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킬 미 나우>의 프레스콜 지난 5월,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개막한 연극 <킬 미 나우>의 프레스콜 당시 사진. 연극 <킬 미 나우>는 지체장애인 조이 스터디와 조이를 위해 작가의 길도 포기하고 헌신하는 아버지 제이크 스터디의 이야기를 다뤘다. 장애인과 성 그리고 안락사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는 극이다.

▲ 연극 <킬 미 나우> 단체 사진 지난 5월 4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개막한 연극 <킬 미 나우>의 프레스콜 당시 단체 사진. 연극 <킬 미 나우>는 지체장애인 조이 스터디와 조이를 위해 작가의 길도 포기하고 헌신하는 아버지 제이크 스터디의 이야기를 다뤘다. 장애인과 성 그리고 안락사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는 극이다. 가운데 'V'자를 하고 있는 게 작가 지이선이다. ⓒ 곽우신


아이러니하게도, 좋지 않은 인터뷰가 오히려 훨씬 쓰기 쉽다. 안 좋은 대부분을 버리고, 살릴 수 있을 만한 약간의 부분들만 재가공하면 된다. 반면, 좋은 인터뷰는 쓰기가 어렵다. 버릴 곳 하나 없이 극상의 품질로 올라온 재료, 예컨대 참치를 보는 느낌이다. 나가야 할 요리는 1인분, 욕심을 부린다고 부려 보아도 곱빼기가 한계이다. 그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손님 한 분께 내어드릴 수는 없다. 그러면 이제부터 눈물을 흘리며 취사선택이다.

지이선 작가와의 인터뷰가 딱 이런 경우였다. 지난 2일 오후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1시간 조금 넘지 않을까 생각했던 인터뷰는 1시간 30분을 넘겨서 그것도 기자의 다음 일정 때문에 중단해야 했다. 그리고 주말에 연락이 왔다. 답변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다고, 그 캐릭터를 아끼는 마음에 비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 것 같다고 말이다. 그래서 5일 늦은 오후, 공연이 끝난 후 간단하게 맥주를 곁들이며 이야기를 또 나눴다. 그것이 2시간. 지이선 작가는 본인의 다른 작품인 연극 <모범생들>의 술자리로 이동해야 한다며 자리를 옮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연극 <프라이드>가 이번 주말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연극 <킬 미 나우>는 오는 7월 16일까지 고작 2주 남짓 남았다. 1등급 재료를 눈앞에 두고 당황스러워한 2등급 요리사. 그의 어설프고 부끄러운 요리를 이제야 독자들 앞에 내놓는다.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고통

연극 <모범생들> 프레스콜 서울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개막한 연극 <모범생들>의 프레스콜 사진.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출의 첫 만남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대림외국어고등학교 독문과 A반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엘리트들의 백색 누아르'를 표방하는 이 작품은 학벌주의 사회와 성공제일주의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생각에 잠긴 지이선 지난 8일, 서울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개막한 연극 <모범생들>의 프레스콜에서 지이선 작가가 기자들의 질문을 들으며 고심하고 있다. '엘리트들의 백색 누아르'를 표방하는 이 작품은 학벌주의 사회와 성공제일주의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지이선 작가는 항상 자신의 문제의식을 극에 녹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 곽우신


어떤 관객은 "지이선은 역시 지이선" "지이선답다"라고 엄지를 추켜세우고 누구는 "역시 나는 지이선하고 안 맞는 것 같아"라고 고개를 젓는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건, 그에게 확실한 스타일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지이선'다운', 지이선의 스타일. 그렇기에 지이선이라는 이름 자체가 곧 하나의 브랜드이자, 극의 간판이자, 관객의 선택 기준이 된다. 이름 자체가 브랜드화된 연출은 몇몇 있지만, 작가의 이름을 보고 관객이 찾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배우 신성민은 지이선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제가 감히..."라며 말을 아꼈다. 물론 이 말을 전하니 지 작가는 "그거 저 (물) 먹이려고 한 거예요!"라며 겸양과 위트를 섞어 부정했다.

하지만 지이선이 유능한 작가라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확실히 지이선 작가는 대학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이다. 2017년 6월 한 달만 생각해도 각색으로 참여했던 <프라이드>와 <킬 미 나우>가 호연 중이고, 김태형 연출과의 첫 호흡이자 올해 10주년을 맞은 <모범생들>도 개막하여 관객몰이에 들어갔으며, 관객참여형 실험극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가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정작 지이선에게 글을 쓰는 것은 '고통'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계속 감내하고 있다. 왜 글을 쓰는 것은 고통이고, 그런데도 글을 쓰는 것일까.

"행복이란 경험을 한 지 되게 오래된 것 같아요. 요즘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웃음) 한 1년 동안 제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음…. <프라이드> 실비아들과 함께 자리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 날 굉장히 즐거웠었어요. 동료들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거기서 영감을 받았어요. 사실 저는 글 쓰는 거 진짜 싫어해요. 글을 쓰면서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어요. 항상 아프고 힘들어요. 작가의 말도 쓸 때마다 고생하고…. 아무도 대신 써 주지 않고, 오롯이 혼자서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감이 생기면 해 보고 싶은 이유는…. 공연이니까요. 연극에 대한 사랑이 있으니까 이렇게 하는 거겠죠.

이전 시즌 <모범생들> 할 때 처음으로 느꼈었는데, 봉투가 툭 떨어지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갑자기 관객들이 모두 궁금해하면서 바닥을 보는 거예요. 그 순간에 새로운 세계가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공연과 관객이 함께 딱 모이는 느낌. 만지면 잡힐 것 같더라고요, 그 접점이. 그때 '공연이 이런 거구나'라는 느낌을 받고, 다음부터는 그곳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 순간의 신성함이 있어요.

공연은 만드는 사람들로 인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과 함께 완성해 가는 거죠. 관객분들의 상상력이 공연에 보태지고, 저는 그 안에서 숨 쉬는 사람이고. 이런 관객분들의 상상력이 저를 항상 아쉽지 않게 해주십니다.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항상 느껴요.

물론 공연 무대의 한계는 항상 있죠. 예를 들어 <킬 미 나우>에서 오리가 물 위에 둥실둥실 떠가는 걸 좀 보여주고 싶다든가, 물이 막 넘친다든가, 환상 장면에서 세트가 붕 떴으면 좋겠다든가…. (웃음) 그런데 이런 것들을 연극적인 상상력으로 생각하잖아요. 만약 <프라이드>를 영화로 찍는다고 생각해 봐요. 일단 런던까지 가야 하죠. 세트도 다 만들어야 하고. 그런데 연극 관객들은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나와서 말해도 실비아라고 믿어 주잖아요. 한 번의 암전으로 다들 극 속에 들어와 주시고.

그게 마법이죠. 다들 그 마법 때문에 못 벗어나는 게 아닐까요. 그게 연극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인 것 같고, 그래서 공연이 진짜 무서운 것 같아요."

각색의 어려움

배수빈 제이크와 윤나무 조이 지난 2016년 연극 <킬 미 나우>에 출연했던 배우 배수빈과 윤나무의 스튜디오 이미지 컷. 지이선 작가는 <킬 미 나우>와 <프라이드> 모두에서 배수빈을 너무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한다. 배수빈 배우는 <킬 미 나우>에서 고무 오리를 보고 "사실은 내가 더 좋아했어"라는 대사를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그 대사 하려고 나 이거(제이크) 하는 거야"라고 할 정도로. 지이선이 만든 부분은 관객뿐만 아니라 배우도 좋아하낟.

▲ 배수빈 제이크와 윤나무 조이 지난 2016년 연극 <킬 미 나우>에 출연했던 배우 배수빈과 윤나무의 스튜디오 이미지 컷. 지이선 작가는 <킬 미 나우>와 <프라이드> 모두에서 배수빈을 너무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한다. 배수빈 배우는 <킬 미 나우>에서 고무 오리를 보고 "사실은 내가 더 좋아했어"라는 대사를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그 대사 하려고 나 이거(제이크) 하는 거야"라고 할 정도로. 지이선이 만든 부분은 관객뿐만 아니라 배우도 좋아한다. ⓒ 연극열전


연극은 마법이다. 그 마법의 힘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도 어쨌든 지이선은 펜을 움켜잡고 있다. 관객과 창작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마법. 그래서 지이선은 관객들을 '동반자'로 여기고 있단다. 그리고 그 동반자들 덕분에 지이선은 지이선으로 존재할 수 있다. 자연인 박지선은 그렇게 작가 지이선이 되고, 그 마법으로 가득 찬 공간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다. 지이선이 지이선으로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있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존중받는 것. 연극 <킬 미 나우>와 <프라이드>를 관통하는 주제, 아니 어쩌면 연극이라는 무대를 아우르는 주제가 바로 인간이 아닐까.

"이 일을 제가 얼마나 오래 할지 잘 모르겠어요. 세상은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저 역시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도 저를 찾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요즘은 그냥 이 일을 최대한 오래, 즐겁게 하고 싶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계속 생기기만을 바랄 뿐이고요. 1년에 한두 개씩이라도 새로운 작품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라고 생각할 때, 내가 '나라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건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고,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킬 미 나우>와 <프라이드> 둘 다 사실 작가의 얘기예요. <프라이드>에서는 올리버가 왜 동화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지가 중요하거든요. 그 사람들이 완성시키지 못한 이야기를 이 작품이 가져가고 있거든요. <킬 미 나우>는 작가가 쓰지 못 한 글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죠. 더 이상 작가가 될 수 없는 제이크의 아득함 그리고 간절함이 저의 마음에 와 닿았어요. <킬 미 나우>의 마지막은 제이크의 서문으로 완성되거든요. '만약 제이크가 작가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 작품을 맡았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그래서 제가 낭독 장면을 넣었어요. 인간의 존엄이라는 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거고, 아빠 제이크의 정체성은 작가로 완성되기 때문에."

연극 <킬 미 나우>와 <프라이드>는 모두 원작이 있는 라이선스 작품이다. 라이선스 작품을 한국에 가지고 오면서 번역과 각색 작업은 필수다. 지이선은 모두 이 작품의 '각색' 작가이다. 창작보다 받는 페이는 훨씬 적지만, 각색에 드는 품은 창작이나 진배없다. 지이선은 번역가와 함께 원문과 번역 대본을 펴놓고 한 문장 한 문장씩 밑줄 그어가며 확인한다. 더 적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더 전달력 높은 뉘앙스를 위해 고민한다. 그리고 새로운 요소들을 만들어 집어넣는다. 어떨 때는 재창작 수준으로 고심하기도 한다. 이렇게 힘들 줄 알면서도, 굳이 각색으로서 이 작품들을 대학로로 가져왔다.

"자꾸 어려운 작품이 들어오더라고요. (웃음) 각색을 안 해도 될 것 같은 작품도 있고, 굳이 제가 안 해도 될 것 같은 작품도 있어요. 그런데 하고 싶다고 마음이 움직이는 작품들은 항상 이렇게 힘든 것들뿐…. (웃음) 그래도 제가 워낙 관심이 많으니까요. 소수자 얘기라는 측면이 마음을 움직였어요. 원작을 보니까 해야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들이었죠. <프라이드>도, <킬 미 나우>도 저에게 큰 역할을 했어요. 아마 두 작품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지이선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겠죠. 저도 예전에는 소수자 문제에 굉장히 둔감했었거든요. 저 스스로 고민이 많았을 때 이 작품들에 도움을 받았고, 그 이후로 글 쓰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달라졌어요.

<프라이드>는 서정적으로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1958년과 2017년을 관통하는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언어에 더 집착했죠. <킬 미 나우>는 이 이야기를 관객들이 끝까지 보게 하는 것이 제 목표였어요. 지금은 공연계에 성 소수자라든지, 여러 종류의 소수자 서사가 많이 나오고 있는 편이긴 하죠. 하지만 처음 이 작품들을 소개할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거든요. <킬 미 나우> 같은 경우는 불륜, 장애인, 성뿐만 아니라 매춘이라든지 가족이라는 집단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더 어려웠죠. 하지만 <킬 미 나우>가 '아 저 사람 너무 힘들겠다'에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프라이드>보다 <킬 미 나우>가 굉장히 적극적인 각색이 들어갔어요. 없는 장면을 집어넣었고, 새로 쓴 대사도 많아요. 작가의 서문, 오리, 춤…. 트와일라와 라우디의 대화도 추가한 것이 많고…. 욕조 장면 직전에 환상-졸업식 장면까지도 완전히 새로 쓴 거예요. 원작은 '드라이'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맥락이 없는 장면도 많아요. 새로운 장면들을 써서 넣었던 이유는 원작에 있는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지점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예요. 욕조 장면 세 개를 없애지 않기 위해서, 지키기 위해서 그런 장치들을 집어넣게 되었어요.

연극열전에 참 고마워요. <킬 미 나우>를 갖고 오는 거에 고민이 많을 때 제가 직접 설득했어요. '저 믿고 가 보자'고. 그런데 제 것이 아니어서 항상 좀 조심스럽거든요. 제가 동성애자가 아니어서, 그리고 제가 비장애인이어서, 이 작품을 제가 조금의 차별이나 편견을 갖고 접근하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마음이 좀 불편해요. 정말로 퀴어 분들이, 장애인 분들이, 안락사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보았을 때 이 장면들이 폭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을지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지이선의 욕심

연극 <킬 미 나우>의 프레스콜 지난 5월,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개막한 연극 <킬 미 나우>의 프레스콜 당시 사진. 연극 <킬 미 나우>는 지체장애인 조이 스터디와 조이를 위해 작가의 길도 포기하고 헌신하는 아버지 제이크 스터디의 이야기를 다뤘다. 장애인과 성 그리고 안락사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는 극이다.

▲ 환상 속의 조이와 제이크 조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제이크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작품 속 '고무 오리'는 매우 중요한 오브제이다. 그리고 지이선의 각색작이 대개 그렇듯, 이 고무 오리는 원작에 없는 오브제이다. <킬 미 나우>를 좋아하는 관객은, 저 오리만 봐도 눈물을 쏟게 된다. ⓒ 곽우신


지금, 여기의 맥락에서 작품이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예컨대 <킬 미 나우>를 대표하는 오브제인 오리도, <프라이드>의 명대사로 꼽히는 문장 속 돌고래도 모두 지이선의 작품이다. 관객은 분명 지이선의 그런 노력을 그리고 작품에 대한 애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오리'나 '돌고래'가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면서 웃음 짓고 또 감사해 하는 걸 보면, 그런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는 관객에게, 지이선은 무척 고마워하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일이 커질지 몰랐어요. (웃음) <킬 미 나우>는 우리의 일상과 멀어 보일 수도 있거든요. '이런 얘기일수록 나랑 최대한 가까운 거리, 내가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아도 익숙한 소품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오리를 찾게 되었죠. 고무 오리하고 작가의 서문에 대해 동시에 생각이 났어요. <킬 미 나우> 각색을 처음 할 때, 작가의 서문부터 쓰고 시작을 했거든요. 저는 아기를 키워 본 적은 없지만. 아기가 있는 친구들의 집에 가 보면 항상 오리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걸 밟았을 때 나는 소리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고장 난 오리가 내는 '쉭쉭' 소리가 인상 깊었는데, 마치 제이크의 발작 소리와도 같지 않을까 했어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아이였을 때의 기억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가 오리예요. 그리고 '미운 오리 새끼'라는 게 원작에는 없어요. 사실 고무 오리가 완성된 어른 오리가 아니라 아이잖아요. 인형이고. 가끔 고무 오리가 물에 떠 있는 걸 보면 슬플 때가 있어요. 친구네 가족이랑 물가에 놀러 갔었는데, 고무 오리가 멀리 떠가고 있었어요. 그 무표정의 오리에 제가 오히려 뭔가 감정을 투영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관객들에게 가깝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친근한 것들, 아이스크림, 초콜릿, 춤, 고무 오리….

 연극 <프라이드>의 리허설 당시 촬영 이미지.

▲ 오종혁 올리버의 돌고래 연극 <프라이드>의 2017시즌 리허설 사진. <프라이드>에서 돌고래는 매우 상징적인 동물이다. 돌고래의 생물학적 특성에 꽂힌 지이선은 돌고래의 특성을 설명하는 대사를 작품에 넣었다. 지이선은 오종혁이 그 돌고래를 '분홍 돌고래'라고 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웨이크보드 타러 갔다가 분홍 돌고래를 봤다고 하던데…. (웃음) 그거 아니라고, 잘못 봤을 거라고 했는데 본인이 우기더라고요. 진짜로 봤다고. (웃음)" 아마, <정글의 법칙>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 연극열전


<프라이드> 돌고래는…. 제가 돌고래를 좋아해서. (웃음) 다큐멘터리에서 돌고래를 봤는데, 그 친구들만의 언어가 있더라고요. 되게 '유니크'하다고 느꼈고, 포인트로 가져가면 어떨까 싶었어요. 지금 보면 쑥스러운 대사지만, 당시에는 '너는 돌고래니까'라는 말이 되게 마음에 와닿는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일상에서 써 본 적 없지만 아마 올리버라면 썼을 거예요.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묘사해 보고 싶었어요. 서로를 보호해주는,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신들만의 대화를 나누는, 물속에 사는 포유류잖아요. 성 소수자와 돌고래, 비슷한 점이 있지 않을까? (웃음)"

하지만 각색은 각색일 뿐이다. 자신이 직접 쓴 작품이라면, 자신이 얼마든지 손을 댈 수 있다. 각색은 다르다. 원작자와 협의도 해야 하고, 자신이 어디까지 만질 수 있고 또 만져야 하는지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다. 원작을 '복사+붙여넣기' 하는 데 그친다면 그건 기만이고 책임 방조다. 동시에 우리 관객이 더 재미있게 즐기고,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끔 바꾼다는 핑계로 원작의 주요한 줄기나 메시지까지 훼손할 수는 없다. 각색은 동시에 그 원작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이선은 믿고 있었다. 그래서 걱정이다. 원작의 한계가 눈에 들어왔을 때, 각색 작가는 어디까지 그 한계와 싸워야 하는가.

"지금이 재연, 삼연이기 때문에 아차 싶은 것들이 보이거든요. 각색이 항상 고민이에요. 원작 라인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도 있지만, 가끔 '내가 이걸 지울 수 있나?'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제가 좀 과하지 않은가?' 하는 고민이 항상 남아요. 분명히 과한 지점이 있어서 요즘은 그것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실비아 그리고 트와일라

 연극 <프라이드>의 리허설 당시 촬영 이미지.

▲ 실비아의 역할, 실비아의 존재 연극 <프라이드>의 2017시즌 리허설 당시 촬영 이미지. 실비아는 원작에 비해 지이선이 많이 끌어 올린 캐릭터이다.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인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훌륭한 여자 배우가 활약할 수 있는 좋은 인물이 별로 없다는 문제의식도 있었지만, 극의 드라마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버려지는 캐릭터 없이 활용하고 싶었다고 한다. ⓒ 연극열전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한계선은 존재하고, 구멍도 있다. 한 작품이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완벽한' 그릇일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 작품이 처음 탄생했을 때는 날카로운 첨단이었어도,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흐르면서 투박해지고 촌스러워지기도 한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여성 인물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캐릭터가 너무 납작하지는 않은지, 지나치게 나이브하지는 않은지 등…. 각색이 덧대서 구멍을 메우고 원작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지울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다.

"사실 제가 <프라이드>를 맡은 건 실비아 때문이 커요. 1958년과 2017년의 캐릭터들은 완전히 벌어져 있는 것이 아니에요. 1958년의 실비아가 맨 마지막에 나왔을 때 원작에는 잠옷 차림이에요. 하지만 굳이 트렌치코트를 입히고 여행 가방을 들게 한 것은, 그녀가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향해 떠난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예요.

델포이 신전에서 들었던 메시지는 실비아의 마음이고, 먼 미래의 실비아가 그녀에게 해 주는 메시지죠. '필립과 올리버와의 관계와는 또 전혀 독립적인, 작품을 끌어가는 메시지의 역할을 실비아가 하는 것이 아닐까. 그 목소리는 실비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와 같은 생각을 해요. 실비아가 신전의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건 또 결코 아니거든요.

도구적으로 소비되지 않게끔 실비아에게 많은 것을 줬어요. '사는 것보다 이불이 더 포근하다고 느껴'라는 대사도 원래 올리버가 하게 할까 했다가, 실비아가 더 능동적이고,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실비아에게 줬어요. 삼연을 하면서 실비아가 엄마가 되고 싶어 하고, 아이를 강하게 원하는 부분을 계속 고민하다가 없앨까 했어요. 그런데 임강희 배우는 이 대사가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그런 프레임에 갇혀서 고통받으며 고민하는 인물이라는 걸 보여준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배웠어요. 실비아가 대화를 통해 성장하는 인물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고….

1958년의 실비아가 성숙한 인간의 면모, 모순과 고통 속에서 성숙해지는 과정과 성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론 실비아에게도 아쉬운 부분은 있어요. 그래서 관객분들의 비판하시는 부분도 저는 충분히 그렇게 읽을 수 있다고 봐요. 원작의 한계도 있지만, 그 실비아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면 또 각색자로서 제 한계이기도 하고요. 각색자로서의 제 한계가 있는데, 제가 그 핑계로 도망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웃음) 함께 더 배우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관객분들이 실비아를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드려요. 이거 꼭 전해주세요. (웃음) 실비아를 응원해주신 만큼 관객분들이 제게도 큰 용기를 주시고, 또 다른 고민들을 하게 해주셨어요. 다만,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프라이드>의 실비아나 <킬 미 나우>의 트와일라, 로빈이 자책하지 않는 거예요. 그녀들이 자책하며 살지 않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관객분들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저도 작업하면서 '만약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제일 많이 했던 게 트와일라였어요. 이 작품은 한 개인으로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연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이크가 떠나면서 연대가 생기잖아요. 트와일라에겐 로빈이, 라우디가 그리고 로빈과 라우디에게 트와일라가 생기잖아요. 그래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이 작품이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늘 행복하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럴 수 없는 환경이죠. <히스토리 보이즈>에도 나오는 대사지만, '저는 행복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아요'라는 그 말처럼…. 솔직히 그 일 이후로 마냥 웃으면서 살 수는 없겠죠. 저는 트와일라가 체념하길 바라지 않고, 관객분들이 돌아가면서 트와일라에 대해 생각해 준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연극은 시대와 호흡한다. 시대적 맥락에서, 연극은 때론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그 힘을 잃기도 한다. 연극의 수명은, 그 시대와 현실에 가장 날카롭게 던질 수 있는 그 메시지가 효력을 다할 때까지일 것이다. 그래서 지이선 작가는 <프라이드>가, <킬 미 나우>가, 혹은 <모범생들> 같은 작품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그때가 되면 웃으면서 즐겁게 문을 닫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런 세상이 올까? 그러면 세상은 아마 또 다른 종류의 연극을 필요로 할 것이고, 그런 연극을 지이선은 옮겨오거나 직접 쓸 것이다. 지이선은 원작의 한계만큼이나 자신의 미숙함을 탓한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꾹꾹 작품에 많은 것을 눌러 담고 있다. 나는 지이선의 그 밀도를 좋아한다. 치밀하고 촘촘하게 짜인 대본 위에서 인물은 울고 웃고 춤춘다. 어쩌면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걱정하고, 그래서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그 태도가 지금의 지이선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걱정과는 달리 오래도록 그의 감수성과 비판 의식이 대학로에 남아있을 것 같다. 내일도 나는 여전히, 작품의 홍보 포스터에 '지이선 작' 혹은 '지이선 각색'이라고 쓰인 글자에 설레며 극장에 들어설 것이다.

연극 <킬 미 나우>의 프레스콜 지난 5월,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개막한 연극 <킬 미 나우>의 프레스콜 당시 사진. 연극 <킬 미 나우>는 지체장애인 조이 스터디와 조이를 위해 작가의 길도 포기하고 헌신하는 아버지 제이크 스터디의 이야기를 다뤘다. 장애인과 성 그리고 안락사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는 극이다.

▲ 배우 윤나무가 작가 지이선에게 "<킬 미 나우>를 쓰거나 공연하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어요. 그런데 한 번 울컥했던 지점이 어디냐면, 윤나무 배우가 '누나는 정말 훌륭한 작가야.(feat. 조이)'라고 문자를 보낸 적이 있어요. 제가 그걸 받고서, 마치 조이가 "아줌마는 정말 훌륭한 작가에요"라고 말 한 것처럼 들렸어요. 조이가 제이크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제이크가 일어나고 싶었던 마음이 얼마나 컸을지 느껴지기도 하고. 그때 '왈칵'했죠." ⓒ 곽우신


작가 지이선 그리고 연출들
6월 한 달, 작가 지이선의 작품 네 개는 세 연출과 함께 한 작품이다. 연극 <킬 미 나우>는 오경택 연출, 연극 <프라이드>는 김동연 연출 그리고 연극 <모범생들>과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는 김태형 연출과의 작업이다. 특히 김태형 연출과의 조합은 '지탱극'이라는 별명과 함께 그 독특함을 자아낸다. 그리고 지이선과 김태형의 애증 관계도 대학로에선 꽤 유명하다. 그 셋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지이선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연극 <모범생들> 프레스콜 서울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개막한 연극 <모범생들>의 프레스콜 사진.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출의 첫 만남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대림외국어고등학교 독문과 A반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엘리트들의 백색 누아르'를 표방하는 이 작품은 학벌주의 사회와 성공제일주의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연극 <모범생들> 프레스콜의 김태형 서울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개막한 연극 <모범생들>의 프레스콜에서 김태형 연출이 마이크를 잡았다. 김태형과 지이선의 첫 만남이기도 한 <모범생들>. 이후로 이들은 호승심으로 엮여서 애증의 작업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곽우신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웃음) 김태형 연출이랑 같이 일한 지는 10년 되었더라구요. 같이 일하고 있는 세 분이 다 달라요. 어떻게 다르냐면…. 태형 연출은 저를 희곡 자판기로 생각해요. 그냥 동전 넣고 누르면 나오는 줄 알아요! 김동연 연출은 저를 동료이자 친구로 생각해요. 그리고 동연 연출은 작가도 겸하기 때문에 같은 작가로 저를 많이 생각해줘요. 안타까운 건 요새 점점 태형 연출의 영향을 받아가면서 변하고 있는 거고요. 오경택 연출은 저를 대학로의 공공재쯤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요. (웃음) '어? 그 작품 한다고? 그럼 그것도 하고 이것도 하면 되겠네' 이런 식…. (웃음)

담임 선생님으로 비유했을 때, 동연 선생님은 자습시간에 학생들의 질문을 매우 성실하게 받아서 답해주는 스타일이에요. 반면 김태형 선생님은 오자마자 '자, 책 펴라'하고 칠판에 쫙 써가면서 시험문제를 하나하나 찍어주죠. 경택 연출은…. 책을 덮고 '너는 꿈이 뭐니?'라고 물어보면서 '얘들아, 세상은...' (웃음)

일할 때 편한 것은 동연 연출이에요. 저를 많이 배려해주거든요. 태형 연출과 저는 항상 서로 화가 나 있는 상태고요. (웃음) 어릴 때 너무 많이 싸우고, 힘든 시기를 같이 지나와서…. 뭐 누가 태형 연출에 대해 나쁜 말을 하면 같이 욕해요. (웃음) 그러다가 또 너무 나쁜 말이면 막 변호해 주죠. '까도 내가 깐다!' (웃음) 저는 항상 태형 연출이랑 같이 안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해요. 대신 태형 연출은 항상 저랑 하고 싶어해요. 막 울고, 무릎 꿇고…. (웃음) 서로 기질이 비슷하진 않아요. 그런데 코드는 맞는 부분이 많아서, '얘랑 작품 하지 말아야지'하면서도 어느새 작품 얘기를 하고 있는 저를 보면 기분이 별로 안 좋아요. (웃음)

그래서 <프라이드>나 <킬 미 나우>처럼 다른 연출 분들을 만나는 경험이 좋아요. 저는 작가이기 때문에 많은 연출 분들을 만나 봐야 하고, 그럴 때 마다 다른 세계로 여행을 가는 느낌이 들거든요."

연출이 작가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은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언젠가 '김태형 연출 없는 김태형 연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일종의 뒷담화 인터뷰. 그리고 그 인터뷰의 인터뷰이 1호는 지이선인 것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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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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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 애제자' 박재정, 발라더 새싹이 그리는 큰 그림

[inter:view] ‘시력’ 발표한 박재정, 그가 노래하는 이유

박재정은 발라더다. 스스로 그렇게 정의한다. 많은 가수가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들려드리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다. 발라드 가수로 자리 잡고 싶고, 발라드를 잘 부르고 싶고, 어떻게 해야 박재정 고유의 발라드를 부를 수 있을지 찾고 싶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박재정을 만났다.신곡 '시력', 2년 준비한 이유 지난 2013년, 엠넷 < 슈퍼스타K5 >에서 우승을 거머쥔 박재정은 1995년생이다. 올해 23살인 그는 2015년 윤종신이 대표 프로듀서로 있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었다. 20대 초반에 이미 발라더로서 방향성을 잡은 것이다.그런데 좀처럼 자주 모습을 볼 수 없었다. 2017년 6월이 돼서야 자신의 이름으로 내는 첫 솔로곡 '시력'을 선보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걸까. 지난해 5월 규현과 함께 듀엣곡 '두 남자'를 불렀고, 올해는 <월간 윤종신> 5월호 '여권'의 가창자로 참여하긴 했지만 미스틱에 온 후 박재정의 솔로곡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했다. 자세랄까.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문제였다. 발라드를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표현하기까지 생각을 많이 했다. 2년 동안 준비했는데 '왜 내가 가수를 해야 하고 노래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시간이 포함됐다. 윤종신 선생님 노래를 들었을 때 내가 위로를 받았지, 하며 나도 그런 노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시력'은 박재정을 위해 윤종신이 작사하고 015B 정석원이 작곡과 편곡을 맡았다. 이별 후의 심정을 흐릿해진 시력에 비유한 곡인데, 박재정을 위해 '맞춤 제작'된 곡이란 점이 흥미롭다. 정석원은 박재정의 음역대를 고려했고, 윤종신은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사랑 노래를 하고 싶다는 박재정의 의사를 반영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시력'을 들었다. 이어폰을 빼며 "물 흐르듯이 편안하게 들린다"고 소감을 말하자 박재정은 "그렇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고 했다. "미성을 써서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을 선생님께서도 원하셨고 그렇게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회사 분들과 윤종신 선생님이 기다려주셨다."윤종신 '애제자' 맞지만 '제2의 윤종신' 아냐 윤종신은 박재정을 두고 "발라드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흔치 않은 젊은 아티스트"라고 이야기했다. '윤종신 애제자'가 된 배경을 묻자, 박재정은 발라드적으로 잘 통하는 감성에 대해 언급했다."윤종신 선생님과 작업할 때 '이건 재정이만 알겠다' 하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하실 때가 있어요. 저도 노래 중에 '이 부분이 윤샘이 좋아하는 부분 아니에요?' 하고 여쭤보면 '맞다'고 하세요. 예전부터 윤종신 선생님 음악을 좋아했고, 노래 부를 때 감성적으로 비슷한 게 있다고 윤 선생님도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윤종신에게 많이 배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제2의 윤종신"은 아니라고 그는 분명히 말했다. "윤종신이 프로덕션한 가수 박재정, 여기까지는 제 정체성이 맞지만, 그 이상은 제가 찾아야 한다"며 "윤종신 선생님은 제가 잘 걷도록 만들어주시는 분이고, 제가 스스로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제가 저를 만들어 한다"고 덧붙였다.'시력'을 2년에 걸쳐 다섯 번 이상 녹음한 이유에 대해선 "'시력' 하나로써 제가 어떤 발라더인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종신과 함께했지만, 윤종신이 아닌 박재정의 색깔이 나는 발라드를 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진정한 위로'... 내가 노래하는 이유 "오디션 프로그램이 끝나고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많이 못 받았다고, 내가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이 사랑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사랑을 받기 위해 노래하는 게 아니라 제가 진짜 노래하는 동기와 의미를 다시 다듬고 갖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박재정은 자신이 어떤 발라더가 될 것인지 방향성을 찾기 위해,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것이 방향을 잡는 첫 단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앨범을 내면 얼마나 좋을까'란 상상을 하곤 했는데 이건 어쩌면 '내가 이런 이런 사랑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말과 같다. 사랑을 못 받으면 상처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보다 내가 '왜' 사랑받아야 하는지, 내가 '왜' 노래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박재정은 이렇듯 이상적 발라더가 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떤 발라더가 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묻자 "위로를 주는 발라더 박재정이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위로 안에 되게 많은 것들이 있다"면서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됐으면 좋겠고, 제 노래가 힘이 되는 5분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정한 위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하림 선배님은 외국인 노동자 등 타지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분들을 위해 공연도 많이 하신다"고 예를 들며 "외로운 사람들에게 치유를 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런 것들(위로)을 꿈꾸고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큰 그림은 이게 다가 아니다. 작사 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를 꿈꾸고 있고, 지금도 계속 곡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또 말하길 "10년 후쯤엔 제가 쓴 곡을 들려주고 싶다"고 해서 "10년이면 너무 늦지 않느냐, 빨리 선보이고 싶지 않느냐" 되묻자 이렇게 답했다."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10년을 해보라고 하지 않나. 10년 동안 많이 느끼고 배워서 오래 걸려도 좋은 곡을 쓰고 싶다."많은 걸 이루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조급하지 않기란 힘들 법도 한데 박재정은 나이에 비해 꽤 성숙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진지한 이야기 중에도 중간중간 꾸준히 터뜨린 '웃김'은 그의 반전 포인트였다. 평소에도 '웃긴다'는 박재정은 "어색한 것보다 편안한 분위기가 좋으니까요"라며 잔잔한 유머를 예찬했다.

<박열> 영화에 숨은 코드, 이준익 "박열-후미코는 수단일 뿐"

[inter:view] <아나키스트>부터 <박열>까지, 이준익 감독이 오래 준비한 이유

한창 상영 중인 영화 <박열>은 이준익 감독에겐 꽤 오랜 숙제였다. 이리저리 날뛰는 모습만 보면 1920년대의 세상을 조롱하던 흔한 시정잡배 같지만, 일본인 여성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와 동거 서약을 맺고 함께 아나키즘에 투신했다. 그 본질은 부당한 권력을 끌어내리고 조롱하는 것. 영화에는 일본 관동대지진과 조선인대학살사건을 몸소 겪고 저항한 20대 청년들의 활기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의 허상이 잘 담겨있다.일본 열도를 뒤흔든 이 아나키스트들의 근원은 이준익 감독이 제작한 <아나키스트>(2000)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상해를 무대로 한 아나키스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성패와 별개로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이준익 감독이 마음에 품었던 한 인물이 바로 박열이었고, 이 인물이 영화로 빛을 보기까지 17년이 걸렸다. 이준익 감독과의 인터뷰의 시작은 그래서 <아나키스트>여야 했다.박열에서 후미코를 읽다- 이 유쾌한 아나키스트 박열의 뿌리를 감독님 영화에서 찾자면 <아나키스트>다. "<아나키스트> 때 대한민국의 근대성을 영화적으로 풀고 싶었다. 문학, 음악, 미술 등의 분야에서 한국은 근대성이란 개념을 스스로 풍부하게 활용한 적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내겐 중요했다. 일본을 통해 미술을 답습했고, 음악 역시 일본 엔가의 영향을 받았다. 영화는? 1960년대, 70년대 임권택 감독님 등이 독립군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홍콩영화 활극처럼 오락적 도구로만 쓰였지 일제강점기에 대한 (성찰의) 시선은 없었다. 시대를 보는 눈을 문학 등에서 다루고 재생산 한 적이 없다는 걸 20년 전에 자각하고 박찬욱, 조철현 작가랑 개발한 게 그 영화다.근데 불행한 게 <아나키스트>의 무대는 상해였고, 이것 역시 활극과 오락 요소에 치중한 점이 있다. 시대를 읽는 힘이 모자랐던 거지. 그 작업을 하다 박열이란 인물, 수많은 이름 없는 존재들을 발견했지만 나 스스로 공부도 실력도 부족했다. 여러 영화를 찍고 일단 <동주>를 조심스럽게 시도했는데 크게 비난받지 않아서 '이젠 때가 됐다. 박열에 도전해보자!' 한 거다. 근데 이 영화는 박열이나 가네코 후미코를 집중 조명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두 인물을 수단으로 그 시대가 갖고 있는 의미를 미력하게나마 담아보자는 거다.두 시간짜리 영화에 한 시대를 소상하게 담는 건 과욕이다. 하지만 그 통로까지 다가가게 할 수는 있다. 당시 일본이 서양의 제국주의를 흉내 내는 과정에서 관동대학살이 있었고, 그걸 그들이 근대라고 믿던 사법체계가 정당화시켰다. 박열과 후미코의 여정을 통해 그 근대성이 결국 권력의 지속을 위한 작태였음을 보이려 한 거다. 그러면 지난 70년 간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던 우리의 사고 틀도 좀 확장되지 않을까 생각한 거지." 이준익 감독이 말한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우리 사고의 틀이란 바로 억압과 학대로 인해 키워진 분노의 시선이었다. 통상 일본하면 고개를 드는 적대감. 이준익 감독은 그 지점에서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후 질문에서 보다 상세히 그가 설명했다.- 전작 <동주>도 그렇고 사실 제목은 '동주'지만 그 안에서 몽규를 읽었고, <박열>에서도 가네코 후미코를 읽었다. "바로 그거다! 후미코가 일본여성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일본여성과 한국남성이 동거서약을 하고 그걸 지켜내는 과정에서 한 사람은 죽고, 다른 이는 22년 간 옥살이를 한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분노의 정서를 그간 여러 작품에서 상업적으로 생산했다면 <박열>에선 탈민족을 근간으로 행동했다는 게 다르다. 일본을 민족 저항의 대상으로 보는 걸 넘어서 모든 인간의 삶을 짓누르는 거대 권력의 부도덕성을 소위 아나키즘이라는 이념으로 저항하고, 그 신념을 위해 목숨 걸고 게임한 거지.이 게임 안엔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또 두 사람이 이룬 성과는 일반적 관점에서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둘이 가진 사상과 공적으로 증명한 결과는 어떤 폭탄보다 강하고 확산성이 있었다. 놀라운 건 이게 90년 간 묻혀있다시피 한 이야기였다는 사실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한 존재가 시대와 불화를 고백했을 때 그 가치관이 내가 현재에서 하는 고백과 닮아 있나, 다른가? 이걸 자각하면 사회관과 세계관이 잡힌다. 젊은 나이에 일관된 선택과 행동을 한 그 젊은이들을 내가 먼저 영화로 보고 싶었다! (웃음) 근데 이걸 대중적으로 요령 피워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대의 청년과 지금 시대를 사는 나와의 상관성을 찾는 게 중요했지."- 그 후미코가 영화 속 여성 캐릭터로 소모된 게 아니라 하나의 사람처럼 다가온다."그렇지. 사건을 확대하거나 왜곡한 게 없다. 사건으로 발생하는 개인 개인의 사연을 깊이 전달하려 한 거다. 후미코는 이 영화가 시작되기 전 성장기의 사연이 있는데 그건 그의 자서전에 담겨있다. 그 사연이 영화 안에서 계속 누군가에 의해 하나씩 밝혀진다. 그래서 영화적 캐릭터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보였을 것이다. 영화적 기능을 위해 쓴 게 아니니까. 한 인간이 세상과 불화하면서 삶과 죽음을 택하고 행동하기 위해선 세상의 진실이란 게 그 인간 안에 강하게 각인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선택과 행동을 못한다. 후미코의 대사가 있잖나. '산다는 건 그저 움직이는 걸 뜻하지 않는다' 그의 자서전에 그대로 있는 걸 대사로 쓴 거다." 한 차원 높은 혁명- 권력에 저항하는 그 청년들의 방식이 흥미롭다. 단순히 비장하게 저항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조롱하고 가지고 논다. "조롱은 어떤 권력에 대항하는 지혜로운 방식 중 하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리어왕에 등장하는 광대 있잖나. 왕과 권력자를 한 인간으로 격하시킨 뒤 조롱한다. 박열과 후미코의 세계관 역시 인간이라면 인간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라는 거다. 본 모습에 충실한 뒤 권력을 수행하면 그 권력을 미워할 이유가 없지. 조롱할 이유도 없고. 근데 관동대지진 폭동의 원인을 자기들이 아닌 외부로 탓하려 하잖나. 그 습성을 두 사람이 조롱한 거다. 임진왜란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춘추전국시대 전쟁의 기운을 외부로 표출하게 하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각이었지.보통 역사라는 게 기득권 권력자의 전쟁사와 정치사로 기술한다. 민중사라는 건 그 시대를 같이 겪어내며 그 권력의 부당성을 주장했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따라간다. 조선 후기도 마찬가지인 게 고종이니 대원군이니 하지만 프랑스혁명 못지않은 동학혁명이 치고 올라왔는데 제대로 못 담아냈다. 프랑스는 어쨌든 왕의 목을 쳤고, 시민정신이 그때 생겼는데 동학혁명은 고종이 일본군 불러서 변화를 외치던 민중들을 총칼로 다 죽였잖나. 민중혁명이 그래서 역사에 덮여 버린 거지. 신유박해 등의 당시 사건을 두고 정사에선 탄압이라고들 하는데 그렇게 말고 민중의 저항으로 보자는 거다."- 그 관점에서 일제강점기를 바라보자는 것인가."그렇지. 여전히 우린 식민지시대에 대한 프레임을 한일관계, 즉 국가적 프레임에 가두고 분노와 증오를 반복한다. 그걸 깰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영화적 소재가 박열과 후미코라고 생각했다. 물론 윤봉길, 이봉창 등 많지만 후미코가 일본인이라는 게 큰 차이다. 일본인임에도 천황제를 부정한 이유가 뭘까. 당시 일본에선 아나키스트 운동이 엄청 치열했다. 정작 지금의 일본은 아베 정권이 굳건하고 50년 가까이 자민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말이다. 일본은 지금 자기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일본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주인 후쿠자와 유키치 얼굴이 만 엔짜리에 있지? 자민당 정권이 그 이념을 잇고 있다는 뜻이다. 그 반대 지점에 있는 인물이 영화에 나온다. 대역 죄인으로 사형 당한다는 대사로 말이다." - 하지만 아나키스트는 결국 실패한 혁명이라고들 하잖나. 여기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웃음) 아나키스트 운동은 실패를 전제하고 하는 운동이다. 아나키즘이 권력을 부정하고 저항하지만 권력을 잡는 게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나키즘 안에 테러리즘이 있지? 테러로 권력 잡는 이들이 코뮤니스트다. 노동자 계급을 권력화 한 거지. 근데 그게 이미 20세기에 실패로 끝나지 않았나. 코뮤니스트들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나키스트다. 대한민국은 이걸 자생적으로 경험하지 않아 일본은 무조건 배척의 대상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거다.이걸 페미니즘에 빗대면 이해가 쉽다! 페미니즘이 남성 권력에 저항하는 운동인데 동시에 여성이 권력을 잡자는 건가? 아니다. 남성의 부당한 권력을 저항하는 거지 남성 권력을 밀고 여성이 잡자는 게 아니다. 아나키즘이 페미니즘에 스며든 게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하나! 동물애호가들이 학대 저항 운동하잖나.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이 권력을 잡자는 건가? 아니잖나. (웃음) 결국 아나키즘은 실패한 운동으로 보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거다.박열과 후미코는 자신들이 권력을 잡겠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우린 너희들의 부당함을 고발하니 인정하라는 거지. 그들(일본 제국주의)을 이겨서 권력을 잡겠다고 누가 그랬나. 마치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을 모두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로 보는 것과 같다. 이 이분법에 우리가 갇혀있는 거지. 지난 촛불집회 나온 사람들이 그럼 권력 잡으러 나온 사람들인가!?(웃음)"- <박열> 리뷰에도 썼지만 이미 우린 현대 권력을 합법적 틀에서 유쾌하게 뒤집는 경험을 했다. <동주>와 <박열>에도 그런 민중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정서가 깔려 있어 보인다."그 희망을 놓지 말자는 뜻으로 영화 대사에 정확히 써 놨다. 박열이 인력거를 끌며 그러잖나. '일본 권력에 반감이 있지만 민중에겐 오히려 친밀감이 들지!'라고. 영화에 등장하는 다수 일본인은 권력자가 아니다. 후세 변호사, 소설가 등이 일본이 양심을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교도소에 갇힌 박열을 면회하는 사람이 유명한 소설간데 박열의 영향으로 광산 투쟁을 했다고. 자서전에 다 나온다. 심지어 그 책들은 일본 사람이 쓴 거다.<박열> 처음에 실제 이야기임을 강조하고 고증을 중시한 이유가 바로 이 영화의 대상이 한국뿐 아니라 일본이기 때문이다. 한국 관객이 박열을 아는 숫자보다 일본 관객이 후미코를 아는 수가 더 많다. 우린 박열을 잘 모르거든. 일본은 적어도 다는 몰라도 한국보단 많이 안다. 인구도 일단 우리보단 많으니까. 근데 이 영화가 날조, 왜곡 논란에 휩싸이면? 심지어 한국 감독이 만든 건데 그런 논란이 생기면 진정성에 상처받잖나. 그래서 모두가 실존인물이라고 자막에 넣은 거다."열변을 토하던 이준익 감독에게 그 다음 염두에 둔 인물이 있는지 물었다. 알려진 대로 그의 차기작은 힙합 래퍼를 주인공으로 한 <변산>이다. 이 또한 신선한 변화다. "하고 싶은 인물은 많은데 당분간은 역사 인물에선 멀어지려 한다. 좀 쉬고 싶다"고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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