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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의 혼돈이란다. `우국칼럼'이 곰비임비 쏟아진다. <중앙일보> 논설주간은 고백한다. “지금 심한 어지럼 증세와 당혹감에 시달리고 있다.” 같은 날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질타한다. “남쪽은 온통 각자 나름의 흥분과 충격과 혼란에 휩싸여 있다.” 무슨 까닭일까. 무엇이 권영빈 주간을 어지럽고 당혹하게 만들었는가. 도대체 무엇이 류근일 주간으로 하여금 가치관의 혼돈을 우려케 했는가.

뜻밖에도 남북정상회담이다. 하기야 두 사람이 처음은 아니다. 정상회담 직후 일찌감치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일갈했다. “문제는 들떠있는 서울이다.” 부족해서일까.

류 주간이 뒤를 좇았다. “남쪽의 청소년, 중장년, 노인, 아저씨, 아주머니, 보수파, 진보파, 친정부, 반정부, 6·25세대, 사이버 세대” 싸잡아 “논리의 선후·상하·표리를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란다. `햇볕론자'를 자임한 권 주간도 가세한다. “당혹감이나 어지럼 증세는 어디서 오는가.” 자문하고 자답한다.

“지나친 속도감 탓이다.” 그리고 뜬금 없이 덧붙인다. “북한군의 3대 방침이 속도전·입체전·섬멸전이다.” 예의 훈계가 뒤따른다. “급템포의 속도전 평양축제와 입체적 환영무드에 빠져 우리 모두 안보의식마저 깡그리 섬멸돼 버린 탓인가.” 참으로 기상천외한 `감상법'이다.

묻고싶다. 누가 어지럽고 누가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가. 적어도 이 땅의 민중들은 들뜨지 않았다. 혼란스럽지도 않다. 짐짓 혼돈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진정 혼란스러운 사람은 두 논설주간이다. 두루 알다시피 우리는 지난 반세기동안 `겨울공화국'을 살아왔다. 우리의 삶을 옥죄어온 냉전의 거대한 빙벽이 마침내 쩡하고 금가는 장관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얼음벽은 누가 만들었는가. 어둠의 세력들과 손잡은 수구언론들이다. 혼란스러웠을 법하지 않은가. 그들은 애초부터 남북정상회담을 숙보았다. 평양 순안공항의 감동적인 만남을 깜냥껏 파격적으로 만들 때 속내를 아는 적잖은 사람들은 불안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서울로 온 날 언론에 고마움을 전하면서 불길한 예감은 더 짙어졌다. 마침내 그 불길한 불안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셈이다.

기실 `연합·연방제통일'과 자주의 원칙은 수구언론들의 논리엔 어긋난 합의들이다. 국가보안법 개폐를 악착스레 물고 늘어지는 조선일보를 보라. 아니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신념'과 다른 남북공동선언을 왜 이 신문이 내놓고 반대하지 않는가를 물어야할지 모른다.

역사의 물살이 너무 세차 `개전의 정'을 보인 것일까. 혹은 소낙비 긋기 바라듯 민족적 감동이 가라앉길 기다리는 것일까. 정작 공동선언에 정면 반대할 용기는 없으면서 `국민합의' 운운하며 슬금슬금 딴소리를 늘어놓는 `지식인'들이 신문지면에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두 논설주간의 칼럼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얼음장이 깨져나가면서 민중들은 단숨에 깨닫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우리 눈에 어떤 색안경을 들씌워 왔던가. 왜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중요한가. 그 깨우침에 눈허리가 신 것일까. `냉전'을 녹이는 통일의 뜨거운 도가니를 가치관의 혼란이라 한다면 도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한 여름에 녹아 내리는 얼음 조각 위에 앉아 해를 나무라기가 아닐까.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지니자는 논객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정작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뜨거운 가슴이요, 넘치는 것은 차가운 머리 아닌가.

두 논설주간은 자신의 칼럼에서 깐에는 친절하게 해법까지 제시했다. 권 주간은 칼럼의 결말에서 주장한다. “이성을 되찾자.” 류 주간은 “남쪽내부 공존부터 익혀야”한단다. 옳은 말이다. 우리 민중들은 냉전언론의 여론몰이에 시나브로 잃어버린 이성을 되찾고 있다. 레드콤플렉스의 여론조작에서 벗어나 남북의 공존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깨닫고 있다.

더넘스레 민중에게 충고할 때가 아니다. 충심으로 권한다. 권 주간이 이성을 되찾길, 류 주간이 공존을 익히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6월29일자)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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