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2회말 한화 안치홍이 안타를 날리고 있다. 2024.4.2

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2회말 한화 안치홍이 안타를 날리고 있다. 2024.4.2 ⓒ 연합뉴스

 
마치 수학처럼 스포츠에 절대불변의 법칙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때론 경기의 흥행을 위해 혹은 수익 창출을 위해 새로운 규칙이 등장하곤 한다. 예를 들어 "5회 이후 경기 속행이 불가능하다면 다득점 팀을 승자로 정한다"는 콜드 게임 규칙이 그렇다. 왜 하필 5회일까? 그만큼 경기를 치러야 승패를 알 수 있다는 논리적인 의도는 아니다. 이는 입장 수입을 위해 프로야구선수전국협회(NAPBP)가 만든 일종의 환불 규정이었다.

때로 스포츠 규칙은 스포츠 정신보다 상업적 이유를 따르기도 하고, 반대로 드라마틱한 경기 흐름과 정확도를 위해 개선된다. 그렇다면 2024년부터 KBO(한국프로야구)에 도입된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아래 ABS), '피치클록'(투구 시간제한)은 어떨까. 공정성과 경기의 효율성을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개막한 지 2주가 지난 지금까지 선수들,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팽팽히 엇갈렸다. 과연 KBO가 던진 변화구는 야구계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심판 사라지고 AI가 빈자리 차지했다

KBO는 리그 운영의 공정성을 강화하고 볼·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한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른바 '로봇 심판'이라 불리는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를 도입했다. ABS는 타자의 키에 알맞은 스트라이크 존을 자동으로 설정한다. 상하 기준은 각각 지면으로부터 선수 신장의 27.64%에서 56.35%까지다. 해당 비율은 기존 심판 스트라이크 존의 평균 상·하단 비율을 기준으로 삼았다.

ABS 도입에 선수들의 희비가 갈렸다. 자신만의 스트라이크 존이 확실한 선수들은 살아남았다. 대표적으로 SSG의 박성한이 있다. 남다른 선구안으로 유명한 그는 자신만의 스트라이크-볼 구분법이 확실하다. 하지만 지난 시즌 동안 자신이 변화구라 판단한 공이 스트라이크가 되었을 때 당황한 모습을 보였고, 심판 판정에 따라 변화하는 존의 위치에 혼란스러움을 겪었다. SSG 전력 분석팀은 지난해 볼·스트라이크 판정에서 가장 손해를 많이 본 선수로 박성한을 지목하기도 했다.

그러나 ABS 도입 이후 박성한의 타율은 0.276이지만, 출루율은 0.462를 기록, 벌써부터 유격수 골든 글러브의 강력한 후보로 급부상했다. 시즌 초반 치른 8경기서 무려 10개의 볼넷을 골라낸 선구안이 그 비결이다. 박성한은 웃었지만, 같은 SSG 동료인 한유섬은 좌절했다. 한유섬은 190cm의 높은 신장을 자랑하는 타자다. ABS는 그의 신장을 기준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했다.

문제는 한유섬의 타격폼이다. 타격할 때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추는 유형이기에 비슷한 신장을 지닌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이 낮다. 그럼에도 ABS에는 타격 자세에 따른 보정이 적용되지 않기에 번번이 그가 칠 수 없는 높은 코스의 공에도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온다. 다행히 한유섬은 중요한 순간에 타점을 쓸어 담고 있지만, 아직까진 그답지 않은 아쉬운 타율(0.211)이다.

타자보다 ABS 도입에 직격탄을 맞은 건 공을 잡는 포수다. 스트라이크를 살짝 벗어나는 공을 미트로 잡자마자 끌어올리거나 당겨서 심판의 눈을 속이는 '프레이밍' 기술은 좋은 포수를 판단하는 아주 중요한 기준 중 하나였다. 반대로 낮은 코스의 스트라이크를 미트로 덮으면서 잡으면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났다는 억울한 판정을 받아, 팬들의 비난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ABS 도입으로 이러한 '프레이밍'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베테랑 포수로 꼽히던 선수들은 모두 심판대에 올랐다. 프레이밍 기술이 아닌 볼 배합이나 블로킹, 도루 저지 등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만 한다. ABS의 정착은 '아직'이다. 각 구장 홈플레이트를 향해 설치된 카메라의 각도가 그 기준인데 구장별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 관계자 의견이다. 지난 17일 시범 경기 이후 류현진은 언론 인터뷰에서 "구장마다 조금씩 스트라이크 존이 다르다. 선수들이 그것을 빨리 캐치를 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이미 KBO는 변화했다. 이제 와서 그 변화를 중단하거나 역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KBO가 새롭게 도입한 제도에 선수들이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의 유명한 문장이 생각나는 시점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한 종이 강한 것이다."
 
팬을 위한 피치 클록? KBO 팬들의 진짜 속마음은
 
 1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시범경기. 피치 클록이 시범 운영되고 있다. 2024.3.18

1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시범경기. 피치 클록이 시범 운영되고 있다. 2024.3.18 ⓒ 연합뉴스

 
ABS와 함께 도입한 제도는 투수의 투구 시간을 제한하는 '피치 클록'이다. 투수는 주자가 있을 때는 23초 안에, 주자가 없을 시에는 18초 안에 투구를 완료해야 한다. 타자는 잔여 시간이 8초 남았을 때까지 타격 준비를 마쳐야 하고 포수는 9초 남은 시점까지 포수석에 위치해야 한다. 당초에는 올해 하반기부터 정식 도입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현장의 반발이 계속되자 KBO는 올해까지는 시범 운영을 이어가겠다고 발표했다.

아직 정식 도입이 아니기에 시간을 넘기더라도 단순 경고에 그친다. 그러나 구단별 위반 횟수가 집계되고 있기 때문에 팬들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고안된 제도지만, 여전히 관계자와 팬들 모두에게 좋지 않은 반응이다. 

시범 경기를 치른 LG 염경엽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준비 과정이 많은 포수에겐 불이익이 될 것"이라 전했고 kt 이강철 감독 또한 "경기의 템포를 끊게 되는 시스템이 선수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치 클록의 최대 수혜자는 경기를 지켜보는 '팬'이라는 관계자 예측과 달리, 팬들의 반응 역시 "이해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야구팬 A씨는 "선수들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루틴이 있다. 그 루틴을 지켜보는 것도 경기의 일부였는데 이젠 사라졌다"며 "야구의 큰 특징은 시간 제한이 없다는 것인데 그게 사라졌을 때 이득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B씨 또한 "규정은 있지만 팀들마다 '그래도 지키자', '지켜서 뭐 하냐' 등 반응이 엇갈린다"며 "경기 시간을 줄이든, 늘리든 팬들 만족도는 경기 퀄리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MLB(미국프로야구)는 피치 클록의 도입으로 경기 시간을 약 24분이나 단축했다. 경기는 하되, 시간을 줄이겠다는 '가성비' 새 규정은 과연 KBO 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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