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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퇴근시간이 되자 선생들이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다. 몇몇 여선생은 화장을 고치고 슬리퍼를 구두로 갈아 신는다. 4시25분이다. 5분만 있으면 퇴근시간이다. 그러자 어김없이 교장이 교장실 문을 열고 슬금슬금 교무실로 들어선다.

막 핸드백을 들고 일어서려던 교무실 가운데 자리의 김 선생이 '이크 뜨거워라'하며 도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 바람에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요란하게 낸다.

교장의 별명은 5분전이다. 퇴근 5분전이면 누가 먼저 교무실을 빠져나가나 눈을 둘레둘레 교무실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그까짓 5분 먼저 나가서 얼마나 빨리 집에 간다고 그럽니까?"
어느 직원회의 시간, 교장은 그런 말로 일찍 나가는 선생을 나무라기도 했다.

하지만 겨우 5분, 모든 일을 다 끝내놓고, 정리도 다 끝나고, 아이들도 다 가버린 학교에서 단지 시간 때문에 기다리는 '겨우 5분'은 얼마나 지루한가. 잡무 때문에, 아이들 상담하느라, 이런 저런 일로 퇴근 시간을 두어 시간 넘기는 날도 수두룩한데, 그것은 그저 당연한 것이고, 어쩌다 오분 일찍은 늘 문제가 된다.

교장의 말은 뒤집으면 이렇게도 된다.
"그까짓 겨우 5분 먼저 나가는 것 가지고 뭘 그리 쪼잔하게 감시까지 하고 그럽니까?"
나는 일부러 교장이 보라고 가방을 책상 위에 쿵 올려놓고, 책가지들을 소리나게 집어넣는다. 힐끗 보니 교장 얼굴이 일그러진 것 같다.

그때 옆자리의 인터폰이 길게 울린다. 나는 싸던 가방을 놔두고 얼른 수화기를 집어든다.
"여보세요."
내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교무실에 쩌렁쩌렁 울린다. 교장이 기분 나쁘다는 듯 교무실과 통하는 교장실 문을 소리나게 닫고 사라진다. 그제야 여선생들이 핸드백을 둘러메고 나를 보며 인사를 꾸벅 하고는 퇴근을 한다.

"맹 선생님? 저 임형욱입니다."
수화기 속에서 가늘고 휘청휘청한 목소리가 튀어나올 것같이 달려든다. 그의 목소리는 막 실연 당하고 전화를 받는 것 같은 사람처럼 젖어 있다. 보통 때는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않고, 아니 수업 시간에는 말을 할테니 그것은 제외하고, 쥐 죽은 듯 지내는 그다. 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은 얼굴로 교내의 필요한 곳만 움직이는 그의 별명은 그래서 '우수 임'이다. 우수에 젖은 임 선생이니까.

"예. 웬일입니까?"
나는 가방 귀퉁이를 만지작거린다.
"오늘 저녁 바쁘세요?"
"아니, 뭐 별로."
내 대답에 임 선생이 반색을 한다.
"그럼 한 잔 어때요? 체육과 박 선생도 좋다는데."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청하지는 않았지만 진정 바라는 바. 마침 목도 컬컬하고, 요새 며칠 너무 일찍 집에 들어갔더니 좀이 쑤시는 판이라 나는 얼른 맞장구를 친다.
"거 좋지요. 어디서 볼까요?"
"지금 정문 수위실 옆으로 오세요. 기다릴게요."

나는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가방을 챙긴다. 앞자리의 문 선생이 그런 나를 보고 배시시 웃으며 한마디한다.
"맹 선생님 또 술 드시러 가는 거죠?"
"두 말 하면 잔소리, 같이 갈래요?"
내 제안에 문 선생이 손을 내젓는다.
"제 팔자예요? 얼른 가서 애들 밥해주고, 남편 맞을 준비하고…. 에구, 제 몫까지 많이 드세요."

두 아이의 엄마인 문 선생은 늘 집안일에 치여 힘이 든 눈치였다. 하지만 담임한 반 아이들을 일일이 불러 늦도록 면담을 하고, 학급의 작은 일 하나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줄 줄 아는 전형적인 어머니 형 담임이다.

삼월 중순, 학부모 한 명이 찾아와 면담을 한 끝에 음료수 한 통을 놓고 간 적이 있었다. 무심코 통을 뜯어 그 중 한 병을 앞자리의 내게 건네주던 문 선생은 통 속에 든 봉투를 집어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니 문 선생은 책상에 코를 박고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이고 있었다.

촌지를 준 학부모에게 쓰는 편지였다. 30분 남짓 끙끙대던 문 선생은 봉투에 편지와 어제 받은 촌지를 함께 넣어 풀칠을 하더니, 종례 시간에 되어 아이를 불렀다. 어머니께 이 편지 꼭 전해드려라, 내가 어머니께 전하고 싶은 여러 얘기를 썼으니까 잊지 말고 전해드려야 해, 하며 신신당부를 하고 편지를 아이의 가방 속에 넣어주었다.

아마 이틀 내내 문 선생은 촌지 때문에 많이 마음을 썼으리라. 그 다음부터 출근을 하면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를 하는 문 선생의 표정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갑시다. 남편과 애들 오늘 하루쯤 팽개치고 여성해방론자가 됩시다, 뭐."
내가 청하자 문 선생, 다시 피식 웃는다.
"얼른 같이 가자니까요?"

채근에 문 선생이 남편 직장에 전화를 하고, 내 말대로 여성해방의 차원에서 하루만 어쩌구 하며 핑계를 대더니 환하게 웃으며 핸드백을 어깨에 멘다.
"갑시다. 여성해방의 날이라니까 남편도 꼼짝 못하네. 오늘 아이들은 남편 담당으로 했으니 됐어요. 여성해방 참 좋은 거군요."

"글쎄 내가 새로 개척한 집이라니까요. 맛이 죽여요."
<대천 쭈꾸미 숯불구이>라고 쓴 간판이 달아 맨 지 얼마 안 되는 듯 먼지 하나도 끼어있지 않은 술집 문을 밀고 들어서며 박 선생이 또 한마디한다. 들어서니 간판만 새로 해 달았을 뿐 속은 손보지 않았는지, 아니면 전에 쓰던 음식점을 인수하여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인지, 탁자도 허름하고 실내 장식도 그저 그렇다.

문 선생도 그걸 느꼈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한마디한다.
"간판하고 속은 영 딴판이네."
"못 생겨도 맛은 좋다니까요."
박 선생이 손을 휘휘 저으며 그런 소리 말라는 투다.
"겉 볼 안이라는데."
나도 한마디하며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박 선생은 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며 주인에게 주문을 한다.
"여기 숯불구이 4인분에 소주 한 병이요."
잠시 후 주인이 쟁반에 기본 안주 몇 가지와 시뻘건 양념이 버무려진 쭈꾸미를 한 접시 놓고 간다. 발갛게 피어오르는 숯불에 그 쭈꾸미를 올려놓고 살짝 구워 먹는단다.

"자, 한 번 맛을 보라니까요. 이거 4인분 가지고 될까 모르겠네."
박 선생이 너스레를 떨며 익은 쭈꾸미를 내 앞쪽으로 밀어준다.
입에 넣고 몇 번 씹어보니 맛이 여간 아니다. 매콤한 양념맛도 그만이려니와 적당히 익어 씹는 재미도 있다.

"어때요?"
박 선생이 우리 세 사람을 보며 묻는다.
"좋은데요."
셋이 모두 동시에 대답을 한다. 우리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그제야 박 선생도 쭈꾸미 한 마리를 한 입에 넣고 씹는다. 그의 양 볼이 불룩해진다. 뜨거운지 씹으면서 입을 후후 불더니 꿀떡 삼킨다. 목구멍을 타고 쭈꾸미 숯불구이가 내려가느라 그의 목젖 부근이 벌떡인다.

참 맛갈나게도 먹는다 싶다. 하루 종일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내달린 뒤끝이라 그의 식욕이 왕성한 것도 당연하리라. 흔히 마당쇠라 불리는 체육과인 박 선생 얼굴이 새까맣다. 눈도 부리부리하고 눈썹이 시커멓고 굵직한 것이 여간 서글서글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어느 수업시간이나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을 뛴다. 축구를 해도 그렇고, 일 학년이 좋아하는 발야구 시간에도 그렇고, 농구나 체조, 운동장 달리기까지 함께 한다. 뛰지 않는 체육선생은 반쪽 선생이라고, 그는 늘 주장하고 다닌다. 모든 일에 적극적인 성격대로 먹는데도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며 나는 잔을 든다.

"자, 우리 건배합시다."
내 제안에 모두들 잔을 들어올린다. 우리는 잔을 부딪치고 투명한 소주를 목에 털어 넣는다. 임 선생도 나도, 문 선생 까지도 한동안 쭈꾸미 먹는 맛에 말이 없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이런저런 이야기가 터져나온다. 학부모 면담 이야기가 이어지더니, 교장의 전횡과 부장들의 무능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야기 끝에 임 선생이 오늘 자기 반 아이 한 녀석 벌 준 얘기를 한다.

늘 말썽을 피우던 녀석이 오늘은 점심 시간에 책상을 동관 건물 뒤편에 감춰두고 담을 넘어가 자퇴한 아이들과 당구장에서 오후 내내 보내다 들어왔다는 거였다. 홧김에 몽둥이로 몇 차례 엉덩이를 후려쳤는데, 녀석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몽둥이를 확 뿌리치면서 왜 때려 씨팔 어쩌구 하더니 휙하니 교실을 뛰쳐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영 기분이 엉망이고, 내가 선생인가 하는 자괴감만 든다며 임 선생은 연신 술을 들이켰다. 아직도 찝찝한 마음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런 그의 표정이 더욱 우수에 젖어 있는 것 같다.

모두들 조금씩 취해가며, 추가로 쭈꾸미 한 접시를 더 시키고, 학교를 들었다 놓고, 아이들을 야단치다 불쌍해하기도 하고, 동료 교사들을 흉보기도 하고, 또 교육부 정책과 그 정책의 일선 지휘관인 교장. 교감과 부장들을 안주 삼기도 하며 어둠이 내리고 도시의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어, 이게 뭐야?"
임 선생이 갑자기 우물거리던 것을 멈추고 입 안 가득 쭈꾸미를 문 채 웅얼거린다.
모두들 임 선생을 쳐다본다.
"뭐가 터졌는데."

임 선생은 휴지를 찾아 입안의 것을 뱉어낸다. 검붉다.
"먹물이 터졌군. 먹물 주머니를 발라내지 않은 놈인가봐."
임 선생이 씹다 뱉어놓은 쭈꾸미를 유심히 바라보던 박 선생이 결론을 내린다.
"거 봐. 똑같이 먹어도 임 선생만 먹물을 씹잖아. 평소에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니까. 오늘 애를 팼으니 벌 받은 거야."
박 선생이 이죽거린다. 문 선생과 나는 킥킥거린다.

임 선생은 입안에 남아 있는 찌꺼기를 휴지에 몇 번 뱉어낸다. 그래도 검은 먹물이 지워지지 않는다.
"임 선생님, '아' 해보세요."
문 선생의 말에 임 선생이 입을 벌린다. 혓바닥이 시커멓다.
"아휴, 저 입."
"가관이군."
우리들은 또 임 선생을 놀린다. 마치 오디를 따먹은 혓바닥처럼, 아니 애들이 좋아하는 조스바를 먹고 난 뒤의 혓바닥처럼 임 선생의 입안에 검정물이 배어 있다.

"괜찮아요. 원래 먹물에는 타우린산이라고 몸에 좋은 성분이 많이 있대. 일부러 먹기도 한다잖아요. 요새는 왜 먹물로 만든 과자도 있다면서."
내 말에도 찝찝한지 임 선생은 여전히 뭐 씹은 표정이다.
그 소동을 그제야 알아챈 주인이 다가온다.

"숯불구이에는 먹물 통을 떼는데 그것만 안 떼졌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그냥 드셔도 상관없어요. 살짝 데쳐 먹을 때는 일부러 먹물 통을 떼지 않기도 하니까요. 선생님 말대로 먹물이 몸에 좋답니다."
그러면서 주인인 쭈꾸미 몇 마리를 더 가져다준다. 덕분에 우리는 또 술을 한 병 추가한다.

"근데 임 선생, 쭈꾸미나 오징어, 문어 같은 놈들은 왜 먹물을 뿜지?"
소동이 진정되자 박 선생이 또 먹물 이야기를 꺼낸다.
"그야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겠지요, 뭐."
엉뚱한 문 선생이 답을 말해버린다.
"두렵거나 화가 나면 먹물을 뿜을 거야. 근데 사람도 그런 상황에서 먹물을 뿜는다면 어떻게 될까?"
박 선생이 사람 이야기로 끌고 간다. 그리고는 한동안 우리 술자리는 즐거운 상상으로 가득하다.

지하철에서 서로 밀쳤다고 화를 내다 먹물을 푹 내뿜는 두 사람, 그 바람에 먹물이 자기 옷에 튀었다고 벌컥 먹물을 뿜어대는 곁의 사람, 대통령은 기자 회견 도중 다섯 번 먹물을 뿜었다는 뉴스가 머릿기사로 오르고, 텔레비전 화면에는 먹물로 온통 시꺼멓게 변해버린 기자회견장이 비치고, 뉴스를 진행하던 앵커가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먹물을 뿜는 바람에 화면 캄캄해지고, 급히 자막으로 '이 화면은 방송 사고가 아니라 갑작스런 먹물로 인해 어두워진 것입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라고 안내문이 뜨고….

그러다 선생이란 직업은 속일 수 없는지 이야기의 무대는 학교로 바뀐다. 아침 직원회의, 교장이 선생들을 나무라다 갑자기 먹물을 토한다, 선생들 화는 나지만 참느라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는데, 참다 못한 다혈질 아무개 선생, 벌떡 일어나다 교장 자리 쪽으로 먹물을 팍 내쏘았는데, 먹물이 멀리 뻗지 못하고 교무실 바닥에 흥건하고, 수업 시간 야단맞은 아이들 툴툴대며 먹물 이곳저곳에 흘리고, 유리창도 온통 아이들 먹물로 시커멓고, 종례 시간 교실에는 하루의 먹물자국이 가득하고, 청소를 하는 아이들 툴툴대다 또 먹물 쏟고….

"그만 해요. 끔찍하네요."
문 선생이 상상에 제동을 건다. 하긴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갈수록 답답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먹물 천지여서일까? 정말 인간이 먹물을 뿜어낸다면,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시커멓게 세상을 향해 먹칠을 해댈까?

"그래요, 그만합시다. 근데 문 선생은 정말 먹물을 하루에 몇 번이나 뿜나?"
그만하자고 맞장구를 쳐놓고는 박 선생이 또 먹물 타령이다.
"그만하자니까요."
문 선생이 손을 내젓는다. 나도 한마디한다.

"그럽시다. 하지만 우리 내일부터는 화를 낼 때마다 먹물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화도 삭이고, 마음도 풀고 생활합시다. 결정적일 때는 참았던 먹물을 한꺼번에 확 쏟아내야겠지만 말예요."
갑자기 상상에서 현실의 공간으로 돌아와서인지 잠시 말이 끊긴다. 한 잔 또 술을 털어 넣고, 그만 일어서자고 할까 하는데 박 선생이 다시 입을 연다.

"쭈꾸미한테는 먹물이 무기인데 사람에게는 그런 무기가 뭘까?"
임 선생이 몇 마리 남은 쭈꾸미 중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냉큼 받는다.
"그야 방귀 아니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이미 많이 취한 듯 휘어져 있다.
"방귀?"
반문하는 박 선생의 말도 흔들린다. 나 역시 취한 얼굴로 두 사람을 건네 본다.

"맘에 안 드는 세상에 대고 방귀라도 한 번 시원하게 터트려 봤으면."
임 선생이 취한 말투로 자조적인 말을 내뱉는다.
"쭈꾸미가 위험한 상태에서 먹물을 내뿜는 것은 늘 가능하지만 사람이야 어디 그런가. 아무리 위험한 상태라도 방귀가 때에 맞춰 나오는 것도 아닌데. 하긴 기분이 안 좋으면 속이 영 찜찜해 방귀가 자주 나오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야. 헌데 방귀를 네 글자로 하면 뭐가 되는지 알아?"
내가 주절주절 방귀 얘기를 주워 섬기다가 묻는다.
"......."
"?"

난데없는 네 글자라는 말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취기가 많이 오르는지, 얼굴이 홧홧해지고 머리 속이 퀭하다. 잠시 앞에 앉은 사람들이 흔들린다.
나는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답을 말해버린다.
"가죽피리."
"푸하핫."
"어머?"
"맹 선생님도 차암."
다들 한마디씩 한다.

내친 김에 나는 한 술 더 뜬다. 방귀를 아홉 자로 하면? 내적 갈등의 외적 표현. 열 일곱 자로 하면? 작은 창자 작사 큰 창자 작곡 엉덩이의 노래. 15세기 표기로는? 뒷입술가배야반소리. 이때 반은 순경음이라구.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쁜 방귀는? 지하철 출입구 근처에 서 있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 앉은 사람 코를 향해 발사하고 떠나는 방귀와 계란 먹고 소리 없이 뀌는 방귀.

"그만, 그만 해요."
문 선생이 손을 내젓고, 박 선생과 임 선생은 배를 잡는다.
"아니 맹 선생님 그렇게 박학다식한 줄 몰랐더니…."
박 선생이 웃음 끝에 토를 달고, 임 선생은 박 선생의 말에 또 토를 단다.
"그건 박학다식이 아니라 박학방귀로군요."

"그래? 그럼 한 마디 더 할까? 이름하여 선생이 방귀 뀌는 법. 수업 중 방귀를 참을 수 없다, 그런데 아이들은 모두 쥐죽은 듯 조용하여 잘못하면 개망신 당할 것 같다, 창자 속 갈등을 보아하니 소리를 죽이고 세상으로 내보낼 수도 없을 것 같다, 이럴 때 어떻게 하는고 하니…."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술잔에 남은 술을 입에 탁 털어 넣는다. 모두들 내 입만 주시하고 있다.

"그때는 가지고 있는 지시봉이나 몽둥이, 그것도 없으면 출석부로 사정없이 교탁을 내리치면서 이렇게 소리 쳐라. 이놈들 조용히 못하나, 시끄럽다. 교탁을 치는 몽둥이는 탕탕 교실을 울리고, 선생 목소리는 쩌렁쩌렁한데 엉덩이 쪽으로는 방귀가 소리를 감추며 자신있게 뿡뿡 울리고 있는 것이다. 단 주의할 것은 몽둥이로 교탁을 치는 것과 자신의 방귀의 횟수를 잘 조절할 것. 잘못하면 몽둥이 소리 멈춘 후에 방귀소리만 울리는 법이니라."

나는 점쟁이처럼 예언이라도 하듯 너스레를 떤다. 모두들 자지러진다. 박 선생과 임 선생은 아예 데굴데굴 구르고, 문 선생 허리를 움켜쥔다.

그날 술자리가 언제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할 수 없다. 다만 다음날부터 우리는 누군가가 화를 내면, '어이 먹물 뿜었어?'하고 묻거나, 교실에서 탕탕 몽둥이로 교탁 치는 소리가 나면, '저 친군 방귀 한 번 요란하게 뀌네'하며 웃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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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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