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 메아리>의 한 장면. 2017년 11월 40주년 기념 공연 모습

<나의 노래 : 메아리>의 한 장면. 2017년 11월 40주년 기념 공연 모습ⓒ 푸른영상

 
4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저항의 음악으로 여전히 불리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래의 역사가 스크린을 통해 부활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정일건 감독의 <나의 노래 : 메아리>는 메아리 40년에 대한 기록이다. 서울대 메아리에 대한 기록이지만, 한국노래운동의 역사를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40년의 노래운동이 한편의 다큐멘터리로 정리됐다.
 
1977년 결성된 서울대 '메아리'는 평범한 노래 동아리였다. 그 시절 대학생들이 통기타를 들고 다니며 노래 부르기를 즐겼듯 '메아리'도 음악을 좋아했던 학생들이 모였던 단순한 노래 동아리였다.
 
하지만 암울한 군사독재시대는 노래 부르기를 즐기려던 평범한 동아리를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주체로 만들었다. 시대가 노래를 무기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대학교에 경찰이 상주하고 있던 시절 아무 잘못 없는 대학생이 길을 걷다가 무작정 경찰에 연행되던 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던 때였다. 노래가 좋아 모였던 대학 동아리가 한국 민중운동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야만의 시대 때문이었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메아리 40년
 
메아리는 노래를 통해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하기 보다는 세상의 아픔을 아로새겨 공감하게 만들었다. 불의에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의지를 젊음의 가슴에 각인시켰다. 그들이 만든 노래는 알음알음 입으로 퍼져나갔고, 각종 시국집회 현장에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 시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메아리의 노래는 그런 현실을 지나치지 않았다. 노래를 통해 비판의 날을 세웠고 주변의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의 모습과 노동자들을 아픔을 위로했다. 그리고 폭압적 정치 사회 현실의 문제점을 노래로 저격한 것이다.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끝나고 5월 광주학살을 거쳐 전두환이 군사독재를 이어갈 때 메아리의 노래는 점점 더 단단해졌다. 그들의 노래는 시위 현장에서 저항 의식을 고취시켰고, 결의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메아리'의 공연은 투쟁을 북돋는 자리기도 했다. 노래가 권력에 맞서는 강력한 무기로 자리하는 순간이었다. 
 
 <나의 노래 : 메아리>의 한 장면

<나의 노래 : 메아리>의 한 장면ⓒ 푸른영상

 
<나의 노래 : 메아리>는 그렇게 흘러온 40년의 시간을 다양한 인터뷰와 자료사진 및 영상을 통해 담아냈다. 영화의 매력은 쉼 없이 들려지는 50곡 이상의 노래에 있다. 그 시대의 기억과 추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짙은 감수성과 옛 향수를 불러오는 노래는 한 곡 한 곡 나올 때마다 아득했던 시간을 가까이 다가오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선술집에서 시대에 분노하며 폭음한 뒤 비감한 심정으로 부르던 노래의 기억을 되살리고, 떠나가는 사람을 향해 아련하게 눈물지으며 노래 부르던 순간의 감정을 재생시키는 것은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이다.

'그날이 오면', '대결', '벗이여 해방이 온다', '오월의 노래', '선언2' 김광석이 부르는 '이 산하에' 등등 80년대에서 90년대로 이어지는 독재의 시대에 저항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 속 노래들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노래의 힘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 시절과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불러지고, 가사도 다르지만 관통하는 정신은 차이가 없다. 거대한 촛불이 세상을 뒤덮은 순간 '메아리'의 동문들도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함께 연대했다. 4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끈끈하게 서로를 묶어주는 요소로서 노래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가요라고도 불리던 노래운동의 지난 시간들을 정리해 냈다는 점에서 <나의 노래 : 메아리>는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사적 가치도 커 보인다.
 
사운드만으로 완성된 영화 
 
 <나의 노래 : 메아리>를 연출한 정일건 감독이 9일 영화상영후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나의 노래 : 메아리>를 연출한 정일건 감독이 9일 영화상영후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성하훈

 
정일건 감독은 지난 9일 영화 상영 직후 가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다른 대안으로서 만들어진 노래가 아닌 대중음악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메아리'를 만들고 이끌어온 초기 회원들도 대화에 적극 참여해 절실함을 강조했다. 절실함이 있었기에 노래를 불렀고 없으면 만들어서 불렀다는 것이다.
 
<나의 노래 : 메아리>는 담담하게 그 시절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제작을 맡은 이안 프로듀서는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는 재수 없는 집단이기도 하다"며 "지금도 활동하는 노래패들이 있는데 메아리가 자화자찬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40주년을 맞아 뭔가 기록을 하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시대를 정리하는 영화는 아니다"라고 조심스러워했다.
 
그럼에도 그 시대를 다양한 증언을 통해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적처럼 만들어진 영화다. 80~90년대는 카메라가 없던 시절이었고, '메아리'는 공연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영화 제작이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이런 난제를 감독은 몇몇 사진이나 드물게 확보한 희미한 영상을 활용했고, 다양한 자료 영상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보여준다. 대신 녹음을 열심히 해서 테이프로 남긴 것이 이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원동력이었다. 사운드만으로 영화가 완성된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