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키스 앤 크라이>의 포스터.

ⓒ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제공


학생의 유일한 본분으로 일컬어지는 공부. 하지만 "공부만 하라"는 어른들의 질책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에 드러나거나 숨겨진 여러 곳에서 두각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있고, 그리고 청소년에게 힘이 되어주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또, 청소년들이 모이고, 주최했던 행사나 모임을 취재합니다. 청소년이었던 시민기자가 직접 발로 뛰고 집필하는 연재기획 <옆동네 1318>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크게 개최되는 아동, 청소년 대상 영화제가 서울의 가을 하늘을 꽉 채웁니다. 11월 30일부터 12월 10일까지 개최되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SIYFF)에 개막부터 폐막까지, 그리고 상영된 영화 리뷰나 감독/배우의 인터뷰까지 오롯이 담아냅니다. 두 번째 순서로 SIYFF의 개막작 <키스 앤 크라이>를 소개합니다. - 기자 말

2018 평창 올림픽이 100일 앞으로 다가와서 그런가.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개막작에서는 피겨 선수이자 암을 딛고 일어섰던 '인생 승리'의 주인공 칼리 앨리슨(Carley Allison)을 다룬 캐나다 영화 <키스 앤 크라이>(Kiss And Cry)가 상영됐다. 국내 개봉은 커녕 단 한 번도 상영되지 않았던 영화이기 때문에 기대가 앞섰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 상영된 많은 영화가 그렇듯 국내에 처음 상영된 <키스 앤 크라이>는 예상치 못한 암 투병에 실망하면서도, 자신이 가야할 길과 암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았던 칼리 앨리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희망의 주인공으로 알려졌지만 국내에는 크게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가 간다.

그녀가 밟았던 공간에 가고 불렀던 노래를 부르고...

 <키스 앤 크라이>의 주인공이 된 캘리 앤더슨의 실제 모습.

<키스 앤 크라이>의 주인공이 된 캘리 앤더슨의 실제 모습. ⓒ 캘리앤더슨 유튜브


실존 인물인 칼리 앨리슨이 직접 출연하거나 그녀의 개봉 축하 영상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였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그녀를 연기하는 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녀는 인간 중 35억 분의 1이 걸리게 된다는 악성 종양을 앓았고, 그것이 완치되는가 싶더니 다시 폐로 전이되어 지난 2015년 3월 마지막 날 사망했기 때문이다.

칼리 앨리슨 역을 맡은 사라 피셔는 그녀의 삶을 그대로 복사한 듯한 연기를 선보였다.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노래로 사람들에게 다시 희망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그리고 자신의 볼품없는 모습을 보고 실망할까 남자친구를 멀리하려던 모습까지도 덤덤하게 선보였다. 캐나다 배우 사라 피셔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모든 장면은 칼리 앨리슨이 살던 집, 그녀가 다녔던 고등학교 그리고 피겨 연습을 위해 밟았던 빙상까지 모두 재현된다. 집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셀피를 캠코더에 담는 모습에서도 그렇다. 칼리 앨리슨을 '연기'하는 것이 아닌, 한 배우가 그대로 따라가는 실제 상황 같다는 느낌까지 들게 만든다.

내 마음을 가장 많이 빼앗은 것은 칼리 앨리슨이 캐나다인이 가장 좋아하는 <하키 나이트 인 캐나다>의 경기에 나와 캐나다 국가인 '오 캐나다(Oh Canada)'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실제 암 환자들의 우상이 된 그녀가 캐나다인이 가장 사랑하는 아이스하키 경기에 나와 국가를 부르는 것이었는데, 역시 실제 TV로 중계된 화면과 영화가 겹쳐져 보이는 듯했다.

자전적인 대사에 웃다가도 울다가도

 영화 <키스 앤 크라이>의 스틸컷.

영화 <키스 앤 크라이>의 스틸컷. ⓒ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암 환자를 다룬 영화라고 해서 영화의 분위기가 슬픈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끼어있는 자전적인 독백 대사는 웃음을 주기도 하고, 울음을 안기기도 한다. "마치 레이싱을 하듯 흡입관을 갈아야 한다"는 대사 뒤에는 예상치 못하게 가족이 흡입관을 떨어뜨려 새 흡입관을 가져오는 장면이 이어진다.

영화 후반부의 독백 대사에서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피겨 경기에서 선수가 앉는 자리를 '키스 앤 크라이 존'이라고 불러. 선수들이 높은 점수를 받으면 키스를 나누고, 반대면 운다는 뜻이지. 나에겐 많은 것들이 키스였고, 암은 크라이였어. 하지만 그것이 내 점수는 아니야. "

독백 대사 안에는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자칫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이제 엄마가 들어와서 나를 안을 거야. 아빠가 들어와서 '다 괜찮다'고 할 것이고"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대로 이루어져 슬픈 분위기 속 작은 웃음을 안기기도 한다. 이렇듯 그녀의 독백 대사를 주목하면 영화 안의 더욱 많은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키스 앤 크라이>와 SIYFF

 영화 <키스 앤 크라이>의 스틸컷.

영화 <키스 앤 크라이>의 스틸컷. ⓒ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키스 앤 크라이>는 제19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주제를 관통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 영진위와의 행정소송을 이유로 정부 지원 예산이 100% 삭감되어 어려운 시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시에도 '좌파 영화제 길들이기'라는 주장이 대두되었고 영진위와의 소송 역시 승리했지만, 3년째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영화제는 아예 치러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SIYFF가 개개인의 사비를 지출하면서까지 개최에 의의를 둔 영화제이니만큼, 암의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금 올라서려 했던 <키스 앤 크라이>의 영화 내용을 생각하면 비슷한 데가 많다.

더욱 많은 관객들이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현장을 찾았으면 한다. 이번 영화제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영화를 상영하고 있고, 다른 영화제 못지 않은 장단편 영화를 만날 수도 있다. 인사아트홀에서,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에서, 마포청소년수련관과 마포청소년문화의집 등에서 오는 10일까지 영화제를 만날 수 있다.

<키스 앤 크라이> 역시 적은 상영관이나마 개봉하여 관객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암에도 굴하지 않은 그녀의 열정과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하게 전해졌으면 한다.

 어려운 준비 끝에 지난 11월 30일 개막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개막식에서 김종현 조직위원장이 인사하고 있다.

어려운 준비 끝에 지난 11월 30일 개막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개막식에서 김종현 조직위원장이 인사하고 있다. ⓒ 박장식



캐나다 영화 캐나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영화제 청소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