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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호텔의 최고 요리사였던 아버지 주사부는 16년 전에 아내를 잃고 딸 셋을 돌보며 살고 있다. 고등학교 화학 교사인 가진, 항공사 직원인 능력있고 똑똑한 가천, 스무 살로 패스트 푸드점에서 일하는 가령.

아버지는 음식 만들기는 물론 딸들의 빨래를 해서 각자의 서랍에 넣는 일까지 집안 살림을 모두 맡아서 하고 있다. 이웃에는 첫째 딸 가진의 친구인 금봉의 언니 금영과 금영의 어린 딸, 친정 어머니가 가족처럼 왕래하며 살고 있다.

요리 솜씨는 그대로이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점차 미각을 잃어가는 아버지. 세 딸 역시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신의 일과 사랑을 통해 갈등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간다.

세 딸 중 가장 고집이 세고 똑똑한 가천. 집을 떠나 독립하려 하지만 결국 동생과 언니가 결혼으로 먼저 떠나고 혼자 남는다. 아버지 역시 딸의 친구 언니인 금영과 새 가정을 꾸려 집을 떠난다.

아버지의 음식 만들기와 세 딸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아버지와 둘째 딸 가천 사이의 미묘한 감정 흐름이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는 똑똑하기는 하지만 고집 세고, 집을 나가 독립하려고 하는 딸이 못마땅하다. 딸은 하고 싶은 요리 공부를 못하게 하고 고집스럽게 살고 있는 아버지가 못마땅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닮은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버지가 온갖 음식을 준비해 세 딸과 둘러앉는 일요일 만찬을 의무로 여기고 부담스러워하는 딸들. 그러나 가천은 결국 언니와 동생이 다 떠난 집에서 아버지와 자신, 둘만을 위한 일요일 만찬을 준비한다. 둘만 덩그러니 앉은 식탁에서 가천이 만든 탕의 국물을 먹으며 아버지는 잃어버린 미각이 살아났음을 알게 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부모 자식간에도 잘 맞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꾸 엇나가는 사이도 있다. 누구는 성격의 차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사주의 맞고 맞지 않음의 차이라고도 한다.

아버지 주사부와 둘째 가천 역시 마주 하기만 하면 부딪힌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아서 누군가 조금 다가서기도 하지만, 또 다시 작은 말과 행동에 상처 받아 서로 멀찌감치 달아나곤 한다.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를 가장 잘 안다. 유난히 맞지 않는 부모 자녀가 마지막을 같이 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같은 부모, 같은 자녀라 해도 사람의 인연이란 아무도 모를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인 아버지 주사부 외에 두 명의 노인을 더 보여주고 있다. 한 명은 아버지의 요리사 친구인 '온 아저씨'이다. 두 노인은 평생 같이 일을 했고,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온 아저씨는 평생 일해온 주방에서 심장마비로 앉은 채 세상을 떠나고, 둘도 없는 친구를 납골당에 두고 나온 아버지는 울음을 터뜨린다.

또 한 명의 노인은 나중에 아버지의 장모가 되는, 금영의 친정 어머니인 '양 아줌마'이다.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에 살고 있는 작은 딸 금봉과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혼한 큰 딸에게로 온다. 끊임없는 수다와 잔소리에 자신의 딸은 물론 이웃 집 딸들도 머리를 절레 절레 흔든다.

바로 노인들의 모습 그대로이다. 깊게 주름진 얼굴, 굽은 등, 느린 행동, 눈치 없음, 고집, 잔소리, 아이들 어렸을 때의 다정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영화는 가족의 이야기, 세대간의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이지만 노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늙을 것인가.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 온 아저씨, 할머니가 되어서도 기 안죽고 큰소리치고 잔소리하며 마음대로 하는 양 아줌마, 나이 들고 힘 빠졌지만 씩씩하게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아버지 주사부. 우리 안에는 이들 모두가 들어 있다. 그것을 겉으로 끄집어 내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지금' 삶에 달려 있다.

(음식남녀 飮食男女 / 감독 리안(李安) / 출연 랑웅, 왕유문, 오천련, 양귀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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