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사전>의 정다희 감독.

단편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사전>의 정다희 감독.ⓒ 이선필


10분 남짓의 단편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사전>으로 특별한 경험을 했다. 보통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있고, 사건과 인물이 분명한 다른 영화들과 달리 실험적 영상에 가까운 작품이었기 때문. 이 작품은 제72회 칸영화제 비공식 부문 중 하나인 감독주간 초청을 받았다. 영화제 기간 작품을 연출한 정다희 감독을 만났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지만 그는 벌써 여섯 작품을 여러 국제영화제에 소개한 바 있는 실력파다. 전작 <의자 위의 남자>로 2014년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기도 했다. 이번이 두 번째 초청인 것. 정다희 감독은 "5년 전에 오고 처음인데 규모가 매우 크고 축제가 열리는 곳이 너무 넓어 여전히 익숙해지기 쉽지 않다"라고 웃으며 소감부터 전했다.

총 5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움직임의 사전>에는 10분 15초간 여러 캐릭터가 등장한다. 기준, 반응, 역할, 가속, 인식이라는 각 장마다 사람, 개, 나무 캐릭터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임이나 행동을 하는데 후반부에 이들의 움직임을 보는 속도가 리얼타임(실제 영화의 시간 길이를 뜻함)과 같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일종의 작은 반전인데 이를 통해 꽤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영화의 시작
 
 제72회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된 단편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사전>의 한 장면.

제72회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된 단편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사전>의 한 장면.ⓒ 정다희

 
"그간 방 안에서 벌어지는 제 개인적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번부터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친구가 제게 행동이 너무 빨라서 맞추기 힘들다고 했다. 근데 또 다른 친구는 제가 또 너무 느리다고 하더라. 속도의 상대성을 그때 생각하게 됐다. 파리에서 학교를 다닐 때 '부동과 운동'이라는 논문을 썼다. 영화에 나오는 다양한 속도를 연구한 건데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작품에 엄청 느림, 느림, 보통, 빠름, 뒤로 가는 속도 이렇게 캐릭터화를 시켰다. 다만 캐릭터 애니메이션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5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리얼타임과 영화 러닝타임이 같은 부분은 곧 관객들에게 '아 내가 영화를 보고 있다'는 인식을 통해 일종의 거리감을 두게 하고 싶었다. 작품에 TV도 나오고 유튜브도 나오고, 카메라도 나온다. 마지막에 뒤로 가는 캐릭터를 통해 반대편의 움직임을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론 그게 영화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같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뒤로 빠지며 전체를 관찰하는 사람이 따로 있듯 말이다."


작품 자체가 추상적이고 개념적이다. 애니메이션 하면 쉽고 다양한 연령을 대상으로 한 대중 장르로 인식하기 십상인데 정다희 감독은 "사람들이 TV나 극장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서 이런 작품을 많이 접하기 어려울 텐데 실험성과 대중성을 둘 다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거리가 달라지면 시간도 달라진다는 그런 개념이다. 사람마다 말하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저도 서사적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원래 제가 가진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개념을 이미지화해서 말하는 편이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쓸 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번 영화도 한 3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다양한 움직임에 대한 애니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뒤 그걸 놓고 상상하는 시간이 계속 된다. 노트에 쭉 적으며 아이디어를 쌓는다. 어느 순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공동체 마을 통해 어떻게 살지 고민할 것"
 
 단편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사전>의 정다희 감독.

단편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사전>의 정다희 감독.ⓒ 이선필

 
다른 부문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가를 초대하는 감독주간답게 정다희 감독 작품 역시 주최 측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초청 담당자가 제게 "예전에 초청된 적이 있고, 철학적이면서 시적인 작품인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며 초청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가 러시아의 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매료됐다는 정다희 감독은 광고회사를 그만 두고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를 다니며 실질적인 기술과 감각을 키웠다. 

현재 과천에 머물며 공동체 마을 생활을 하고 있는 정다희 감독은 장편 애니메이션을 구상 중이다. 전작과 달리 서사가 있는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작품 자체로 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하는 것에 대한 욕심보단 제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려 한다. 이쪽 일이 경쟁이 매우 심하고 작업하면서도 성공 여부에 생각을 두기 쉽지 않나. 최근 서울 밖으로 이사한 것도 일부러 그런 것이다. 서울에 살면 현란한 것들이 눈에 보이는데 외롭고 공허할 때가 있더라. 친한 친구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면서 지내려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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