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상영작 <기억의 전쟁>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상영작 <기억의 전쟁>ⓒ 부산국제영화제

 
1960년대 대중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노래 중에 김추자가 부른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라는 곡이 있다. 이 노래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냐면, 1971년 동명의 영화가 제작될 정도였다. 노래 가사와 영화 줄거리를 종합해보면 대략 이러하다. 동네 어른들의 걱정 근심을 한 몸에 받던 동네청년이 월남전(베트남전)에 파병되어 돌아온 이후 조국근대화에 이바지하는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주류 언론과 대중문화가 월남전을 기억하는 방식은 '승자의 태도'에 가까웠다. 사실 월남전은 한국군이 동맹국으로 참여했던 남베트남(베트남공화국)과 미국의 패배로 끝난 전쟁이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승자의 역사로도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월남전은 '베트남특수'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한국 경제성장에 엄청난 기여를 한 덕분에, 박정희 정부의 성공적인 업적으로 기록됨과 동시에 참전용사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런 사실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알려지게 된 것 또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학살 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단체들의 꾸준한 활동과 노력 덕분이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상영작 <기억의 전쟁>(2018)은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시선에서 베트남전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영화다.
 
<기억의 전쟁>에는 크게 세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거나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생존자들이다. 특히 베트남전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한국을 몇 번 방문하기도 했던 응우옌 티 탄씨는 민간인 학살 당시 가족을 모두 잃고 몸에 큰 상처까지 얻게 되었다. 그녀 나이 고작 8살에 일어난 일이었다.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기억의 전쟁>은 과거 월남전에 참전했던 이길보라 감독의 할아버지와 관련된 기억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길 감독의 할아버지는 감독에게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후 베트남에 부채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던 감독은 월남전 당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다큐를 찍기로 결심한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상영작 <기억의 전쟁>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상영작 <기억의 전쟁>ⓒ 부산국제영화제

 
수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한 영화가 제시하는 주제와 메시지는 명료하다. 월남전은 1960년대 일어난 과거이고, 당시 민간인 학살에 참여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에는 언제나 이를 반대하는 참전용사들의 거센 항의 및 시위가 동시에 진행된다.
 
그렇다고 <기억의 전쟁>은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참전용사들을 '악의 축'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들 또한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수많은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박정희 정부가 만든 희생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하다.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월남전 참전용사에 대한 분노를 조장하는 대신, 민간인 학살 피해자에 대한 사과의 당위성을 차분히 제시하는 영화는 오직 자신의 몸과 머리가 기억하는 상처만으로 학살을 증언하는 탄 아주머니와 매우 닮아 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상영작 <기억의 전쟁>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상영작 <기억의 전쟁>ⓒ 부산국제영화제

 
학살이 일어났던 장소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 곳에 생존자들의 증언을 덧입은 영화적 전략 또한 인상적이다. 월남전과 관련하여 한국에 유리한 기억만 듣고 자란 세대들에게 <기억의 전쟁>이 일깨워주는 새로운 사실들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선대에 일어났던 과거라고 해도, 1968년 베트남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은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생존자들과 여전히 침묵 중인 대한민국 정부와 학살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참전용사들 사이, 우리는 월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할까.
 
한편 <기억의 전쟁>은 제23회 BIFF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상영 당시 정치적 문제를 다룬 대담함과 동시에 우아한 접근 방법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으며 특별언급 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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