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개막식에서 개막선언을 하는 이용관 이사장과 전양준 집행위원장

4일 개막식에서 개막선언을 하는 이용관 이사장과 전양준 집행위원장ⓒ 부산영화제

 
23회 부산국제영화제가 2년간의 파행을 딛고 지난 13일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정치권력의 탄압에 맞서 저항했던 한국영화가 승리를 선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정상화 원년을 강조한 지난 4일 개막식에서 박근혜 정권의 탄압으로 물러났던 이용관 이사장과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당당히 무대 위에 올랐다.
 
정상화된 부산영화제를 즐기기 위해 영화인들은 해운대로 몰렸다. 보이콧으로 2년 간 한적했던 거리는 영화인들로 채워졌다. 보이콧 흐름에 중단됐던 CJ, 롯데, 쇼박스, NEW 등 대형 투자배급사들의 파티가 재개됐고, 북적거림 속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 입장을 대기하는 줄이 생기기도 했다. 첫 주말 해운대에선 크고 작은 수많은 파티들이 이어졌다. 폐막일까지 이어진 파티 분위기는 부산영화제가 완전히 정상화 됐음을 확인시켜줬다.
 
영화제 1등 공신 '감독조합'
 

부산영화제를 지켜낸 것은 관객과 영화인들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돋보인 것은 한국영화감독조합(아래 감독조합)이었다. 지난 2년간 보이콧을 주도했던 감독조합의 힘은 무서웠다. 감독이 참여하지 않는 영화제인지라, 배우들 역시 발걸음 옮기는 것을 망설였다. 부득이 참여하는 감독들은 레드카펫이나 관객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피켓을 들었다.
 
 2018년 부산영화제에서 다시 재개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나는 보리> 김진유 감독과 <영하의 바람> 김유리 감독이 수상했다.

2018년 부산영화제에서 다시 재개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나는 보리> 김진유 감독과 <영하의 바람> 김유리 감독이 수상했다.ⓒ 부산영화제

 
정상화가 된 올해, 감독조합은 적극적인 참여로 영화제에 힘을 실었다. 개막일 다음날인 5일 한국영화감독의밤을 개최했고, 중단됐던 한국영화감독조합상도 재개해 두 편의 영화에 천만 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폐막 전날인 12일에는 비전 시상식이 끝난 뒤 별도의 영화인의 밤 행사를 마련해 전국의 감독들이 다시 부산을 찾기도 했다.
 
한 감독은 "강수연 전 집행위원장이 감독조합의 보이콧에 한이 맺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년간 끊임없이 보이콧 철회를 요청했으나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이다. 감독조합 외에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역시 끝까지 보이콧을 유지하면서 부산영화제를 정상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간에 보이콧을 철회한 단체도 있었으나 이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다. 감독과 영화산업노동자들의 강력한 의지가 부산영화제 정상화에 큰 힘이 된 것이다.
 
개막식 초청 사양한 서병수, 꾸준히 방문한 조희문
 
영화제를 반대했던 사람들까지 초청한 이유는 영화제가 올해 핵심 키워드로 삼았던 화합, 정상화, 재도약 중 '화합'이 가장 우선 순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병수 전 시장까지 초청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팎의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년간 영화제 파행의 주범까지 초청하겠다는 것은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무시한 태도'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 전 시장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영화제 측이 초청의사를 전달했던 사실은 확인됐다.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서병수 전 시장에게 초청 의사를 전달한 것은 맞다"면서 "다만 서 전 시장이 '내가 어떻게 그 자리에 갈 수 있겠냐'며 사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조희문 전 영진위원장의 부산영화제 방문도 눈길을 끌었다. '문화예술계를 좌파가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한 조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시절 국내 영화제 예산 삭감이 시작될 당시 영진위원장이었다. 재임시절 내내 독립영화 탄압과 심사 부정 문제에 오르내리다 결국 불명예 퇴진했다. 2014년 3월에는 한예종 교수채용 비리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부산영화제를 찾고 있다. 수감 생활을 한 시기 외에는 꾸준히 찾았는데, 올해는 부산영화제가 중반을 넘은 시점에 방문한 모습이 목격됐다. 보수영화인들 쪽에서도 "저렇게 찾아온다는 게 참 대단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영화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북적일 때가 아닌 한적할 때 찾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영화제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기도 했다.
 
 뉴커런츠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

뉴커런츠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 부산영화제

 
"쿠니무라 준에 대한 부산영화제의 사과는 성급한 행동이었다."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지난 5일 뉴커런츠 심사위원 기자회견 과정에서 나온 쿠니무라 준의 발언에 관해 영화제측이 공식 사과한 것을 두고 "부산영화제가 공식 사과했던 것은 섣부른 대응이었다"고 피력했다. 당시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은 제주 관함식 참석 예정이던 일본 자위대의 욱일기 게양 문제와 관련된 질문을 받자, 이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고, 이에 부산영화제 측은 "배우를 논란의 중심에 서게 한 게 영화제의 책임"이라며 사과한 바 있다.
 
5일 기자회견에서 쿠니무라 준은 관련 질문을 받은 후 자세한 상황을 모른다며 한 번 더 상황 설명을 요청했다. 이후 욱일기 반대 문제 외에 "일본 아베 정권이 모든 면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고, 여러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다른 사안까지 비판했다. 본인의 선택에 따라 답변을 피할 수 있었지만 소신 있는 답변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부산영화제 측이 7일 "민감한 한일 문제에 관한 질문으로 인해 여러 가지 오해와 억측에 시달리고 있다"며 "기자회견을 준비한 영화제 입장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점 사과드리고자 한다"고 밝히면서 또 다른 논란이 일었다.
 
일본 내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영화제 측이 쿠니무라 준 배우를 배려하기 위해 한 행동으로 볼 수 있으나, 개인의 소신 발언에 대해 질문을 받게 한 것 자체를 사과한 부산영화제의 태도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부산 지역의 한 영화계 인사도 "부산영화제의 사과는 가벼운 반면 배우의 입장은 품위 있었다"며 "사과가 오히려 영화제의 공간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만들어 냈고, 해프닝 정도로 넘겨도 될 일을 굳이 사과문을 냄으로써 오히려 표현의 자유라는 명제에서 자기검열로 들어가 버리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부산영화제 핵심 관계자는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이었는데, 운영상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으로 판단해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과한 것이었다"며 "표현의 자유 위축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한 측면이 있었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메기> 4관왕, 한국영화아카데미 유영식 전 원장의 성과
 
 페막식 레드카펫을 밟고 있는 <메기> 이옥섭 감독과 이주영, 구교환 배우

페막식 레드카펫을 밟고 있는 <메기> 이옥섭 감독과 이주영, 구교환 배우ⓒ 부산영화제

 
올해 부산영화제 수상에서 돋보인 것은 <메기> 이옥섭 감독과 배우 최희서, 그리고 한국영화아카데미였다. 이옥섭 감독은 12일 비전의 밤에서 시민평론가상과 CGV아트하우스 상, KBS독립영화상 수상을 하며 3관왕을 차지했고 영화계 인사들의 박수를 받았다. 폐막일인 13일 결산 기자회견에서는 <메기> 이주영 배우가 올해의 배우상까지 거머쥐면서 4관왕에 올랐다.
 
2011년 16회 부산영화제에서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이 3관왕을 차지했고, 2012년 17회 부산영화제 때는 오멸 감독이 <지슬>로 4관왕을 차지하면서 한국영화의 주요 감독으로 부상했다. 이옥섭 감독 역시 이번에 4관왕을 차지하면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대주로 부상했다.
 
최희서 배우는 <박열>로 지난해 대종상 여우주연상과 신인상을 수상했고, 이후 대부분 영화상에서 신인상을 싹쓸이했다. 상업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상뿐만 아니라 주로 독립영화 배우들이 수상하는 부산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것은 특별하다. 상업영화와 저예산 독립영화를 넘나드는 행보가 상복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부산영하제 폐막식에서 나란히 자리한 올해의 배우상 이주영 배우, 최희서 배우, 뉴커런츠상 <호흡> 권만기 감독

부산영하제 폐막식에서 나란히 자리한 올해의 배우상 이주영 배우, 최희서 배우, 뉴커런츠상 <호흡> 권만기 감독ⓒ 부산영화제

 
최희서 배우가 출연한 <아워바디>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 한가람 감독의 작품이다. 뉴커런츠 수상작인 <호흡>의 권만기 감독 역시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안주영 감독의 <보희와 녹양>은 <호흡>과 함께 KTH상을 수상했다. 이들의 선배인 이옥섭 감독까지 포함하면 한국영화 감독들이 받을 수 있는 13개 부문 상 중 8개를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차지한 셈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나오지 않으면 영화 입봉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만큼 발군의 성적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교수로 활동했던 한 영화인은 "유영식 전 원장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평가하며 "올해 부산 이전과 내부의 어려운 사정으로 힘든 과정을 겪기도 했는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것 같아 보람 있고 뿌듯하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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