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출품이나 기록 등 특수목적(?)을 위해 만들어지는 일부 영화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업영화들은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대형자본의 투자를 받아 만들어지는 모든 상업영화들이 극장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대작들과의 경쟁에 밀리거나 적당한 개봉시기를 놓친 영화들이 극장에 걸리지 못한 채 곧바로 OTT서비스나 IPTV 시장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한국은 할리우드에서 손에 꼽히는 중요한 시장이지만 그렇다고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모든 상업영화가 국내 극장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꽤나 잘 알려진 배우가 출연하고 흥행성적이 비교적 좋았던 영화들 중에서도 국내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곧바로 비디오나 IPTV를 통해 공개되는 작품도 적지 않다. 벤 스틸러와 오웬 윌슨, 밀라 요보비치 등이 출연했던 B급 감성의 코미디 영화 <쥬랜더>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북미에서 2009년에 개봉해 세계적으로 1억 200만 달러의 쏠쏠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던 이 영화 역시 국내 극장에서는 감상할 수 없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1980~1990년대 인기배우로 군림한 빌 머레이와 우디 해럴슨, 할리우드의 유망주였던 제시 아이젠버그와 엠마 스톤이 출연한 유쾌한 영화임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국내에서는 IPTV를 통해 유명세를 얻으며 뒤늦게 재조명된 유쾌한 호러액션 영화 <좀비랜드>다. 
 
 <좀비랜드>는 세계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음에도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못했다.

<좀비랜드>는 세계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음에도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못했다. ⓒ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최고의 여성배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카톨릭계 사립 학교를 다니던 엠마 스톤은 11살 때 청소년 연극에 출연하며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14살 때 부모님 앞에서 공연을 하는 열정을 보인 끝에 허락을 받아낸 엠마 스톤은 15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와 함께 LA에서 홈스쿨링을 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몇몇 시트콤에 조단역으로 출연하던 엠마 스톤은 2007년 성인 코미디영화 <슈퍼배드>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여러 영화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던 엠마 스톤은 2009년 <좀비랜드>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위치타를 연기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좀비랜드>는 국내에서 개봉조차 하지 못했지만 북미에서는 2013년 < 월드워Z >가 개봉하기 전까지 좀비영화 최고 흥행성적을 보유했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좀비랜드> 이후 인지도가 상승한 엠마 스톤은 2011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작품상 후보에 오른 <헬프>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헬프>를 통해 2010년대를 이끌어갈 젊은 여성배우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엠마 스톤은 2012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의 여자친구 그웬 스테이시를 연기했다. 비록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두 편 만에 시리즈가 마무리됐지만 엠마 스톤이 보여준 그웬의 미모와 매력은 전 세계 관객들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엠마 스톤은 2014년 <버드맨>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또 다시 뛰어난 연기력을 뽐냈다.

그렇게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매력을 뽐내던 엠마 스톤은 2016년 데미언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에서 미아 역을 맡으며 '인생연기'를 선보였다. 단 3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라라랜드>는 제작비의 15배에 가까운 4억 4800만 달러라는 놀라운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엠마 스톤은 <라라랜드>로 베니스 영화제와 미국, 영국 아카데미, 골든글러브의 여우주연상을 싹쓸이하며 배우로서 전성기에 올라섰다.

2018년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의 하녀 에비게일을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엠마 스톤은 2019년 <좀비랜드: 더블 탭>을 통해 10년 만에 위치타로 돌아왔다. 전편 못지 않은 B급 유머들이 가득한 <좀비랜드:더블 탭>은 1편보다 높은 1억 2200만 달러의 성적을 올렸다. 엠마 스톤은 작년에도 <101마리 달마시안>의 스핀오프 실사 영화 <크루엘라>에 출연해 2억 3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이렇게 화려한 캐스팅의 영화가 왜 개봉도 못했을까
 
 <좀비랜드>로 주연 데뷔를 한 엠마 스톤은 8년 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좀비랜드>로 주연 데뷔를 한 엠마 스톤은 8년 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좀비 강국(?)이다. 2015년 <부산행>으로 시작된 한국의 좀비 콘텐츠는 2019년과 2020년 <킹덤 시즌1, 2>와 <살아있다>를 거쳐 지난 1월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공개 24일 만에 누적 시청시간 5억 3600만 시간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달렸다. 따라서 <좀비랜드>가 최근에 공개됐다면 국내에서 개봉조차 되지 못하는 굴욕(?)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당시를 기준으로 봐도 <좀비랜드>의 국내 미개봉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우디 헤럴슨의 경우 1990년대부터 <올리버 스톤의 킬러>와 <은밀한 유혹> <덩크슛>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에 출연했던 인기배우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1년 후 <소셜 네트워크>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특급 유망주였다. 올드팬들이라면 <고스트 버스터즈>와 <사랑의 블랙홀>에 출연한 빌 머레이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을 것이다.

<좀비랜드>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부산행>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 등 한국 작품 속에 등장하는 좀비들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단 소리와 피 냄새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좀비랜드>의 좀비들은 한국 작품 속에 등장하는 좀비들 만큼 빠르진 않다. 대신 높은 놀이기구 위로 도망친 위치타(엠마 스톤 분)와 리틀 락(아비게일 브레스린 분)이 있는 곳까지 기어 올라갈 정도로 활동반경이 넓고 집요하다.

대부분의 좀비영화들이 좀비사태로 인해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것을 다루는 것과 달리 <좀비랜드>에서는 오히려 좀비사태로 주요 인물들이 가족처럼 가까워진다. 따라서 일부 관객들은 <좀비랜드>를 좀비물의 탈을 쓴 '휴머니즘 로드무비'로 분류하기도 한다. 물론 < 28일 후 >나 <새벽의 저주> 같은 정통 좀비물(?)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좀비랜드>는 장르의 법칙을 비틀어 또 다른 재미를 만든 신선한 작품이다.

<좀비랜드>는 개봉 10주년이 된 2019년 속편에 해당하는 <좀비랜드: 더블 탭>이 개봉했다. 우디 해럴슨은 물론이고 <좀비랜드> 이후 대스타가 된 엠마 스톤과 제시 아이젠버그도 기꺼이 속편에 출연했다. <좀비랜드: 더블 탭>은 세계적으로 1억 2200만 달러로 전편을 능가하는 흥행수익을 올렸지만 국내에서는 2019년 11월에 개봉해 전국 13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빌 머레이와 엠버 허드의 짧고 굵은 활약
 
 좀비들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좀비로 분장한 빌 머레이는 총에 맞고 허무하게 사망한다.

좀비들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좀비로 분장한 빌 머레이는 총에 맞고 허무하게 사망한다. ⓒ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차를 타고 할리우드에 도착한 주인공 일행은 탤러해시(우디 해럴슨 분)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빌 머레이의 집에 찾아간다. 빌 머레이는 <좀비랜드>에서 본인 역으로 출연했는데 좀비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안에서도 좀비 분장을 하는 특이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하지만 빌 머레이의 분장 사실을 알지 못했던 콜롬버스(제시 아이젠버그 분)가 갑자기 나타난 머레이의 가슴에 총을 쏘면서 다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

빌 머레이는 세상을 떠나면서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을 물은 리틀 록의 질문에 "<가필드>를 찍은 것"이라고 말하고 숨을 거둔다. <가필드>는 지난 2004년 빌 머레이가 목소리 연기를 했던 애니메이션으로 영화는 세계적으로 2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지만 작품은 상당한 혹평을 받았다. 2003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멋지게 재기에 성공한 빌 머레이에게는 흑역사와도 같은 작품인 셈이다. 
 
<좀비랜드> 초반부에는 집에서 게임에 열중하던 콜럼버스의 집에 406호에 사는 아주 매력적인 이웃집 여성이 찾아온다. 콜럼버스는 집에 노숙자가 찾아 왔다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406호 여성을 친절하게 달래지만 콜럼버스의 어깨에 기대 잠든 406호 여성은 잠에서 깨어보니 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좌변기 덮개를 이용한 두 번의 강력한 공격으로 처음으로 만난 좀비를 무찌르는 데 성공한다.

406호 여성을 연기한 배우는 바로 섹시하고 고혹적인 이미지로 사랑 받는 배우 엠버 허드였다. <좀비랜드>에서 406호 역으로 출연해 관객들에게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엠버 허드는 2018년 DC의 히어로 영화 <아쿠아맨>에서 제벨의 공주 메라를 연기했다. <아쿠아맨>은 세계적으로 11억 4800만 달러의 엄청난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엠버 허드는 <아쿠아맨>을 통해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좀비랜드 루벤 플레셔 감독 엠마 스톤 제시 아이젠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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