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개막했다. 긴 겨울을 참고 기다린 야구팬들에겐 드디어 한 해가 시작된 것이다. 10개 구단이 가을야구, 나아가 한국시리즈 최정상에 오르는 꿈을 목표로 6개월 여의 여정에 돌입한다.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인생사 모든 감정이 녹아 흘러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불리는 야구에 수많은 이들이 노력과 애정을 쏟아 부을 태세다.
 
인생이 녹아 있는 스포츠라 부르니 만큼 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적지가 않다. 한국에서도 <슈퍼스타 감사용> <퍼펙트 게임> <스카우트> <글러브>와 같은 작품이 관객과 만났다. 이들 영화가 야구라는 스포츠의 진수를 보이진 못했다지만 조금쯤 관객의 마음을 들어 움직였음은 분명한 일이다.
 
최고의 야구영화는 무엇일까. 영화 깨나 본이라면 어김없이 한 편의 작품을 말할 것이다. 뛰어난 작품이 여럿이지만 이 영화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은 전에도 후에도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머니볼>이 바로 그 영화다.
 
머니볼 포스터

▲ 머니볼 포스터 ⓒ 컬럼비아 픽처스

 
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여정
 
때로 역사를, 시대를, 문화를 바꿔내는 발상이 있다. 지중해와 홍해 사이 수로를 뚫는다는 발상 전까지 유럽과 아시아는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소위 '폭격기 마피아'라 불린 젊은 장교집단이 있기 전까지 폭격이란 야간에 출격하여 무차별적으로 폭탄을 쏟아 붓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스포츠 영역 안에도 이와 같은 사례가 있다. 리누스 미헐스의 '토털풋볼' 이전까지 공격수가 수비에 가담하는 일은, 또 수비수가 공격에 가세하는 일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농구에선 과거 박스 안 빅맨에 의존하던 흐름에서 넓게 진용을 펼치고 외곽슛을 중시하는 '스페이싱' 플레이가 새로운 흐름으로 대두됐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 '머니볼'을 빼놓고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빌리 빈은 '머니 볼' 플레이의 상징적 존재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소속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을 역임한 빌리 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야구 단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에게 오늘의 명성을 안긴 것이 바로 '머니 볼'이다. 기실 '머니 볼'이란 말은 경영학 베스트셀러 <머니볼>에서 왔다. 빌리 빈의 구단 운영을 다룬 이 책은 그가 어떻게 메이저리그에 큰 파급을 미쳤는지를 주목해 미국사회에 큰 화제를 일으켰다.
 
머니볼 스틸컷

▲ 머니볼 스틸컷 ⓒ 컬럼비아 픽처스

 
메이저리그 최고의 단장, 빌리 빈의 실화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LA 다저스 같은 인기 팀에 비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적은 예산으로 팀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지역 기반이 약한 데다 인기와 광고를 붙여줄 기업 또한 적어서 매년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것이다. 자연히 몸값 비싼 스타선수들을 사오지도 못하고 기껏 키운 스타들을 다른 팀으로 보내면서 유망주를 키워 그 자리를 메꿔야만 했다. 그러나 빌리 빈이 단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팀은 저보다 몇 배는 부유한 팀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성적을 기록한다. 2002년엔 리그 역사상 최고기록인 20연승을 구가했을 정도다.
 
바로 그 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2002년을 다룬 영화가 <머니볼>이다. 2001년 부임 4년 차인 빌리 빈(브래드 피트 분) 단장은 디비전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만나 탈락한다. 5전3선승제인 시리즈에서 2승을 먼저 거두고도 내리 3연패해 떨어지고 만 것이다. 당시 팀엔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 제임스 지암비, 주목받는 리드오프 자니 데이먼과 같은 스타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시즌이 끝난 뒤 다른 팀으로 이적을 결정한다.
 
영화는 빈 단장이 새 시즌을 맞는 과정을 다룬다. 구단주는 더 이상의 투자는 없다고 일찌감치 선을 긋는다. 시즌 시작을 앞두고 빠져나간 전력을 메우기 위해 단장은 동분서주한다. 그때 그에 눈에 든 이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근무하던 피터 브랜드(조나 힐 분). 예일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해 야구단에 취업한 그에게 빈 단장은 남다른 자질을 발견한다. 기존 야구인들이 야구를 완전히 몰이해하고 있다는 브랜드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 그는 마침내 그를 발탁해 고용한다. 시즌을 앞둔 첫 번째 영입이었다.
 
머니볼 스틸컷

▲ 머니볼 스틸컷 ⓒ 컬럼비아 픽처스

 
기존 통계에서 비껴난 가치를 움켜쥐다
 
브랜드는 세이버매트릭스를 바탕으로 선수를 분석해나간다. 50명이 넘는 저평가된 선수 명단을 빈 단장에게 제출해, 그들을 영입해 팀을 보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한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 기존 야구에서 중시하는 기록, 타율과 안타, 홈런과 같은 통계에 가려진 가치 있는 자질을 갖춘 선수들이다. 이를테면 타율은 보잘 것 없지만 출루율이 높고, 우스꽝스러운 폼으로 스카우터들이 고개를 저을 지라도 내실이 있는 이들이다.
 
빈은 다른 팀이 관심 갖지 않는 선수들을 하나둘 사모아 전력을 강화해 나간다. 부상으로 더는 공을 던질 수 없게 된 포수 출신 스캇 해티버그를 1루수로 변신시키는 등 파격적 조치도 감행한다. 기존 스카우터들은 전통적인 평가 잣대를 들이대며 저의 방식을 고수하려들지만 빈은 그들을 해고하면서까지 변화를 감행한다.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을 겪으면서도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빈과 팀이 마침내 반등에 성공하는 과정이 적잖이 극적으로 그려진다.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긴 하지만 온전히 사실 그대로라 보기엔 미진한 구석이 있다. 해티버그가 20연승에 방점을 찍는 결정적 역할을 해내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고는 하지만 그와 같은 선수를 주역으로 삼은 데는 다른 의도도 있었던 것이다. 팀엔 아직 연봉이 높진 않아도 가능성이 충만한 유망한 선수들이 여럿 포함돼 있었다. 올스타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자질 있는 선수만 대략 대여섯이 될 정도. 그를 바탕으로 전년도에 이어 2002년에도 100승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인데, 영화는 최대한의 극적 효과를 위하여 이를 약팀의 기적적 승리 쯤으로 묘사하고 넘어간다.
 
머니볼 스틸컷

▲ 머니볼 스틸컷 ⓒ 컬럼비아 픽처스

 
통념을 바꾸는 변혁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럼에도 빈 단장의 팀 운영이 다른 팀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서 절실하게 이뤄졌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격히 적은 예산은 바꿔낼 수 없는 현실이었고, 그로부터 몸값이 높아진 선수를 잡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아직 주류가 되지 못한 과학적 분석법인 세이버 매트릭스를 적극 도입해 활용했고, 팀을 우승을 놓고 경쟁하는 강팀으로 이끌었다.
 
영화는 원작 격인 책 <머니볼>이 그러하듯 빈 단장 개인의 이야기와 팀 운영을 적절히 버무려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성공기를 써나간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우승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다른 많은 변혁이 그러하듯 마침내 통념을 바꾸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낸다. 오늘에 이르러 과학적 분석을 활용하지 않는 구단은 없다고 해도 좋다. 더는 감만 믿고 선수를 스카우트하거나 팀을 운영하는 일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로부터 야구는 한층 진화하게 되었다.
 
<머니볼>은 통념을 바꿔내는 변혁이 어떻게 이뤄지는 지를 그린 작품이다. 야구를 넘어 경영과 삶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치고 던지고 잡고 달리는 것을 넘어 야구에 더 넓은 지평이 있음을 알도록 한다. 이제 막 개막한 시즌, 야구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은 이라면 <머니볼>보다 좋은 선택지는 많지 않을 테다.
 
머니볼 스틸컷

▲ 머니볼 스틸컷 ⓒ 컬럼비아 픽처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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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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