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의 작가 제인 오스틴이 쓴 18세기 배경의 고전 <오만과 편견>에는 짝을 찾고자 발버둥치는 영국 청춘남녀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 속에는 먹고 사느라 사랑도 포기하는 N포세대의 우울함은 없다.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 'Only love'를 떠올리게 할 뿐.

소설 속에서 가장 부각되는 커플은 동명 영화 속 포스터에 등장하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다. 엘리자베스는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다아시가 하는 행동을 '오만'하다고 '편견'을 가져 멀리 한다. 그러나 남자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사랑 찾기 미션에 드디어 성공한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2018년 신작 <마드모아젤> 포스터. 주인공 라 폼므레 부인과 아르시스 후작의 모습이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2018년 신작 <마드모아젤> 포스터. 주인공 라 폼므레 부인과 아르시스 후작의 모습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이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탈출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공식은 한국 드라마와 비슷하다. 까칠하며 잘난 '밥맛없는' 재벌가 남자인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평범한 집안 출신의 여자에게 푹 빠지는 '사랑꾼' 이다.

단,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완벽남'이 사랑한 그녀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LED 외모에 인성, 능력까지 갖춘, '완벽녀'라는 것. 그리고 그 남자는 현실에서는 스케줄이 너무 바빠서 회사 앞에서 얼쩡거려도 얼굴 보기 힘들며, 게다가 11자 복근과는 거리가 멀고 먼, 살짝 이마도 확장된 중년의 아저씨일 수도 있다. 드라마와 현실은 열정과 냉정 사이만큼 괴리가 있다.

지금 열리고 있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프랑스 버전의 <오만과 편견>이라 할 만한 영화를 만날 수 있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드니 디드로의 원작을 엠마누엘 무레 감독이 "자유롭게" 각색한 2018년 신작 <마드모아젤>이 월드 시네마 부문에 소개되었다.
 
  팔짱을 끼고 행복하게 미소를 짓는 라 폼므레 부인과 아르시스 후작. 부인은 웨딩드레스를 연상시키는  흰색 의상을 입고  다정한 눈길로 후작을 바라보고 있다.

팔짱을 끼고 행복하게 미소를 짓는 라 폼므레 부인과 아르시스 후작. 부인은 웨딩드레스를 연상시키는 흰색 의상을 입고 다정한 눈길로 후작을 바라보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해협을 사이에 둔 프랑스와 영국처럼 18세기가 배경인 이 영국 소설과 프랑스 영화는 닮은 듯 다르다. <마드모아젤>에도 사랑을 갈구하는 남녀가 등장한다. <오만과 편견>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의 연령이 상대적으로 높다. 대략 30대 정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스케일도 다르다. 예를 들어 남자가 구애할 때 선물로 연금, 알 굵은 다이아 목걸이, 저택이 거론될 정도.

여기에 애증의 필수인 삼각관계에 여자의 '복수'까지 가미되어 짜릿한 스릴도 맛볼 수 있다. 또한 파리 사교계까지 드나드는 상류층이 등장하니, 의상과 인테리어 등도 더욱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변모하는 감정을 색상과 디자인으로 표출하는 마담 라 폼므레와 마드모아젤 드 종키에르의 드레스 스타일과, 사랑을 둘러싼 남녀간의 미묘한 심리가 일품이니 인물의 표정을 집중해서 볼 것.    

남편과 사별한 대저택의 주인 라 폼므레 후작 부인은 젊고 아이도 없다. 여기에 아름다우니 남자들의 구애가 이어진다. 하지만 '정숙한 귀부인'이라는 자존심에 섣불리 정을 주지 못한다. 이 도도한 여인에게 빠져 사업도 뒷전인 채, 여러 달 저택에서 아예 머물며 기회를 노리는 남자가 있다. 파리 사교계에서 여성 편력을 일삼는 걸로 소문이 난 아르시스 후작.

그리고 이 라 폼므레 부인과 고민 상담을 하는 친구 한 명이 있으니, 파리에 거주하는 귀족부인이다. 그녀는 사사건건 따지기 좋아하는 성격을 스스로 비관해, 일찌감치 연애는 포기하고 친구에게 훈수를 두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래서 아르시스가 부인 곁을 맴돌자, "바람둥이니 조심해"라고 조언한다.
 
 연인 아르시스 후작이 변심을 한 후 사랑에서 우정으로 관계를 이어가던 라 폼므레 부인은 마드모아젤 종키에르를 통해 복수를 결심한다. 후작은 친구인 라 폼므레 부인에게 마드모아젤에 대한 연정을 고백하며 도와달라고 매달린다. 이에 부인은 다른 쪽을 쳐다보며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연인 아르시스 후작이 변심을 한 후 사랑에서 우정으로 관계를 이어가던 라 폼므레 부인은 마드모아젤 종키에르를 통해 복수를 결심한다. 후작은 친구인 라 폼므레 부인에게 마드모아젤에 대한 연정을 고백하며 도와달라고 매달린다. 이에 부인은 다른 쪽을 쳐다보며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이 친구의 방어에도 불구하고, 자타공인 연애선수 아르시스는 "자연은 그대 매력에 메아리일 뿐" 닭살 멘트에, 의자 이벤트까지 벌인 끝에 결국 여인을 품에 안는다. 하지만 역시나 시간이 흐르자 그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사업 핑계를 대며 밖으로 나돌며 한눈을 판다.

눈치 빠르고 영리한 라 폼므레 부인은 변심에 격분하면서도 체면을 차리느라 애써 쿨한 척 한다. 그래서 재빨리 사랑에서 우정으로 노선을 갈아타 남자의 옆에 머무른다. 그리고 친구에게 종키에르 모녀를 끌어들여 여성들을 대변해 바람둥이 응징에 나설 것을 선언한다. 이른바 변심한 애인에게 교양 있게 우정의 미소를 지으며 등에 비수 꽂기. 귀부인도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마담 종키에르는 귀족 가문의 사생아 출신으로 인생도 복잡하다. 결혼 문제로 재판하느라 재산마저 잃고 떠돌다, 결국 혼전임신으로 낳은 딸과 외곽의 도박장에 정착하게 되었다. 신분 상승과 부를 되찾기 위해서는 딸도 거래할 수 있는 성격. 마드모아젤 드 종키에르는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아르시스의 표현대로 "라파엘로 성모"처럼 고결한 외모를 지닌 반전 캐릭터다.
 
 아르시스 후작은 소원대로 마드모아젤과 결혼하고 첫날밤을 맞이한다. 그는 마드모아젤의 순결을 함부로 범하지 않겠다며 그녀의 사랑을 기다리겠노라고 말한다. 이에 마드모아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힘들어 한다.

아르시스 후작은 소원대로 마드모아젤과 결혼하고 첫날밤을 맞이한다. 그는 마드모아젤의 순결을 함부로 범하지 않겠다며 그녀의 사랑을 기다리겠노라고 말한다. 이에 마드모아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힘들어 한다.ⓒ 부산국제영화제

 
이 라 폼므레 부인 각본의 복수극은 철저하게 상류층 출신의 오만과 편견을 기반을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 의도대로 반전녀의 매력이 치명적으로 드러나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 이 과정에서 교양이 넘친다는 상류층의 가식들이 그 민낯을 드러내고 관객들은 연암 박지원의 소설 <호질> 속 풍자를 느낄 수 있다. "거 봐. 인간은 다 똑같다니까." 그런데 여기에 각본가가 전혀 예상치 못하게, 오만과 편견의 색안경을 벗어던진 이들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이기 시작한다.  

영국 소설처럼 이 프랑스 영화도 오만과 편견을 극복한 용감한 자에겐 사랑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하지만 색안경을 벗지 못한 이에겐 외로움이 기다린다. 그래서 모두가 짝을 찾아 성공하는 <오만과 편견>이 상큼 달콤한 오렌지라면, <마드모아젤>은 새빨간 루비 빛깔의 레드자몽을 닮았다. 훨씬 치명적인 사랑에, 그 맛은 매우 씁쓸하면서 달달하여 중독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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