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촬영을 마친 영화 <이터널스>

최근 촬영을 마친 영화 <이터널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얼마 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영화 <이터널스>의 촬영이 완료되었다. 한국 영화 팬들에게 친숙한 마동석이 '길가메시' 역으로 출연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터널스>는 작품에 게이 커플이 등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른 측면에서 화제가 되었다. 출연 배우 하즈 슬레이만이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파스토스)와 동성 커플로 출연할 예정이며, 키스신 역시 촬영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MCU에 LGBTQ(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 캐릭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토르 : 라그나로크>와 <어벤져스 : 엔드 게임>에서 활약했던 발키리는 바이섹슈얼 캐릭터였다(발키리를 연기한 테사 톰슨은 실제로도 바이 섹슈얼이며, 뮤지션 쟈넬 모네와 연애 중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엔드 게임>의 초반부, 감독인 조 루소는 직접 게이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최근 수년 간, 케빈 파이기가 지휘하는 마블 스튜디오는 인종과 젠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작업을 중시했다. 백인 남성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왔던 MCU의 세계관을 더욱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여성 히어로 단독 영화 <캡틴 마블>(2019)이 성공을 거뒀고, '앤트맨' 과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도 다양한 인종들이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 만듦새와는 별개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블랙 팬서>는 아프리카 국가 와칸다의 흑인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영화에 소수자가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박수를 보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정치적 의제를 기반으로 삼았든, 영화는 잘 만들어야 한다. <디워>에 성 소수자가 출연했다 하더라도, <기생충>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한 변화의 과정

지난 몇 년간 MCU가 해 온 선택은 그저 당연한 변화의 과정으로 보인다. 1969년 6월 28일,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경찰이 뉴욕의 주점 '스톤월 인'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세계 성 소수자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이 의의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제나 역사 속에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던 소수자들, 이들을 비가시성(invisibility)에서 가시성(visibility)의 영역으로 데려오고자 하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예술이기도 하지만, 쉴 틈 없이 변화하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온라인 공간에서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는 쉽게 악마화되곤 한다. '디즈니에 PC 묻었네'라며 비아냥거리는 여론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왜 억지로 게이 커플이 등장해야 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상업 영화에 등장하는 연인들이 '시스젠더' 이성애자일 필요도 없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연인의 모습도 얼마든지 다양하게 그려질 수 있다. LGBTQ 캐릭터의 존재에 학을 떼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기시감이 느껴진다. 퀴어 퍼레이드를 반대하면서도 '나는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에게 "왜 굳이 축제를 하나요?" "왜 굳이 커밍아웃을 하나요?"라고 묻는 질문 속에는, '성 소수자'라는 기표가 아고라에 입장할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전제를 품고 있다. 이들을 향해 너희는 사적 영역에 남아 있어야 하며 공공의 장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있으라는 요구다.' - 김지혜,<선량한 차별주의자>(2019) p.141 중
 
 < 토르 : 라그나로크 >의 발키리(테사 톰슨)

< 토르 : 라그나로크 >의 발키리(테사 톰슨)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학교)는 사회심리학자 수전 오포토우(Susan Opotow)의 말을 빌려, 어떤 사람과 집단을 도덕적 규범과 가치, 공정성이 적용되지 않는 외부인으로 인식할 때 발생하는 도덕적 배제(moral exclusion)를 설명했다. 이러한 도덕적 배제가 작동하는 가운데, 소수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주류 집단에 의해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타자화되기 쉽다. 누군가에게 이성애 커플의 키스신은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동성애 커플의 키스신은 불쾌한 것, 이른바 'PC질'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러한 원리 때문이다.

혐오와 배제가 유효한 세상에서, '거리로 나온 퀴어', '인기 프랜차이즈 영화 속의 퀴어'의 존재는 그 자체로 중요한 기표다. 눈에 띄고, 익숙해지는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일상화된 혐오가 얼마나 얕은 것인지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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