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연출한 이나연 감독.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연출한 이나연 감독.ⓒ 유성호

 
제목만 보면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혹은 아동용 프로그램 이름 같을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나름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담아낸 단편이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이나연 감독의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는 유쾌함 속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녹여낸 드라마였다. 

삼 남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맏딸 지혜, 둘째 오빠 지훈, 막내 지은이 이제 곧 철거가 예정된 마당집에 옹기종기 모여 엄마에 대한 추억을 나눈다는 간단한 이야기다. 돌연 자신들을 버리고 아프리카로 떠난 엄마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맏딸과 달리 동생들은 시큰둥해 보인다. 이들은 엄마의 김장 김치를 직접 만들어보거나, 엄마의 헌옷을 입어보며 엄마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자신의 현재를 가늠한다. 

확장되는 관심사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연출한 이나연 감독.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연출한 이나연 감독.ⓒ 유성호



이 영화를 연출한 이나연 감독은 또 다른 단편 <못, 함께하는>으로 2016년 인디포럼, 정동진영화제 등에서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이다. <못, 함께하는>은 감독의 자전적 다큐로 본인의 가족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아픈 가정사를 덤덤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리는 감독 특유의 시선이 드러난 수작.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역시 감독의 꾸준한 관심사를 극영화로 재구성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까진 가족 이야기를 했고, 가족이 큰 관심사였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점점 달라지는 건 있다. 사실 영화를 하기 전까진 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했다. 물론 지금도 제가 가장 중요한데 자꾸 주변을 둘러보게끔 하는 일들이 있다. 근 몇 년간은 페미니즘 이슈가 제게 중요하게 다가왔다. 한국성폭력센터 홍보 영상을 만들기도 했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도 성폭력 생존자와 관련한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다."
 
- 대학교 학부 과제였던 단편 다큐멘터리 <못, 함께하는> 이후 극영화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삼 남매 이야기도 자전적 성격이 있는 것인가. 
"실제 우린 세 자매인데 어느 정도 반영이 되는 것 같다. 제가 공교롭게 고양이도 세 마리 키우고 있다. 고양이가 삼 남매다. 제가 천식이 있고 고양이 알레르기도 심한 편인데 <아프리카>를 찍으면서 천식이 더 심해졌다. 병원에선 고양이를 키우면 안 된다고 강하게 말해서 이 아이들을 입양 보내야 하나, 그러면 난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엄청 많아졌다.

아무래도 남자 캐릭터(둘째 오빠 지훈)가 가장 어려웠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도 가장 아쉬운 캐릭터기도 하다. (한국에서) 남성은 살면서 가족에게 애정 표현도 잘 못하는 편이지 않나. 감정표현을 거세당하면서 사니까. 그래서 배우에게도 직접 물었다. 엄마가 김장하는 걸 본적이 있냐고. 자긴 '하나 보다' 하고 그냥 방에 들어가고 그런다더라(웃음)." 

- 이야기의 구상은 언제부터 했고, 배우들은 다들 신예인데 어떤 과정을 거쳐 캐스팅 했는지.
"(나는) 이야기를 오래 구상하는 편은 아니고 닥쳐야 만드는 편인 것 같다. 그래서 제 시나리오가 탄탄하지 못하다. 작년 10월에 시작해서 2개월 만에 해야 했다. 배우들은 안선경 감독님과의 스터디에서 만난 분들이다. 12명의 배우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 오디션을 봤다. 사실 시나리오 단계에서 많은 걸 정해놓진 않았다.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좋아하는 배우였으면 하는 게 제가 생각한 (유일한) 조건이었다."

왜 아프리카였을까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연출한 이나연 감독.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연출한 이나연 감독.ⓒ 유성호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의 한 장면.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30분이 채 안 되는 영화의 분량 안에서 각 인물들의 감정이 터지는 지점은 바로 마당에서 엄마로 보이는 한 중년 여성과 세 남매가 각각 춤을 추는 장면이다. 아프키라를 상징하는 의상과 전통 음악과 함께 세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을 품은 춤을 선보인다. 관객에 따라선 이 지점이 짠하게 다가올 여지가 크다.

- 여러 설정 중에 왜 엄마를 하필 아프리카로 보냈는지 궁금하다.
"한창 부천 여성의 전화에서 영화인 파견 근무를 한 적이 있다. 거기서 행사 스케치 영상을 찍는 일을 했다. 그 행사에서 쿨레칸이라는 아프리카 댄스그룹이 있더라. 아프리카 춤을 거기서 처음 봤다. 50여 명의 아주머니가 춤을 추시는데 자칫 부끄러울 수도 있을 텐데 서로가 마주 보며 마치 거울 놀이하듯 하시더라. 이 장면을 언젠가 영화에 넣어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이번에 각 인물을 축복하는 시간으로 설정해 넣게 됐다. 당시 까르라는 여성 댄서 분을 선생님으로 섭외해 배우들과 저도 함께 춤을 배웠다."

- 그리고 배추는?
"엄마가 아프리카에서도 김치를 먹고 있을까? 그 호기심에서 지은이가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라는 대사를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말하기 좀 부끄럽지만 배추는 사랑을 상징한다. 영화에서 공사장 터에 핀 꽃 이야기가 나오잖나. 방치된 것 같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것 같지만 그 꽃 역시 사실 누군가 돌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그냥 자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 마당에서 춤을 추는 설정은 아무래도 엄마와 자녀들의 정서적 교감의 순간으로 보이기도 한다. 두 사람과 달리 큰딸이 가장 머뭇거리고 홀로 플라멩코를 춘다. 
"맞다. 아무래도 첫째 딸이 대리 엄마 역할을 해왔다. 지혜 역시 오래 엄마의 부재를 겪으며 스스로 엄마 역할을 하다 애어른이 된 것이다. 실제 우리 가족도 막내는 엄마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데 전 그게 잘 안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 게 반영된 셈이다. 실제 지혜 역을 한 배우 언니도 여러 춤을 배웠는데 플라멩코도 하실 줄 알더라. 그래서 아프리카 춤을 추기 전 한풀이처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혜가 엄마에게 어떤 말을 하듯 말이다. 공교롭게 플라멩코 자체가 집시들이 한풀이를 하는 의미가 있다더라."

- 영화 속 공간 설정도 흥미롭다. 철거를 앞둔 집의 마당, 방안, 그리고 동네 골목을 순차적으로 제시한다. 세 남매가 모여 있다가 헤어지는 공간이기도 한데.
"사실 영화에 나오는 집은 제가 실제로 사는 집이다. 사직동에 있는 낡은 주택인데 실제로 재개발 중이라 건물이 허물어지는 광경을 보고 있다. 제가 처음으로 애정을 느낀 공간이다. 마당에 원래 우물도 있었는데 그곳에 제가 나무를 심었다. 집을 배경으로 공간에 대한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도 이 작품에 담겨 있다. 또 개인적인 이유지만 이 영화를 집 주인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제가 얼마나 이 집을 사랑하는지 말이다."

- 올해 부산영화제 개막작도 그렇고 가족을 화두로 삼은 영화들이 꾸준히 보인다. 지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스스로를 좀 먹는 게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화두를 끈질기게 파고드는 감독으로 가도 좋을 것 같다.
"근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이다. 당장 내일 뭐 먹을까도 생각하지 않는다. 기억력도 별로 안 좋고(웃음). 그때그때 중요한 화두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다음 영화는 성폭력 생존자에 대한 것이지만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한다. 원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족이 모여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좀 더 편해진 모습으로 이사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는데,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게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새로운 시작 앞에선 다들 두려워하지 않나.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에 바꿨다.

제가 갖고 있는 소재가 풍부하진 않다. 개인적으로 지워지지 않는 질문들이 영화로 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아이템을 여러 개 쌓아놓고 하시는 감독님들이 부럽다. 전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당장 다음 작품밖에 없다(웃음)."

- 지금 품고 있는 고민이 있다면?
"고민이 너무 많다. 프리랜서로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는 게 별로 행복하지 않아서. 여성으로만 이뤄진 제작사를 차릴까도 생각해봤다. 주변에 고 스펙의 여성들이 많아서. 영화에 대한 고민은 역시 다음 작품을 어떻게 재밌게 할 수 있을까다. 내년엔 시나리오가 준비된 상태에서 기획하자는 게 목표다. 그러려면 올 연말을 잘 보내야 한다. 과연 초고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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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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