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인기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는 엄청난 곤경에 처했다. 바로 대형 포털사이트에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아래 타진요)'라는 카페가 생겨 타블로의 학력(스탠퍼드 대학교 영문학)을 집중적으로 의심했기 때문이다. 이 카페에서는 타블로에게 '학력위조'라는 거짓 누명을 씌워 여론몰이를 했고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당사자는 정상생활이 힘들어질 정도로 큰 고통을 겪었다. 

타진요의 의심과 공격은 타블로가 졸업한 대학의 증빙자료를 공개한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이야 지난 일처럼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 '타진요 사건'은 대통령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갔을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타진요 사건은 사회 안의 불특정 다수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사람 또는 소수를 거세게 몰아붙여 대상이 된 인물이나 집단을 곤경에 빠트리는 행위인 '마녀사냥'의 단적인 예였다.

이처럼 세상은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 만큼이나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묻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만약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이 주변에서 떠도는 소문만으로 마치 나쁜 일을 저지른 것처럼 매도 당한다면 훗날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당사자에게는 커다란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시골 동네의 평범한 유치원 교사를 순식간에 파렴치한 성추행범으로 만들었던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영화 <더 헌트>처럼 말이다.
 
 매즈 미켈슨에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더 헌트>는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매즈 미켈슨에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더 헌트>는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 (주)엣나잇필름

 
2012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배우

덴마크 출신의 배우 매즈 미켈슨은 유년기에 기계체조를 하다가 고등학교 때 키가 급격히 자라면서 스웨덴의 발레학교로 진학해 댄서로 전향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프로 댄서로 활동했던 미켈슨은 1996년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범죄스릴러 <푸셔>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미켈슨은 윈딩 레픈 감독과 좋은 호흡을 과시하며 1999년 <블리더>, 2003년 <푸셔2>, 2009년<반할라 라이징>에도 차례로 출연했다.

데뷔 초기만 해도 덴마크와 스웨덴 등 북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세계 관객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미켈슨은 2004년 <킹 아더>에서 중세 유럽의 기사 트리스탄을 연기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그리고 2006년에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첫 번째 007 영화였던 <카지노 로얄>에서 국제테러조직의 자금줄인 악역 르 쉬프르를 연기하면서 세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이후 유럽과 미국을 넘나들며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이던 미켈슨은 2012년 고국인 덴마크에서 빈터베르그 감독의 <더 헌트>에 출연했다. 평범한 유치원 교사가 아동성추행범으로 몰리면서 마녀사냥을 당하고 고통을 받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더 헌트>는 201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주인공 루카스를 연기한 미켈슨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2013년 시즌 3까지 제작된 드라마 <한니발>에서 연쇄살인마 한니발 렉터를 연기한 미켈슨은 2016년 두 편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는 도르마무의 부하 케실리우스를 연기했고 연말에 개봉한 <로그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는 은하제국의 과학자 갤런 어소 역을 맡았다. 그리고 미켈슨이 출연한 두 편의 영화는 도합 17억 3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2017년 아이슬란드 영화 <아틱>, 2019년 독일 영화 <폴라> 등에 출연한 미켈슨은 2020년 빈터베르그 감독과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어나더 라운드>에 출연했다. 그리고 <어나더 라운드>는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 이제는 덴마크와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가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로 인정 받고 있는 미켈슨은 지난 4월에 개봉했던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에서 메인빌런 갤러트 그린델왈드를 연기했다.

아이의 거짓말로 악인이 된 남자 이야기
 
 매즈 미켈슨은 <카지노 로얄>,<닥터 스트레인지> 등에서 악역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매즈 미켈슨은 <카지노 로얄>,<닥터 스트레인지> 등에서 악역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주)엣나인필름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과 떨어져 살지만 고향친구들과 어울리며 유치원 교사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루카스(매즈 미켈슨 분)는 친구 테오(토머스 보 라센 분)의 막내딸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 분)와 남다른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클라라는 부모님이 집에 없던 어느 날, 음란물을 보던 오빠와 오빠 친구들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짓궂은 장난을 당하게 되고 충격을 받은 클라라는 원장 선생님에게 루카스가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루카스는 당연히 이를 부정했지만 클라라의 애매모호한 답변을 들은 유치원 원장과 아동 상담원은 '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믿음 하에 루카스의 성추행을 확신했다. 루카스는 절친이자 클라라의 부모인 테오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테오와 그의 아내에게 쫓겨났다. 클라라는 뒤늦게 루카스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클라라의 엄마는 "네 무의식이 끔찍한 기억을 차단한 거란다"는 말로 루카스를 다시 한 번 범인으로 몰아갔다.

그렇게 마을에서 파렴치한 아동성추행범으로 몰린 루카스는 경찰에 잡혀가지만 지하실에서 범행을 당했다는 아이들의 진술과 달리 루카스의 집에는 지하실이 없었다. 이는 모두 루카스를 범인으로 만들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마녀사냥'이었던 것이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루카스는 크리스마스날 교회에서 자신을 믿지 않았던 테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며 "내 눈을 봐! 뭐가 보여? 아무 것도 없어... 아무 것도 없다고"라고 소리치며 울분을 토한다.

테오는 늦은 밤 루카스의 집에 술과 크리스마스 음식을 선물하며 용서를 구하고 두 사람은 화해를 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된다. 1년의 시간이 지난 후 아들 마커스(라세 포겔스트뤔 분)와 함께 인근 산으로 사냥을 나온 루카스는 사슴떼를 지켜보며 생각에 잠긴 사이 자신에게 총을 쏘고 사라진 남자를 발견한다. 모든 오해가 풀렸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루카스에 대한 세상의 그릇된 시선은 여전히 남아있던 것이다.

아동성추행과 마녀사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더 헌트>는 국내에서 2013년 1월에 개봉했다. 하지만 주로 예술영화관에서 상영되면서 전국 3만 5천 관객으로 흥행이라 부를 만한 성적을 올리진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렇게 관객들에게 잊힌 영화가 되던 <더 헌트>는 지난 2014년 CGV에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매즈 미켈슨의 기획전을 열면서 1년 만에 다시 한 번 관객들을 만났다. 

데뷔작에서 섬세한 연기 보여준 아역배우
 
 클라라 역을 맡은 아니카 베데르코프는 겁에 질려 거짓말을 하는 어린아이 연기를 잘 소화했다.

클라라 역을 맡은 아니카 베데르코프는 겁에 질려 거짓말을 하는 어린아이 연기를 잘 소화했다. ⓒ (주)엣나인필름

 
덴마크의 국립영화학교 출신의 빈터베르그 감독은 졸업작품 <마지막 라운드>로 유럽영화계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8년 <셀레브레이션>을 통해 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비롯해 5개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일약 스타감독으로 떠올랐다. 2003년 <올 어바웃 러브>, 2004년 <디어 원더> 등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던 빈터베르그 감독은 2012년 감독과 각본, 프로듀서, 단역 출연까지 1인 4역을 맡은 <더 헌트>를 선보였다.

<더 헌트>는 매즈 미겔슨에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겼고 빈터베르그 감독도 벤쿠버영화제 관객상과 유럽영화상 각본상을 받으며 그 역량을 인정 받았다. 2016년 <사랑의 시대>, 2018년<쿠르스크>를 연출한 빈터베르그 감독은 2020년 <어나더 라운드>를 통해 아카데미 국제 장편영화상을 비롯해 9개 영화제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비롯한 주요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미켈슨의 데뷔작 <푸셔>와 2020년작 <어나더 라운드>에 함께 출연했던 토머스 보 라센은 <더 헌트>에서 루카스의 절친 테오를 연기했다. 친구가 딸을 성추행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내 딸을 건드린 거면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지"라는 말로 루카스에게 분노를 드러내지만 영화 막판 친구의 진심을 깨닫고 루카스에게 용서를 구한다. 물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딸이 절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면 이를 참을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사용자가 많다는 검색엔진에서 찾아봐도 클라라를 연기했던 아니카 베데르코프의 필모그라피는 <더 헌트>와 2017년작 <맨 디바이디드> 두 편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아니카 베데르코프에게 <더 헌트>는 데뷔작이라는 뜻인데 아니카는 데뷔작에서 엄청난 명연기를 선보인 셈이다. 특히 아동상담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겁에 질려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는 장면은 어지간한 성인배우도 표현하기 힘든 섬세한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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