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넷플릭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일명 '룰라'는 브라질 제35대 대통령으로 2003년 취임하여 재선에 성공 2010년까지 나라를 이끌었다. 하지만 채 10년이 안 된 2018년 체포되어 감옥으로 향한다. 사실 그는 2018년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었고 상대가 누구든 여유있게 당선될 만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결과가 나온 지금 2019년에는 물거품처럼 사라진 신기루였다는 걸 잘 알지만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는 룰라가 체포되기 직전의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 장면은 브라질의 가장 최근 현대사를 상징함과 동시에 영화의 핵심을 이룬다. 또한 그를 둘러싸고 룰라를 지키자는 시민들과 룰라를 감옥에 보내자는 시민들의 격렬한 대치가 또 하나의 핵심을 이룬다. 

이 영화는 위기에 처한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브라질의 상황은 전 세계에 불어닥친 민주주의의 위기와 궤를 같이한다. 한국처럼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의 재앙적 위기를 겨우 극복한 나라도 있지만, 미국을 비롯해 브라질이 속한 BRICS의 경우 극우민족주의가 정치판에서 강력한 우세를 점치고 있는 중이다. 민주주의는 명목상일 뿐 독재나 다름 없는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브라질은 그중 단연 으뜸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를 보면 절감할 것이다.

브라질과 한국의 현대 정치사

브라질은 1964년 군사쿠데타로 1985년까지 장장 21년간 군부독재정권이 계속되었던 나라이다. 1961년 군사정변 이후 1987년까지 사람이 바뀌었을 뿐 26년간 계속된 군부독재정권을 경험한 한국과 시기를 같이한다. 하지만 한국은 1993년 최초의 문민 정부가 탄생하기까지 5년을 더 군부 출신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었고, 문민 정부의 대통령조차 군부 출신 세력과 손을 잡아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 한국 헌정 사상 최초로 투표를 통해 여야 정권를 이뤄낸 김대중 정부와 우여곡절 끝에 '민주 정부'를 이어간 노무현 정부가 있다.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브라질은 군부독재정권 축출 후 민정이양이 잘 되었고 군부독재세력은 완전히 쪼그라든다. 대신 브라질민주운동당과 노동자당이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당 상황으로만 보면 완전한 민주 정부인 것이다. 더욱이 2003년에는 노동자당이라는, 말만 들어도 좌파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정당 소속의 룰라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김영삼, 김대중처럼 군부독재 시절 민주투사 출신 대통령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룰라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행적은 김대중과 비슷해 보인다. 룰라는 1989년, 1994년, 1998년 세 차례 대권에 도전해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대선에서 2위에 머물렀다. 2002년에 이르러서야 중도파를 아우르는 전략으로 대권을 잡을 수 있었다. 김대중은 1971년, 1987년, 1992년 세 차례 대권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1997년에 이르러 김종필, 박태준과 손잡고 DJP연합을 결성해 대권을 잡을 수 있었다. 

룰라는 임기 중 '볼사 파밀리아 정책'으로 빈곤층에게 대대적인 지원하면서도 브라질을 세계 8위권의 경제대국에 올려놓았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공적 운영이었다. 김대중은 '햇볕정책'으로 오랫동안 갈라졌던 남북 간의 화해를 통해 안보와 경제 모두를 잡고자 했다. IMF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룰라와 김대중 모두 공통적으로 임기 중 정책을 두고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또한 그들의 다음 정권에 이르러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탄핵되는 사태 등으로 나라가 크게 혼란에 빠진다. 

룰라의 감옥행, 지우마의 탄핵

영화의 내용 전개는 부제인 '룰라에서 탄핵까지'를 충실히 따른다. 전반부의 룰라와 후반부의 탄핵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탄핵은 룰라의 후계자인 지우마 호셰프 제36대 대통령이 탄핵된 사건을 뜻한다. 지우마는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정을 수행했다. 그녀는 룰라 정권 시절 장관으로 재직하며 업무를 훌륭히 해내었는데, 대통령이 되고선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가 받았다. 2013년에는 거대 시위가 잇따랐고, 노동자당이 비판의 타깃이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도 지우마는 2014년 재선에 성공하지만, 전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브라질 경제는 맥을 못추기 시작한다. 이에 지우마는 반부패 척결이라는 정치경제적 해법을 들고 오는데, 그것이 지우마와 룰라는 물론 노동자당과 브라질민주운동당을 아우르는 브라질 민주 세력을 위기에 빠뜨리는 시작점이 되고 만다. 이미 나라는 친노동자당과 반노동자당으로 극렬히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현재 브라질 대통령은 브라질민주운동당도 노동자당도 아닌 극우 정당과 군인 출신의 자이르 보우소나루이다. 

다큐 <위기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위기 상황을 바라보지만, 다분히 친노동자당의 입장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출자의 조부모가 독재정권 시절 크게 부를 쌓은 기업가인 반면, 부모는 독재정권 시절 투철한 민주 투사였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야말로 지금으로선 가장 건강한 체제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인 것도 이유로 보인다. 하여 다큐는 지우마의 실정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듯하다.

지우마를 탄핵하여 대통령 자리에서 쫓아내고는, 곧바로 룰라를 역시 감옥에 보내버리는 상황을 연출자는 그냥 바라볼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룰라의 수감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위반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런 상황을 두고 감독은 브라질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통령 탄핵과 전 대통령 감옥행을 우리는 아주 최근에 두 눈으로 직시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감옥행,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 감옥행이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완전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상황은 반대에 가까운 모습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불법 행위를 저지른 박근혜의 탄핵과 다분히 정치적 힘싸움에서 밀려 탄핵 당한 것처럼 보이는 지우마를 비교하긴 힘들 듯하다. 오히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과 지우마의 탄핵을 비교해볼 수는 있겠다.

민주주의 위기

브라질은 현재 민주 정당이 아닌 극우 정당의 군인 출신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고 있다. 영화는 달라진 정세의 원인을 '분열'로 보고 있다. 민주적 평화에 기초한 대립적 분열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념적 욕망에 휩싸인 극단적 분열 말이다. 영화가 다룬 브라질의 상황에선 나라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자는 목적 아래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너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으로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어 갈라져 대치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누구의 잘못일까. 무엇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왜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하는 걸까. 누군가는 왜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하는 걸까. 브라질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사실은 전 세계가 알 테다. 하지만 전 세계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고 또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브라질만을 향해 시선이 쏠릴리 만무하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경제 위기는 강한 지도자를 탄생시켰다. 위기를 타파할 강력한 리더십을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틈을 파고든 지도자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서로의 이해타산이 들어 맞은 격이다. 1990년대 말 아시아 경제 위기와 2000년대 말 미국발 경제 위기의 여파는 2020년대를 앞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장기화 조짐이 보인다는 말이다. 

비록 물론 민주주의와 경제 위기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경제를 부상하는 데 민주주의가 큰 이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를 원한다. 위기에의 불안을 해소시켜줄 변화를 말이다. 민주주의는 그 변화의 물결에 가장 적합한 타깃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이미 되었을지 모른다. 영화에서처럼 민주주의의 위기는 단지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탄핵 당하고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감옥에 가는 것에서 그칠 게 아닐지 모른다. 더 근본적이고 파괴적인 민주주의 위기의 양상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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