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발매된 너바나의 박스 세트 'When The Lights Out' 표지. (왼쪽부터 데이브 그롤, 커트 코베인, 크리스 노보셀릭)

2004년 발매된 너바나의 박스 세트 'When The Lights Out' 표지. (왼쪽부터 데이브 그롤, 커트 코베인, 크리스 노보셀릭) ⓒ 유니버설뮤직

 
1991년 9월 10일, 미국 시애틀에서 활동하던 무명 밴드가 싱글을 발표했다. 당시 소속 레이블에선 딱히 히트가 되리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저 이름을 약간 알리는 정도의 역할만 해주길 기대했다. 그런데 현재 대학 방송국과 모던 록 전문 FM 라디오를 통해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 노래는 얼마 되지 않아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히트 싱글로 자리매김했다.  

​인트로의 강력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만으로도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록 음악 팬들의 심장을 뒤흔드는 'Smells Like Teen Spirit'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 너바나(Nirvana)를 세상에 알리는 위대한 첫 발걸음이 되었다.  

​당시 쇳가루 섞인 듯한 목소리로 거침 없이 소리쳤던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 커트 코베인(Kurt Cobain, 1967.2.20~1994.4.5)은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라고 얼마 되지 않아 30년전 오늘, 그는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시대를 뒤바꾼 앨범 < Nevermind >와 싱글 'Smells Like Teen Spirit'
 
 너바나의 앨범 Nevermind'와 싱글 'Smells Like Teen Spirit' 표지 및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너바나의 앨범 Nevermind'와 싱글 'Smells Like Teen Spirit' 표지 및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유니버설뮤직

 
싱글 'Smells Like Teen Spirit' 공개 2주 후 너바나(커트 코베인-크리스 노보셀릭-데이브 그롤)의 메이저 데뷔 음반 < Nevermind >도 세상에 나왔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걸쳐 미국 시애틀은 모던 록 / 얼터너티브 록 음악계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펄 잼(Pearl Jam), 사운드가든(Soundgarden),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 등 이른바 '시애틀 4인방'으로 불리던 불세출의 밴드들은 저마다의 소리를 경쟁하듯 뽐내면서 시대 흐름을 180도로 바꿔 놓았다.  ​

그중 너바나는 좀 독특했다. 세련된 형태로 된 팝 메탈이 한창 인기를 누리던 시기에 어떤 면에선 구식처럼 비치기도 했던 투박한 질감의 음악은 기존의 틀과는 분명 거리가 멀었다. 단 3명의 단촐한 멤버 조합,  'Come As You Are'와 'Lithium' 등 펑크 록의 영향을 받은 단순 명료한 기타 리프와 난해한 가사, 시대의 반항아 같은 이미지를 지닌 커트의 존재는 1990년대 X세대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주목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 Nevermind >와 'Smells Like Teen Spirit'이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너바나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시대를 바꾼 음악계의 거물 밴드로 우뚝 올라섰다. 어찌보면 너바나와 커트의 짧은 시간은 이 작품들의 대성공이 가져온,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의 결과이기도 했다. 

마지막 음반 < In Utero >, 그리고 작별​
 
 너바나가 남긴 주요 음반 표지

너바나가 남긴 주요 음반 표지 ⓒ 유나버설뮤직

 
마이너 레이블 시절 녹음했던 트랙들을 모은 편집 음반 < Incesticide >(1992년) 발표로 잠시 숨을 고른 너바나는 이듬해 정규 3집 음반이자 마지막 스튜디오 작품이 된 < In Utero >로 다시 한번 음악팬들을 열광시킨다. 전작 < Nevermind >의 2탄 같은 형식은 철저히 거부하며 우울한 정서를 한껏 담아낸 이 작품은 히트 싱글 'Heart-Shaped Box', 'All Apologies' 등 더욱 투박하고 실험적인 사운드로 완성되었다.  ​

하지만 거대한 성공이 가져온 달라진 환경은 밴드의 리더 커트에겐 압박 그 이상의 고통을 안겨준 모양이었다. 프로듀서 스티브 알비니와 작업했던 < In Utero >의 초기 버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소속 레이블(Geffen 산하 DGC)는 또 다른 PD 스콧 릿을 데려와 매끈한 소리로 다듬었고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오랜 기간 우울증, 알코올과 약물 중독에 시달렸던 커트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그무렵 부인 코트니 러브(록그룹 '홀'의 리더)와의 부부생활도 갈등의 연속이었다. 재활원 입소를 통해 치료를 시도해봤지만 작심삼일에 그쳤고 그 후 커트는 안타깝게 삶을 마감했다.  

1990년대를 관통한 시대의 아이콘​
 
 너바나의 라이브 명반으로 손꼽히는 'MTV Unplugged in New York'의 한 장면

너바나의 라이브 명반으로 손꼽히는 'MTV Unplugged in New York'의 한 장면 ⓒ 유니버설뮤직

 
단 3장의 정규 음반, 그리고 사후 발표된 몇장의 미공개 실황과 편집 음반들은 커트가 남긴 몇 안 되는 음악적 유산이 되었지만 작품의 영향력은 숫자 그 이상의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화려한 기교를 앞세운 연주 테크닉이 우선시되던 1980년대의 록 음악은 너바나를 비롯한 일련의 밴드들이 들려주던 원초적인 소리 중심의 음악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장르 이름(얼터너너티브)처럼 이들의 음악은 20세기의 마지막 대안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비록 전성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너바나, 그리고 커트의 음악은 1990년대를 관통하는 복잡 미묘한 정서가 담겨 있었다. 반항적이면서 때론 혼란 그 자체이기도 했던 그 시대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이것만으로 채울 수 없었던 허전함이 늘 남아 있었다.

때 마침 등장했던 너바나 같은 팀들이 완성한 소리에는 당시 주류 음악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움이 담겨 있었고 사람들은 여기에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커트와의 짧았던 만남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린 '방구석 록커'들에겐 아련한 추억 속 이야깃거리로 남았지만 한편으론 쉽게 지워지지 못할 추억이기도 했다. 그와 같은 음악인을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커트코베인 너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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