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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유일한 본분으로 일컬어지는 공부. 하지만 "공부만 하라"는 어른들의 질책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에 드러나거나 숨겨진 여러 곳에서 두각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있고, 그리고 청소년에게 힘이 되어주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또, 청소년들이 모이고, 주최했던 행사나 모임을 취재합니다. 청소년이었던 시민기자가 직접 발로 뛰고 집필하는 연재기획, <옆 동네 1318>입니다. 이번 차례에는 일곱 명의 청소년들이 모여 만드는 '위안부 기념 뱃지', 보라난 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 기자 말

왼쪽부터 이혜린 씨, 장채린 씨, 이상운 씨, 박채영 씨, 정예원 씨, 최민희 씨,  김시현 씨.
▲ 인터뷰가 끝난 후 사진 촬영에 응한 '보라난 꽃' 왼쪽부터 이혜린 씨, 장채린 씨, 이상운 씨, 박채영 씨, 정예원 씨, 최민희 씨, 김시현 씨.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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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가 지속되면서, 여러 지역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제작되고 있다. '작은 소녀상'을 학교에 세우거나, 철거 위기에 놓인 소녀상을 지키는 데 앞장서는 청소년들도 있다.

또 다른 청소년들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해 배지를 만들고 있다. 판매한 수익금의 절반은 정의기억재단으로, 나머지는 나눔의 집에 기부한다. 고양·파주 지역 청소년들이 모여 만들기 시작한 '보라난 꽃' 배지는 현재까지 약 1만5000개가 판매돼 배송이 진행중이다.

지난 12일, 경기 고양시 탄현동에서 배지 제작에 참여한 학생들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친구 제안으로 시작한 배지 만들기, 이렇게 커질 줄이야

장채린 씨의 블라우스 옷깃에 달린 보라난 꽃의 배지.
 장채린 씨의 블라우스 옷깃에 달린 보라난 꽃의 배지.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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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자기소개부터 해달라.
김시현(동패고·1학년): "'보라난 꽃'에서 디자인을 맡았다. 배지라든가 홍보물 등을 디자인했다."

이상운(동패고·1학년): "내가 '보라난 꽃'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지금은 주문 정리도 하고 있다."

박채영(동패고·1학년): "어쩌다보니 보라난 꽃의 총괄 책임을 하고 있다.(웃음)"

이혜린(동패고·1학년): "보라난 꽃에서 총무를 맡고 있다."

장채린(동패고·1학년): "SNS 페이지 관리 등 보라난 꽃의 홍보를 맡고 있다."

정예원(저현고·1학년): "배지의 배송을 담당하고 있다."

최민희(저현고·1학년): "보라난 꽃 배지의 배송을 같이 담당하고 있다."

- '보라난 꽃' 활동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박채영: "가장 큰 계기는 5월에 마리몬드에서 진행한 김복동 할머니 전시회에 구경 갔다가 배지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예원이에게 제안을 했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얼떨결에 만들어졌는데, 친구들이 계속 참여하고 참여하다보니 일곱 명이 모였다."

정예원: "채영이와는 중학교 친구다. 고등학교는 서로 달라도 학원은 같이 다닌다. 어느 날 함께 집에 오는데, 채영이가 내게 '같이 프로젝트를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청소년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에 공감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관심이 커졌다.

- 배지는 어떤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됐나.
김시현: "처음 배지를 디자인하려니 어려움이 많았다. 채영이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 꽤나 어려웠다. 겨우 디자인을 완성했는데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할 때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디자인이 확정됐고 배지 업체에 샘플 제작을 의뢰했다."

이상운: "확정된 디자인을 바탕으로 주문 양식을 만들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주문을 받고 홍보도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페이지로 찾아와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부탁했는데, 순식간에 확 퍼진 것이다."

장채린: "처음에는 지인들에게만 공유하려고 했다가, 관심이 많아지면서 정치인이나 언론사에도 많이 관련 내용을 보냈다. 다 무시당할 줄 알았는데 몇몇 분으로부터 취재 관련 확답이 왔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를 올려주셨다. 기사가 올라오니까 주문이 그야말로 '폭발 일보 직전'으로 밀려왔다."

 - 배지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공통답변: "보라난 꽃 프로젝트는 '보랏빛으로 피어난 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귀한 색깔인 보라색을 이용해서, 고귀하게 태어난 소녀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래서 배지에서 소녀 얼굴을 가린 꽃이 목련이다. 목련은 고귀함과 존경을 의미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 그분들의 고귀함을 알고 존경하자는 뜻을 담았다.

배지를 보면 소녀가 한복 저고리를 입고 눈을 감고 있는데, 하얀 저고리에는 순수한 민족정신을 담고 있다. 다른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은 우리의 태도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담아냈다. 배지는 가로 2.4cm, 세로 3cm이고, 가격은 한 개당 2500원에 판매했었다."

 - 프로젝트가 큰 관심을 받았다. 소감이 궁금하다.
최민희: "학교에서만 하고 작게 끝나겠지 생각했는데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제주도, 부산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재일교포나 재미교포 분들도 관심을 갖고 '국제우편으로 보내줄 수 있냐'는 질문을 주실 정도였다. 배송비가 많이 든다고 이야기하니까 '괜찮다'는 답장을 주셨다. 대략 5000건이 넘는 주문이 들어왔다."

김시현: "생각보다 학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가끔 선생님들이 '어머 대단하구나!' 하는 정도였다. 학교에서 학교 소식을 틀어주는 TV가 있는데, 거기서 우리 프로젝트가 SBS 뉴스에 방송됐던 것을 그대로 방영했었다."

박채영: "우리 반 친구들이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페이스북이나 단체 채팅방에 링크를 공유하며 더 적극 반응해주었다. 자랑스럽다고도 해줬다.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친구가 먼저 연락해온 경우도 많았다."

최민희: "우리 학교보다는 다른 학교의 관심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학교에서도 한 반에서 단체로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고, 선생님들도 한 번에 열 개씩 주문해주시는 경우도 많았다. 선생님이 먼저 물어보시고는 '학교에서 이체할 것'이라며 즉석에서 '예약'하시는 경우도 많았다."

"학교까지 노트북 들고 가 작업... 악플 달리기도"

보라난 꽃의 프로젝트 소개문
 보라난 꽃의 프로젝트 소개문
ⓒ 보라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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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기 중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쉽진 않았을 듯하다.
이상운: "주문을 정리해서 입금된 것을 확인하면서 맞춰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하다보니까 시험기간 내내 컴퓨터랑 씨름을 했다. 주문이 누락된 것도 엄청 많았다. 중복 주문도 많았고, 페이스북 메시지로 수정해달라는 연락이 폭주했다. 주소도 동까지만 적혀있고 세부 내용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입금자명도 '파이팅', '응원할게요' 같은 식으로 와서 더 힘들었다."

김시현: "일단 홍보지를 만드는 데 다섯 시간 정도 걸렸다. 취지나 목적 등을 깔끔하게 담아내야 했고, 알차게 담아내서 만들어야 했다. 페이스북 문의도 미친듯이 몰려왔다. 주문 문의가 막 밀려들다보니까 배송확인도 묻히고, 일주일 뒤에 다시 '왜 확인 안하세요?' 하는 메시지가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전문 텔레마케터도 아니다보니 친절하게 응대하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이모티콘도 몇 개씩 붙였다가, 나중에는 맞춤법도 안 맞고 물결표시도 없는 무미건조 어투로 보내게 됐다."

이혜린: "이 세상에 동명이인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서 '김지영' 같은 경우 한 번에 서로 다른 네 명이 같은 금액으로 주문을 했는데, 휴대폰 번호나 주소가 달라서 다른 사람인 것을 깨달은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같은 사람이 여러 번 주문을 보낸 경우도 많아서, 확인전화를 돌려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학교에 노트북까지 가져가기도 했다. 학교에서 노트북과 폰뱅킹을 켜서 대조해봤다. 급식도 몇 번 못 먹었을 정도였다."

정예원: "우리가 시험이 3~4일 정도 더 빨랐다. 그래서 공부하다가 메시지가 와서 들어가 보면 메시지가 없어진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미안한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시험도 끝나서 분업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이상운: "바쁘게 정리를 하던 도중 엑셀을 잘못 만져서 주문 수량이 다 날아간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백업자료를 찾아 수정할 수 있었는데, 백업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장채린: "시험이 끝난 뒤 첫날인 오늘도 박스를 들고 와서 교실 바닥에 앉아서 포장하고 있었다. 노트북을 옆에 두고 주문 양식을 작성하고 뒤늦게 입금한 사람의 행방도 찾았다. 계좌를 닫아야 하는데 입금을 계속 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등기, 우편, 직거래로 나눠서 교실 뒤에서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작업을 했다."

 - 주문 과정에서 주문자와의 마찰은 없었나.
박채영: "우리를 상대적으로 '낮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많이 안타까웠다. 사업자등록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도 꽤나 있었다."

김시현: "우리를 학생이 아닌 소셜커머스 '슈퍼 딜'로 보시는 경우도 많으신 것 같다.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작업이 다소 빠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최민희: "댓글에서 가끔 '돈을 목적으로 하느냐', ''위안부' 피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게 뭐가 자랑이라고 달고 다니냐'는 '박사모' 어르신들도 눈에 띄었다. 그래도 좋은 말을 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서 힘이 됐다."

박채영: "입금한 지 2주가 지났는데 왜 안 보내주냐는 분들도 많았다. 학기 중인데다가 시험기간이어서 시간이 없었다. 배송일자 지연을 안내했는데도 배송이 안 왔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정예원: "그래도 많은 사람이 우리와 같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노력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했다. 우리가 조금 부족했지만, 대다수의 분들이 응원을 보내주셨다. 대다수 분들은 우리의 일에 큰 힘이 돼주셨다."

"이후에도 6.25나 독도 프로젝트 진행하고 싶다"

필자의 가방에도 보라난 꽃 배지를 달았다. 볼 수록 기품이 나는 배지다.
 필자의 가방에도 보라난 꽃 배지를 달았다. 볼 수록 기품이 나는 배지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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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라난 꽃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바가 있나.
이상운: "'위안부' 피해 문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함을 깨달았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장채린: "앞으로 이 사회를 주도해나갈 주체가 우리인데, 청소년들이 이런 문제에 무관심한 것이 제일 문제라고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가 정치에서 비롯된만큼, '위안부' 피해 문제에도, 현실 정치에도 청소년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박채영: "이 프로젝트를 두고 정치적으로 논쟁하기보다는, 인권 문제로 여겨주셨으면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박채영: "방학 때 수요집회에 참여하려고 한다. 나눔의 집은 초청받지는 못했지만 직접 방문해서 기부금도 전달하고, 봉사도 하고, 할머니들과 이야기도 나누려고 한다. 이후에도 또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하려 한다. 아마 6.25 관련 프로젝트나 독도 관련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 보라난 꽃 프로젝트가 조만간 마무리된다고 들었는데.
이혜린: "고등학생이다 보니 이렇게 계속 관심을 받으며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 우리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수업시간까지 방해를 받다 보니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김시현: "상표권이나 디자인을 '위안부' 관련 재단으로 이양할 생각도 있다. 이대로 배지 디자인을 폐기하고 추억 속으로 묻기엔 아깝다. 재단에서 이 도안을 사용해 배지나 상품을 만든다면 이 프로젝트를 기부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우리의 취지와도 맞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가 끝나고 보라난 꽃 배지를 받았다. 값을 지불하려 하자 '이것을 달고 다녀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곧장 가방 뒤 잘 보이는 곳에 배지를 달았다.

보라난 꽃 프로젝트의 배송이 잘 마무리돼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은' 그들의 소원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란다. 한편으로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이 '푹 쉰 다음' 또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지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옆동네 1318은 우리 사회의 '멋진 청소년'이라면 누구라도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제보는 trainholic@naver.com으로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에 참여하실 분의 '자천'도 환영합니다.



태그:#청소년, #보라난 꽃, #일본군 위안부,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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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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