의 사법체제든 정치적 반대파에게는 커다란 역경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가 아니며, 순응을 강요하는 압력이 아무리 강력하다손 치더라도, 사람들은 불의라고 간주하는 것에 대항하여 감히 자신들의 독립을 선포하게 된다. 그러한 역사적 가능성에 희망이 존재한다. (p. 223, '풍경과 변화‘ 中)

내가 그 한 순간의 경험의 중요성을 과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작지만 의미심장한 이 사건을 통해 나는 우리의 삶이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우리의 머리가 다른 사고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그 사건에 관해 단지 심사숙고하기만 하는가, 아니면 무언가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이러한 믿음은 섬뜩한 것일 수도, 유쾌한 것일 수도 있다. (p. 239, '풍경과 변화‘ 中)

내 교수 경력에 종지부를 찍기에 적당한 방식이었다. 훌륭한 교육은 책을 통한 가르침과 사회적 행동 참여를 결합시키는 것이며, 그 둘은 서로 서로를 풍부하게 만든다고 나는 줄곧 주장했다. 나는, 지식의 축적은 r 자체만으로도 매혹적인 것이지만, 세계의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매혹을 경험할 기회가 없는 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기를 바랬다. (p. 281, '풍경과 변화‘ 中)

혁명적 변화는 한 차례의 격변의 순간(그런 순간들을 조심하라!)으로서가 아니라 끝없는 놀람의 연속, 보다 좋은 사회를 향한 지그재그 꼴의 움직임으로 오는 것이다.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거대한 영웅적 행동에 착수할 필요는 없다. 작은 행동이라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반복한다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p. 289, '풍경과 변화‘ 中)

그리고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행동을 한다면, 어떤 거대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미래는 현재들의 무한한 연속이며, 인간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에 도전하며 현재를 산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승리가 될 수 있다.
/ 권기봉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제목 “결국 내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는 본문 22쪽 ‘머리말 - 청중과의 대화’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개정판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이후(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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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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