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종합순위 3위를 기록한 중국은 자국에서 열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 러시아 등을 제치고 종합 1위를 차지했다(금메달 우선 기준). 중국은 이후 3번의 올림픽에서도 한 번도 3위 밖으로 내려간 적 없이 스포츠 강국의 위용을 지켜 왔다. 특히 탁구와 배드민턴 등 일부 종목에서는 올림픽 결승에서 자국 선수들끼리 맞붙는 게 익숙할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4년마다 하계 올림픽 종합 1위를 노리는 중국도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라 할 수 있는 축구에서는 유독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이 본선에 자동 진출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중국은 본선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무려 9골을 실점하며 광탈했다. 중국은 한창 진행되고 있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4경기에서 1승 3패로 B조 6개국 중 5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중국이 이 영화처럼 축구에 소림권법을 접목시킬 수 있었다면 월드컵 출전은 말할 것도 없고 월드컵 우승도 결코 꿈이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는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중국에서는 배우로 최고의 길을 달리다가 감독으로도 승승장구하며 중국 영화 최초로 흥행성적 30억 위안을 돌파한 감독이 된 주성치가 그런 영화를 만든 바 있다. 바로 주성치 영화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기 적당한 스포츠 코미디 <소림축구>다.   
 
 <소림축구>는 개봉하자마자 홍콩 흥행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소림축구>는 개봉하자마자 홍콩 흥행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 시네마서비스

 
출구가 없는 주성치 영화의 매력

주성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세상은 주성치를 좋아하는 사람과 주성치를 모르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정의한다. 주성치를 모를 수는 있지만 주성치를 알면 도저히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정도로 마니아들 사이에서 주성치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국내에도 주성치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주성치 영화를 즐기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독특한 작품 세계 때문에 호불호가 제법 크게 갈리는 편이다.

1990년 '도박 영화의 이단아' <도성>으로 스타덤에 오른 주성치는 <도학위룡> <신정무문> <녹정기> <무장원소걸아> <당백호점추향> <서유기> <007북경특급> <파괴지왕> <식신> <희극지왕> 등 많은 영화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웃음 코드를 앞세워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1990년대 초·중반 주성치가 출연하는 영화는 개봉만 하면 홍콩박스오피스 1위는 기본이고 역대 홍콩 박스오피스 기록도 자주 경신하곤 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시장을 주목한 주성치는 2001년 본인이 감독, 각본, 주연을 맡은 신작 <소림축구>를 선보였다. <소림축구>는 1996년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4>가 세운 홍콩의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5년 만에 갈아 치웠고 한국에서는 2002년 5월에 개봉해 서울에서 2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국내에서는 마니아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해적판을 미리 감상하는 바람에 흥행에서 다소 손해를 봤다).

<소림축구>의 흥행으로 자신감이 붙은 주성치는 2004년 자신의 꿈을 담은 영화 <쿵푸허슬>을 선보였다. <쿵푸허슬>은 개봉 첫날부터 <소림축구>의 오프닝 기록을 뛰어 넘었고 북미에서는 단 7개관에서 개봉했다가 입소문을 타고 스크린수가 2500개까지 늘어나 1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쿵푸허슬>이 세계적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제작비의 5배가 넘는 1억 달러에 이른다.

주성치는 2008년 자신의 코믹한 정서를 대거 걷어낸 가족영화 <장강7호>를 선보였고 2013년에는 연출에만 참여한 <서유기 : 모험의 시작>으로 중국에서 역대 최고의 흥행 성적을 올리며 감독으로서 능력을 인정 받았다. 그리고 2016년에 개봉한 <미인어>는 중국 영화 최초로 '30억 위안 클럽'에 등극했다. 국내 팬들에게 '루저들의 별'로 불리는 주성치는 지난 2019년에도 <신 희극지왕>을 연출하며 감독으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축구를 통해 쿵푸의 위대함을 알리는 영화
 
 주성치는 코미디 배우로 널리 알려졌지만 어린 시절부터 액션배우를 꿈꾸던 '이소룡 키즈'이기도 했다.

주성치는 코미디 배우로 널리 알려졌지만 어린 시절부터 액션배우를 꿈꾸던 '이소룡 키즈'이기도 했다. ⓒ 시네마서비스

 
<소림축구>를 아직 감상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미리 알아둬야 할 사전정보가 있다. 제목에 축구가 들어가고 소림축구단이 중국 슈퍼컵에서 우승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2002 월드컵 시즌에 개봉했지만 <소림축구>의 주제는 놀랍게도 '축구'가 아니다. 주인공 싱(주성치 분)은 소림무술을 이용해 축구왕이 되려는 사람이 아니라 축구를 통해 소림무술의 위대함을 전파하려는 '뼛속까지 무도인'이다. 

싱은 왕년의 황금오른발 봉(오맹달 분)과의 첫 만남에서 "쿵푸는 사실 남녀노소에게 다 좋죠. 때리고 죽이는 데 사용된다고 다들 잘못 알고 있지만 쿵푸는 예술이에요. 불굴의 정신으로 저도 계속 쿵푸를 새롭게 만들 방법을 찾고 있죠. 사람들에게 쿵푸의 참뜻을 알려 주려고요"라고 이야기한다. 쿵푸에 대한 싱의 철학이자 <소림축구>의 감독 주성치의 철학이었다. 주성치는 코미디 배우로 대성했지만 이소룡을 흠모했던 '이소룡 키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싱이 함께 수련했던 형제들을 모아 축구를 배우고 연습경기 도중 잃어버렸던 무공을 되찾는 장면은 통쾌함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폭력 축구를 일삼는 동네 축구팀과의 친선경기에서 대사형(황일비 분)이 굴욕을 당하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 오더니 대사형을 비롯한 소림축구단 멤버들이 모두 각성한다. 그렇게 폭력축구단을 혼내주는 소림축구단은 비로소 하나로 뭉치게 된다.

소림축구단이 중국 슈퍼컵 토너먼트에 출전해 우승을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지만 <소림축구>에서는 싱과 아매(조미 분)의 러브라인에도 제법 많은 정성을 쏟았다. 특히 아매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친구로 지내자며 아매에게 상처를 준 싱이 아매의 눈물 섞인 짠 만두를 먹고 아매의 사랑을 깨닫는 장면은 여느 멜로 영화 못지 않게 애틋하다(싱에게 상처를 받은 아매는 삭발을 단행하고 소림축구단의 새 골키퍼로 합류한다).

<소림축구>는 1990년대 초·중반의 주성치 영화들에 비하면 특유의 B급 유머코드가 약한 편이다. 하지만 정의의 사도처럼 폼을 잡다가 허약해 보이는 깡패에게 돈을 빼앗는 싱의 반전이나 싱이 아매의 얼굴을 드러내자 뜬금없이 등장하는 파리 CG, 그리고 아매가 골키퍼로 교체된 후 비장하게 걸어가다가 상대팀 골포스트에 부딪히는 장면 등에서는 주성치 특유의 웃음 코드를 찾을 수 있다.

'영혼의 파트너' 오맹달과 함께 한 마지막 영화
 
 <소림축구>는 무려 21편의 영화를 함께 한 오맹달(왼쪽)과 주성치가 호흡을 맞춘 마지막 작품이다.

<소림축구>는 무려 21편의 영화를 함께 한 오맹달(왼쪽)과 주성치가 호흡을 맞춘 마지막 작품이다. ⓒ 시네마서비스

 
이문세에게 오로지 그를 위해 곡을 쓰던 고 이영훈이라는 동반자가 있었던 것처럼 주성치와 오맹달 역시 영원히 함께 할 거 같은 '영혼의 파트너'였다. 실제로 오맹달은 주성치의 출세작 <도성>을 시작으로 <소림축구>까지 10여 년의 시간 동안 무려 21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오맹달의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주성치 영화에 나오는 콧수염 아저씨'는 알 정도로 주성치와 오맹달은 서로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주성치와 오맹달은 <소림축구>에서도 소림축구단의 스트라이커와 감독을 연기하며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하지만 주성치는 신작 <쿵푸허슬>을 준비하며 오맹달을 캐스팅하지 않았고 드라마 주연 제의까지 거절하며 주성치의 러브콜을 기다렸던 오맹달은 주성치에게 크게 서운함을 느꼈다고 한다. <소림축구>이후 한 번도 주성치와 작품을 함께 하지 않은 오맹달은 지난 2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림축구>와 <쿵푸허슬>은 '쿵푸'라는 주제가 같기 때문인지 출연진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소림축구>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막내 물삼겹을 연기한 임자총은 <쿵푸허슬>에서도 주성치의 오른팔 물삼겹(심지어 역할 이름마저 똑같다)으로 출연했다. 이 밖에 <소림축구>에서 주성치의 음악세계를 칭찬하며 뜬금없이 웃음을 주던 하문휘도 <쿵푸허슬>에서 이발소 주인 역으로 짧게 출연했다. 

<쿵푸허슬>에서 악역을 담당하던 도끼파에서도 <소림축구>의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 <쿵푸허슬>의 도끼파 두목 진국곤은 <소림축구>에서 이소룡을 닮은 사사형 번개손 골키퍼를 연기했고 <쿵푸허슬>에서 도끼파의 고문 역을 맡았던 전계문은 <소림축구>에서 다른 남자의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삼사형 철갑 복부 틴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막문위와 장백지는 '특수효과로 스피드가 빨라진' 소림축구단의 4강 상대로 까메오 출연해 열연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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