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주기다. 그날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게 낯설고도 놀랍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새삼 절감한다. 절대 잊지 않겠다는, 행동하겠다는 그때의 다짐은 어느새 흐릿해졌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화사한 벚꽃이 피기만 해도 세월호를 떠올렸는데, 4월 달력을 보고도 16일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유족과 함께 팽목항까지 걸었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천릿길 마다하지 않고 안산을 찾았다. 유족들 앞에 잊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소풍도, 수학여행도 굳이 안산을 경유하도록 코스를 짰다. 소풍날 아이들이 정성껏 접은 노란 종이학 상자를 유족이 건네받고서 함께 부둥켜 울었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느덧 세월호 참사를 머리로만 알고 있을 뿐,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전 그들은 코흘리개 유치원생이었다. TV에선 뉴스 속보로 종일 다루어졌지만,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TV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눈물 흘리는 아빠, 엄마의 애태우는 모습만 얼핏 떠올릴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소략한 TV의 단신 뉴스와 유튜브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크다. 희생자 수 등 표피적인 사실만을 전달하거나, 심지어 당시 '기레기' 언론의 보도를 근거로 사실을 호도하는 내용이 버젓이 전달될 위험도 있다. 비극적인 참사의 내막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어설픈 유튜브 콘텐츠는 차라리 독이다.

유족의 시선에서 바라본 10년
 
 다큐 <바람의 세월> 스틸 이미지.

다큐 <바람의 세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지난 10년 동안 제대로 밝혀진 거라곤 당일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소소히 밝혀진 사실들을 잘 알지 못할뿐더러 알고서도 이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른 채 그 기나긴 시간을 허송세월한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럴 땐 유족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게 진실에 다가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모두 간과했다.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진상규명 요구를 번번이 가로막았고, 야당의 대응은 늘 뜨뜻미지근했다. 참사가 일어난 그해 여야 합의로 제정된 '누더기 특별법'이 그 명징한 예다. 이후 개정된 법률 역시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누더기를 기우는 수준이었다. 진상규명을 위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다 보니, 세월호는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고 유족들의 가슴엔 대못이 박혔다.
 
명명백백 밝혀진 진실이 없으니, 정부의 책임자를 처벌할 수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과 해난 사고의 총책임자인 해양경찰청장, 해당 관할 해양경찰청장 등 그 누구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고작 침몰하는 세월호에 근접해 어쩔 줄 몰라 하던 경비정 정장이라는 하급 실무자만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처벌된 사람과 형량으로만 치면, 세월호 참사는 흔한 교통사고와 다를 바 없다. 온 국민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는 참담한 교훈만 심어준 채 세월호는 현대사 속 하나의 사건으로 박제화되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요즘 아이들이 떠올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인식은 '수많은 고등학생이 한꺼번에 사망한 선박 침몰 사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에 반가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의 세월>이 때마침 개봉한다는 것. 세월호 참사로 문지성 양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 문종택 감독이 지난 10년 동안 카메라에 담은 영상을 아카이빙한 작품이어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제3자가 아닌, 유족의 시선에서 바라본 유족의 10년 세월은 각별할 터다.
 
개봉일 첫 상영 시간에 맞춰 부리나케 영화관을 찾았다. 이곳 광주에선 단 한 곳, 하루에 단 한 번 상영되는 '귀한' 영화였다. 개봉 소식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당일 관객들은 불과 몇 명뿐이었다. 여야 후보의 날 선 발언들 속에 후끈 달아오른 선거판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관 밖은 요란한 유세 차량의 굉음이 도시의 어둠을 찢을 기세였다.
 
언뜻 익숙한 장면들이지만, 담담한 문 감독의 내레이션이 입혀져 처음 본 듯 새롭다. 여전히 손목엔 노란 고무링이, 재킷엔 늘 노란 리본이 늘 달려있지만, 보는 내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있다는 '증명'은 될 수 있을지언정 행동하겠다는 다짐과는 거리가 먼 '관행'이 돼버렸음을 자책했다. '내 일'인 양 천착했던 세월호도 끝내 '남 일'이 되고 말았다는 자괴감이다.

정부-언론의 추잡한 행태를 고발하다
 
 다큐 <바람의 세월> 스틸 이미지.

다큐 <바람의 세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영화는 정부와 언론이 손잡고 벌인 추잡한 행태를 고발하며, 유족들의 요구가 무엇이었는지에 집중한다. 지난 10년 동안 언론은 특별법 제정과 배상보상금 지급, 기억 교실과 생명 안전 공원 건립 문제 등의 정부 쪽 대응만 소개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유족과 정부 사이에 오간 주요 의제인 줄로 믿었다. 그땐 삭발과 단식을 이어가는 유족들이 낯설게 보이기도 했다.
 
우리 언론은 태생적으로 '정부가 던져주는 정보에 굶주린 하이에나'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기레기'라는 멸칭도 '전원 구조 오보' 등 세월호 참사를 두고 왜곡 편파 보도를 일삼은 기자들을 향한 온 국민의 반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정부는 물론, 언론에서조차 유족은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여겨졌을 뿐, 진상규명의 주체로 설정되지 못했다.
 
문 감독이 든 카메라는 부박한 우리 언론을 향한 죽비였다. 그는 언론이 애써 외면한 진실을 끝까지 추적해 카메라에 꼭꼭 눌러 담아냈다. 제3자의 시선으로는 왜곡되고 가려질 수밖에 없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느껴진다. 어쩌면 생때같은 자식을 하루아침에 잃은 부모로서, 가눌 수 없는 슬픔을 억누르기 위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2014년 4월 16일로부터 시작된 영화 속 시간은 2022년에 닿는다. 이태원 참사가 정부와 언론이 한통속이 되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덮기 위한 만행의 후과임을 보여준다. 참사 당시의 부실한 대응부터 유족을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빼다 박듯 닮아있다. 당시 '10년 세월이 도루묵'이라거나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나라'라는 질타가 쏟아졌던 이유다.
 
진상규명에는 소홀한 채 정부가 느닷없이 배상보상금 문제를 꺼내 유족들을 갈라치는 장면도 그다지 낯설지 않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 배상금 제3자 변제 방안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떠올라서다.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공식적 사과와 배상 요구를 일순간 돈 문제로 치환해버린 우리 정부의 강퍅함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

투박하지만 의미있는
 
 다큐 <바람의 세월> 스틸 이미지.

다큐 <바람의 세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지금껏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영화 중에 이렇듯 '투박한' 작품은 없었다. 장면은 편집 과정이 일절 생략된 듯 거칠지만, 그조차 날 것 그대로의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으로 읽힌다. 중간중간 삽입된 유족들과의 인터뷰에선 기쁨과 슬픔, 울분과 회한 등 그들의 널 뛰듯 요동치는 감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신언불미(信言不美)'라는 도덕경의 금언처럼, 거칢과 진실함은 동전의 양면이다.
 
요컨대,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참사를 머리로만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맞춤한 영화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유튜브 영상에 길들지 않게 하는 '예방 주사'로 손색이 없다. 참사의 뼈아픈 교훈을 되새기며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선 유족들과의 공감과 연대가 우선이라는 점을 아이들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번 총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도 권한다. 공교롭게도, 총선 날 엿새 뒤가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누가 당선되든, 그들이 주위의 축하 속에 맨 먼저 찾을 곳이 세월호 추모식 행사장일 테다. 개인적으론, 분초를 아껴가며 유세 중인 후보자들이 <바람의 세월>을 관람했다면, 공약과 정당을 따져보지 않고 그에게 투표할 것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유족에게 공감과 연대의 손을 내민 정치인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무심한 아이들도 '10'이라는 숫자가 주는 유별난 힘을 알고 있다. 10주기를 맞아 학교에서도 단출하지만 특별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당일인 4월 16일 오후 4시 16분에 맞춰 교정에 추모 사이렌을 울린 뒤, 방송반 친구들이 제작한 추모 영상을 상영할 예정이다. 교사들의 고작 하루 전인 어제와 10년 전 그날의 기억을 비교하는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다.
 
거기에 덧붙일 내용이 생겼다.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처럼 <바람의 세월> 광고를 삽입하는 것이다. 볼 수 있는 영화관이 거의 없어 서운하긴 해도, 짬을 내고 발품을 팔아 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야말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가장 뜻깊게 보내는 방법임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다.
바람의세월 문종택감독 세월호참사10주기 제22대국회의원선거 세월호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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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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