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 국어 사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나와 있다. 사실 굳이 사전을 찾지 않아도 사랑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때 사전적 의미를 생각하진 않는다. 사랑은 사전에 표시된 몇 글자로는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류는 오랜 기간 여러 가지 문화를 통해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해 왔다. 18세기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는 피아노로, 20세기의 비틀즈는 밴드음악으로, 21세기의 소녀시대와 트와이스는 재기 발랄한 춤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그 시대의 사랑을 이야기했다. 아마 인간의 감정이 남아 있는 한 사랑에 대한 의문과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영화에서도 사랑에 대한 인간들의 탐구는 계속 됐다.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쏟아지는 멜로영화들이 그 증거다(굳이 멜로 장르가 아니더라도 작게나마 '러브라인'이 포함된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2004년에 개봉해 큰 흥행은 못했지만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영화 <아는 여자>는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활약하는 재담꾼 장진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진 사랑의 정의에 관한 질문 같은 작품이다.
 
 영화 <아는 여자> 스틸 이미지.

영화 <아는 여자> 스틸 이미지. ⓒ 시네마서비스

 
영화와 연극 자유자재로 오가는 재담꾼 장진

1971년 2월에 태어난 장진 감독은 또래들보다 학교에 빨리 들어가 1989년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다. 동기로는 영화감독(겸 예능인) 장항준과 배우 장현성, 정웅인 등이 있다.

대학시절과 군복무시절부터 희곡을 써온 장진 감독은 1995년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연극 <서툰 사람들>을 연출해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1998년 서른이 채 되기 전에 <기막힌 사내들>을 연출하면서 충무로에 입성했다. <기막힌 사내들>에는 소위 '장진 사단'으로 불리는 서울예대 동문 배우들(산하균, 임원희, 정재영, 이철민 등)이 대거 출연했다.

1999년 <간첩 리철진>으로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받은 장진 감독은 2001년 <킬러들의 수다>를 통해 서울에서만 87만 관객을 모았다(이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02년 영화사 '필름있수다'를 세워 옴니버스 영화 <묻지마 패밀리>를 제작한 장진 감독은 차기작으로 멜로 영화 <아는 여자>를 만들었다(장진 감독은 <킬러들의 수다>에서는 원빈, <아는 여자>에서는 이나영을 캐스팅했는데 두 사람은 훗날 부부가 됐다).

<아는 여자>는 장진 감독의 독특한 유머코드와 연극적인 색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며 전국 83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아는 여자>만큼 장진 감독의 색깔이 잘 표현된 작품도 드물다. 장진 감독은 2005년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웰컴 투 동막골>이 전국 800만 관객으로 '대박'을 치고 코믹 미스터리에 도전한 5번째 장편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도 240만 관객을 모으며 제작자와 감독으로 전성기를 보냈다.

이후에도 각본에 참여한 <바르게 살자>와 <강철중 : 공공의 적 1-1>, 감독 인생의 숙원이었던 장동건을 캐스팅한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흥행하면서 장진 감독의 꽃 길은 계속 이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장진 감독은 2010년대 들어 <퀴즈왕>과 <로맨틱 헤븐>, <하이힐>, <우리는 형제입니다>가 나란히 흥행에 실패하며 조금은 긴 슬럼프에 빠져 있다. 장진 감독은 2016년에 초연된 연극 <얼음>을 5년째 연출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있다.

사랑의 정의 찾아가는 동치성의 모험기(?)
 
 <아는 여자>는 CF요정 이나영(오른쪽)이 연기파배우(?) 정재영을 짝사랑하는 이야기다.

<아는 여자>는 CF요정 이나영(오른쪽)이 연기파배우(?) 정재영을 짝사랑하는 이야기다. ⓒ 시네마 서비스

 
프로야구 2군 외야수 동치성(정재영 분)은 여자친구(오승현 분)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 받은 날, 의사로부터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그리고 동치성은 주량을 넘어선 술을 마시고 술집에서 기절한다. 눈을 떠보니 낯선 여관방. 눈 앞에는 술집에서 몇 번 눈이 마주친 '아는 여자'가 있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야구선수 동치성과 아는 여자 한이연(이나영 분)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사실 이연은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동치성을 짝사랑했다. 술집기절사건으로 동치성과 아는 사이가 된 이연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 받은 상품을 미끼로 동치성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설레는 첫 데이트에서 동치성의 옛 여자친구와 마주치고 동치성은 그녀에게 이연을 '아는 여자'라고 둘러댄다. 마음이 상한 이연은 극장 안에서 동치성에게 아는 여자가 많냐고 묻지만 세상에 아는 여자는 이연 밖에 없다는 동치성의 말에 기분이 풀려 해맑게 웃는다.

영화 내내 동치성을 짝사랑하던 이연은 동치성의 '관중석 악송구'를 보면서 자신을 향한 동치성의 마음을 깨닫는다. 투수 복귀전에서 호투하던 동치성은 이연을 위해 완봉승을 선물하는 대신 그녀가 평소 보고 싶어했던 '관중석 공투척'을 선물한다. 참고로 수비수가 경기 중 관중석으로 공을 던지면 '볼 데드'가 선언되고 타자와 주자에게는 자동 진루권이 주어진다. 따라서 자진 강판 후에도 구원투수가 후속타자를 막으면 동치성은 승리투수가 될 수 있다.

동치성은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정작 그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인물은 동치성 집으로 숨어든 좀도둑(박선우 분)이었다. 그는 동치성에게 생활비를 받아 간 후 "저요, 사랑에 대해 잘 몰라요. 근데 사랑하면요. 그냥 사랑 아닙니까? 무슨 사랑, 어떤 사랑. 뭐 그런 거 어디 있나요. 그냥 사랑하면, 사랑하는 거죠"라는 말을 건넸다. 도둑의 대사를 통해 장진 감독이 사랑에 대한 철학을 관객들에게 전한 것이다.

멜로 영화들에는 대부분 좋은 음악들이 함께 한다. 작곡가 박근태가 음악감독을 맡은 <아는 여자>의 OST 역시 하나의 앨범으로도 가치가 있는 명반이다. '영화 속 영화' <전봇대의 사랑> BGM으로 쓰인 데이라이트가 부른 <아는 여자>부터 작곡가 조영수가 부른 <모르죠>, 이연의 짝사랑을 담은 고현우의 <사랑하잖아요> 모두 영화의 삽입곡으로 묻히기 아까운 명곡들이다(이연의 화상장면에서는 장윤주의 < P.S. I Love You >도 들을 수 있다). 

<아는 여자>는 류승룡과 이민정의 영화 데뷔작
 
 이민정은 <아는 여자>를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영화에서 '대사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민정은 <아는 여자>를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영화에서 '대사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 시네마 서비스

 
서울예대 시절부터 장진 감독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 공연했던 동기, 후배들은 대부분 졸업 후에도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하지만 류승룡의 경우엔 퍼포먼스 공연 난타의 초기 멤버로 활동하며 동문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이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대중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던 정재영, 임원희, 정웅인 등 동문 배우들에 비하면 류승룡은 2000년대 초반까지 대중적으로는 무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이는 어린) 학교 선배 장진은 류승룡을 <아는 여자>에서 분홍복면 역에 캐스팅하면서 류승룡도 본격적으로 영화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장진 감독은 <박수칠 때 떠나라>와 <거룩한 계보>에서도 류승룡을 주연급으로 캐스팅하며 후배가 재능을 펼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렇게 류승룡은 오늘 날 천만 영화를 네 편(<광해: 왕이 된 남자>, <7번 방의 선물>, <명량>, <극한직업>)이나 보유한 최고의 흥행 배우로 성장했다.

작년 9월 KBS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성공적으로 마친 배우 이민정도 <아는 여자>가 영화 데뷔작이었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부에 다니다가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연극 <서툰 사람들>의 부산공연에 투입된 이민정은 이를 계기로 <아는 여자>에서 이나영의 친구 역할로 출연했다. 이연과 음료를 마시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이연이 동치성과 여관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겁하는 작은 역할이다.

이민정은 <아는 여자> 이후 작은 독립영화나 드라마의 조·단연을 오가다가 2009년 <꽃보다 남자>의 하재경 역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과 <원더풀 라디오>, 드라마 <마이더스>, <빅>, <내 연애의 모든 것>에 출연하며 스타배우로 성장했다. 2013년 톱스타 이병헌과 결혼해 슬하에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는 이민정은 결혼 후에도 <앙큼한 돌싱녀>,<돌아와요 아저씨>,<한 번 다녀왔습니다> 등에 출연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아는 여자 장진 감독 이나영 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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