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자 좀비들과 맞서 싸운 두 배우 공유와 마동석의 주가는 그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치솟았다. <기생충>이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휩쓸었을 때도 가장 주목 받은 인물은 단연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었다. 이처럼 영화 한 편이 주목 받으면 배우와 감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가 완성돼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 천명의 땀과 정성,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관객들이 열광하는 화려한 고난도의 액션이 들어가는 영화에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반드시 필요한 인력이 있다. 고난도의 액션 장면들을 만들고 감독하는 무술감독과 일반 배우들이 할 수 없는 위험한 액션 장면들을 카메라에서 대신 구현해내는 전문 액션배우들이다.

6~70년대 배우로 활동하다가 <취권>과 <사형도수>의 무술감독으로 유명해진 원화평 감독은 1999년 <매트릭스>와 2003년 <킬빌>의 무술감독을 맡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국내에도 최봉록과허명행,권귀덕 등 많은 무술감독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지난 1998년 한국 액션배우의 산 증인 정두홍 무술감독이 설립한 서울액션스쿨 출신이라는 점이다.
 
 짝패는 2006년 5월에 개봉해 전국 110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짝패는 2006년 5월에 개봉해 전국 110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 (주)외유내강

 
대한민국 영화계 무술감독의 산 증인

액션배우를 꿈꾸던 정두홍은 지난 1990년 <장군의 아들1>에서 신마적 패거리를 습격하는 하야시의 부하들 중 한 명으로 액션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1991년 <장군의 아들2>에서는 그나마 분량이 늘어나 자신에게 돈을 빼앗으려는 김두한 부하들을 혼내주는 수원의 무술고수로 출연했다(여전히 단역이었지만 김두한이 아편 거래를 하는 일본 무역회사의 돈을 훔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이다).

이후 여러 영화에서 액션배우로 활동하던 정두홍은 <게임의 법칙>과 <테러리스트> <런어웨이> <본투킬> <비트> 등 여러 액션 및 느와르 장르의 영화에서 무술감독으로 활약했다. 그러던 1998년 더욱 체계적으로 액션배우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정두홍은 서울 보라매공원에 서울액션스쿨을 개설했고 여기서 배출한 후배들과 함께 <남자의 향기> <쉬리> <유령> 등의 액션장면들을 연출했다.

이처럼 무술감독으로 활동하던 정두홍은 2000년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에서 심판 역을 통해 연기활동(?)을 재개했다.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침묵맨 역을 맡아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 정두홍은 같은 해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무술감독 양찬석을 연기했다. 전문배우가 아니었던 만큼 연기가 능숙하진 않았지만 정두홍은 <네 멋대로 해라>를 통해 무술감독과 액션배우들의 애환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류승완 감독의 차기작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최종빌런 흑운 역을 맡으며 비중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 정두홍은 2006년 류승완 감독과 함께 '대형사고'를 쳤다. 바로 류승완 감독의 영화사 외유내강과 서울액션스쿨이 손을 잡고 영화 <짝패>를 제작하면서 직접 주인공 정태수를 연기한 것이다. 다행히 류승완 감독이 함께 주연을 맡으며 불길에 같이 뛰어드는 희생(?)을 해준 덕분에 정두홍이 연기력 논란을 홀로 뒤집어 쓰진 않았다.

다행히 정두홍의 상업영화 주연 출연은 <짝패>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정두홍은 이후 <1번가의 기적>과 <육룡이 나르샤> 등에서 연기를 했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무술감독이라는 '본분'에 충실했다. 이병헌이 출연한 <지.아이.조.2>와 배두나가 출연한 드라마 <센스8>의 무술지도에도 참여하며 해외에서도 활동했던 정두홍 감독은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액션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92분 동안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액션의 향연
 
 <짝패>는 수 십 편의 영화에 참여한 정두홍 무술감독이 유일하게 주연으로 출연한 상업영화다.

<짝패>는 수 십 편의 영화에 참여한 정두홍 무술감독이 유일하게 주연으로 출연한 상업영화다. ⓒ (주)외유내강

 
류승완 감독은 <주먹이 운다>를 끝내고 차기작으로 '충청도 옹박'으로 불러도 좋을 만한 정통 액션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는 뜻을 밝혔다.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시작으로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모든 영화에 출연했던 동생 류승범은 당연히 형의 차기작을 찍기 위해 시간을 비워두려 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검증된 배우 류승범 대신 정두홍 무술감독과 자신을 덜컥 신작의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사실 <짝패>의 이야기는 매우 단순하다. 가상의 관광특구 도시 온성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서울에서 형사 생활을 하던 태수(정두홍 분)와 생전에 피해자 왕재(안길강 분)를 유난히 잘 따르던 석환(류승완 분)은 범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왕재를 죽인 범인은 고교 시절부터 왕재와 붙어 다니던 절친 필호(이범수 분)였고 태수와 석환은 왕재의 한을 풀기 위한 '피의 복수'에 나선다.

대한민국 최고의 무술감독인 정두홍은 말할 것도 없고 류승완 감독 역시 '액션키드'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액션 영화에 대한 사랑은 누구 못지 않다. 따라서 <짝패>에서는 그 동안 한국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온갖 화려한 액션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며 관객들의 '액션쾌감'을 자극한다. 특히 태수가 밤중에 거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량 학생 수 십 명과 싸우는 액션 장면은 <짝패>에서 가장 화려한 볼거리들이 집중돼 있다.

필호를 연기한 이범수를 제외하면 결코 능숙하다 할 수 없는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의 연기가 크게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액션 영화와 충청도 사투리의 신선한 조합 때문이었다.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여유 있고 느릿한 말투가 "괜찮아유. 우린 원래 때와 장소를 안 가리니께" 같은 대사들과 만나면서 <짝패>의 현란한 액션 장면들이 더욱 살벌하게 느껴지는 효과를 가져 왔다.

<짝패>는 살인사건으로 시작해 영화 내내 비장함이 흐르는 액션들로 가득 차 있지만 유일하게 이들의 고교 시절이 나오는 회상 장면은 경쾌하게 연출됐다. 정우와 온주완,김시후,김동영,박영서로 구성된 <짝패>의 아역 5인방은 소풍에서 옆 학교와 시비가 붙어 기세 좋게 패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얼굴만 나온 채로 땅에 파묻힌다(패싸움 장면에서 BGM으로 흐르는 나미의 <영원한 친구>가 유쾌함을 극대화한다).

완벽한 악역 연기 소화한 이범수의 재발견
 
 이범수는 <짝패>에서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거드라"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이범수는 <짝패>에서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거드라"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 (주)외유내강

 
연기에 익숙하지 않은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이 주연을 맡은 <짝패>에서 필호 역의 이범수는 상대적으로 더욱 돋보이는 연기를 선보인다. 실제로 충북 청주가 고향인 이범수는 그 동안 주로 선하고 유쾌한 연기를 맡아오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발군의 악역 연기를 통해 필호의 악랄함을 극대화했다. 실제로 이범수는 <짝패>를 통해 2006년 대한민국 영화대상과 춘사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데뷔 후 첫 연기상을 수상했다.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와 <SKY캐슬>의 김주영으로 유명한 배우 김서형은 <짝패>에서 가해자 필호의 아내이자 피해자 왕재의 여동생이라는 비운의 캐릭터로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극 중 이름이 '대한민국 역도여제'와 같은 장미란이었다. 태수로부터 남편을 살해한 범인이 오빠임을 듣게 된 미란은 서울로 떠나면서 필호가 카지노 사업팀과 파티를 연다는 사실을 태수에게 전하며 자신의 운명을 원망한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경호실장,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로부터 "너나 잘하세요"라는 일침을 들었던 전도사를 연기했던 김병옥은 <짝패>에서 청년회장 역을 맡았다. 필호에게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험한 꼴을 당한 청년회장은 태수와 석환에게 절친이었던 왕재와 필호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 원인과 과정을 설명해 주지만 다음 날 곧바로 필호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는다.

<짝패>에서는 서울에서 파견된 악당 간부 4인방이 등장해 온성에서 필호의 악행을 돕는다. 특히 악당 4인방 중 홍일점이었던 김효선은 정두홍 감독의 서울액션스쿨 출신으로 <아라한: 장풍대작전>부터 <주먹이 운다> <짝패>까지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영화 세 편에 연속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짝패>에서는 최후의 결전에서 태수의 회전회오리킥(?)에 맞고 다소 허무하게 전투불능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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