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청춘기록> 포스터

tvN <청춘기록> 포스터 ⓒ tvN

 
90년대 생이 대거 등장한 tvN 드라마 <청춘 기록>이 막을 내렸다. 시청률이 꽤 높았다. 그럴 만큼 흥미진진했나 갸웃거리다, 높은 시청률의 이유가 어쩌면 다른 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든 영화든 사람들은 각박하고 박탈된 삶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가시화된 삶이 스크린을 통해 가시화될 때, 이 누추한 삶이 지금 여기 같이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인의 삶이라고 알려올 때, 사람들은 애써 부인하려 했던 삶의 이면에 직면하게 된다. 실은 저 비루하고 고단한 삶이 바로 자신의 모습일지 모르지만 아니라고 최면을 걸어왔기 때문인데, 저 박탈된 삶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게 되는 순간, 사는 일이 너무 아득해질 것이기 때문이리라.
 
단군 이래 최대의 청년 위기라 하지만, <청춘 기록>의 주인공 청춘들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다. 드라마는 계급이 다른 친구들이 우정을 지켜나가고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삶을 성실히 지켜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훈훈히 데우며 높은 시청률을 견인했으리라 짐작된다.

마침내 혜준(박보검)이 지난한 무명 시절에 마침표를 찍고 톱스타가 되는 성취에서 시청자는, 혜준에게 이입되어 실종된 '개천에서 용 난' 신화에 대리 만족을 느끼며 상당한 카타르시스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점에서부터 이 드라마를 계속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혜준의 대사처럼, "설명할 수 없지만 안에서 뭔가 치"미는 불편한 감정이 스멀댔기 때문이었다.
 
혜준의 성공과 정아(박소담)의 성취는 분명 노력의 산물이다. 문제는 이런 결과가 이들에게처럼 노력한다고 다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톱스타 연예인이 되겠다고 나선 청년이 어디 혜준뿐이겠으며, 잘나가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꿈인 청춘이 어디 정하뿐이겠는가. 모두 '노오력'하지만 현실은 '열정페이'로 착취당하다 결국엔, 하다 하다 나가떨어지는 좌절이 상당수 청춘의 현주소일 것이다.
 
혜준과 정하가 긴 좌절의 터널을 빠져나와 마침내 출구를 찾아낸 일이 상찬 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우려되는 것은 이 드라마의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판타지적 메시지가 어쩌면 청춘들을 계속 '희망 고문'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청춘 기록'은 청춘만 가일층 성공을 향해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둘러싼 사회 구성원들에게조차 아직도, 여전히,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노력의 결과라 믿게 한다. 드라마는 너무나 반듯한 캐릭터들로 과하게 훈훈한 서사를 펼쳐나감으로써, 오히려 이러한 <청춘 기록>은 결국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임을 자각하게 한다.
 
공정한 청춘인가 
 
 tvN 드라마 <청춘 기록> 한 장면.

tvN 드라마 <청춘 기록> 한 장면. ⓒ tvN

 
모델로 시작해 연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느라 군 입대까지 미루며 20대 후반에 이른 혜준이 톱스타가 된 것을 그의 노력의 산물로만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스타 연예인의 꿈을 키우며 저 정도의 노력을 하지 않는 지망생은 없을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혜준의 경우 '먹고사니즘'까지 해결해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경제적 지지가 든든한 해효(변우석)가 누리는 스펙(고급 필라테스, 고가의 메이크업과 헤어, 돈으로 창출해내는 SNS 팔로워 수, 부모의 다양한 조력 등)을 누리지 못한다.

연예인 자질을 함양하기 위한 자기 계발을 하는 데도 절대적으로 돈이 필요하지만, 가난한 혜준은 여력이 없다. 꿈을 이루기 위한 '노오력'조차 무조건 열심히만 할 수 없는 게 '흙수저'들의 형편이지 않은가. 공부하는 청년이면 공부만, 운동하는 청년이면 운동만, 음악 하는 청년이면 음악만 열심히 해서 '노오력'의 결과가 판정되는 게 공정한 게임의 룰이지만, 현실은 어떤가.
 
혜준이 톱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인간적으로 들여다보면, 실제로 실행 노력이라기보다는 '버티기'였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는 경력을 위한 무대에 서기 위해 보수마저 갈취당하는 비정기적인 모델 일을 포기할 수 없다. 일을 하고도 그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을 수 없는 혜준은 늘 파트타임으로 밑 빠진 독에 새나가는 물을 보충하지 않을 수 없다.

야멸차게 말하면 혜준은 포기할 수 없는 꿈을 지키느라 스스로를 착취하게 되는데, 이는 연예인 지망생의 생활고나 인권 침해 문제를 제도적으로 제재하고 실효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해결되기 난망하다. 이런 척박한 노동 환경에서 가물에 콩 나듯 톱스타가 탄생하면, 탄생의 신화 속으로 온갖 추한 히스토리는 매몰되지 않는가.
 
혜준이 톱스타에 등극하기까지 '금수저' 해효가 쌓아가는 노력과 사뭇 다르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버티기'였다. 그렇게 버티던 혜준이 마침내 한 번 터져 준 운발로 성공했지만, 이마저도 드라마는 그가 노력한 성취로만 포장한다. 혜준이 깜냥껏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꿈을 좇기 위해 저 정도의 노력은 누구에게나 전제조건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노력을 재구성하는 유력한 조건, 즉 경제적 상황, 유능한 부모, 건강한 기획사, 정당한 노동 환경, 건강, 비장애, 외모 등이 부수적이라고 믿게 하는 데 있다.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다른 조건은 도외시하고 개인의 노력만을 미화하려는 이 드라마는 이 시대 위기에 처한 청춘들의 아픔에 얼마나 다가갔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드라마는 혜준의 노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금수저' 해효를 극적으로 추락시킨다. 혜준보다 잘나가는 듯 했던 해효의 성취가 실은 '헬리콥터 맘'의 조종으로 가능했다는 폭로가 해효를 좌절시킨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바로 해효의 열등감인데, 납득할 수 없는 서사로 캐릭터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혜준의 엄마는 초등학교 때부터 해효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해왔고, 해효는 자신이 입던 새것과 같은 헌 옷을 혜준이 넘겨받아 입는 것을 보고 자랐다. 게다가 혜준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학업마저 이어갈 수 없었고, 모델의 길에 같이 들어서서도 늘 혜준보다 앞서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혜준에게 좌절을 맛보고 그제서야 돌연 '니가 너무 잘나' 열등감을 느껴왔다고 고백하는 해효의 고백이 설득력이 있는 걸까.
 
드라마는 인성 좋고 자존감 강한 혜준이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신화를 재구성하기 위해 성장기에 계급이 다른 두 친구가 겪어야 하는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고 뜬금없이 해효의 열등감을 부추긴다. 가난한 혜준이 인성 좋고 자존감 높은 아이가 되기 위해 어떤 인내를 감내해야 했을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만, 드라마는 이를 세심하게 다루지 않는다.

물론 가난하다고 인성과 자존감이 바닥이라는 것이 아니다. 가난을 수치로 여기는 세상에서 가난하면서도 좋은 인성과 높은 자존감을 갖는 일이 어떤 고달픔인지를 지우고, 이런 품성까지 탑재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주문을 거는 이 드라마의 관성이 안이하다는 것이다.
 
청춘은 안정을 갈망하지만... 
 
 tvN 드라마 <청춘 기록> 한 장면.

tvN 드라마 <청춘 기록> 한 장면. ⓒ tvN

 
대형 스타일링 숍의 스태프였던 정하가 갑자기 디자이너로 승진하더니 개인 숍을 창업한다는 스토리도 석연치 않다. 26세인 정하의 나이를 감안할 때 대기업을 다니다 그만두고 대형 숍에서 수련한 기간은 길어야 2년 남짓일 텐데, 이 정도 기간에 디자이너가 되는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하가 안정된 삶을 위해 원룸도 아닌 규모의 집을 30년 장기 융자를 얻어 매입한 것도 높은 서울의 집값을 고려하면 과연 몇 프로에 해당하는 청춘일까? 과거에는 무능했지만 이제는 상당한 자산가가 된 아버지의 조력도 마다하면서 말이다.

물론 나는 차돌멩이 같은 정하의 됨됨이가 이런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 매우 유효함을 안다. 그렇지만 현실의 정하들은 드라마의 정하처럼 안정된 삶을 위한 빠른 승진도, 개인 창업도, 30년 주택 담보 대출도 요원하다. 코로나19 이후 여성 휴직자 수가 남성에 비해 67%나 늘고 20대 젊은 여성들의 자살률이 급증하는 이 급박한 현실이 정하의 역설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안정할 수 없는 세상에서 안정을 제일 목표로 삼던 정하의 로맨스는 어떤가. 정하는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 애인 혜준의 '여친' 역은 안정된 삶을 견인하는 한 축이 되어야 하는 연애로 부적합하다. 애인이 스타임을 자각하고 알아서 배려해야 하는 연애는 평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릇 연애란, 밀고 당기는 감정의 긴장과 차이가 만들어내는 갈등의 지점에서 서로의 자신됨을 발견하고 수용해 나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바쁜 데도 너 만나는 거야"라는 일방적인 선심성 시간 내기에서 어떻게 평등한 만남과 긴장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해 빈틈없이 미래를 설계하는 정하가 혜준과의 이별을 택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일방의 사정에만 끌려다니지 않는 연애관, 그리고 잘나가는 애인을 둔 행복보다 자신의 성취를 더 중요한 가치로 두는 정하의 선택은 당차다. 삶도 연애도 당차게 밀어붙이길 바란다.
 
결국 <청춘 기록>은 어떤 청춘의 기록일까? 1퍼센트의 성공 서사가 아직도 가슴을 데울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인 것일까. 드라마의 주인공과 같은 나이대의 청춘이 과로사로 죽고,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고, 근로 시간을 준수하지 않는 저임금 노동 시장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이 청춘이 될 수 있으며 어떤 청춘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청춘 기록> 박보검 박소담 노력 성공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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