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열린 '아이유 월드투어 콘서트' 무대 위에 선 가수 아이유의 모습.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열린 '아이유 월드투어 콘서트' 무대 위에 선 가수 아이유의 모습. ⓒ 이담엔터테인먼트


최근 K팝이 콘서트 암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팬들을 위해서 정상적인 티켓팅을 방해하는 암표상들을 걸러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팬들은 암표상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팬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소속사는 이중으로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최근 아이유 콘서트에서 어느 팬이 억울하게 티켓 부정거래로 의심을 받아, 예매가 취소되고 팬클럽에서 영구 제명 조치를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는 본인이 직접 티켓을 예매했으나 친구가 대신 티켓 금액을 입금했다. 

암표 거래는 아니었지만 피해자는 SNS에 "친구가 아이유 콘서트 용병(티켓팅을 대신 해주는 것) 해줬는데 좋은 자리 잡아서 뿌듯"이란 게시글을 올렸고, 이를 누군가가 소속사에 신고하면서 의심을 샀다. 결국 부정 거래가 아니라는 걸 소명하기 위해 신분증과 티켓 입금 내역, 공식 팬클럽 카드, 친구와의 대화 내용 등 소명 자료를 소속사에 보냈고, 이후 공연 관람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하지만 피해자는 공연 당일 현장 스태프로부터 추가 본인 확인을 요청받았고, 그 자리에서 다른 서류를 제출하였으나 입장 불가와 팬클럽 영구 제명이란 처분을 받았다. 게다가 공연 당일이라는 이유로 티켓값도 환불받을 수 없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수많은 케이팝 팬들은 '소속사가 암표 시스템의 허점을 해결하지 못하니 팬들한테 뒤집어씌운다'고 분노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아이유 소속사의 과도한 대응이 케이팝 업계의 현실이며 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이를 계기로 SNS에선 자신이 겪은 부당한 경험을 폭로하는 케이팝 팬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그 현실을 파헤치기 위해 케이팝을 사랑하는 네 명의 팬과 만났다.
 
'댈티', '플미', '용병'... 티켓팅의 어두운 그림자

요즘은 인기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 티켓을 구하는 것보다 하늘에서 별 따는 게 더 쉽다는 말이 있다. 케이팝의 인기 때문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실제로 티켓팅에 참여하는 팬덤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된 건 사실이나, 그중엔 팬을 가장한 암표상들이 숨어있다. '온라인 암표 매매 규제 강화의 필요성과 향후 과제'에 따르면 2020년 359건이던 대중예술 분야 암표 신고 건수는 2022년 4224건으로 12배 가까이 늘었다.

그들의 수법은 치밀하다. 자동으로 명령을 반복 입력하는 프로그램인 매크로를 통해 티켓을 예매하기 때문에 순전히 '클릭'으로 승부하는 팬들은 속도전에서 이들을 이길 수 없다. 게다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티켓을 예매하고 재판매하는 거대한 조직을 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암표상과의 티켓팅 전쟁에서 티켓 하나를 건지기 위해 이른바 '용병'이라 불리는 대리 티켓팅 업자를 찾는 팬들도 있다.

"도저히 매크로 돌리는 업자들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으니까 '댈티'(대리 티켓팅의 준말)를 찾죠. 비용도 다 달라요. 원하는 좌석을 잡지 못했는데 선입금비를 돌려받지 못하기도 하고, 좋은 좌석을 잡으면 10~20만 원의 수고비를 요구하기도 해요."
- 과거 '댈티'를 통해 콘서트 티켓을 구했다는 A씨

 
 31일 야외 공연장인 인천 서구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세븐틴 앙코르 투어 콘서트의 한 장면

지난 3월 31일 야외 공연장인 인천 서구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세븐틴 앙코르 투어 콘서트의 한 장면. ⓒ 플레디스

 
대리 티켓팅 업자를 구하지 못한 팬들은 '플미'(프리미엄의 준말. 티켓 가격에 웃돈을 얹어서 더 비싸게 파는 표)라도 구하기 위해 중고거래 사이트로 향한다. 치열한 티켓팅이 끝나면 SNS와 중고 거래 사이트 등지에서 암표상들이 실제 티켓 가격에 보통 1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더해 되파는 거래 게시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소속사들이 '플미' 표를 찾아내 예매를 취소시키는 등, 제재가 늘어나자 아예 구매자의 아이디로 티켓 예매를 옮겨주는 '아옮(아이디 옮기기)' 등 다양한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 '플미' 표를 사서 콘서트를 갔다는 B씨는 기뻤지만 씁쓸했다고 고백했다.

"BTS 콘서트에 가려고 시야 제한석을 원래 가격에서 15만 원이나 더 내고 간 적이 있어요. 정말 기뻤는데 막상 가니까 무대가 제대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어요. 괜히 케이팝 팬덤의 나쁜 문화에 일조한 거 같아서 찜찜하기도 했고요." 
- '플미' 표를 구매해 콘서트에 가본 적이 있다는 B씨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속사들은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장범준은 암표를 차단하기 위해 대체불가토큰(NFT) 형태로 콘서트 티켓을 재발매했고 방탄소년단, 세븐틴은 추첨제를 통해 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 벌어진 '아이유 콘서트 티켓 부정 취소 사건' 또한 암표를 근절하기 위해 이담 엔터테인먼트에서 부정 거래를 목격하고 신고하면 티켓을 포상하는 '암행어사 제도'가 발단이었다.

그러나 팬들은 정작 문제는 제도가 아닌 팬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무작정 의심, 해명은 팬들의 몫?

"소속사가 일일이 암표상을 잡는 것보다 팬들의 신고를 통해 해결하는 게 간편하겠죠. 그런데 근본적으로 암표 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요? 티켓 예매 시스템을 정교하고 안전하게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팬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고 (정상적인 티켓팅을 했다고) 증명하라는 억지 요구를 '암표 근절'이란 목표 하에 남발하고 있어요."
- 최근 케이팝 콘서트에 다녀왔다는 C씨 


예를 들어, 성인 보호자가 미성년자 자녀를 대신해 콘서트 티켓을 예매할 경우 실물 학생증(종이로 프린트한 경우, 조작의 경우가 있어 반려됨), 보호자의 신분증, 예매 내역서, 가족관계증명서 등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를 소속사에 제출해야 한다.

현장에서 스태프의 돌발적인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면 입장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엄격한 규명 과정은 미성년자 자녀의 티켓을 예매한 경우에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노년층 부모의 티켓을 자녀가 대신 예매하거나 친한 친구의 티켓을 예매해주는 것도 이러한 소명 요구를 받을 수 있다.

"콘서트 현장에서 스태프가 지나칠 정도로 팬들을 추궁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해요. 좋아하니까 어렵게 티켓팅한 팬들이 대다수일 텐데 마치 모두가 '암표상'인 것처럼 취급하니까요. 그리고 직접 티켓을 예매할 수 없는 노인이나 정보 취약자는 아예 콘서트에 오지 말라는 의미일까요?" (C씨)
 
돈을 써도 '소비자' 대우 없는 케이팝의 현실
 
"사랑하니까 자발적 '호구'가 된 거죠."(B씨)

팬들은 케이팝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또는 스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호구'가 되고 있다고들 말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콘서트 티켓값에 쩔쩔매고, '포도알(예매 창에서 클릭 가능한 좌석을 의미하는 단어)'을 누르기 위해 밤샘은 물론, 대리 티켓팅 해주는 '용병'을 구하고 더 비싼 가격으로 되파는 '플미'에 혹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소비자지만, 소속사의 불합리한 태도를 감내해야 하는 '빠순이(여성 팬덤을 향한 멸칭)'이기도 하다.

취재에 응한 팬들은 모두 "소속사들이 수익 창출을 위해 어떤 식으로 팬심을 이용하는지 상상을 초월한다"며 "팬들에게 돈을 얻어내는 방식은 많아져도, 대우에는 발전이 없다"고 토로했다. 소속사들의 아이돌 그룹의 굿즈를 판매하는 방식에도 회의를 표하는 목소리가 컸다.

"요즘에는 앨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음악방송 활동이 끝났는데도 팬 사인회 일정을 잡거나 다양한 종류의 포토카드 및 '미공포(미공개 포토카드)'를 수록해서 최대한 많은 양의 앨범을 구매하게 만들어요." (A씨)

"언제는 갑자기 기존 응원봉 가격을 내리면서 구매하면 포토 카드까지 준다는 거예요? 신나서 구매했는데 판매 기한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응원봉 모델을 출시한다는 소식이 떴어요. 소속사의 재고 떨이에 당했구나 싶었죠." (아이돌 굿즈를 구매하고 실망했다는 D씨)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끔찍한' 케이팝을 '끔찍이' 사랑하는 팬이다. 자발적 호구, 혹은 자발적 노예가 된 거 같다는 그들의 뼈아픈 농담에 화려하기만 한 케이팝이 새삼 달리 보인다. 누군가의 사랑을 빌미로 부당한 대우를 당연시하고, 마음까지 돈으로 환산하는 세상. 커져가는 케이팝에 대한 자부심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아이유 케이팝 댈티 미공포 아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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